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5주간 화요일] 참 가족 (루카 8,19-21)

2017. 9. 26. 오전 5:3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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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5주간 화요일] 참 가족 (루카 8,19-21)

다리우스 임금은 관리들에게 명령을 내려, 하느님의 집을 다시 짓도록 유다인들의 원로들을 도우라고 하고, 돌아온 유배자들은 기뻐하며 하느님의 집 봉헌식을 올린다. (에즈라 6,7-8.12ㄴ.14-20)
그 무렵 다리우스 임금은 유프라테스 서부 지방 관리들에게 다음과 같은 명령을 내렸다.
7 “하느님의 집 공사가 계속되게 하여라. 유다인들의 지방관과 유다인들의 원로들이 그 하느님의 집을 제자리에 다시 짓게 하여라.
8 이제 그 하느님의 집을 다시 짓도록 그대들이 유다인들의 원로들을 도와서 해야 할 일에 관하여, 내가 이렇게 명령을 내린다. 왕실 재산 곧 유프라테스 서부 지방에서 받는 조공에서, 지체하지 말고 그 사람들에게 어김없이 비용을 내어 주어라.
12 나 다리우스가 명령을 내리니 어김없이 시행하여라.”
14 유다의 원로들은 하까이 예언자와 이또의 아들 즈카르야가 선포하는 예언에 힘입어 건축 공사를 순조롭게 진행하였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하느님의 명령과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와 다리우스와 아르타크세르크세스의 명령에 따라 건축 공사를 마칠 수 있었다. 15 그리하여 이 집이 완공된 것은 다리우스 임금의 통치 제육년 아다르 달 초사흗날이었다.
16 이스라엘 자손들, 곧 사제들과 레위인들과 돌아온 나머지 유배자들은 기뻐하며 하느님의 집 봉헌식을 올렸다. 17 이 하느님의 집 봉헌식에는 황소 백 마리와 숫양 이백 마리와 어린양 사백 마리를 바치고, 온 이스라엘을 위한 속죄 제물로 이스라엘의 지파 수에 따라 숫염소 열두 마리를 바쳤다.
18 그런 다음 모세의 책에 쓰인 대로, 사제들을 저마다 번별로 세우고 레위인들을 저마다 조별로 세워 예루살렘에서 하느님을 섬기도록 하였다.
19 돌아온 유배자들은 첫째 달 열나흗날에 파스카 축제를 지냈다. 20 사제들과 레위인들은 일제히 자신을 정결하게 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모두 정결하게 되었다. 그런 다음 그들은, 돌아온 모든 유배자와 동료 사제들과 자기들이 먹을 파스카 제물을 잡았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사람들이 내 어머니와 형제들이라고 하신다. (루카 8,19-21)
그때에 19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지만, 군중 때문에 가까이 갈 수가 없었다.
20 그래서 누가 예수님께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이 스승님을 뵈려고 밖에 서 계십니다.” 하고 알려 드렸다.
21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




 연중 제25주간 화요일 복음 (루카8,19-21)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 (21)


루카 복음 8장 19~21절의 병행구절인 마태오 복음 12장 46~50절에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그 형제들이 회당에서 예수님께서 가르침을 하고 계실 때 찾아온 것으로 나온다.


그리고 찾아온 이유예수님의 가르침과 영적이 군중들에게 영향을 끼쳐

단순히 소문과 명성 때문에 찾아온 것인지, 아니면 예수님께서 베에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는(마태12,22~32) 등의 부정적인 이미지와 소문 때문에

걱정이 되어 찾아왔는지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회당에서 가르침을 하는 도중에 육신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당신을 만나기 위해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취하신다.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마태12,48) 라고 말하면서 당신의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이들이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들이다'(마태12,49)라고 말한다.


이것은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당신의 뜻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앞으로 당신 구원 사업의 협력자로 불리움을 받은 제자들도

이러한 공적(公的)인 가르침 중에 사적(私的)인 육정(肉情)을 쓰면 안된다는 것을

가르쳐주기 위해 교육적인 차원에서 단호한 입장을 취했다고 볼 수 있다.


루카 복음 8장 21절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이다'로 나오는 마태오 복음 12장 50절과 병행 구절이다.


그리스도의 구원 사업에 협력하는 제자들에게 있어서 혈육적이고 혈연적인 관계보다도

영적인 관계가 더 중요하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참된 가족이라는 말이다.


여기서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에 해당하는 '메테르 무 카이 아델포이 무'(meter mu

kai adelphoi mu)에서 '형제들'에 해당하는 '아델포이'(adelphoi)의 단수는

'아델포스'(adelphos)이다.


여기 복음에 나오는 '형제'라는 뜻의 '아델포스'(adelphos)라는 희랍어 단어는

당시 이스라엘에서 사촌 형제들도 그렇게 불렀다.


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형제, 자매들요셉 양부의 형제, 자매의 자녀들인

고종 사촌들이나 마리아의 형제, 자매의 자녀들인 이종 사촌들이라는 것이다.


만일 예수님께 친형제들이 있었다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운명하실 때에

자신의 어머니를 친형제들에게 맡기지, 왜 이종사촌인 제자에게 맡겼겠는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께서 예수님을 성령으로 말미암아 출산하기 전(前)이나

출산시(時), 그리고 출산 후(後)에도 평생동정(平生童貞)이시라는 교리 신덕 도리

이천년 동안 가르쳐오고 믿어온 가톨릭을 반대하며, 자신들의 대처주의를 옹호하기 위해

성모님의 평생 동정성을 부정하는 개신교 마리아에게는 예수님 외에도

여러 명의 아들들이 있다고 주장하는 오류를 저지르고 있다.


그들은 그렇게 '말씀 절대 주의'를 주장하면서도 이렇게 성경적 무지로

오류을 범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자신의 대처주의를 성경을 근거로 해서

합리화시키려고 하니까 터무니 없는 거짓을 진리인 것처럼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듣고'에 해당하는 '아쿠온테스'(akuontes; hearing)의 원형은 '듣다',

'복종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아쿠오'(akuo)인데, 이것은 자식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 권위의 대리자들인 부모에게 순종하듯이, 인간들의 삶을 다스리는

절대적이고 궁극적인 권위이신 하느님께 대해 자녀로서의 순종은

당연한 도리요 의무라는 뉘앙스를 주는 말이다


2013년 9월 24일 연중 제25주간 화요일

<예수님의 참 가족>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지만,

군중 때문에 가까이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누가 예수님께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이

스승님을 뵈려고 밖에 서 계십니다.’ 하고 알려드렸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루카 8,19-21)”

 

예수님께서는 어머니와 형제들이 찾아온 일을 계기로 삼아서

‘영적인 가족’에 대해서 가르치십니다.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

라는 말씀은, “그 사람들은 나의 가족이 아니다.” 라는 뜻이 아니고,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사람들은 모두

나의 참 가족이 된다.” 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의 참 가족이 된다.’는 말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간다.’, 또는 ‘구원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간다.”, “구원을 받는다.”,

“예수님의 참 가족이 된다.”는 말은, 뜻으로는 모두 같은 말입니다.)

요한복음서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 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요한 1,12).”

또 예수님께서는 산상 설교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마태 7,21).”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

라는 말씀에서 강조점은 ‘실행’이라는 말에 있습니다.

(믿음은 있는데 실천하지는 않는 사람들,

또는 말씀을 듣기는 하는데 실행하지는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모님은 ‘말씀의 실행’에서 신앙인의 모범이 되시는 분입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예수님의 탄생 예고에 대한 응답으로 하신 이 말씀은,

성모님께서 말씀을 실행한 일 가운데에서 가장 대표적인 일입니다.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자신의 모든 것을,

즉 전 생애와 목숨까지 다 바친 일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성모님께서 하신 일은 ‘이웃 사랑’을 실행한 일입니다.

“포도주가 떨어지자 예수님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포도주가 없구나.’ 하였다(요한 2,3).”

“그분의 어머니는 일꾼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하고 말하였다(요한 2,5).”

(혹시 사람들 가운데에는, 예수님께 말씀드린 일 외에는

성모님께서 하신 일이 없다고 말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웃의 딱한 사정을 먼저 알고서 예수님께 도움을 청하고,

그리고 일꾼들을 불러서 그들이 할 일을 알려주고...

이 일들은 성모님께서 예수님과 딱한 이웃 사이에서 중개자 역할을 하시면서

당신이 하실 수 있는 일을 최선을 다해서 하셨음을 나타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을 듣기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 사람들’에 대해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 말을 듣고도 실행하지 않는 자는, 기초도 없이 맨땅에 집을 지은 사람과 같다.

강물이 들이닥치자 그 집은 곧 무너져 버렸다.

그 집은 완전히 허물어져 버렸다(루카 6,49).”

기초도 없이 맨땅에 지은 집은, 실천 없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데도

겉으로 보기에는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 신앙인을 뜻합니다.

사실 고난과 시련이 없을 때에는

겉으로만 잘하는 것인지 실제로 잘하는 것인지 잘 구별되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어떤 시련을 만나게 되면, 금방 그 실체가 드러나게 됩니다.

말씀을 듣기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 사람들은

머리로만 신앙생활을 하고 ‘삶’으로는 하지 않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시련을 극복할 힘이 없어서 바로 무너집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율법을 모르고 죄지은 자들은 누구나 율법과 관계없이 멸망하고,

율법을 알고 죄지은 자들은 누구나 율법에 따라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율법을 듣는 이가 하느님 앞에서 의로운 이가 아니라,

율법을 실천하는 이라야 의롭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로마 2,12-13).”

(여기서 ‘율법’이라는 말을 ‘말씀’으로 바꿔서 생각해도 됩니다.)

실제 ‘삶’으로 실행하지 않는다면,

말씀을 들었다는 것은, 또는 말씀을 알고 있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오히려 죄가 더 커질 뿐입니다.

 

야고보서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말씀을 실행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말씀을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야고 1,22).”

“영이 없는 몸이 죽은 것이듯 실천이 없는 믿음도 죽은 것입니다(야고 2,26).”

(‘죽은 믿음’은 믿음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떤 율법학자에게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말씀하신 다음에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에서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루카 10,36)” 라고 물으셨습니다.

그 율법학자가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라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는 그 율법학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루카 10,37).”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 나오는 사제와 레위인처럼 행동하면 안 되고,

사마리아인처럼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만일에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자격시험 문제로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가 출제된다면,

시험 문제는 “비유의 내용을 얼마나 잘 알고 있느냐?”가 아니라,

“비유의 가르침을 얼마나 잘 실천했느냐?”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듣는 것은 ‘실천’하기 위해서입니다.

만일에 듣고 나서 “참 좋은 말씀이다.” 라고 감탄하고, 그것으로 끝난다면,

즉 듣기만 하고 실천하지는 않는다면, 그것은 제대로 들은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것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살아 있는 말씀’을

‘죽은 말’로 전락시키는 죄를 짓는 일이 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오늘의 묵상

이스라엘 백성에게 예루살렘 성전은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하는 가장 중요한 장소였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 안치된 계약의 궤는 다윗 왕조를 지켜 주는 표징이었지만, 이스라엘이 하느님 말씀보다 우상 숭배에 빠지고, 하느님과 맺은 계약을 지키지 않아 바빌론 유배의 아픔을 겪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자비는 그들에게 예루살렘을 되찾아 주고 성전을 재건하는 기쁨을 줍니다. 파스카 축제를 통하여 하느님의 계약과 말씀을 되찾은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의 말씀이 그들의 삶의 중심이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선택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느님과 맺은 계약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다시 일깨워 주십니다. 그것은 예수님과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성모님과 예수님의 형제들이 예수님을 만나러 왔을 때, 사람들은 상식적으로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특별한 배려를 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 속마음을 알고 계신 예수님께서는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라고 선언하시어 선택과 혈연이 아닌 믿음의 실천이 중요하다고 가르치십니다.
누군가는 예수님께서 성모님을 의도적으로 외면했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사실 예수님께서는 어머니이신 성모님께서 단순히 혈연 때문이 아니라, 진실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신 신앙의 모범이심을 암묵적으로 선언하신 것입니다. 성모님이야말로 하느님의 말씀을 태중에 모시고, 당신에게 일어난 모든 일을 마음속에 깊이 새기시고 곰곰이 숙고하신 분이셨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하느님의 말씀을 ‘들음’에서 옵니다. 나는 얼마나 성경 말씀을 듣고 실천하려고 애쓰고 있습니까?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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