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4주간 토요일]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루카 8,4-15)

2017. 9. 23. 오전 5:08:41

글자


[연중 제24주간 토요일]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루카 8,4-15)


 

바오로 사도는 티모테오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흠 없고 나무랄 데 없이 계명을 지키라고 지시한다. (1티모 6,13-16)
사랑하는 그대여, 13 만물에게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 그리고 본시오 빌라도 앞에서 훌륭하게 신앙을 고백하신 그리스도 예수님 앞에서 그대에게 지시합니다.
1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흠 없고 나무랄 데 없이 계명을 지키십시오.
15 제때에 그 일을 이루실 분은, 복되시며 한 분뿐이신 통치자, 임금들의 임금이시며 주님들의 주님이신 분, 16 홀로 불사불멸하시며, 다가갈 수 없는 빛 속에 사시는 분, 어떠한 인간도 뵌 일이 없고 뵐 수도 없는 분이십니다. 그분께 영예와 영원한 권능이 있기를 빕니다. 아멘.


예수님께서는 비유로 말씀하시며, 씨가 좋은 땅에 떨어진 것은,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간직하여 인내로써 열매를 맺는 사람들이라고 하신다. (루카 8,4-15)
그때에 4 많은 군중이 모이고 또 각 고을에서 온 사람들이 다가오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셨다.
5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그가 씨를 뿌리는데, 어떤 것은 길에 떨어져 발에 짓밟히기도 하고 하늘의 새들이 먹어 버리기도 하였다.
6 어떤 것은 바위에 떨어져, 싹이 자라기는 하였지만 물기가 없어 말라 버렸다. 7 또 어떤 것은 가시덤불 한가운데로 떨어졌는데, 가시덤불이 함께 자라면서 숨을 막아 버렸다.
8 그러나 어떤 것은 좋은 땅에 떨어져, 자라나서 백 배의 열매를 맺었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고,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하고 외치셨다.
9 제자들이 예수님께 그 비유의 뜻을 묻자, 10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에게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비유로만 말하였으니, ‘저들이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11 그 비유의 뜻은 이러하다. 씨는 하느님의 말씀이다.
12 길에 떨어진 것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였지만 악마가 와서 그 말씀을 마음에서 앗아 가 버리기 때문에 믿지 못하여 구원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13 바위에 떨어진 것들은, 들을 때에는 그 말씀을 기쁘게 받아들이지만 뿌리가 없어 한때는 믿다가 시련의 때가 오면 떨어져 나가는 사람들이다. 14 가시덤불에 떨어진 것은, 말씀을 듣기는 하였지만 살아가면서 인생의 걱정과 재물과 쾌락에 숨이 막혀 열매를 제대로 맺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15 좋은 땅에 떨어진 것은,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간직하여 인내로써 열매를 맺는 사람들이다.”


08.09.20 - 루카 8,4-15


연중 제24주간 토요일 제1독서 (1티모6,13-16)


오늘 독서에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흠없고 나무랄 데 없이 계명을 지키십시오"(6,14)라는 말씀이 들어 온다.

그리고 그 다음 구절 "다가갈 수 없는 빛 속에 사시는 분"(6,16)이라는 구절이

들어오는데, 우리가 주님께 가는 길이 만만치 않다.

거룩하신 분께 가까이 가고 일치하려면, 속된 것에서 벗어나야 하고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

 

"흠없다"는 표현을 들으면,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묵시록에 29번이나 나오는

어린양(묵시록5,6)과 요한 복음의 어린양(요한1,29.36:참조 1베드1,19;사도8,32)이 떠오른다.

요한 복음에서는 어린양을 'amnos'(암노스)란 단어를 쓰고, 깨끗하고 거룩한 면이 강조된다.


묵시록에서는 'arnion'(아르니온)이란 단어를 쓰고,

이사야 53,7의 "살육당한 것 같았다"의 표현에 나타나듯이,

능력과 노여움을 가지고 적대 세력에 대항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둘다 예수님을 가리키지만, 묵시록에서는 어린양과 짐승의 싸움이

계속 나오므로 강한 인상을 주는 용어를 선택했다.

 

"살해된 고양",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이란 표현은

죄가 없고, 티와 흠이 없고, 깨끗하고 거룩한데,

하느님의 의(義)때문에 억울하게 고통을 당하고 죽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삶이 천국에서는 가장  가치있는 삶이란 뜻으로

어린양이 "천국을 비추는 등불"(묵시21,23)로 계시되고 있다.

 

우리가 특별한 축일에 어쩌다가 바치는 미사경문의 감사기도 제1양식에도

<신앙의 신비여~> 다음에 이런 기도문이 나온다.

 

"주님, 저희 봉사자들과 주님의 거룩한 백성은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된 수난과

죽음을 이기신 부활과 영광스러운 승천을 기념하나이다.

 

저희는 아버지께서 베풀어주신 선물 가운데서

이 깨끗한 제물, 흠없는 제물,

영원한 생명의 빵과 구원의 잔을 존엄한 대전에 봉헌하나이다.

  

이 제물을 인자로이 굽어보시고,

일찌기 주님의 의로운 종 아벨의 제물과

저희 조상 아브라함의 제사와

대사제 멜키세덱이 바친

거룩하고 흠없는 제물을 받아 주셨듯이

이를 받아 주소서~~"

 

이렇게 우리는 미사때 마다  조금도 흠도 티도 없는 예수님을

인류 구원의 제물로 바침으로 그 구원 효과와 은헤를 입는다.

 

우리가 예수님께 부쳐지는, 주님의 속성과 본질을 의미하는

이러한 수식어들을 듣고 묵상할 때마다,

우리 자신도 그러한 삶을 지향할 뿐 아니라

성부 하느님 대전에 기뻐하시는  흠없는 제물,

또 하나의 예수님이 되도록 적어도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지극히 거룩하시고 존엄하신 하느님을 의식할 때 마다  

예수님의 구속 성혈로 씻음받은 자신의 양심과 심성의 결백을

주장할 수 있는가?를 늘 물어 보아야 한다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그 비유의 뜻은 이러하다. 씨는 하느님의 말씀이다.

길에 떨어진 것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였지만 악마가 와서

그 말씀을 마음에서 앗아 가 버리기 때문에

믿지 못하여 구원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다(루카 8,11-12).”

 

우리는 누구나 세례를 받을 때,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씨가 우리의 ‘마음 밭’에 뿌려지는 은총을 받았습니다.

(갓난아기 때 유아 세례를 받았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생활은 그 씨를 잘 가꾸고 보살피는 농사일과 같습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유혹이 찾아옵니다.

“왜 그렇게 힘들게 사는가? 그냥 남들처럼 살면 안 되는가?

신앙생활을 잘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좋지만,

일부러 사서 고생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라는 유혹.

이 유혹이 마음속에서 올 수도 있고,

정말로 나를 사랑하고, 나를 걱정해 주는 사람의 입을 통해서 올 수도 있습니다.

그 사람이 악마가 아닌 것은 분명하지만, 그의 말은 악마의 유혹이 됩니다.

나의 마음속에 의심을 심어놓아서 믿음을 흔들고,

오직 한길로만 가려는 나의 의지를 꺾는 것은 모두 악마의 유혹입니다.

이 유혹을 물리치지 못하면, 나의 ‘마음 밭’은 ‘길’이 되어버립니다.

그런 위기가 찾아온다면, 우리는 예수님처럼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라고

단호한 태도를 취해야 합니다(마태 16,23).

 

(“나를 사랑하고, 진심으로 나를 걱정해 주는 사람에게

어떻게 그런 모진 말을 하나?” 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악마는 나의 가장 약한 부분을 찾아서 공격하는 존재입니다.

물론 실제로 대놓고 “사탄아, 물러가라.” 라는 말을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닌데,

어떻든 그런 마음으로, 강하게 유혹을 물리쳐야 하고,

굳은 의지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바위에 떨어진 것들은, 들을 때에는 그 말씀을 기쁘게 받아들이지만 뿌리가 없어

한때는 믿다가 시련의 때가 오면 떨어져 나가는 사람들이다(루카 8,13).”

 

여기서 말씀을 기쁘게 받아들이지만 뿌리가 없다는 말은,

믿음도 있고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실천하지는 않는다는 뜻입니다.

즉 ‘신앙’은 있는데 ‘생활’은 없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신앙인은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인데, 신앙은 있지만 생활이 없다면,

그것은 사실상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신앙과 생활이 하나가 되어 있는 사람은 시련을 만나도 잘 극복합니다.

그러나 말씀을 듣기만 하고 실천하지 않는 사람은,

또는 신앙은 있지만 생활은 하지 않는 사람은 시련을 만나면 금방 꺾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경우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말을 듣고도 실행하지 않는 자는, 기초도 없이 맨땅에 집을 지은 사람과 같다.

강물이 들이닥치자 그 집은 곧 무너져 버렸다.

그 집은 완전히 허물어져 버렸다(루카 6,49).”

 

‘기도’에 대해서 잘 알고, 기도를 어떻게 하는지도 잘 알지만,

실제로 기도하지는 않는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사실 그런 경우가 바로, 말씀을 듣기만 하고 실천하지는 않는 모습 가운데에서

대표적인 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평소에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정말로 기도를 해야 할 때에도

기도하지는 않고 다른 일을 먼저 하게 됩니다.

즉 시련을 만났을 때 기도가 아니라 인간적이고 세속적인 방법으로

그 위기를 극복하려고 하고, 그러다가 더욱 힘든 상태로 빠지게 됩니다.

그러나 평소에 성실하게 기도하는 사람은, 시련을 만났을 때

평소에 하던 대로 기도를 하게 되고, 기도의 힘으로 위기를 극복합니다.

 

겉으로 잘 드러나는 외적 종교생활은 잘하지만,

눈으로 볼 수 없는 내적 신앙생활은 소홀히 하는 경우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겉으로만 잘하는 ‘위선’일 수도 있고,

내적 신앙생활을 무시하는 ‘교만’일 수도 있습니다.

어떻든 그런 경우에는 시련이 없을 때에는 성실한 신앙인처럼 보이겠지만,

시련이 닥쳤을 때에는 바로 믿음을 잃고 무너지고 맙니다.

 

“가시덤불에 떨어진 것은, 말씀을 듣기는 하였지만 살아가면서 인생의 걱정과

재물과 쾌락에 숨이 막혀 열매를 제대로 맺지 못하는 사람들이다(루카 8,14).”

 

가시덤불이라는 말에서 ‘머릿속이 복잡하다.’는 말이 연상됩니다.

생각해야 할 것도 많고, 걱정거리도 많아서 머릿속이 복잡한 사람들은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먹고사는 문제도 걱정해야 하고, 가족들의 건강 문제도 신경 써야 하고,

하고 싶은 일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고......

여러 가지로 복잡한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특별히 어떤 죄를 짓고 있는 것은 아닌데도

이것저것 생각하느라고 마음이 흩어져 있으니

기도할 때에나 미사 참례할 때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말씀을 들어도 귀에 들어오지도 않습니다.

 

바로 그런 때에 필요한 것이 ‘어린이의 영성’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마태 18,3).”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려면 어린이처럼 단순해져야 합니다.

걱정거리가 있다면 주님께 모두 말씀드리고, 그 걱정거리를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나는 나대로 열심히 노력해야 하지만, 주님께서 도와주신다고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믿음과 기도로써 걱정거리들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재물과 쾌락 때문에 숨이 막히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한 것은 기도가 아니면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나가게 할 수 없다(마르 9,29).” 라는 예수님 말씀은 이 경우에도 해당됩니다.

그런데 ‘숨이 막힌다.’는 말에서, 물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모습이 연상됩니다.

자기 스스로 그런 것들 속으로 걸어 들어갔든지

본의 아니게 실수로 그렇게 되었든지 유혹에 넘어가서 그렇게 되었든지 간에

지금 그런 것들 때문에 숨이 막히고 괴로운 처지가 되어 있다면,

가장 먼저 할 일은 주님께 도움을 요청하는 일입니다.

주님께서는 바로 손을 내밀어 건져 주실 것입니다(마태 14,31).

 

송영진 모세 신부


오늘의 묵상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는 복음서에서 널리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그 비유의 뜻이 명료해서 사람들은 씨앗이 떨어진 네 곳, 곧 ‘길, 바위, 가시덤불, 좋은 땅’ 가운데 나는 어떤 처지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있는지 흔히 묻곤 합니다. 이 복음을 읽는 신자 대부분은 많은 열매를 맺는 ‘좋은 땅’보다는 뿌리가 내리지 못하는 ‘바위’나 인생 걱정과 재물과 쾌락의 덫에 걸린 ‘가시덤불’이 자신과 비슷한 처지라고 생각하기 십상입니다.
물론 예수님의 이 비유는 제자들을 향한 일종의 경고와 훈계 말씀이지만, 복음을 듣는 지금의 내 처지에 대한 자괴감이나 죄스러움에 빠지라는 뜻은 아닙니다.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쉐마 이스라엘”, 곧 “이스라엘아, 들어라!”(신명 6,4)는 말씀을 상기시키며, 하느님과 신뢰 관계를 맺고 살아야 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처지를 일깨워 주고자 하신 것이 예수님의 의도였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자신들의 율법 규정의 배타적 잣대로 이방인들과 소외된 계층들을 함부로 단죄했던 유다인들의 실상을 예수님께서는 지적하시며,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는 말씀으로 그들이 처음 하느님께 부름받았던 이집트 탈출의 해방과 광야에서의 수련, 그리고 시나이 산에서 맺은 계약을 상기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성경을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아는 것과 정말로 성경의 말씀을 ‘살아 계신 하느님의 말씀’으로 알아듣고 실천하는 것은 다릅니다. 성경을 읽고 필사하고 외운다고 말씀이 저절로 내 안에서 열매를 맺는 것도 아닙니다. 내 영혼 안에 말씀의 씨앗이 뿌려져 좋은 열매를 맺으려면, 내 영혼의 밭이 선한 의지와 기쁨, 자비와 인내, 겸손과 희생의 거름들로 잘 가꾸어져 있어야 합니다. 나는 좋은 땅이 되려고 얼마나 노력하고 있습니까?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매일말씀묵상

목록 전체보기 →
연중 제25주간 화요일] 참 가족 (루카 8,19-21)17.09.26조회 265[연중 제25주간 월요일] 등불 (루카 8,16-18)17.09.24조회 53[연중 제24주간 토요일]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루카 8,4-15)17.09.23조회 51[연중 제24주간 금요일] 일곱 마귀 (루카 8,1-3)17.09.22조회 101[성 마태오 사도 복음사가 축일] 나를 따라라 (마태 9,9-13)17.09.21조회 300[연중 제24주간 수요일] 먹보요 술꾼 (루카 7,31-35)17.09.20조회 328[연중 제24주간 화요일]일어나라 (루카 7,11-17)17.09.19조회 49[연중 제24주간 월요일] 백인대장의 믿음 (루카 7,1-10)17.09.17조회 50[연중 제23주간 토요일] 나무 열매 (루카 6,43-49)17.09.16조회 519월 15일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요한 19,25-27)17.09.15조회 106[9월 14일] 성 십자가 현양 축일 (요한 3,13-17)17.09.14조회 238[연중 제23주간 수 요일]행복하여라, (루카6,20-26)17.09.13조회 314[연중 제23주간 화요일]열두 사도 (루카 6,12-19)17.09.12조회 63[연중 제23주간 월요일]"손을 뻗어라" (루카 6,6-11)17.09.11조회 50[연중 제22주간 토요일] 안식일의 주인 (루카 6,1-5)17.09.09조회 125[2017년 9월 8일 금요일]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 (마태오 1,1-16.18-23)17.09.08조회 85[연중 제22주간 목요일]사람 낚는 어부 (루카 5,1-11)17.09.07조회 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