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0주간 금요일]안식일에 (루카 14,1-6)

2017. 11. 3. 오전 4:3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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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0주간 금요일]안식일에 (루카 14,1-6)


바오로 사도는, 동포들을 위해서라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져 나가기라도 했으면 하는 심정이라고 한다. (로마 9,1-5)
형제 여러분, 1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진실을 말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나의 양심도 성령 안에서 증언해 줍니다. 2 그것은 커다란 슬픔과 끊임없는 아픔이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3 사실 육으로는 내 혈족인 동포들을 위해서라면, 나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져 나가기라도 했으면 하는 심정입니다. 4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입니다.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자격, 영광, 여러 계약, 율법, 예배, 여러 약속이 그들에게 주어졌습니다. 5 그들은 저 조상들의 후손이며, 그리스도께서도 육으로는 바로 그들에게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분은 만물 위에 계시는 하느님으로서 영원히 찬미받으실 분이십니다. 아멘.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수종을 앓는 사람을 고쳐 주시고,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지면 안식일일지라도 바로 끌어내지 않겠느냐고 하신다. (루카 14,1-6)
1 예수님께서 어느 안식일에 바리사이들의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의 집에 가시어 음식을 잡수실 때 일이다. 그들이 예수님을 지켜보고 있는데, 2 마침 그분 앞에 수종을 앓는 사람이 있었다.
3 예수님께서 율법 교사들과 바리사이들에게,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는 것이 합당하냐, 합당하지 않으냐?” 하고 물으셨다. 4 그들은 잠자코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손을 잡고 병을 고쳐서 돌려보내신 다음, 5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가운데 누가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지면 안식일일지라도 바로 끌어내지 않겠느냐?” 6 그들은 이 말씀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였다.




연중 제30주간 금요일 제1독서 (로마9,1-5)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진실을 말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나의 양심도 성령 안에서 증언해 줍니다.

 그것은 커다란 슬픔과 끊임없는 아픔이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육으로는 내 혈족인 동포들을 위해서라면,

 나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져 나가기라도 했으면 하는 심정입니다."(로마9,1-3)

 

사도 바오로는 로마서 9장 1-3절에서 자신의 민족이 구원받을 수만 있다면,

자신은 예수님께 저주를 받아도 좋다고, 천국의 생명책에서

자신의 이름이 빠지게 될지라도 자기 민족이 구원받기를 절규한다.


사도 바오로의 고통은 사랑하는 자기 민족을 위하여 일할 수 없다는데 있다.

그는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이다.

사도 바오로의 간절한 꿈은 "민족 구원"이다.

 

그런데 하느님의 생각은 사도 바오로와는 전혀 달랐다.

하느님은 사도 바오로에게 이방인들을 위해 살라고 명령했다.


사실 은총 안의 삶이란, 내가 원하는 삶을 살지 않고,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사는 것 말한다. 

 

 연중 제30주간 금요일 복음(루카14,1~6)

 

예수님께서 율법 교사들과 바리사이들에게,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는 것이

합당하냐, 합당하지 않으냐?" 하고 물으셨다.  (3)

 

루카 복음 14장 2절에 나오는 수종을 앓는 사람을 예수님께서 치유하시기 전에,

미리 율법 교사들과 바리사이들의 그릇된 생각을 지적하신다.

 

'수종을 앓는'으로 번역된 '휘드로피코스'(hydropikos; which had the dropsy)

'물'을 가리키는 '휘도르'(hydor)에서 유래한 의학 용어이다.

 

이 병은 신체의 여러 부위에 물이 고여서 몸이 붓고

살이 썩어가는 병으로서 당시에는 불치병이었다.

 

유대인들은 이 병이 죄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저주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겼다.

 

또한 이 병은 만성적 질병으로 취급되었는데, 바리사이들의 전통에 의하면

당장 위급한 병이 아닌 이런 만성 질병을 안식일에 고쳐 주는 것은

불법으로 간주되었다.

 

예수님께서 이러한 수종을 앓는 사람을 안식일에 고쳐 주려는 당신을

책잡으려는 그들의 음모를 아시고, 반론 양식의 질문을 던지신다.

 

여기서 '합당하냐'로 번역된 '엑세스틴'(eksestin; Is it lawful)의 원형

'엑세스티'(eksesti)'합법적이다', '타당하다'는 뜻이다.

 

특히 이 구절에서 이 동사는 단지 이성적인 타당성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율법에 합당한 것을 가리킨다.

 

말하자면 예수님께서는 지금 율법 교사들과 바리사이들에게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는 것이 율법에 옳은 것인지 아닌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

 

당시 바리사이들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기 위해 그들이 인위적으로

만든 39개 항목에 달하는 안식일 금지 규정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생명에 지장이 없는 경우에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은

불법으로 규정하였다.

 

처음에는 안식일을 보다 거룩하게 지키려는 의도로 금지 규정을 만들었지만,

오히려 형식만을 강조하는 이 규정들이 사람들을 속박하는 결과를 낳았다.

 

실제로 모세 오경에는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이 없었고,

이것은 그들의 잘못된 전통일 뿐이었다.

 

예수님께서는 단순히 율법의 기준으로만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루카 복음

14장 5절에서 보여지고 있는 대로,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는 것이

그들의 경험으로나 이성적으로도 타당한 것임을 논증하고 계신다.

 

그러나 경험적 논증에 앞서서 루카 복음 14장 3절에서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는 것이 율법적으로는 옳은 것임을 분명히 밝혀서

하느님 말씀에 대한 우선적인 태도를 보여 주고, 동시에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율법에 대한 왜곡을 지적하신 것이다.

 

특히 루카 복음 14장 5절의 원문에서 강조점'안식일'이 아니라

'바로', '곧', '당장'이라는 긴급한 시점을 가리키는 '유테오스'(eutheos;

immediately; straitway)에 있다는 사실은, 지금 곤경에 처한 사람을

구해내는 일이 '안식일'이라는 시점에 상관없이 당장에 해야 할

급박한 일임을 드러내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한번도 안식일에 대한 율법 규정을 부정하시거나

고의로 어기신 적이 없으시다.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는 일이 율법에

근거하여 안식일의 정신을 적극적으로 구현하시는 일임을 밝히신 것이다.

 

사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이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신적 권위를 가지고,

안식일에 대한 왜곡된 관습을 바로 잡으려 하신 것이다.


2009년 10월 30일 금요일 [(녹) 연중 제30주간 금요일]


<수종을 앓는 이를 안식일에 고치시다.>



“예수님께서 어느 안식일에 바리사이들의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의 집에 가시어

음식을 잡수실 때 일이다. 그들이 예수님을 지켜보고 있는데,

마침 그분 앞에 수종을 앓는 사람이 있었다.

예수님께서 율법 교사들과 바리사이들에게,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는 것이 합당하냐, 합당하지 않으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은 잠자코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손을 잡고 병을 고쳐서

돌려보내신 다음,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가운데 누가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지면 안식일일지라도 바로 끌어내지 않겠느냐?’

그들은 이 말씀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였다(루카 14,1-6).”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도 병자들을 고쳐 주는 일을 하셨습니다.

(일부러 안식일에는 더 병자들을 고쳐 주신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병자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의도적으로 데리고 온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그 사람을 고쳐 주실 것이라고 예상했을 것이고,

고쳐 주시면 안식일을 안 지킨다고 고발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는 것이 합당하냐, 합당하지 않으냐?” 라는 질문은,

“병을 고쳐 주는 일은 안식일을 어기는 일인가, 아닌가?” 라는 뜻인데,

우리 입장에서는 “합당합니다. 안식일을 어기는 일이 아닙니다.”

라고 대답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목숨이 위험한 응급환자가 아니라면 다음날로 미루어야 합니다.” 라고

대답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대답하지 않고 잠자코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자를 고쳐 주시는 것에 대해서 동의하기는 싫은데,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가 없어서 침묵을 지킨 것입니다.


“너희 가운데 누가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지면

안식일일지라도 바로 끌어내지 않겠느냐?” 라는 말씀은,

“목숨을 구하는 일은 안식일 규정보다 위에 있다.” 라는 가르침입니다.

응급상황인가, 아닌가? 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는 일은 목숨을 구하는 일과 같습니다.

안식일이라는 이유로, 고통 속에 있는 사람을 내버려 두는 것은 ‘악한 일’입니다.

즉 죄를 짓는 일입니다.

안식일에 죄를 짓는 것은 안식일을 안 지키는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병자를 고쳐 주신 예수님은 안식일을 지키신 분이 되고,

그것을 반대하는 자들은 안식일을 안 지키는 자들이 됩니다.


이 이야기는 루카복음 13장에 있는,

‘등 굽은 여자를 안식일에 고쳐 주시다.’와 거의 비슷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느 안식일에 회당에서 어떤 여자를 고쳐 주셨을 때,

회당장이 화를 내면서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일하는 날이 엿새나 있습니다. 그러니 그 엿새 동안에 와서 치료를 받으십시오.

안식일에는 안 됩니다(루카 13,14).”

십계명에 “안식일에는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된다.” 라고

규정되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탈출 20,10).

그래서 겉으로만 보면 그 회당장은 십계명에 있는 대로 말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십계명에서 말하는 ‘일’은 생계를 위한 노동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쳐 주신 일은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베풀어 주신 일이고,

그 병자를 구원하신 일입니다.

결코 당신의 생계를 위한 노동이 아닙니다.


(회당장은 예수님을 ‘치료비를 받아서 먹고사는 의사’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쳐 주신 일을 ‘영업’으로만 생각했고,

안식일을 어긴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율법주의에 사로잡혀서 하느님의 사랑을 하느님의 사랑으로 보지 못한 것입니다.

그것은 영혼이 병든 것과 같고, 그래서 그 회당장도 치유가 필요한 사람입니다.)


여기서는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서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고 되어 있는데,

비슷한 이야기로 안식일 논쟁을 전하고 있는 루카복음 6장을 보면,

“그들은 골이 잔뜩 나서 예수님을 어떻게 할까 서로 의논하였다(루카 6,11).”

라는 말이 있고, 마르코복음 3장과 마태오복음 12장을 보면,

“예수님을 어떻게 없앨까 모의를 하였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마태 12,14; 마르 3,6).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모의를 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생계를 위한 노동’을 하신 것이 아니라,

고통 속에 있는 병자들에게 사랑과 자비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것 때문에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당시의 유대인들이(또는 바리사이들이) 안식일을 지키는 일을

목숨을 지키는 일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설명할 수도 있지만,

이런 설명은 유대인들 입장에서 변명하는 말이 될 뿐입니다.

그들의 그런 율법주의는 하느님의 뜻에 합당한 것도 아니고,

계명들과 율법들을 제대로 지키는 모습도 아닙니다.

하느님의 뜻을 자기들 마음대로 왜곡한 죄일 뿐입니다.

(그들은 지혜가 모자라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아니라 교만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안식일에도 병자들을 고쳐 주시는 것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버지께서 여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요한 5,17).”

이 말씀의 뜻은, “하느님께서 쉬지 않고 일하시니 나도 쉴 수 없다.”입니다.

사람들을 구원하는 일, 사람들에게 사랑과 자비를 베풀어 주는 일은

단 하루도, 단 한 순간도 중단하면 안 되는 일입니다.

하느님은 그렇게 일하시는 분이고, 예수님도 그렇게 일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니 우리도 그렇게 끊임없이 사랑과 자비를 실천해야 합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마르 2,27).” 라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하느님의 계명들과 율법들은 인간들을 억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구원하기 위한 것입니다.


“사랑은 안식일보다(율법보다) 위에 있다.” 라고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요한 1서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1요한 4,8).”

사랑 없는 율법주의는 하느님을 섬기는 신앙이 아닙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2009년 10월 30일 연중 제30주간 금요일

오늘의 묵상

오늘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바리사이들의 지도자 집에서 음식을 잡수십니다.

그런데 마침 예수님 앞에 수종을 앓는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여기에 초대의 목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쳐 주시기만 하면, 안식일 규정을 위반했다고 고발하려는 의도 같아 보입니다.
이를 간파하신 예수님께서는 현명하게 대처하십니다.

“너희 가운데 누가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지면 안식일일지라도 바로 끌어내지 않겠느냐?”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악의를 아시고 그들의 규정을 인용하여 말문을 막으신 것이지요.

 실제로 당시 뚜껑이 없는 우물이 많아 아이들이나 소가 빠지는 경우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 경우에는, 안식일이라도 끌어내어 구해 주지요.

따라서 짐승까지도 구해 주는데, 그보다 더 귀한 사람을 구해 주지 못하느냐고 예수님께서는 반문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주목해야 할 점은, 예수님께서는 누구의 초청이라도 거절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이는 인간에 대한 희망을 끝까지 버리지 않으신다는 것을 뜻하지요.

그러기에 당신을 반대하고 모략하는 사람들의 초청까지도 거절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물론 그들과 어울린다 하더라도 그들이 회개하리라는 기대는 극히 희박합니다.

그러나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절대로 버리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언젠가는 이루어지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희망이야말로 우리를 지켜 주는 힘이 아닙니까?

나와 가까운 이들이 쉽게 변화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오히려 그들을 위해 끝까지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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