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8주간 목요일] (루카 11,47-54)

2017. 10. 19. 오전 5: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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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8주간 목요일]  (루카 11,47-54)


 


바오로 사도는, 사람은 율법에 따른 행위와 상관없이 믿음으로 의롭게 되며, 하느님은 한 분이시라고 한다. (로마 3,21-30ㄱ)
형제 여러분, 21 이제는 율법과 상관없이 하느님의 의로움이 나타났습니다. 이는 율법과 예언자들이 증언하는 것입니다. 22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오는 하느님의 의로움은 믿는 모든 이를 위한 것입니다. 거기에는 아무 차별도 없습니다.
23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느님의 영광을 잃었습니다. 24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속량을 통하여 그분의 은총으로 거저 의롭게 됩니다.
25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속죄의 제물로 내세우셨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이루어진 속죄는 믿음으로 얻어집니다. 사람들이 이전에 지은 죄들을 용서하시어 당신의 의로움을 보여 주시려고 그리하신 것입니다. 26 이 죄들은 하느님께서 관용을 베푸실 때에 저질러졌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의로움을 보여 주시어, 당신께서 의로우신 분이며 또 예수님을 믿는 이를 의롭게 하시는 분임을 드러내십니다.
27 그러니 자랑할 것이 어디 있습니까? 전혀 없습니다. 무슨 법으로 그리되었습니까? 행위의 법입니까? 아닙니다. 믿음의 법입니다. 28 사실 사람은 율법에 따른 행위와 상관없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우리는 확신합니다.
29 하느님은 유다인들만의 하느님이십니까? 다른 민족들의 하느님은 아니십니까? 아닙니다. 다른 민족들의 하느님이시기도 합니다. 30 정녕 하느님은 한 분이십니다.


시편 130(129),1-2.3-4.5(◎ 7ㄴㄷ)
◎ 주님께는 자애가 있고 풍요로운 구원이 있네.
○ 깊은 구렁 속에서, 주님, 당신께 부르짖나이다. 주님, 제 소리를 들어 주소서. 애원하는 제 소리에 당신 귀를 기울이소서. ◎
○ 주님, 당신이 죄악을 헤아리신다면, 주님, 감당할 자 누구이리까? 당신은 용서하는 분이시니, 사람들이 당신을 경외하리이다. ◎
○ 나 주님께 바라네. 내 영혼이 주님께 바라며, 그분 말씀에 희망을 두네. ◎


예수님께서는 율법 교사들에게, 지식의 열쇠를 치워 버리고서, 너희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려는 이들도 막아 버렸다며, 불행하다고 하신다. (루카 11,47-54)
그때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47 “너희는 불행하여라! 바로 너희 조상들이 죽인 예언자들의 무덤을 너희가 만들기 때문이다. 48 이렇게 너희 조상들은 예언자들을 죽이고 너희는 그들의 무덤을 만들고 있으니, 조상들이 저지른 소행을 너희가 증언하고 또 동조하는 것이다.
49 그래서 하느님의 지혜도, ‘내가 예언자들과 사도들을 그들에게 보낼 터인데, 그들은 이들 가운데에서 더러는 죽이고 더러는 박해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50 그러니 세상 창조 이래 쏟아진 모든 예언자의 피에 대한 책임을 이 세대가 져야 할 것이다. 51 아벨의 피부터, 제단과 성소 사이에서 죽어 간 즈카르야의 피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52 불행하여라, 너희 율법 교사들아!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치워 버리고서, 너희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려는 이들도 막아 버렸기 때문이다.”
53 예수님께서 그 집을 나오시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독한 앙심을 품고 많은 질문으로 그분을 몰아대기 시작하였다. 54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그분을 옭아매려고 노렸던 것이다.




 

 연중 제28주간 목요일 제1독서 (로마3,21-30ㄱ)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느님의 영광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속량을 통하여

 그분의 은총으로 거저 의롭게 됩니다."   (23-24)

 

 

로마서 3장 23절과 24절 개신교에서 의인론(義認論; 믿음을 통한 구원; 이신득의 以信得義)

원리를 제시하는 필연적 이유가 되는 구절로서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모든 인간이 전적으로 타락한 사실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죄인들의 구속과 의인으로 인정받는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로마서 3장 23절모든 사람이 죄인이며(예레17,9), 사람의 능력으로는

결코 하느님의 영광에 이를 수 없다는 절망적 선언이다.

여기서 '모든 사람이'로 번역된 '판테스'(pantes; all)'모두', '누구나'를 의미하며

인류전체를 포괄적으로 나타내는 단어이다.

 

유다인들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또한 율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여기에 포함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 '판테스'에서

제외되는 사람은 전 인류 가운데 아무도 없다.

 

그리고 '죄를 지어'로 번역된 '헤마르톤'(hamarton; have sinned)

'하마르타노'(hamartano)의 부정 과거 시제로서, '목표에서 벗어나다',

'과녁을 맞추지 못하다(벗어나다)' 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70인역(LXX)에서는 대부분 도덕적인 면에서 일탈된 행위를 나타내는데 사용되었으며,

신약에서는 하느님을 대적하는 모든 것을 포함하는 표현으로 사용되었다.

 

특히 사오 바오로모든 사람의 영적, 도덕적 상태에서 설정된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을 나타내는 데 이 단어를 사용하였다.

유다인이든 이방인이은 모두가 하느님의 신정법(신법)과 자연법을 어겼다는 것이다.

 

로마서 3장 23절에서도, 사도 바오로는 인간이 자기들을 지으신

하느님의 창조 목적과 질서와 의도에서 벗어나 그분과의 친교가 단절된 것을

죄로 규정하고, 그 결과 절망적인 상태에 이르게 되었음을 밝힌 것이다(창세3,8; 로마5,12).

 

모든 사람이 죄인이 된 것은 아담의 범죄에서 기인한다.

인류의 시조이며 대표인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그 죄의 결과인 형벌과 원죄성이

그와 연대한 전인류에게 전가되어 전인류가 죽음과 영원한 벌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이것은 인류를 묶고 있는 죄의 고리가 대표와 연대성의 원리에 의해

인류의 시조 아담에게 연결되어 있음을 나타낸다.

 

'잃었습니다'로 번역된 '휘스테룬타이'(hysteruntai; come short; fall short)

'미치지 못하다', '모자라다', '이르지 못하다'등의 뜻을 가진

'휘스테레오'(hystereo)의 현재 시제이다.

 

모든 사람이 그 죄로 말미암아 본래 하느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자로서

마땅히 갖추어야 할 하느님의 영광에 이르기에 부족한 상태임을 알게 한다.

 

여기서 불변하는 진리를 나타낼 때 쓰는 현재형 시제를 사용해서

인간적 기준으로 볼 때 아무리 착하고 의롭다 할지라도,

그 의로움은 하느님의 영광에 도달하기에는 모자라는 것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속량을 통하여'

 

로마서 3장 24절스스로 의롭게 될 수 없는 인간에 대해

하느님께서 당신의 은총으로 의롭게 된 것을 나타낸다.

값없이 거저 주시는 하느님의 은총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그 무엇과도

비길 수 없는 값진 십자가상 구속 성혈의 공로로 말미암은 대속의 은혜이다.

 

여기서 '속량을'로 번역된 '아폴뤼트로세오스'(apollytroseos; redemption)

원형 '아폴뤼트로시스'(apollytrosis)'~로부터'(from)라는 분리의 개념을 나타내는

전치사 '아포'(apo)와   '풀어줌'이라는 의미를 지닌 '뤼트로시스'(lytrosis)

합성어에서 유래한 단어로서, 인간을 얽어매고 있던 죄와 죽음의 속박에서

완전하게 분리하여 해방시키는 것을 뜻한다.

 

이것을 위해 무죄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몸을 대속의 제물로 바치신 것이다.

당신의 무죄하신 몸을 '모든 사람의 몸값', 즉 '속전'(贖錢)을

십자가에 내어 주시고 인간을 사온 것이다(1티모2,6).

 

구약에서는 인간의 죄를 씻음받기 위해서는 흠없는 과월절(유월절;해방절; 파스카절)

어린양의 대속의 피가 필요했다(탈출12,1-13).

하지만 이것은 완전한 것이 될 수 없고, 하느님이시면서 동시에 인간이신

무죄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만이 인류를 죄와 죽음과 사탄의 권세에서

온전히 해방시킬 수 있었다.

 

따라서 육화(강생)하신 무죄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속의 피를 흘려

인간을 구속하셨던 것이다(마태20,28; 2코린5,15).

 

'거저 의롭게 됩니다'

 

여기서 '의롭게 됩니다'로 번역된 '디카이우메노이'(dikaiumenoi)

'디카이오오'(dikaioo)의 현재 수동태 분사이며, '의롭게 되다'

(being justified; are justified)라는 의미이다.

 

하느님께서는 구속 사업을 완성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의롭게 만들어 주신다.

 

개신교에서는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인간의 본성을 원상 회복이 불가능한

'부패된 본성'(nature corrupta)으로 보기 때문에, 속은 썩었는데

예수님의 십자가상 구속 사업의 성혈 공로로 말미암아

그것을 믿는 사람들을 의롭다고 인정해주고 칭해준다고 해서,

'칭의'(稱義) 혹은 '의인'(義認)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가톨릭에서는 인간의 본성이 아담의 범죄로 부패되어

원상회복이 불가능한 것이 아니고 원상회복이 가능한

'타락한 본성'(nature lapsa)으로 보기 때문에

예수님의 십자가상 구속 성혈의 공로로 말미암아 겉만이 아니라

속(내면)까지 의롭게 된다,'의화'(義化) 된다고 믿고 가르친다.

 

우리가 이렇게 의롭게 되면 원죄와 본죄와 죄의 결과인

잠벌의 완전한 사면이 이루어지면서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잃어버린 품위와 신분을 되찾고, 성령의 궁전이 되고,

영원한 생명과 복락의 상속자가 된다.

 

그런데 이 의로움은 어떻게 얻어지는가 하면, '거저' 얻어진다.

 

'거저'로 번역된 '도레안'(dorean; freely)'선물'을 뜻하는 명사인데,

로마서 3장 24절에서처럼 부사적으로 쓰이면 '선물로'(as a gift),

'값없이', '무료로' 등을 뜻한다.

 

만일에 하느님께서 값을 요구하셨다면, 우리 중에 단 한 사람도

여기에 참례하지 못했을 것이지만, 선물로 주셨기에

거저 의롭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하느님으로 말미암은 '의화'(義化)는

예수님의 구속 성혈의 공로에 의지하지 않고는

우리가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간구할지라도

얻을 수 없는 소중한 것이다.







 

연중 제28주간 목요일 복음 (루카11,47-54)


"불행하여라. 너희 율법 교사들아!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치워 버리고서, 너희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려는 이들도 막아 버렸기 때문이다." (52)

 

율법 교사들을 향한 예수님의 세번째 저주가 선언되고 있다.

율법 교사들이 예수님께 책망받는 이유는 그들이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서

사람들 앞에서 치워 버린 것과 관련이 있다.

 

여기서 '지식'이라고 번역된 '그노세오스'(gnoseos; knowledge)

'알다'를 뜻하는 동사의 원형 '기노스코'(ginosko)에서 유래하였다.

 

'소피아'(sophia)가 진리를 추구하는 능력을 의미한다면, '지식'

(gnoseos)진리에 대한 직관적 앎과 인지를 표현하는 단어이다.

 

그래서 이 단어는 '하느님을 아는 지식'(2코린2,14; 10,5)을 의미할 경우에는

관용구처럼 쓰였는데, 여기서도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예수님 당시의 율법 교사들은 하느님 율법의 수호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들은 나름대로의 해석 방법으로 구약에 나타난 단순하고도

명확한 진리를 오히려 애매하고 복잡하게 만들었다.

 

'열쇠'는 보통 '주권''권위'의 상징처럼 여겨지는데, 여기서는 율법을

해석하는 권한을 '열쇠'('클레이다'; kleida; key)라고 표현하고 있다.

 

율법 교사들은 하느님을 알 수 있는 계시인 구약 가운데서

그 중심적인 정신은 다 없애버리고 형식만을 남겼다.

 

그리고는 스스로 복잡하고 무겁게 만든 이 규정을 인위적 권위로서

사람들에게 가르친 그들의 잘못이 바로 예수님의 책망의 대상이다.

 

결론적으로 '하느님의 의로운 종들'을 상징하는 예언자들을 죽이는 것도

악한 것이지만, 더 악한 것 사람들로 하여금 구원에 이르는 길을

차단시켜버리는 행위라는 것이 여기서 밝혀진다.

 

실상 율법 교사들은 하느님과 성경에 대한 지식을 독점하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율법 교사들은 마치 '천국의 열쇠'를 독점하고 있는 것과 같았다.

 

따라서 그들은 그 열쇠를 가지고 백성들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문을 열어주어야 하는 사명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율법에서 정신은 죽여버리고 형식만 남겨둔 그들의 행위나,

인간적인 전통에 맹목적으로 순종하여 결과적으로 사람들에게

견디기 어려운 짐을 부과하는 그들의 행위는, '진리의 문','천국의 문'을

잠가 버리고,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들조차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행위였던 것임에 틀림없다.





<회개>

 


“너희는 불행하여라!


바로 너희 조상들이 죽인 예언자들의 무덤을 너희가 만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너희 조상들은 예언자들을 죽이고 너희는 그들의 무덤을 만들고 있으니,


조상들이 저지른 소행을 너희가 증언하고 또 동조하는 것이다(루카 11,47-48).”


 


이 말씀은, “너희는 죽은 예언자들의 무덤을 만들면서


예언자들을 공경하는 척 하지만,


너희의 삶을 보면, 그 예언자들을 죽인 조상들과 다르지 않은 자들이다.”


라고 꾸짖으시는 말씀입니다.


“너희는 불행하여라!” 라는 말씀은, “너희는 불행하게 될 것이다.”,


즉 하느님의 심판을 받고 멸망하게 될 것이라는 경고 말씀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예언자들에 대한 박해’는


종교 박해가 아니라, ‘내부 박해’ 라는 점입니다.


즉 하느님을 안 믿는 사람들이 믿는 사람들을 박해하는 일이 아니라,


믿는 자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들을 박해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만찬 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회당에서 내쫓을 것이다. 게다가 너희를 죽이는 자마다


하느님께 봉사한다고 생각할 때가 온다.


그들은 아버지도 나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러한 짓을 할 것이다(요한 16,2-3).”


 


1) 정말로 ‘몰라서’ 박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나중에 바오로 사도가 된 박해자 사울이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정말로 몰라서 그리스도교를 박해했습니다.


“나를 굳세게 해 주신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분께서는 나를 성실한 사람으로 여기시어 나에게 직무를 맡기셨습니다.


나는 전에 그분을 모독하고 박해하고 학대하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내가 믿음이 없어서 모르고 한 일이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1티모 1,12-13).”


예수님을 모르던 시절에, 사울은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는 것이


하느님께 충성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사도 26,9-11).


그러나 모르고 한 일이라고 해서 죄가 아닌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사울에게 자비를 베푸신 것은


그가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믿었고, 회개했기 때문입니다.


만일에 회개하지 않았다면, 그는 스테파노를 박해하고 죽인 살인자로만,


또 악명 높은 박해자로만 이름이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2) 예언자들을 ‘거짓 예언자’로 생각하고서, 또 그들이 전하는 하느님 말씀을


‘거짓 말씀’으로 생각하고서 박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구약시대 때에 많은 예언자들이 그런 오해를 받았고, 그래서 박해를 받았습니다.


특히 이스라엘의 멸망을 예언했던 예언자들이 그런 오해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예언자들은 단순히 멸망만 예언한 것이 아니라,


‘회개하지 않으면’ 멸망한다고 예언했습니다.


(그 예언을 반대로 생각하면, ‘회개하면’ 멸망을 피할 수 있다는 예언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회개하라는 훈계는 흘려듣고,


멸망 예언에 대해서만 시비를 걸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복을 내리실 것이라는 듣기 좋은 말을 하면 좋아하고,


멸망 예언처럼 듣기 싫은 말을 하면 싫어하고,


그러면서 거짓 예언자라고 의심하고...


그러나 사실은 듣기 좋은 말만 하는 예언자가 거짓 예언자입니다.


진짜 예언자는 박해받고 죽더라도


자기가 받은 하느님 말씀을 받은 그대로 전합니다.)


 


예수님의 경우에도 예루살렘 멸망을 예언하셨는데,


역시 ‘회개하지 않으면’ 멸망한다는 예언입니다.


“오늘 너도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그러나 지금 네 눈에는 그것이 감추어져 있다. 그때가 너에게 닥쳐올 것이다.


그러면 너의 원수들이 네 둘레에 공격 축대를 쌓은 다음,


너를 에워싸고 사방에서 조여들 것이다(루카 19,42-43).”


그러나 유대인들은 회개하기는커녕 예수님을 사기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리, 저 사기꾼이 살아 있을 때, ‘나는 사흘 만에 되살아날 것이다.’


하고 말한 것을 저희는 기억합니다(마태 27,63).”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세속적인 부귀영화 같은 것은 약속하지 않으시고,


자기들이 듣기 싫어하는 말씀만 하시니까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이 경우에도 몰라서 그랬다고 말할 사람이 있을 텐데,


그런 말은 구차한 변명일 뿐입니다.


회개하라는 말을 듣기 싫어하는 것 자체가 죄인이라는 것을 드러냅니다.


위선자들은 자기는 회개할 죄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죄가 없다는데도 예언자들이 자꾸만 회개하라고 하니까 듣기 싫어하고,


거짓 예언자가 거짓 말씀을 전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합니다.


그래서 예언자들을 박해하는데, 그것은 죄에다 죄를 더하는 일이 될 뿐입니다.


오늘날에도 그런 모습이 자주 보입니다.


 


3) 세례자 요한을 죽인 헤로데처럼 양심의 가책도 안 느끼고,


죄의식도 없는 자들이 예언자들을 박해하고 죽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말씀을 거부하면서 회개하지 않는 자들을 향해서,


“세상 창조 이래 쏟아진 모든 예언자의 피에 대한 책임을 이 세대가


져야 할 것이다(루카 11,50).” 라고 엄하게 경고하십니다.


이 말씀은, 창조 이래 모든 범죄에 대해서 하느님께서 범죄자를 알고 계시고,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책임을 물으실 것이라는 경고입니다.


이 경고 말씀은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해당됩니다.


(여기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씀은, 벌을 받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 세대’ 라는 말은, 회개하지 않는 죄인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공동체 전체를 뜻하는 말은 아닙니다.)


 


하느님은 죄인들의 멸망이 아니라 회개와 구원을 바라시는 분입니다.


“내 생명을 걸고 말한다. 주 하느님의 말이다.


나는 악인의 죽음을 기뻐하지 않는다.


오히려 악인이 자기 길을 버리고 돌아서서 사는 것을 기뻐한다.


돌아서라, 너희 악한 길에서 돌아서라.


이스라엘 집안아, 너희가 어찌하여 죽으려 하느냐?(에제 33,11)”


회개하면 살 것이고, 회개하지 않으면 멸망당할 것입니다.


(살기를 바란다면 바로 지금 회개해야 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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