[연중 제32주간 수요일] 나병 환자 열 사람 (루카 17,11-19)

2017. 11. 15. 오전 5:5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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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2주간 수요일] 나병 환자 열 사람 (루카 17,11-19)


지혜서의 저자는, 권력과 통치권은 주님께서 주셨다며,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않으면 높은 자리에 있는 자들은 엄격한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한다. (지혜 6,1-11 )
1 임금들아, 들어라. 그리고 깨달아라. 세상 끝까지 통치하는 자들아, 배워라. 2 많은 백성을 다스리고 수많은 민족을 자랑하는 자들아, 귀를 기울여라.
3 너희의 권력은 주님께서 주셨고 통치권은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주셨다. 그분께서 너희가 하는 일들을 점검하시고 너희의 계획들을 검열하신다. 4 너희가 그분 나라의 신하들이면서도 올바르게 다스리지 않고, 법을 지키지 않으며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5 그분께서는 지체 없이 무서운 모습으로 너희에게 들이닥치실 것이다. 정녕 높은 자리에 있는 자들은 엄격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
6 미천한 이들은 자비로 용서를 받지만 권력자들은 엄하게 재판을 받을 것이다. 7 만물의 주님께서는 누구 앞에서도 움츠러들지 않으시고, 누가 위대하다고 하여 어려워하지도 않으신다. 작거나 크거나 다 그분께서 만드셨고 모두 똑같이 생각해 주신다. 8 그러나 세력가들은 엄정하게 심리하신다.
9 그러니 군주들아,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을 듣고, 지혜를 배워 탈선하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10 거룩한 것을 거룩하게 지키는 이들은 거룩한 사람이 되고, 거룩한 것을 익힌 이들은 변호를 받을 것이다. 11 그러므로 너희가 나의 말을 갈망하고 갈구하면 가르침을 얻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나병 환자 열 사람을 고쳐 주셨는데, 하느님을 찬송하며 돌아와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린 사람은 사마리아 사람 한 사람뿐이었다. (루카 17,11-19)
11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사마리아와 갈릴래아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다.
12 그분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시는데 나병 환자 열 사람이 그분께 마주 왔다. 그들은 멀찍이 서서 13 소리를 높여 말하였다. “예수님, 스승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14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보시고,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 하고 이르셨다. 그들이 가는 동안에 몸이 깨끗해졌다.
15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16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18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19 이어서 그에게 이르셨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연중 제32주간 수요일 제1독서 (지혜6,1-11)


"미천한 이들은 자비로 용서를 받지만, 권력자들은 엄하게 재판을 받을 것이다.

 만물의 주님께서는 누구 앞에서도 움츠러들지 않으시고,  누가 위대하다고 하여 어려워하지도 않으신다.

 작거나 크거나 다 그분께서 만드셨고, 모두 똑같이 생각해 주신다.  그러나 세력가들은 엄정하게 심리하신다.

 그러니 군주들아,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을 듣고,  지혜를 배워 탈선하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6-9)


지혜서 6-9장은 전체 지혜서의 2부에 해당되며, "지혜"에 대한 가르침을 준다. 그리고 지혜서 6장 1-11절시작 권면으로서 세상 임금들에게 주는 말씀이다.


이 책이 세상의 임금들을 부르는 것으로 시작되었음을 상기시키면서(지혜1,1-15참조) 제1부 '정의와 불멸성'(지혜1-5장)에 관한 가르침을 마무리하고, 이어지는 "지혜"에 관한 제2부 가르침을 준비하는 역할을 한다.


불법과 악행에 휩쓸리지 않기 위하여 주의를 기울일 것을 임금들에게 호소한 뒤에

(지혜6,1-2; 5,23참조), 저자는 그들에게 권력을 주시는 하느님께서 엄격한 심판을 요구할 것임을 상기시킨다(지혜6,3-8).


통치자들은 자기 아래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지만, 하느님께서는 인간 통치자들을 조금도 어려워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그들을 엄정하게 심리하신다.


하느님께서 통치자들을 엄하게 재판하실 것이기 때문에 지혜서 6장 9-11절에서 그들이 지혜를 배우도록 초대하신다. 항상 그렇듯이 지혜서에서 가르치는 지혜는 올바른 삶과 거룩함과 연결되어 있다.


"거룩한 것을 거룩하게 지키는 이들은 거룩한 사람이 되고,  거룩한 것을 익힌 이들은 변호를 받을 것이다."  (지혜6,10). 그 다음에 나오는 것은 지혜의 본성에 관한 본격적인 가르침이다.




연중 제32주간 수요일 복음 (루카17,11-19)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15~16)


여기서 '병이 나은'에 해당하는 '이아테'(iathe; he was healed)의 원형 '이아오마이'(iaomai)'치료하다', '회복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4복음서와 사도행전에서 '이아오마이'(iaomai) 예수님과 제자들이 행한 치유

관련되어 사용되었는데, 특히 하느님 나라의 도래에 이루어질 치유의 역사를 보여 주는 단어로서, 구약 예언의 성취를 보여 주는 동사이다(이사35,3~6; 61,1).


이것은 예수님과 제자들의 모든 치유의 본질이 기적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권세 있는 말씀으로 새로운 시대의 여명을 여신 치유자 예수님께 있음을 암시한다.


열사람의 나병 환자들은 눈으로 아무런 증거도 보지 못한 상태에서 믿음으로 순종하며 사제들에게 검증받기 위해(레위14,2) 가던 도중에 나병으로부터 깨끗해지는 기적을 체험하게 된다.


그런데 루카 복음 17장 15절은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자신에게 나타난 변화를 보았다고 말한다.

루카 복음사가는 단순히 가시적으로 나타난 치유 기적을 이 한 사람만이 경험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단 한 사람의 나병 환자만이 자신의 치유자가 바로 예수님임을 깨닫고 감사하려 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자 했던 것이다.


한 사람의 나병 환자가 자신에게 일어난 치유 기적의 배후에 하느님께서 계셨고, 그분의 능력이 예수님을 통해 성취되었음을 깨달았기에,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는 찬양을 하며 예수님께 감사하기 위해 돌아왔던 것이다.


예수님께 돌아와 감사를 드린 사람은 사마리아인이었다. 사마리아인b.c.722년 북부 이스라엘의 아시리아에 의해 함락된 이후에 그들과 혼혈이 되어 혈통의 순수함이 변질되고, 아시리아의 우상 숭배로 말미암아 야훼 유일신 신앙마저 변질시켜 혼합 종교를 섬기던 장본인이었다.


그래서 혈통의 순수함과 야훼 유일힌 신앙을 가진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사마리아인들은 이방인들과 같이 여겨져 멸시와 천대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마리아인이 예수님꼐 은혜를 입고 돌아와 무한 감사를 표시반면에, 선민으로서 다른 민족에 비해 하느님의 살아과 축복을 더 많이 받았던 유대인으로 여겨지는 나머지 아홉은 오히려 자신의 몸이 깨끗해진 사실에만 기뻐할 뿐, 최소한의 어떤 감사도 표시하지 않았다.


루카 복음사가는 당시 유대인들에게 멸시받던 사마리아 사람들이 하느님의 뜻에 더 합당한 삶을 산다는 모습을 통해서, 선민이라는 특권 의식과 이름만을 소중히 여기며 교만하게 살아가는 유대인들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여기서 '엎드려'에 해당하는 '에페센 에피 프로소폰'(episen epi prosopon; he threw himself; he fell down his face)은 직역하면 '그는 얼굴을 떨어뜨렸다'이다.


어떤 사람의 발 앞에 자신의 얼굴을 떨어뜨려 땅에 대는 행위는 상대방에 대한 극도의 존경과 경배의 표시이다. 사마리아 사람은 자신을 치유한 예수님께 최고의 존경을 드렸던 것이다.

그리고 '감사를 드렸다'로 번역한 '유카리스톤'(euchariston; thanked; gave thanks)의 원형 '유카리스테오'(eucharisteo)는 성경에서 주로 하느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총에 대한 감사와 성찬례 축복 기도를 가리키는 용례로 쓰였다.


예수님께 대한 사마리아 사람의 감사 행위에 이 용어가 쓰인 것은, 그가 자신에게 베풀어 주신 예수님의 치유에 대해 하느님께 돌리는 것과 같은 감사의 표현을 했음을 나타낸다.

다시말해서, 그는 자신의 치유를 통해 예수님의 메시야 되심을 인식하고, 하느님께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예수님께 감사를 표시한 것이다.



복음묵상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그분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시는데 나병 환자 열 사람이 그분께 마주 왔다.

그들은 멀찍이 서서 소리를 높여 말하였다. ‘예수님, 스승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보시고,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 하고 이르셨다.

그들이 가는 동안에 몸이 깨끗해졌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이어서 그에게 이르셨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루카 17,12-19)”


여기서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라는 말은, 자기들의 병을 고쳐 달라는 뜻입니다. 열 명의 환자 모두 예수님의 권능을 믿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나병 환자가 사제에게 가서 자기의 몸을 보여주는 것은 병을 고친 뒤에 치유되었음을 확인받기 위해서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병을 고쳐 주시기 전인데도, 사제들에게 가서 몸을 보여주라고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들의 믿음과 순종을 시험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셨다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인데, 이 해석대로라면 열 명의 환자가 모두 그 시험을 통과한 셈이 됩니다. 그들 전부 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사제들에게 갔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너희의 병을 고쳐 줄 테니 사제들에게 가라.” 라고 말씀하셨을 가능성도 있는데, 그렇다면 환자들이 사제들에게 간 것은 예수님의 약속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에 비슷한 상황을 전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왕실 관리는 예수님께 ‘주님, 제 아이가 죽기 전에 같이 내려가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가거라.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 그 사람은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이르신 말씀을 믿고 떠나갔다(요한 4,49-50).”


예수님께서는 ‘믿음’에 관해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기도하며 청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이미 받은 줄로 믿어라. 그러면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마르 11,24).”


환자들의 몸이 깨끗해진(치유된) 때는 사제들에게 가는 도중이었는데, 이것은 어쩌면 예수님께서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신 일일 수도 있습니다.

만일에 예수님께서 그들의 병을 먼저 고쳐 주신 다음에 사제들에게 보냈다면, 그들은 모두가 함께 예수님께 감사드렸을 것이고, 사제들에게 가는 일도 열 명이 함께 했을 것입니다.

즉 아홉 명과 한 명이 갈라지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가는 동안에 치유의 기적이 일어났기 때문에 아홉 명과 한 명이 갈라지는 일이 생깁니다.

(그냥 간 아홉 명은 예수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사제들에게 갔을 것입니다. 그들은 사제들에게 가서 병의 치유를 확인받은 다음에 예수님께로 되돌아올 수도 있었지만 돌아오지 않고, 그냥 각자 자기의 길을 간 것으로 생각됩니다.) 


사마리아 사람이 사제들에게 가다 말고 예수님께로 되돌아온 일에 대해서는, 사제들에게 가라는 예수님의 지시에 불순종한 일이라고 말할 수는 없고, 그가 자신에게 일어난 기적을 통해서,


예수님은 단순히 병을 잘 고치는 예언자가 아니라, ‘사제들보다 더 높고 위대하신 메시아’ 라는 것을 믿게 되었고, 그래서 사제들에게 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고, 몸의 치유보다 더 큰 은총을 얻기 위해서 곧바로 예수님께로 되돌아온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은 처음에 병을 고쳐 달라고 청할 때의 믿음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예수님은 병을 잘 고치시는 분’이라는 믿음과 ‘예수님은 메시아’ 라는 믿음은 차원이 다른 믿음입니다. 몸의 치유와 영혼의 구원은 차원이 다른 일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아홉 명은 똑같은 기적을 체험했으면서도 왜 그냥 가버렸을까? 그것은 추구하는 것이 달랐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어쩌면 그들도 치유된 뒤에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몸의 치유로 만족하고서 영혼의 구원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예수님께로 되돌아올 필요를 못 느꼈을 것입니다.

반면에 사마리아인은 몸의 치유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고, 영혼의 구원을 갈망하던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겉으로만 보면, 한 명만 감사를 드리러 되돌아오고, 다른 아홉 명은 고마워하지도 않고 그냥 가버린 이야기로만 보이지만, 그것은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감사드리는 태도’를 강조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무엇을 추구할 것인가?”에 관한 가르침입니다.


우리는 몸의 치유만 바라지 말고, 영혼의 구원을 추구해야 합니다. 영혼 구원이 현세적인 복을 받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구원하려고 해도 구원받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들을 안타까워하시는 예수님의 심정을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라는 말씀은, 구원을 향해서 나아가기 시작한 사마리아인을 칭찬하고 격려하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일에 관해서 말씀하실 때,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사람이 제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마태 16,26)” 라는 말씀도 하셨는데,

이 말씀을, “병을 고쳐서 몸이 건강해졌다고 해도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영원한 생명을 몸의 건강과 바꿀 수 있겠느냐?”로 바꿔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권고합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십니다.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은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이미 죽었고, 여러분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안에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콜로 3,1-3).”


송영진 모세 신부


오늘의 묵상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을 보면 나병 환자 열 사람은 예수님께 가까이 다가오지도 못하고 멀리서 큰 소리로 외칩니다. “예수님, 스승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그들의 절박한 외침과 딱한 처지를 헤아리신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낫게 하십니다. 하지만 병이 낫자, 예수님께 되돌아와 감사드린 사람은 몇 명이나 되었습니까? 겨우 한 명뿐이었지요. 그것도 이방인인 사마리아 사람 하나뿐이었습니다.
우리 안에도 이런 요소가 있는지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급할 때면 “주님, 주님!” 부르다가도, 막상 문제가 해결되면,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것을 잊을 때가 종종 있지 않습니까?
그러기에 병이 나아 예수님께 감사드리러 온 사마리아 사람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는 점점 더 감사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잃어버리고 있기 때문이지요.
우리 삶을 되돌아보면 참으로 남의 도움이 많았다는 것을 깨닫곤 하지 않습니까? 뜻하지 않게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준 경우도 많지요. 그런데도 우리는 이런 것들은 쉽게 잊어버리고, 오히려 다른 이들로부터 서운했던 경우나 상처받은 것들만 기억할 때가 더 많은 듯합니다. 하느님께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지난 나날들을 되돌아본다면 하느님께서 보살펴 주셨기에 가능했던 일들,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이루어진 일들이 실로 많기만 합니다. 그런데도 얼마나 이를 깨닫고 감사를 드렸는지, 오늘 차근히 성찰해 보았으면 합니다.

(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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