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1주간 월요일] 잔치 (루카 14,12-14)

2017. 11. 6. 오전 4:5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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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1주간 월요일] 잔치 (루카 14,12-14)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을 불순종 안에 가두신 것은, 모든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시려는 것이라고 한다. (로마 11,29-36)
형제 여러분, 29 하느님의 은사와 소명은 철회될 수 없습니다.
30 여러분도 전에는 하느님께 순종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그들의 불순종 때문에 자비를 입게 되었습니다.
31 마찬가지로 그들도 지금은 여러분에게 자비가 베풀어지도록 하느님께 순종하지 않지만, 이제 그들도 자비를 입게 될 것입니다. 32 사실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을 불순종 안에 가두신 것은, 모든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시려는 것입니다.
33 오! 하느님의 풍요와 지혜와 지식은 정녕 깊습니다. 그분의 판단은 얼마나 헤아리기 어렵고, 그분의 길은 얼마나 알아내기 어렵습니까?
34 “누가 주님의 생각을 안 적이 있습니까? 아니면 누가 그분의 조언자가 된 적이 있습니까? 35 아니면 누가 그분께 무엇을 드린 적이 있어, 그분의 보답을 받을 일이 있겠습니까?”
36 과연 만물이 그분에게서 나와,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나아갑니다. 그분께 영원토록 영광이 있기를 빕니다. 아멘.


예수님께서는, 잔치를 베풀 때에는 가난한 이들을 초대하라며,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에 너는 행복하고,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보답을 받으리라고 하신다. (루카 14,12-14)
그때에 예수님께서 당신을 초대한 바리사이들의 한 지도자에게 12 말씀하셨다.
“네가 점심이나 저녁 식사를 베풀 때, 네 친구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유한 이웃을 부르지 마라. 그러면 그들도 다시 너를 초대하여 네가 보답을 받게 된다.
13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 14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


10월 31일 연중 제31주간 월요일 - 루카 14,12-14

연중 제31주간 월요일독서 (로마11,29-36)


사도 바오로는 개인적인 구원의 감격과 축복에 머무를 수가 없었다.

자기 동족이요 혈육인 이스라엘이 메시아를 십자가에 못박았을 뿐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핍박했기 때문이다.

"왜 하느님께서는 이방인들을 구원하시면서,

눈동자처럼 사랑하시는 이스라엘은 실패하도록 내버려 두셨는가?"

사도 바오로는 이 구원의 딜레마 앞에 서서 고민한다.

 

이윽고 사도 바오로는 이스라엘을 하느님께서 버리신 것은

이스라엘 때문 만이 아니요, 모든 이방인들이 구원을 얻게 하기 위한 것임을 알게 된다.

사도 바오로는 구약의 이사야, 예레미아, 에제키엘서를 읽으면서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너무나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느님께서는 결코 이스라엘을 버리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계속해서 고민하면서 기도하던 중에,

하나씩, 하나씩 하느님의 구원의 계획에 대한 신비를 깨닫게 되었고,

그것을 로마서 9-11장에 기록하게 되었다.

 

우리는 여행을 하다 보면, 꼭 한 사람이 없어지게 되는 경우를 본다.

그 한 사람을 찾다가 고생한 경험이 다들 있다.

다른 사람들은 그 한 사람이 돌아올 때 까지 기다려야 한다.

더군다나 단체가 버스로 여행할 때, 그 한 사람을 찾을 때 까지 전체가 고통스럽다. 

 

마찬가지로, 하느님께서 한 영혼은 찾으실 때까지 고통스러우시다.

그런 하느님께서 어떻게 이스라엘만 구원하실 수 있는가?

전 이방인을 구원하려면, 이스라엘이 희생해야 한다.

사도 바오로는 이스라엘의 실패, 저주, 완악함 때문에 고민을 하다가

그 안에서 하느님의 섭리와 놀라운 구원의 계획과 신비를 발견한다.

 

우리는 평소 메시아 예수님께 대한 이스라엘의 부정, 불신과 배척에 대해 미워하고,

못 알아 듣고, 그 댓가로 2000년동안 그들이 벌과 고통을 받아왔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사도 바오로의 관점은 다르다.

우리 이방인들이 믿음을 갖게 된 것은 이스라엘의 희생 때문이니,

그 희생에 대해 감사해야 한다.

또한 우리 이방인들이 예수님께 대한 믿음으로 말미암아 영육이 잘 되고 축복받는 모습을 보고,

마지막으로 이스라엘이 돌아 온다는 놀라운 하느님의 구원의 계획과 신비에 대해,

우리 인간의 좁은 머리로는 온전히 깨달을 수 없으니 단지 놀랄 뿐이라는 것이다.

 

우리도 누군가 공동체안에서 희생해야만, 가족 모두가~~

공동체가 다~~ 구원을 받는다.

 

"오! 하느님의 풍요와 지혜와 지식은 정녕 깊습니다.

그분의 판단은 헤아리기 어렵고 그분의 길은 얼마나 알아내기 어렵습니까?

누가 주님의 생각을 안 적이 있습니까?

아니면 누가 그분의 조언자가 된 적이 있습니까?

아니면 누가 그분께 무엇을 드린 적이 있어 그분의 보답을 받을 일이 있겠습니까?"(33-35)

 

"과연 만물이 그분에게서 나와,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나아갑니다.

그분께 영원토록 영광이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36)

36절의 말씀안에서 <그분>대신에 <주님>을,<만물>대신에 구원받은 <나>를 대입해도 괜찮을 것이다.

<나는 주님에게서 나와, 나는 주님을 통하여, 나는 주님을 향하여 나아갑니다.

주님께 영원토록 영광이 있기를 바랍니다.아멘.>   


[매일미사(가해) 14-11-03] - 연중 제31주간 월요일


 

  연중 제31주간 월요일 복음(루카14,12~14)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 (13~14)

 

루카 복음 14장 13절에서 '장애인들''다리저는 이들'로 번역된 '아나페이루스'

(anapeirus; the crippled; the maimed)'콜루스'(cholus; the lame)

원래 둘 다 동일하게 '절름발이'를 가리킨다.

 

그러나 여기서 두 단어를 구별하여 사용하고 있다.

먼저 '아나페로스'(anaperos)는 신체의 일부분이 잘려 나갔거나 기능이

완전히 정지된 '불구자'를 가리킨다면, '콜루스'(cholus)는 신체의 일부분의

기능이 불완전한 것을 가리킨다.

 

한글 새 성경은 이러한 장애의 정도의 차이'장애인들'과

'다리저는 이들'번역하여 구분했다.

 

이들은 신체 장애로 말미암아 가난할 수 밖에 없었고, 따라서 대접을 받아도

아무 것도 갚을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는 경제적인 무능력자들이었다.

 

오직 여기서만 나타나고 있는 가난한 이들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를 대접하라

명령은, 자비를 베풀 때 대가를 바라지 않아야 한다는 교훈을 주는 것이다.

 

이러한 기록은 루카 복음서 전체에 나타나고 있는 여자와 어린이와 죄인 및

이방인을 비롯한 가난한 이들과 같은 사회적 약자로서의 소외된 자들에

대한 루카의 관심이 반영되어 있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

 

루카 복음 14장 14절의인들이 부활하는 시기는 직접적으로 '보답을 받을'

('갚음을 받을'; '안타포도테세타이'; antapodothesetai; will be recompensed;

will be repaid) 시기를 가리키며, 또한 '행복할'('마카리오스 에세'; makarios ese;

you will be blessed) 시기를 가리키고 있다.

 

따라서 이 구절은 시간적으로 현재가 아니라 미래의 부활 시기에

모든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이다.

 

비록 이 비유가 잔치를 베푼 자에게 주는 비유이지만, 본문의 말씀은

성도들의 모든 삶에 있어서 그 초점이 현재가 아니라 미래의

하느님 나라의 영광에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교훈하고 있다.

 

그리고 사람의 보답이 아니라 하느님의 보답을 받는 자가 될 것을 교훈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세에서 아무 것도 보답할 수 없는 자들을 대접하는 것은

마치 보화를 하늘에 쌓아 두는 것과 같은 것이다(마태6,20; 19,21).

 

그리고 여기서 '의인들''악인들'과 대조되는 개념인데, 종말의 날에

부활하여 하느님의 축복과 영광에 참여하게 되는 자들을 가리킨다.





<가난한 이들을 초대하여라.>



“네가 점심이나 저녁 식사를 베풀 때,


네 친구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유한 이웃을 부르지 마라.


그러면 그들도 다시 너를 초대하여 네가 보답을 받게 된다(루카 14,12).”


이 말씀은, 친구나 형제나 친척이나 이웃들과 식사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전체 말씀의 뜻을 생각하면 이 말씀은,


“너에게 잘해준(또는 잘해줄) 사람들만 부르지 마라.”입니다.


따라서 여기서는 친구, 형제, 친척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부유한 이웃’이 문제가 됩니다.


이 말씀은, “가난한 이웃은 부르지 않고 부유한 이웃만 부르는 짓을 하지 마라.”,


즉 “있는 자들끼리만 어울리면서, 가난한 이들을 소외시키는 짓을 하지 마라.”


라는 가르침입니다.


 


이 가르침은 산상 설교에 있는 다음 가르침과 비슷합니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그것은 세리들도 하지 않느냐?


그리고 너희가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한다면,


너희가 남보다 잘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그런 것은 다른 민족 사람들도 하지 않느냐?(마태 5,46-47)”


이 말씀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죄다.”


라는 가르침입니다.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 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루카 14,13).”


이 말씀은, 모든 사람을 똑같은 사랑으로 대하라는 가르침입니다.


‘사랑’에는 울타리가 없어야 합니다.


친한 사람과 안 친한 사람을, 또 부유한 이웃과 가난한 이웃을 구분하지 않고,


모든 사람을 차별 없이 똑같이 대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우리는 소외 계층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소외시켜 놓고,


그들을 대상으로 불우 이웃 돕기를 하면서,


이웃 사랑 실천을 했다고 생색내는 것은 위선입니다.)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루카 14,14).”


이 말씀은, “너는 행복할 것이다. 그들은 너에게 보답할 수 없겠지만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기 때문에.”로 번역을 바꿔야 합니다.


그들이 보답할 수 없다는 것이 행복의 원인이 아니라,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보답을 받게 된다는 것이 행복의 원인입니다.


즉 가난한 이들 대신에 하느님께서 보상을 해 주시기 때문에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행복’은 ‘하느님의 축복’, ‘하느님의 축복을 받은 복된 상태’를 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 설교에서 ‘자선’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로운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에게서 상을 받지 못한다(마태 6,1).”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


그렇게 하여 네 자선을 숨겨 두어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마태 6,3-4).”


우리는 사람들로부터 보답이나 칭찬이나 존경을 받기를 바라지 말고,


하느님께서 주시는 상을 받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신앙인은 사랑 실천의 모범이 되어야 하고,


교회는 사랑으로써 예수님의 사랑을 증언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 13,34-35).”


(여기서 “서로 사랑하여라.” 라는 말씀은,


“너희끼리만 서로 사랑하여라.”가 결코 아니고, “모든 사람을 사랑하여라.”입니다.)


그런데 초대 교회 때에 사람을 차별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 무렵 제자들이 점점 늘어나자,


그리스계 유다인들이 히브리계 유다인들에게 불평을 터뜨리게 되었다.


그들의 과부들이 매일 배급을 받을 때에 홀대를 받았기 때문이다(사도 6,1).”


 


야고보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신앙인들을 꾸짖는 말을 했습니다.


“나의 형제 여러분, 영광스러우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 됩니다(야고 2,1).”


“나의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들으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세상의 가난한 사람들을 골라 믿음의 부자가 되게 하시고,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약속하신 나라의 상속자가 되게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여러분은 가난한 사람을 업신여겼습니다(야고 2,5-6ㄱ).”


“여러분이 참으로 성경에 따라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여라.’ 하신


지고한 법을 이행하면, 그것은 잘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사람을 차별하면 죄를 짓는 것으로,


여러분은 율법에 따라 범법자로 선고를 받습니다(야고 2,8-9).”


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그리스도교 안에서는 중범죄가 됩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계명을 거스르는 심각한 죄이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도 다음과 같이 신앙인들을 꾸짖는 말을 했습니다.


“여러분이 한데 모여서 먹는 것은 주님의 만찬이 아닙니다.


그것을 먹을 때, 저마다 먼저 자기 것으로 저녁 식사를 하기 때문에


어떤 이는 배가 고프고 어떤 이는 술에 취합니다.


여러분은 먹고 마실 집이 없다는 말입니까? 아니면, 하느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가진 것 없는 이들을 부끄럽게 하려는 것입니까?


내가 여러분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하겠습니까? 여러분을 칭찬해야 하겠습니까?


이 점에서는 칭찬할 수가 없습니다(1코린 11,20-22).”


공동체 안에서 ‘나눔’을 실천하지 않아서, 어떤 이는 배가 고픈데,


어떤 이는 배불리 먹는 일이 생긴다면, 그것을 공동체라고 부를 수가 없습니다.


교회마저도 사람을 차별한다면, 힘없고 가난한 이들은 갈 곳이 없습니다.


 


우리는 최후의 심판 때, ‘사랑’이 심판의 기준이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하여 그들은 영원한 벌을 받는 곳으로 가고,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곳으로 갈 것이다(마태 25,45-46).”


‘나보다 더’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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