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1주간 수요일] 제 십자가 (루카 14,25-33)

2017. 11. 8. 오전 6:4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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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1주간 수요일] 제 십자가 (루카 14,25-33)


바오로 사도는, 율법은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한마디로 요약된다며,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을 완성한 것이라고 한다. (로마 13,8-10 )
형제 여러분, 8 아무에게도 빚을 지지 마십시오. 그러나 서로 사랑하는 것은 예외입니다.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을 완성한 것입니다.
9 “간음해서는 안 된다. 살인해서는 안 된다.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탐내서는 안 된다.”는 계명과 그 밖의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그것들은 모두 이 한마디 곧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말로 요약됩니다.
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저지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라며,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고 하신다. (루카 14,25-33)
그때에 25 많은 군중이 예수님과 함께 길을 가는데,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돌아서서 이르셨다.
26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27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28 너희 가운데 누가 탑을 세우려고 하면, 공사를 마칠 만한 경비가 있는지 먼저 앉아서 계산해 보지 않느냐? 29 그러지 않으면 기초만 놓은 채 마치지 못하여, 보는 이마다 그를 비웃기 시작하며, 30 ‘저 사람은 세우는 일을 시작만 해 놓고 마치지는 못하였군.’ 할 것이다.
31 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가려면, 이만 명을 거느리고 자기에게 오는 그를 만 명으로 맞설 수 있는지 먼저 앉아서 헤아려 보지 않겠느냐? 32 맞설 수 없겠으면, 그 임금이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평화 협정을 청할 것이다.
33 이와 같이 너희 가운데에서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연중 제31주간 수요일 제1독서 (로마서13,8-10)

  

"형제 여러분, 아무에게도 빚을 지지 마십시오. 그러나 서로 사랑하는 것은 예외입니다.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을 완성한 것입니다." (8)

사도 바오로는 로마서 13장 1-7절에서 하느님의 자녀라 할지라도,성도는 세상에서는 한 국가에 속한 국민이므로 세상 권위에 대한 의무를 다할 것을 권면했다.

이제 이어지는 로마서 13장 8-10절에서는 세상에서의 이웃에 대한 성도의 자세가 사랑에 근거해야 함을 교훈한다. 로마서 13장 8절의 상반절은 사랑의 빚 외에는 어떠한 의무도 해결하지 않고 남겨 두어서는 안됨을 권면한다.

사도 바오로는 앞의 6절과 7절에서 공공 부채라고 할 수 있는 세금 문제를 다루었고, 이어서 개인 부채에 관해 언급한다.

'빚을 지지'로 번역된 '오페일레테'(opeillete)'빚지다', '의무가 있다'를 뜻하는 '오페일로'(opeillo)의 현재 시제 명령이다.

고대 희랍어 문헌에서 이 동사는 두 가지 의미로 쓰였다. 목적어를 수반하여 '빚지다'와  부정사를 수반하여 '은혜를 입다'가 그것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넓게 보면 금전적 채무 뿐만 아니라 개인이나 국가의 법에 대한 도덕적 의무도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원문에는 '아무에게도'로 번역된 '메데니'(medeni)가 문두에 나와 강조되어 있다. 이것은 성도인 우리가 형제든지 이웃이든지 빚을 지는 것이 좋지 못함을 강조한다.

공공 부채인 세금이 연체되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하고 재정적으로나 도덕적으로도 빚지지 않도록 노력하며, 무엇이든지 빚진 것은 빨리 갚아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이웃에게 진 빚은 빨리 갚지 않으면 불화와 긴장의 결과를 초래한다. 이런 일은 사탄에게 훼방할 수 있는 좋은 빌미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런데 로마서 13장 8절은 재정적 의미의 빚을 자제시키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보다 큰 강조점이 도덕적 채무의 허용에 있다고 보는 것이 좋다.

사도 바오로는 도덕적 측면을 잘 보여주는 '사랑'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다른 면에 있어서는 채무 관계가 없어야 하지만, 하느님의 백성은 도덕적 측면에서는 서로 베풀고 베풂을 받는 삶을 살아야 하고, 또한 그러한 삶을 살 수 밖에 없다는 강조적 표현을 하고 있다.

사도 바오로는 빚을 지지 말도록 권하면서 '서로 사랑하는 것'에서만은 예외를 두고 있다.

'서로 사랑하는 것'으로 번역된 '토 알렐루스 아가판'(to allellus agapan)에서 '아가판'(agapan)은 '사랑하다'를 뜻하는 '아가파오'(agapao)의 부정사이며, 중성 관사 '토'(to)와 함께 쓰였다.

일찌기 Origenes'사랑의 빚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남아 있고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으며, 이것은 우리가 매일 주고 받는 영원한 것' 이라고 했다.

우리 중에 이 사랑의 채무를 완전히 변제할 능력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은 언제나 진행형이고 계속적인 것이어야 한다. 사도 바오로는 현재 부정사 '아가판'(agapan)을 통해 이같은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시며 이것이 새 계명이라고 하셨다(요한13,34-35). 그리고 사도 바오로는 로마서 13장 8절에서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을 완성한 것입니다'라고 말하며, 사랑이 율법의 완성임을 보여준다.

여기 '남을'로 번역된 '톤 헤테론'(ton heteron)나와 구별되는 이웃에 대해서만 쓸 수 있다. 그리스도의 법은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며(1코린10,24), 이웃을 위해 자신을 바치는 것은 율법을 완성하는 통로가 된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으로 번역된 '호 아가톤'(ho agaton)'사랑하다'를 뜻하는 '아가파오'(agapao)관사를 가진 현재분사이므로, 진행 중의 동작을 나타낸다. 사랑하는 것은 과거나 미래 시제가 있어서는 안되고, 현재 시제가 될 때에만 가치가 있다.

사도 바오로가 여기서 나타내고자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위해 죽으신 그 사랑을 통해 율법을 완성하셨다는 것과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사랑한다면 그들 역시 율법을 완성하게 된다는 것이다.

교회나 사회 공동체의 구성원들을 완전하게 결합시켜 줄 수 있는 재료는 사랑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는 모두가 한결같이 서로를 사랑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사랑하도록 힘써야 한다. 그리고 조건없이 사랑해야 한다.




 연중 제31주간 수요일 복음(루카14,25~33)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26~27)

루카 복음 14장 26절에서 '미워하지'에 해당하는 '미세이'(misei; hate)의 원형 '미세오'(miseo)는 단순히 '미워하다'(히브1,9)는 문자적 의미로 이해해서는 안된다.

여기에서 '미세오'라는 동사는 셈족어에서 자주 사용되는 과장법적 표현으로 쓰였고, 실제적으로는 '덜 사랑하다' 의미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마태6,24).

본절과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는 마태오 복음 10장 37절에 나오는 '더 사랑하다'표현 속에서 그 어떤 대상도 예수님보다 더 사랑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니까 본절은 마태오 복음 사가의 표현과 관련지어 볼 때에도, 여기에 열거된 사람들을 실제로 미워하라는 뜻이 아니라, 예수님보다 덜 사랑하라는 셈어적 표현인 것이다.

여기서 '미워하다'는 말이 가리키는 '덜 사랑하다'는 뜻은 상대적으로  가장 우선 순위에 놓아야 할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별하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모든 것에 우선하여 예수님을 사랑하라는 강조적 표현이다.

그러나 '마세오' 동사는 위의 의미 뿐만 아니라 '근본적 단절'이라는 뜻도 있기에 예수님을 위해서라면 본절에 열거된 대상들과 단절도 할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수 있다는 뜻도 들어 있다.

결국 예수님께서는 그 어떤 무엇보다 우선하여 예수님을 따를 수 있는 사람만이 진정한 제자임을 강조하기 위하여, 오히려 예수님 외에 다른 모든 것을 '미워하라'는 셈어적 과장법을 사용하여 말씀하신 것이다.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루카 복음 14장 27절은 26절에 이어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하여 갖추어야 할 두번째 조건을 말하고 있다. 그것은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고 예수님을 따라가야 한다는 것이다.

'짊어지고'에 해당하는 '바스타제이'(bastazei; bear; carry)의 원형 '바스타조'(bastazo)'옮겨가다', '참다', '짐을 지다'는 뜻으로서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사람의 고난의 모습을 다각도로 묘사한다.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는 마태오 복음 10장 38절에서는 '취하다'는 뜻의 '람바노'(lambano) 동사를 사용하고 있으며, 또한 루카 복음 14장 27절'내 제자가 될 수 없다'는 표현 대신에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표현을 쓰고 있다.

그러니까 두 구절을 비교해 보면, 마태오 보다 루카 복음사가가 더욱 더 강한 어조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참된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떠한 고난이라도 감수해야 함을 당시 로마 세계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사형 방법이었던 십자가 처형까지 예를 들면서 강조하신 것이다.





<버림과 따름>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루카 14,26).”

이 말씀의 뜻은,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얻는 일에 방해가 되는 것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 사도를 꾸짖으신 일이 바로 좋은 예가 됩니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마태 16,23).”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가시는 길을 막았기 때문에 베드로 사도는 ‘걸림돌’이 되었고, 좀 더 편한 길로 가시라는 그의 말은 ‘사탄의 말’이 되었습니다.

가족과 다름없이 사랑하는 제자를 ‘사탄, 걸림돌’이라고 꾸짖으신 예수님의 심정은 결코 편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하셔야만 했습니다. 예수님 자신을 위해서도, 또 베드로 사도를 위해서도 그렇게 단호하고 과감한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었습니다. 


가족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이고, 우리가 가장 먼저 사랑해야 할 사람들이고, 신앙생활의 동반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항상 가족을 위해서 기도하고, 가족과 함께 구원받기를 희망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만일에 가족이 ‘구원과 생명을 얻는 길’이 아닌 다른 길로 가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정말로 가족을 사랑한다면, 가족이 가는 길을 막아야 하고, ‘구원과 생명을 얻는 길’로 인도해야 합니다. 그것이 진짜 사랑입니다.

(예를 들면, 가족이 도둑질을 하는 것을 보았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도둑질에 동참하는 것이 옳은가? 그것은 절대로 사랑이 아닙니다. 가족이 범죄자가 되는 것을 막는 것이 진짜 사랑입니다.) 


그렇지만 가족 안에서 종교 문제로 갈등이 생겼을 때, 그 갈등을 해결하는 일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베드로 1서 저자는 이렇게 권고합니다. “......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남편들도 아내인 여러분의 말 없는 처신으로 감화를 받게 하십시오. 그들은 여러분이 경건하고 순결하게 처신하는 것을 지켜보다가 그리될 것입니다(1베드 3,1-2).”

“이교인들 가운데에 살면서 바르게 처신하십시오. 그래야 악을 저지르는 자들이라고 여러분을 중상하는 그들도 여러분의 착한 행실을 지켜보고, 하느님께서 찾아오시는 날에 그분을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1베드 2,12).”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 가족 간의 종교 갈등은 논쟁이 아니라, ‘착한 행실로’ 감화시키는 방법으로 극복해야 합니다.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루카 14,27).”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 예수님의 뒤를 따라서 길을 걷다 보면, 쉽고 편한 구간도 만나고, 어렵고 힘든 구간도 만납니다.

만일에 쉽고 편한 구간에서만 예수님의 뒤를 따르고, 어렵고 힘든 구간에서는 따르지 않는다면, 예수님의 뒤를 끝까지 따라갈 수 없고,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없습니다.

쉽든지 어렵든지, 편하든지 힘들든지 간에 끝까지 한결같은 마음으로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야 합니다. 


“너희 가운데 누가 탑을 세우려고 하면, 공사를 마칠 만한 경비가 있는지 먼저 앉아서 계산해 보지 않느냐? 그러지 않으면 기초만 놓은 채 마치지 못하여, 보는 이마다 그를 비웃기 시작하며, ‘저 사람은 세우는 일을 시작만 해 놓고 마치지는 못하였군.’ 할 것이다(루카 14,28-30).”

이 말씀은 “마치지 못할 것 같으면 시작도 하지 마라.” 라는 말씀이 결코 아니고, “처음부터 끝까지 전력을 다하여라.” 라는 가르침입니다. 


세례를 받았지만 끝까지 충실하게 신앙생활을 할 자신이 없어서 중간에 신앙생활을 중단하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고, 그렇게 될까봐 아예 처음부터 세례받기를 포기하는 것도 어리석은 일입니다.

신앙생활은 사람의 힘만으로 하는 생활이 아닙니다. 우리를 부르신 예수님은 부르시기만 하고 내버려두시는 분이 아니라, 항상 끊임없이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면 예수님께서 도와주신다는 것도 믿어야 합니다. 바로 그 믿음 속에서, 우리 쪽에서도 계속 노력해야 합니다.

가다가 넘어지면 예수님께서 일으켜 주실 텐데, 예수님께서 내밀어 주시는 손을 잡고 다시 일어서는 것이 우리가 할 일입니다. 


“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가려면, 이만 명을 거느리고 자기에게 오는 그를 만 명으로 맞설 수 있는지 먼저 앉아서 헤아려 보지 않겠느냐?  맞설 수 없겠으면, 그 임금이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평화 협정을 청할 것이다(루카 14,31-32).”

이 말씀은, “누가 하느님과 맞서서 이길 수 있겠느냐? 아무도 하느님을 이길 수 없으니, 심판의 날이 닥치기 전에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여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복음을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사는 것이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하느님께서 주시는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만일에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하느님의 뜻을 거부한다면, 심판의 날에 멸망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와 같이 너희 가운데에서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루카 14,33).”

이 말씀은, 실제로 모든 것을 버리고 속세를 떠나서 도를 닦으라는 뜻이 아니고, 허무한 것들에 대한 집착을 버리라는 가르침입니다.

신앙인은 영원한 것을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허무한 것들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허무하다는 것을 몰라서 그런 것들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알면서도 집착하고, 알면서도 죄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눈앞의 이익만 생각하고 영원한 행복은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한 외팔이가 있었습니다. 평생토록 외팔이라고 놀림 받았던 그는 너무 괴로워 자살을 하기로 마음먹고 바닷가에 갔습니다. 그런데 저쪽에서 양팔이 없는 사람이 미친 듯이 춤을 추고 있는 것이 아니겠어요? 갑자기 궁금해진 그가 춤을 추고 있는 사람에게 다가가 물었지요.

“아니, 팔이 하나밖에 없는 나도 괴로워서 죽고 싶은데, 당신은 양팔이 없는데 뭐가 그렇게 즐거워서 춤을 추고 있습니까?”

그러자 양팔이 없는 사람이 대답했습니다.
“너도 똥꼬 한번 간지러워봐라. 임마.”

팔이 하나뿐인 남자는 그 순간 번쩍 하는 기분을 느꼈다고 합니다. 이제 한 팔 밖에 없는 것이 아니라 한 팔이나 있어 감사한 마음이 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가지지 못한 것에 집중하면 언제나 찡그릴 수밖에 없지만, 가진 것에 대해서 감사하는 마음을 간직하면 우리는 언제나 웃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더 많은 것을 소유하려고 하고 그래서 자기가 가지지 못한 것에만 관심을 두는 어리석은 길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가지지 못한 것에만 관심을 두다보니,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한 욕심도 대단하겠지요. 즉, 많은 이들이 자기 것은 당연히 가지고 있어야 하고, 가지고 있지 않은 것도 가져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이러한 욕심을 가지고서 예수님을 따르기란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을 통해 당신을 따르는데 필요한 조건 3가지를 말씀해주십니다.

첫째,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라고 하십니다. 항상 사랑을 강조하셨던 분이 미워하라고 하니까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미워하다’라는 말의 본래 뜻은 ‘어떤 것을 일부러 둘째 자리에 두어 소홀하게 여긴다’라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을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도 항상 첫째 자리에 모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을 따르려는 사람은 제 십자가를 짊어져야 합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수난과 죽음이 기다리는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서 선포하신 것입니다. 결국 제 십자가를 짊어져야 한다는 것은 자신의 생명까지도 바칠 각오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는 자기 소유를 다 버려야 한다고 하십니다. 부자 청년이 자기 소유의 재물을 포기하지 못하고 되돌아갔던 경우가 기억나실 것입니다. 이처럼 자기 소유를 버리지 못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제대로 따를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 정말로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많은 성인 성녀께서 이 길을 걸으셨고, 참 행복이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따라서 우리 역시 이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또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역시 과감하게 버릴 수 있는 결단을 가지고 주님께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 욕심을 버리는 용기와 결단만이 참 행복의 길로 나를 이끌어 줄 것입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 첫 부분의 예수님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예수님을 따르려면 부모를 비롯한 가족마저 미워해야 한다는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일종의 과장법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곧 ‘미워한다.’는 말씀은 ‘사랑을 적게 한다.’라는 뜻으로 쓰신 것입니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마태 10,37).
물론 예수님께서는 가족 관계를 무시하지 않으셨지요. 단지 가정의 일에 매달려 하느님의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할까 보아 이를 경계하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느님이 우리 삶에서 첫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느님을 우리 삶의 첫자리에 모시려면 무엇이 필요합니까?

결단과 추종, 그리고 계획이 필요하지요. 이 점을 말씀하시려고, 예수님께서는 오늘 탑을 세우려는 사람과 수많은 적군과 전쟁을 해야 하는 임금에 관한 비유를 드신 것입니다.
나의 전 존재가 달린, 영원한 생명을 향한 신앙생활에 아무런 준비와 계획이 없다면 그 결과는 어떠하겠습니까?

따라서 신앙의 여정을 잘 걷고자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야 하겠습니다. 시간과 노력도 투자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이 계획을 실천하려면, 내가 포기해야 할 것과 짊어져야 할 십자가가 무엇인지부터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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