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호천사 기념일] 그들의 천사들이 (마태18,1-5.10)

2017. 10. 2. 오전 4:5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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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천사 기념일] 그들의 천사들이 (마태18,1-5.10)


수호천사는 사람을 선으로 이끌며 악에서 보호하는 천사다. 교회의 전승에 따르면, 주님께서는 누구에게나 천사 한 분을 정해 주시어 그를 지키고 도와주게 하신다. 하느님의 사랑이다. 다음은 수호천사에 관한 『성경』의 표현들이다. “그분께서 당신 천사들에게 명령하시어,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시편 91〔90〕,11). “저를 모든 불행에서 구해 주신 천사께서는 이 아이들에게 복을 내려 주소서”(창세 48,16).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마태 18,10).


주님께서는, 천사를 보내 길에서 너희를 지키고 내가 마련한 곳으로 너희를 데려가게 하겠다고 하신다. (탈출23,20-23)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20 “보라, 내가 너희 앞에 천사를 보내어, 길에서 너희를 지키고 내가 마련한 곳으로 너희를 데려가게 하겠다. 21 너희는 그 앞에서 조심하고 그의 말을 들어라. 그가 너희 죄를 용서하지 않으리니, 그를 거역하지 마라. 그는 내 이름을 지니고 있다. 22 너희가 그의 말을 잘 들어 내가 일러 준 것을 모두 실행하면, 나는 너희 원수들을 나의 원수로 삼고, 너희의 적들을 나의 적으로 삼겠다. 23 나의 천사가 앞장서서 너희를 아모리족, 히타이트족, 프리즈족, 가나안족, 히위족, 여부스족이 사는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 나는 그들을 멸종시키겠다.”


예수님께서는,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라며,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하신다. (마태 18,1-5.10)
1 그때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하늘 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 하고 물었다.
2 그러자 예수님께서 어린이 하나를 불러 그들 가운데에 세우시고 3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 5 또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10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




 수호천사 기념일 제1독서(탈출23,20~23)

"보라, 내가 너희 앞에 천사를 보내어, 길에서 너희를 지키고  내가 마련한 곳으로  너희를 데려가게 하겠다. 너희는 그 앞에서 조심하고 그의 말을 들어라.  그가 너희 죄를 용서하지 않으리니, 그를 거역하지 마라. 그는 내 이름을 지니고 있다." (20~21) 

'보라'(behold)로 번역된 '힌네'(hinne)는 듣는 사람이나 독자들로 하여금 주의를 환기시키고, 지금부터 전하고자 하는 내용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염두에 두라는 의미가 있다. 

한편 '천사'로 번역된 '말르아크'(mallak)'전령'(1사무16,19), '주님'(천사)(민수16,7), '사자'(말라3,1), '하느님의 사자'(코헬5,5)등의 의미로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결국 '천사' 하느님의 뜻을 이 땅에 전달하도록 부름받은 사명자요, 여러가지 다양한 모습으로 하느님의 백성을 온전하게 지키고, 바른 길로 인도하는 임무를 맡은 거룩한 일꾼이라 하겠다. 

본문에서 말하는 '천사'(사자)란 주님의 사자, 곧 인류를 죄와 죽음에서 구원하시어 영원한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는 육화(강생)하시기 전(前)의 성자 예수 그리스도가리킨다고 말하는 학자들도 있다. 

'길에서 너희를 지키고' 

'길에서' 라고 번역된 '빳다레크'(badarek) '~에서'라는 뜻의 전치사 '뻬'(be)'그'라는 뜻의 정관사 '하'(ha)와 더불어 '길' 이라는 뜻의 '떼레크'(derek)가 결합된 형태이다.  

따라서 정확한 번역은 '길에서'가 아니고, '그 길에서'(in the way)이다. 즉 일반적인 길에서 항상 구하시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지금 이집트를 나와 가나안 땅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데려가는 험한 광야의 길에서 보호하시겠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가기까지 안전하게 인도하시고, 그들이 나아갈 방향을 바르게 잡아 인도하신다는 뜻이다. 

이러한 하느님의 보호하심은 비단 출애굽 이후 광야 여정에서만으로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이스라엘로 하여금 주님 신앙의 바른 길에서 결코 벗어나지 않도록 안전히 보호하시며, 나거나 들거나 축복이 되는 길로 이끄시고, 그리하여 마침내는 구원과 의로움의 길로 나아가게 하신다는 말이다(시편23,2~6; 121,2~8). 

'내가 마련한 곳으로'  

'내가 마련한(예비한)' 으로 번역된 '하키노티'(hakinothi)'곧게 서다', '존재하다' 는 뜻의 '쿤'(kun)의 사역 능동형으로서 '뽑다'(여호4,4), '세우다'(2사무5,12), '(일으켜)세우다'(2사무7,12)는 뜻을 지니고 있다. 

결국 '내가 마련한 곳'이란 하느님께서 친히 선정하시고 지명하시어 견고히 세우셨으며, 마침내 이스라엘 백성에게 맡겨 주신 그 장소가리킨다고 하겠다. 

본문에서는 이 단어가 완료형으로 사용되어 하느님께서 이미 마련하시는 작업을 완전히 마치셨음을 보여준다. 그 마련한 곳은 바로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이다. 

한편 '이 마련한 곳'이란 신약의 백성들에게는 궁극적으로 하늘의 가나안,천국을 상징한다. 

이처럼 하느님께서 광야같은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는 우리를 안전하게 보호하실 뿐 아니라, 마침내 당신 친히 마련하신 곳, 영원한 생명과 복락의 나라 곧 천국으로 우리를 인도해 주실 것이다.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러 간다고 말하겠느냐?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같이 있게 하겠다." (요한14, 2~3) 

 "너희는 그 앞에서 조심하고 그의 말을 들어라.  그가 너희 죄를 용서하지 않으리니, 그를 거역하지 마라. 그는 내 이름을 지니고 있다." (21) 

'너희는 그 앞에서 조심하고' 

'너희는 조심하고'에 해당하는 '힛샤메르'(hishamer)'지키다', '감시하다', '유의하다','주의를 기울이다' (이사42,20), '준수하다', '지키다'(1열왕11,10)의 뜻을 지닌 '샤마르'(shamar)의 단순 재귀형이다. 

본문에서는 '지키다', '돌보다'(창세2,15; 30,31; 2사무15,16)라는 뜻 보다는 '주의하다', '지켜보다'(욥기13,27), '기대하다', '지켜보다'(즈카11,11)는 의미이다. 

사람이 어떤 대상에 대해, 특히 주님께 대하여 주의하거나 더 나아가 경의를 표시한다는 의미이다(호세4,10). 

따라서 '너희는 그 앞에서 조심하고' 로 번역된 '힛샤메르 밉파나이우'(hishamer mipphanaiu)는 직역하면, '그의 면전에서 조심하다 (주의하다)'(Be aware of him)이다. 그러나 문맥을 고려하여 의역하면, '그분께 경의를 표하라'(Reverence him)이다. 

이처럼 주님께 대하여 인간이 가장 먼저 취할 자세는 그분의 영광스러움에 대하여 경의를 표하는 것이다. 

'그의 말을 들어라' 로 번역된 '우셰마 빠콜로'(ushema beqollo)직역하면 '그의 소리를 듣다'이다. 

여기서 '듣다'에 해당하는 원어 '셰마'(shema)'듣다', '경청하다', '유의하다'(창세23,8)는 뜻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들은 바에 대하여 '들어주다', '응답하다'(시편10,17), '듣다', '순종하다'(판관2,20)는 뜻이 있는 '샤마'(shama)의 2인칭 단순 명령형이다. 

따라서 이것은 단순히 귀로 듣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주의를 기울여 경청하고, 그것을 전 존재와 온 인격으로 수용하여 순종하는 행위까지를 포함하는 말이다. 

이처럼 하느님의 말씀에 대해 전 존재와 온 인격으로 반응하는 것이야말로, 하느님의 백성된 자의 가장 기본적인 삶의 자세라고 하겠다.

"그러자 사무엘이 말하였다.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번제물이나 희생 제물 바치는 것을  주님께서 더 좋아하실 것 같습니까?  진정 말씀을 듣는 것이 제사드리는 것보다 낫고,  말씀을 명심하는 것이 숫양의 굳기름보다 낫습니다." (1사무15,22) 

 '그를 거역하지 마라' 

본문 서두에 일반적인 금지를 나타내는 부정어 '알'(al)이 사용되어 정중하고 간곡한 금지의 명령이 전달되고 있다. 

'거역하지' 라고 번역된 '탐메르'(thammer)'슬프다'(애가1,4), '가혹하다', '마음이 쓰라리다'(1사무20,6)는 뜻을 지닌 원어 '마라르'(marar)의 사역 능동형이다. 결국 '탐메르' '(삶)을 쓰라리게 하다', '슬프게 하다'(룻기1,20)는 의미를 담고 있다. 

결국 하느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것은 하느님께 큰 고통을 안겨드리는 일이요, 근심과 슬픔을 드리는 일임을 알 수 있다. 

하느님을 기쁘시게 하고 그분께 영광을 드리는 자의 첫번째 되는 조건은 그분의 말씀에 귀기울여 철저히 순종하는 것이다. 

'그가 너희 죄를 용서하지 않으리니, 그는 내 이름을 지니고 있다'

'죄'라고 번역된 '피쉬아켐'(phischiakem)'떨어지다', '부수어 버리다', '돌아서다' 는 뜻을 지닌 동사 '페샤'(phesha)에서 유래한 명사로서, '(주님 신앙에서의)변절', '(주님 뜻에 대한)반역, 반란'(잠언28,2), '(하느님에게서 돌아서는)죄(범죄)'(시편32,1)라는 의미를 가졌다.

이것은 소극적인 실수나 사사로운 잘못이 아닌,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는 것과 같은 철두 철미한 죄악의 행위를 염두에 둔 표현이다. 

한편, 주님께서는 자신이 보내신 천사(사자)가 이같은 죄를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 이라고 했다. 

여기서 '용서하다' 에 해당하는 '잇사'(issa) '(들어)올리다'(예레4,6), '맹세하다'(에제20,6), '지고 가다', '옮기다'(이사46,4)는 뜻을 지닌 '나사'(nasa)의 단순 미완료형이다. 

따라서 이것은 죄인의 자리에서 옮겨 줄 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실추된 지위를 다시 회복시켜 높여 준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그런데 하느님의 뜻을 순종하지 않는 자는 결코 이같은 복된 혜택을 누리지 못할 것이다. 본문은 그 이유가 '하느님의 이름이 그에게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는 내 이름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사실 '이름'(셈; 'shem')이란 그의 전 존재와 인격을 대표하고 상징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물이나 사람과 구별시켜 주는 외적인 표시가 된다. 

하느님의 이름이 그에게 있다는 것은 그가 하느님만이 하시는 일을 위탁받은 자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본문에서 그가 맡은 일은 하느님께 불순종한 자들에게 하느님의 의노를 내리는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이름이 있는 천사(사자)는 결코 예사로운 존재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결국 그 천사(사자)는 바로 성부 하느님과 동일한 천주성(신성)을 가지신 제2위 천주 성자 그리스도를 가리킬 수도 있다고 보는 것이다.




수호천사 기념일 복음 (마태18,1-5.10)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 (10)

'주의하여라'에 해당하는 '호라테'(horate; take heed)의 원형 '호라오'(horao)일차적으로는 '눈으로 보다'(요한8,57)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더 나아가서 '알다', '조심하다', '유의하다'라는 매우 광범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이것은 잊지 않도록 마음에 두어 유의해서 반드시 지켜야 함을 뜻한다. 

특히 여기서는 현재 명령형으로 기록되어서, 주의해야 할 사항이 단순한 권고 사항이 아니고 반드시 실행해야 할 실천적 명령이며, 또한 현재 명령형이기에 희랍어에서 현재는 일회성이 아닌 계속적으로 유념해야 할 사항임을 보여 준다. 

그리고 '업신여기지'에 해당하는 '카타프로네세테'(kataphromesete; look down; despise)원형 '카타프로네오'(kataphroneo)'업신여기게 되다','가볍게 여기다'(마태6,24), '업신여기다', '멸시하다'(로마2,4)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교만한 마음으로 남을 아래로 내려다보는 자세를 뜻한다. 

본문에서는 부정(不定) 과거 가정법으로 사용되었으나, 여기에 금지를 나타내는 부정어 '메'(me; not)와 함께 쓰여서 강력한 금지를 나타낸다. 

마태오 복음 18장 10절은 5~9절에 뒤따라 나오지만, 내용상 14절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어서 10절에서 14절까지의 한 문맥 안에서 그 의미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러니까 마태오 복음 18장 10절은 잃어버린 양의 비유와의 관계에서 그 의미를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결국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지 않게 하려는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14절) 이루기 위해서는, 작은 이들 가운데 단 한 명이라도 멸시하는 태도를 가져서는 안된다는 것을 강력하게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  

'그들의 천사들이'에 해당하는 '앙겔로이 아우톤'(anggeloi auton; their angels)에서 '그들의'에 해당하는 '아우톤'(auton; their)앞서 나온 '작은 이들'을 말한다. 

당시 유대인들은 하느님께서 각 사람에게 수호 천사를 임명해 두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사도12,15). 

히브리서 1장 14절에서는 "천사들은 모두 하느님을 시중드는 영으로서, 구원을 상속받게 될 이들에게 봉사하도록 파견되는 이들이 아닙니까?" 라고 계시되어 있다. 

이 천사들의 기능과 역할 및 활동의 방법에 대해서는 성경이 명확히 말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속단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는 것은 '작은 이들',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특별 대우를 받아야 될 존재들임을 나타낸다. 

'작은 이들'지키는 천사가 항상 하느님의 얼굴을 뵙고 있다는 것은 '작은 이들'하느님께 특별한 관심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하며, 또한 천사들이 하느님의 얼굴을 뵈옵는다는 사실은 '작은 이들'을 보호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작은 이들' 예수님께 속한 믿음의 자녀들을 향한 하느님의 자비로우심과 사랑을 강조하는 것이다.

또한 '잃어버리는'에 해당하는 '아폴레타이'(apoletai; should be lost; should perish)원형 '아폴뤼미'(apollymi)돌보는 사물, 혹은 짐승 등이 없어지는 것을 의미하는 '잃다'(마태15,24)라는 뜻만이 아니라, 일이 어그러지거나 실패하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 '망하다'(마태26,52)는 뜻과 그리고 영원한 생명(구원)을 상실하게 됨을 의미하는 '멸망하다'(요한3,16)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여기 본문에서 말하는 '잃어버리다'는 것은 영원히 하느님 품을 떠나 죄의 길에 머물다가 영원한 참 생명을 얻지 못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는 뜻이다. 

이것을 볼 때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이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 아니라는 것은, 결국 선택하신 자들 가운데 단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모두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시는 것이 하느님의 뜻임을 나타낸다.






<작은 이들을 업신여기지 마라.>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루카 18,10).”


이 말씀에서 ‘그들의 천사들’은 ‘그들의 수호천사들’입니다.

그들의 수호천사들이 하느님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는 말씀은,

‘작은 이들’의 하소연이 수호천사를 통해서 곧바로 하느님께 전달된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작은 이들’은 사회적으로 천대받고 멸시받는 사람들을 뜻합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하느님께서 언제 어떻게 개입하시든지 간에

인간 세상의 일을 다 보고 계시고, 다 알고 계신다는 뜻도 됩니다.

우리 교회는 모든 사람에게 각각의 수호천사가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수호천사가 자기가 맡은 사람을 도와주는 것은,

하느님께서 그 사람을 보살피시는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작은 이들’을 업신여기는 것은 하느님을 업신여기는 것과 같습니다.



1) 이 말씀에는 “모든 사람은 다 똑같이 귀하다.”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남을 업신여길 권한은 아무에게도 없고, 업신여김을 당해도 되는 사람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은 다 하느님의 귀한 자녀들입니다.



2) 이 말씀은 “하느님은 모든 사람을 똑같이 사랑하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다 똑같이 귀한 것입니다.

하느님은 사람을 차별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물론 역차별도 하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3) 하느님께서는 ‘작은 이들’이 업신여김을 당하는 것을 보고 가슴 아파하시지만,

동시에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는 죄를 짓는 사람들에 대해서 안타까워하십니다.

피해자도, 가해자도 모두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녀들입니다.



4) 하느님께서 인간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에 곧바로 개입하지 않으시는 것은,

모르셔서 그러신 것도 아니고, 무관심하셔서 그러신 것도 아닙니다.

죄인들의 회개를 기다리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어떤 방식으로든지 개입하시는 분입니다.



5) 어떤 억울한 일을 당해서 하느님께 하소연했을 때,

아무런 응답이 없더라도 하느님께서 다 보고 계시고, 다 알고 계신다는 것과

하느님의 정의가 반드시 실현된다는 것을 굳게 믿어야 합니다.


6) 의도하지 않았든지 의도했든지 간에

남을 업신여기는 죄와 사랑을 거스르는 죄를 지었을 때,

그 죄가 아무렇지도 않게 묻혀서 지나가는 일은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아무리 작은 죄라도 하느님 앞에 서게 되는 그날 세세하게 다 드러날 것입니다.

 

7) 우리는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마태 22,39).”는 계명을

언제나 항상 제대로 실천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한 몸이고, 이웃은 곧 나 자신입니다.

함께 기뻐하고, 함께 슬퍼하고, 함께 아파하는 공동체로서 살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천사에 관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형제애를 계속 실천하십시오. 손님 접대를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손님 접대를 하다가 어떤 이들은 모르는 사이에 천사들을 접대하기도 하였습니다.

감옥에 갇힌 이들을 여러분도 함께 갇힌 것처럼 기억해 주고,

학대받는 이들을 여러분 자신이 몸으로 겪는 것처럼

기억해 주십시오(히브 13,1-3).”

(이 말에서 ‘손님’은 ‘나그네’로 바꿔야 합니다.

히브리서 저자가 강조하고 있는 것은 단순한 손님 접대가 아니라,

몹시 지쳐 있고 외로운 처지에 놓여 있는 낯선 나그네를 잘 접대하라는 것입니다.) 


나그네를 접대하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천사를 접대한 사람은,

아브라함(창세 18장), 롯(창세 19장), 삼손의 부친 마노아(판관 13장),

토비야(토빗 5장-7장) 등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이야기를 보면,

천사는 도움을 받으려고 온 것이 아니라, 그들을 도와주려고 왔습니다.

말하자면 수호천사가 그들에게 나타난 것입니다.

그들이 자기를 도와주려고 온 수호천사를 도와주었다는 것은,

‘사랑’은 줌으로써 받는 것임을 나타냅니다.

(아브라함, 롯, 마노아, 토비야의 사랑 실천은

어떤 대가를 바라고 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사랑받으려는 목적으로 사랑 실천을 한 것이 아니라,

아무런 사심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사랑을 실천했다는 것입니다.

그 사랑이 천사를 통해서 하느님의 사랑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수호천사는 우리를 도와주는 천사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도움을(사랑을) 받기만 해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능동적으로, 또 적극적으로 이웃에게 사랑을 주어야 합니다.

루카복음의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강도당한 사람 입장에서는

사마리아인은 분명히 하느님께서 보내 주신 수호천사입니다.

그러면 사마리아인의 입장에서는?

그는 강도당한 사람을 보고서 가엾은 마음이 들어서 도와주었을 뿐인데,


즉 아무런 사심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사랑을 실천한 것인데,

히브리서 저자가 말한 대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천사를 도와준 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은 사실상 예수님을 도와드린 일입니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

“......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곳으로 갈 것이다(마태 25,46).”

사랑을 뿌리면 사랑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인간은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알든지 모르든지 간에 이웃의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수많은 수호천사들이 우리를 도와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직접 천사를 보내시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하느님의 도움은 이웃을 통해서 옵니다.)

우리도 이웃에게 수호천사가 되어 주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말씀하신 다음에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루카 10,37).

이 말씀은 이웃에게 수호천사가 되어 주라는 명령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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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6주간 목요일] 파견 (루카 10,1-12)17.10.05조회 90[연중 제26주간 화요일]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 (루카 9,51-56)17.10.03조회 267[수호천사 기념일] 그들의 천사들이 (마태18,1-5.10)17.10.02조회 422[연중 제25주간 토요일]사람의 아들 (루카 9,43ㄴ-45)17.09.30조회 50[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 (요한 1,47-51)17.09.29조회 204[연중 제25주간 목요일]이 사람은 누구인가?” (루카 9,7-9)17.09.28조회 285[연중 제25주간 수요일]열두 제자 파견(루카 9,1-6)17.09.26조회 317연중 제25주간 화요일] 참 가족 (루카 8,19-21)17.09.26조회 265[연중 제25주간 월요일] 등불 (루카 8,16-18)17.09.24조회 52[연중 제24주간 토요일]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루카 8,4-15)17.09.23조회 50[연중 제24주간 금요일] 일곱 마귀 (루카 8,1-3)17.09.22조회 101[성 마태오 사도 복음사가 축일] 나를 따라라 (마태 9,9-13)17.09.21조회 300[연중 제24주간 수요일] 먹보요 술꾼 (루카 7,31-35)17.09.20조회 327[연중 제24주간 화요일]일어나라 (루카 7,11-17)17.09.19조회 49[연중 제24주간 월요일] 백인대장의 믿음 (루카 7,1-10)17.09.17조회 50[연중 제23주간 토요일] 나무 열매 (루카 6,43-49)17.09.16조회 519월 15일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요한 19,25-27)17.09.15조회 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