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 (요한 1,47-51)

2017. 9. 29. 오전 5: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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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 (요한 1,47-51)

 

교회는 제4차 라테라노 공의회(1215년)와 제1차 바티칸 공의회(1869-1870년)를 통하여 천사들의 존재를 신앙 교리로 선언하였다. 그러나 천사들에 대한 학자들의 여러 학설에 대해서는 유권적인 해석을 하지 않았다. 다만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 이외의 다른 천사의 이름은 금하고 있다. 천사들의 축일도 오늘의 세 대천사 축일과 ‘수호천사 기념일’(10월 2일)을 정하여 천사 공경을 권장하고 있다. 세 대천사 이름의 뜻은 다음과 같다. 미카엘은 ‘누가 하느님 같으랴.’, 가브리엘은 ‘하느님의 사람, 영웅, 힘’, 라파엘은 ‘하느님께서 고쳐 주셨다.’이다.


다니엘 예언자는 환시 속에서 사람의 아들 같은 이가 하늘의 구름을 타고 나타나는 것을 본다. (다니엘 7,9-10.13-14)

9 내가 보고 있는데 마침내 옥좌들이 놓이고, 연로하신 분께서 자리에 앉으셨다. 그분의 옷은 눈처럼 희고, 머리카락은 깨끗한 양털 같았다. 그분의 옥좌는 불꽃 같고, 옥좌의 바퀴들은 타오르는 불 같았다. 10 불길이 강물처럼 뿜어 나왔다. 그분 앞에서 터져 나왔다.
그분을 시중드는 이가 백만이요, 그분을 모시고 선 이가 억만이었다. 법정이 열리고, 책들이 펴졌다.
13 내가 이렇게 밤의 환시 속에서 앞을 보고 있는데, 사람의 아들 같은 이가 하늘의 구름을 타고 나타나 연로하신 분께 가자, 그분 앞으로 인도되었다.
14 그에게 통치권과 영광과 나라가 주어져, 모든 민족들과 나라들, 언어가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를 섬기게 되었다. 그의 통치는 영원한 통치로서 사라지지 않고,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않는다.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에게, 앞으로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라며,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하신다. (요한 1,47-51)
그때에 47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이 당신 쪽으로 오는 것을 보시고 그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48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저를 어떻게 아십니까?” 하고 물으니, 예수님께서 그에게 “필립보가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 하고 대답하셨다. 49 그러자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
50 예수님께서 나타나엘에게 이르셨다.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해서 나를 믿느냐?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다.” 51 이어서 그에게 또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성 미카엘,성 가브리엘,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다니7,9-10.13-14)

 

'불길이 강물처럼 뿜어 나왔다. 그분 앞에서 터져 나왔다. 그분을 시중드는 이가 백만이요,

 그분을 모시고 선 이가 억만이었다. 법정이 열리고, 책들이 펴졌다.' (10)

 


다니엘이 환시 가운데 본 하느님의 옥좌에서는 이글거리는 불이 마치 강물처럼 뿜어 나왔다.

본문에서 '뿜어 나왔다', '퍼져 나왔다' 에 해당하는 '나게드 웨나페크'(naged wenaphek)

두 단어 모두 능동태 분사형으로서, 불이 하느님의 옥좌로부터 계속해서 흘러나오는 모습을

강조한다. 이것은 하느님의 심판이 계속해서 진행된다는 지속성을 임시한다.

 


또한 '그분 앞에서' 라는 표현은 불꽃이 하느님의 몸 속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좌정해 계시는 그 옥좌로부터 나온다는 표현으로 볼 수 있다.

그 흘러나오는 불의 양이 얼마나 많았는지, 다니엘은 마치 강물처럼 흘러나오고 있었다고 묘사한다.

 


이렇게 흘러나오는 심판으로서의 불은 세상 나라들, 특히 작은 뿔이 상징하는 적 그리스도를 심판하는 불이다.

이 불은 적 그리스도를 포함한 모든 악한 세력들에 대한 심판을 끝날 때까지 하느님의 옥좌에서 게속해서 흘러나올 것이다.

 


한편, '백만'과 '억만' 에 해당하는 '엘레프 알르파임'(elep allpaim)'립보 랍베완'(ribo rabbewan)고대 세계에서 형언할 수 조차 없는 많은 숫자 나타낼 때 사용하는 표현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천사를 나타내는 데, 이처럼 헤아릴수 조차 없을 만큼 많은 수를 들고 있다.

천사들은 하느님의 명령을 받아 그 명령을 수행하는 소임을 맡은 존재들이다.

이 문맥에서는 특히 심판과 관련된 일을 수행하기 위해서 대기하는 모습을 보인다.

 


본문에서 '그분을 시중드는 이' 에 해당하는 단어 '예샴메슌네흐'(yeshameshunneh)

문자적으로 '그들이(백만) 그분을 시중들고 있다' 라는 의미이다.

이 단어는 구약성경에서 이곳밖에 사용되지 않지만, 문맥상 수많은 천사들이 하느님을 시중들고 있는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 확실하다.

 


또한 본문에서 '모시고 선' 에 해당하는 '예쿠문'(yequmun)은 문자적으로 '그들이(억만) 모시고 서 있다' 라는 의미이다.

천사들은 하느님과 나란히 옥좌에 앉아 있을 수 있는 지위를 가진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하느님 옥좌 곁에 서 있으면서, 하느님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동시에 그 명령을 수행하는 존재들이다.

 


그들의 숫자가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다는 사실은,

하느님의 위엄을 드높여줌과 아울러 하느님의 권세와 능력,

그리고 그분의 역사하심이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크고 광대무변함을 암시한다.

 


한편, 하느님의 심판이 시작되면서 책들이 펼쳐진다.

'책들'에 해당하는 '씨프린'(siprin)은 어원상 '기록하다', '계산하다' 라는 의미를 가진 동사

'싸파르'(sapar)에서 유래한 단어로서,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 여러 권의 책들을 의미한다.

 


하느님의 심판대에 펼쳐져 놓인 이 책들은 일반적으로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 수 있다.

 

하나는 인간의 모든 행위와 말들이 다 기록되어 있는 책이며,

다른 하나는 하느님의 구원받은 백성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생명책이다.

 


모세는 이 생명책이 있음을 알고 있었고(탈출32,32), 사도 요한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자들은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 기록된 자들뿐이라고 말하였다(묵시21,27).

또한 사도 요한은 죽은 자들을 심판하는 기준으로 사용되는 책으로서 그들의 행위가 기록된 책 언급한다(묵시20,12).

 


본 문맥에서는 이 두가지의 책 가운데서 행위를 기록한 책을 지칭하는 것이 분명하다.

본문은 하느님께서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는 자들을 구원하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악한 자들을 심판하시는 상황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심판이 행위를 기록한 책에 근거한다는 것은 그분의 심판이 절대로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매우 공정하게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성 가브리엘, 성 미카엘, 성 라파엘 대천사~~왼쪽부터>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 복음 (요한1,47-51)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 (48)

 

요한 복음 1장 4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나타나엘에게 필립보가 너를 부르기 전에,"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 고 말씀하신다.

"I saw you while you were still under the fig tree."

 

이스라엘 사람들은 누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다, 포도나무 아래에 있다,

올리브나무 아래에 있다' 라고 하면, 그것은 묵상기도 중에 있다,

명상중에 있다는 말로 알아듣는다.

 

'무화과나무'에 해당하는 '쉬케'(syke; fig tree)이스라엘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수종이며, 유대 민족의 번영을 상징하는 표현으로도 나타난다.

 

보통 무화과나무는 잎이 무성하고 그늘이 짙어서 그 무성한 가지 아래 앉아 율법을 배우고 기도와 묵상을 하는 것 경건한 유대인들의 오래된 관습이었다.

 

나타나엘이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었다는 예수님의 지적은 그가 메시야의 오심을 희망하면서 경건한 생활에 힘썼음을 알게 한다.

 

특히 '있는 것을'로 번역된 '온타'(onta; when you were)현재 분사 시제그가 계속해서 무화과나무 아래 앉아 이 일을 했음을 나타낸다. 

그가 이같이 하고 있는 모습을 예수님께서 '보았다'고 하신다.

 

여기서 '보았다'에 해당하는 '에이돈'(eidon; I saw)시각으로 감지한 것을 나타내는데, 카나 출신인 나타나엘이 경건하게 묵상에 잠긴 모습을 신적(神的) 전지(全知)로 이미 보셨던 것을 말한다. 

 

우리들은 이런 성경 말씀에 대한 전지식이 없기 때문에 예수님의 이 말씀이 무슨 뜻이길래 나타나엘이 놀라운 반응을 나타내면서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요한1,49) 라는 신앙 고백을 할까? 하고 의아해한다. 

나타나엘이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묵상기도를 하고 있을 때 그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니까 나타나엘의 놀라움과 신앙고백의 반응은 자신의 영혼의 속,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내면의 기도 내용을 알아차리시고  다 알고 계시는 분은

인간이 아닌 하느님 밖에 더 계시는가?

 

바로 그것을 아시는 예수님은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된 메시야이시다라는 말이다. 

아마 나타나엘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구약의 율법과 예언서에 약속된 메시아가 과연 오셨는가? 도대체 세례자 요한은 누구이며, 예수라는 분은 누구신지? 아버지 하느님께 물으면서 묵상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에게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해서 나를 믿느냐?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라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하늘이 열리고'로 이어지는 말씀은 창세기 28장 10~22절'베델'에 있었던 야곱의 경험을 연상시키는데, 예수님께서는 이 사건을 알고 있는 나타나엘에게 그 역시 야곱처럼 하느님의 크신 역사를 경험하게 될 것임을 암시하신 것이다.

 

이것은 하느님과 인간의 통교가 시작되어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데 모아진다는 것이다(에페1,10).

 

예수님께서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중개자(중재자; 중보자)로서의 자신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완전한 하느님이시며 동시에 완전한 사람이신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유일한 중개자이시다(1티모2,5). 그리고 '사람의 아들' '인자'(人子)는 다니엘서 7장 13절에서 유래한다.

 

그곳에서 '인자'개인이면서 동시에 하느님의 백성의 이상적인 대표로서의 천상적 인물인데, 예수님께서 자신의 권세나 능력을 강조하실 때에 이 명칭을 사용하셨다.

 

예수님께서 이 호칭을 사용하실 때에는 자신의 인성(人性)에 대한 표현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신적 기원 및 메시야로서의 사명을 암시한 것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이러한 '인자'위에 하느님의 천사들이 오르내리는 것예수님께서 계속적으로 하느님과 친교하면서 크신 영광 가운데 메시야로서의 사명을 수행할 것을 회화적인 표현으로 예언한 것이다.

 

예수님은 천주 성자 이신데, 같은 하느님으로서 성부 하느님 사이에 천사가 왜 필요하겠는가?

이것은 육신을 취하신 예수님의 현재 위치이신 이 세상과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은 초월적인 영적인 차원에 계시는 성부 하느님 사이의 간극을 의미하는 말이다.

 

동시에 성령의 도구인 천사들이 성자 하느님과 성부 하느님 사이를 오르내리는 것은, 여기 나타나엘의 묵상기도를 포함해서 지상에서의 모든 기도가 반드시 예수님의 이름으로 성부 하느님께 봉헌되며, 또한 성부 하느님으로부터의 기도의 응답도 반드시 예수님을 통하여 주어진다는 명명백백한 진리를 계시하시는 내용이다.

 

또한 성령의 도구인 천사가 날개가 있다면, 단번에 성부 하느님께 오를텐데, 오르락 내리락 한다는 것은 우리도 완덕(完德)의 근원이시고 모범이신 예수님을 통해 아버지 하느님께 가는 길이 'step by step' (한 단계 한 단계씩) 서서히 이루어진다 뜻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주시는 완덕(完德)과 성덕(聖德)에의 진보나, 은총과 은사를 받아 하느님의 영광과 교회의 선익을 위해 봉사하는 일도 서서히 이루어지는 일이므로, 너무 욕심을 내거나 예수님을 앞서 가거나 서둘러서는 안되고, 한 단계 한 단계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밟아 가야 한다는 사실을 계시하고 있는 것이다.



 

<천사>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요한 1,51).”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당신이 하느님과 같은 분이라는 것을 암시하신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요한 10,30).”

라는 말씀과 뜻이 같은 말씀입니다.

여기서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린다는 말은,

뜻으로는 예수님 주위를 날아다닌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 말은 천사들이 하느님 주위를 날아다니면서

하느님을 찬양하는 것과 똑같이

예수님 주위를 날아다니면서 예수님을 찬양한다는 뜻이고,

결국 이 말은 예수님은 하느님이신 분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이사야서에 천사들이 하느님 주위를 날아다니면서

하느님을 찬양하는 모습을 목격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찌야 임금이 죽던 해에, 나는 높이 솟아오른 어좌에 앉아 계시는

주님을 뵈었는데, 그분의 옷자락이 성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분 위로는 사랍들이 있는데, 저마다 날개를 여섯씩 가지고서,

둘로는 얼굴을 가리고 둘로는 발을 가리고 둘로는 날아다녔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 주고받으며 외쳤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만군의 주님!

온 땅에 그분의 영광이 가득하다.’(이사 6,1-3)”

(여기서 ‘사랍들’은 하느님의 최측근 천사들입니다.)

천사들이 어떤 곳 위를 날아다니는 것은(또는 오르내리는 것은)

그곳에 하느님이 계신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린다는 말은

“예수님은 곧 하느님이시다.” 라는 뜻이 되는 것입니다.

 

‘미카엘’은 “누가 하느님과 같은가?” 라는 뜻이고,

성경에서 미카엘 대천사는 주로 천사 군대를 지휘하는 사령관으로서

마귀들과 싸우는 모습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미카엘 대천사도 모세의 주검을 놓고 악마와 다투며 논쟁할 때,

감히 모독적인 판결을 내놓지 않고

‘주님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바란다.’ 하고 말하였을 뿐입니다(유다서 9절).”

“그때에 하늘에서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미카엘과 그의 천사들이

용과 싸운 것입니다. 용과 그의 부하들도 맞서 싸웠지만 당해내지 못하여,

하늘에는 더 이상 그들을 위한 자리가 없었습니다(묵시 12,7-8).”

 

‘가브리엘’은 ‘하느님의 영웅’이라는 뜻이고,

루카복음에서 가브리엘 대천사는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의 탄생을 예고했고,

다니엘서에서는 다니엘이 본 환시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나는 하느님을 모시는 가브리엘인데,

너에게 이야기하여 이 기쁜 소식을 전하라고 파견되었다(루카 1,19).”

“여섯째 달에 하느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를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고을로 보내시어,

다윗 집안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를 찾아가게 하셨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루카 1,26-27).”

“나 다니엘이 이러한 환시를 보고서 그 뜻을 깨달아 보려고 하는데,

장정처럼 보이는 이가 내 앞에 서 있었다.

그때에 나는 울라이 강 위에서 사람의 목소리를 들었는데,

이렇게 부르며 말하는 것이었다.

‘가브리엘아, 저 사람이 환시를 깨닫게 해 주어라.’(다니 8,15-16)”

 

‘라파엘’은 ‘하느님께서 낫게 하셨다.’는 뜻이고,

토빗기에서 라파엘 대천사는 토비야를 도와주는 천사로 나옵니다.

“나는 영광스러운 주님 앞에서 대기하고

또 그분 앞으로 들어가는 일곱 천사 가운데 하나인 라파엘이다(토빗 12,15).”

 

히브리서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께서 천사들 가운데 그 누구에게 ‘내 오른쪽에 앉아라,

내가 너의 원수들을 네 발판으로 삼을 때까지.’ 하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까?

천사들은 모두 하느님을 시중드는 영으로서, 구원을 상속받게 될 이들에게

봉사하도록 파견되는 이들이 아닙니까?(히브 1,13-14)”

천사들은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해서 하느님께서 파견하신 존재들입니다.

따라서 천사들의 도움은 사실상 하느님의 도움입니다.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가 한 일은 사실상 하느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를 도와주는 천사들의 반대쪽에는

우리를 방해하고 유혹하는 마귀들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마귀들보다 천사들의 힘이 더 센 것은 분명하지만,

우리가 신앙인답게 살지 않으면서,

여러 가지 유혹들을 물리치기 위한 노력을 소홀히 한다면,

우리의 내부에서 마귀의 힘이 천사의 힘보다 더 크게 작용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대천사 축일을 정해서 경축하는 것은,

그 천사들을 보내서 우리를 보살펴 주시는 하느님을 공경하기 위한 것입니다.

결코 천사들을 숭배하거나 섬기기 위한 것은 아닙니다.

‘천사 숭배’는 십계명 제1계명을 어기는 대죄입니다.

“거짓 겸손과 천사 숭배를 즐기는 자는 아무도 여러분을 실격시키지

못하게 하십시오. 그런 자는 자기가 본 환시에 빠진 나머지

현세적 생각으로 까닭 없이 우쭐거립니다(콜로 2,18).”

“나는 이 일들을 듣고 또 보고 나서, 나에게 이것들을 보여 준

천사에게 경배하려고 그의 발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러자 천사가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이러지 마라. 나도 너와 너의 형제 예언자들과

이 책에 기록된 말씀을 지키는 사람들과 같은 종일 따름이다(묵시 22,8-9).”

(천사도 하느님의 피조물들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에 관해서 말씀하실 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세상에 참여하고 또 죽은 이들의 부활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고

판단 받는 이들은 더 이상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을 것이다.

천사들과 같아져서 더 이상 죽는 일도 없다.

그들은 또한 부활에 동참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루카 20,35-36).”

부활, 구원, 영원한 생명이 신앙생활의 목표입니다.

그 목표를 이루게 되면 우리는 천사들과 같아질 것이고,

하느님의 완전한 자녀가 되어서 하느님, 예수님과 함께 살 것입니다.

(여기서 천사들과 같아진다는 말은, 유한한 인간성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뜻입니다.

천사가 되는 것이 신앙생활의 목표라는 뜻은 아닙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성 미카엘,성가브리엘, 성라파엘 대천사 축일  [† 이수철신부님] 천사의 선물 - 2011. 9. 29 목요일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


예수님의 부름을 받은 필립보는 구약에서 예언된 인물을 만났다는 확신 속에 나타나엘에게 예수님을 소개합니다. 그러나 보잘것없는 촌락이었던 나자렛에서 큰 인물이 나올 수 없다는 나타나엘의 퉁명스러운 반응에 필립보는 직접 와서 보라고 제안합니다.
나타나엘이 있었던 무화과나무 아래는 라삐들이 성경 공부에 전념하는 장소였기에, 나타나엘은 이미 성경, 특히 사람들이 갈망하는 메시아에 관한 관심이 많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나타나엘이 예수님을 찾아온 것처럼 보이지만, 모든 것을 꿰뚫어 보시는 하느님의 능력을 지니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엘의 마음을 먼저 보시고 부르셨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이런 예수님을 만난 나타나엘은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라고 고백하기에 이릅니다.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라는 예언의 말씀은,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이루신 하늘과 땅을 결합시키시는 구원이 성취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구약 성경의 야곱이 꿈에 본 예언이 성취되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의 닫힌 문은 예수님을 통해 다시 열리고, 우리는 에덴동산에서 하느님을 직접 뵈었던 천사 같은 영적 존재의 모습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입니다. 하느님과 인간을 이어 주는 조력자이자 파견자, 치유자인 대천사들은 하느님의 손과 발이자 목소리가 됩니다. 우리도 성령의 은사를 통하여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뜻을 전하고, 하느님을 만나게 해 주는 하느님의 손과 발, 목소리가 된다면, 세상 속에 살아가는 작은 천사들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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