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2주간 토요일] 과부의 청 (루카 18,1-8)

2017. 11. 18. 오전 4:57:37

글자


[연중 제32주간 토요일] 과부의 청 (루카 18,1-8)


 


지혜서의 저자는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탈출하던 날을 묘사한다. (지혜 18,14-16; 19,6-9)
14 부드러운 정적이 만물을 뒤덮고 시간은 흘러 한밤중이 되었을 때, 15 당신의 전능한 말씀이 하늘의 왕좌에서 사나운 전사처럼 멸망의 땅 한가운데로 뛰어내렸습니다. 16 그는 당신의 단호한 명령을 날카로운 칼처럼 차고 우뚝 서서, 만물을 죽음으로 가득 채웠습니다. 그가 땅 위에 서니 하늘까지 닿았습니다.
19,6 당신의 명령에 따라 온 피조물의 본성이 저마다 새롭게 형성되어, 당신의 자녀들이 해를 입지 않고 보호를 받았던 것입니다.
7 진영 위는 구름이 덮어 주고, 물이 있던 곳에서는 마른땅이 나타나는 것이 보였으며, 홍해는 장애물이 없는 길로, 거친 파도는 풀 많은 벌판으로 바뀌었습니다. 8 당신 손길의 보호를 받는 이들은 그 놀라운 기적을 보고, 온 민족이 그곳을 건너갔습니다.
9 그들은 풀을 뜯는 말들 같았습니다. 또 어린양들처럼 이리저리 뛰면서, 주님, 자기들을 구해 내신 당신을 찬양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낙심하지 말고 꾸준히 기도해야 한다는 뜻으로, 불의한 재판관에게 올바른 판결을 내려 달라고 조르는 과부의 비유를 드시며,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냐고 하신다. (루카 18,1-8)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는 뜻으로 제자들에게 비유를 말씀하셨다.
2 “어떤 고을에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한 재판관이 있었다. 3 또 그 고을에는 과부가 한 사람 있었는데 그는 줄곧 그 재판관에게 가서, ‘저와 저의 적대자 사이에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십시오.’ 하고 졸랐다.
4 재판관은 한동안 들어주려고 하지 않다가 마침내 속으로 말하였다. ‘나는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만, 5 저 과부가 나를 이토록 귀찮게 하니 그에게는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어야겠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끝까지 찾아와서 나를 괴롭힐 것이다.’”
6 주님께서 다시 이르셨다. “이 불의한 재판관이 하는 말을 새겨들어라. 7 하느님께서 당신께 선택된 이들이 밤낮으로 부르짖는데 그들에게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지 않으신 채, 그들을 두고 미적거리시겠느냐?
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지체 없이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실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



연중 제32주간 토요일 제1독서 (지혜18,14-16; 19,6-9)


지혜서 16-19장에서 저자는 이집트 탈출 사건과 광야에서의 시련을 두서없이 열거한다. 

오늘 독서에서는 240 만명이 모세의 인도로 홍해를 건너는 사건을 이렇게 묘사한다. 

"진영 위는 구름이 덮어 주고, 물이 있던 곳에서는 마른 땅이 나타나는 것이 보였으며, 홍해는 장애물이 없는 길로, 거친 파도는 풀 많은 벌판으로 바뀌었습니다. 당신 손길의 보호를 받는 이들은 그 놀라운 기적을 보고, 온 민족이 그곳을 건너갔습니다."(19,7-8)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탈출할 수 있게 해 주신 기적적인 현상들을 떠올리게 함으로써,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의 자애로운 돌보심을 받는 선택된 민족으로서의 자각을 가져야 하고, 이런 구원의 체험을 통해,이스라엘은 지금부터 미구에 하느님의 뜻을 따라 하느님께서 역사하시는 놀라운 새 세상을 준비해야 한다.


지혜서의 마지막 절은 당신 백성에 대한 주님의 한없는 자애를 기리는 찬송으로 되어 있다. 

"주님, 당신께서는 모든 일에서 당신 백성을 들어 높이시고,영광스럽게 해 주셨으며, 언제 어디에서나 그들을 도와주시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으셨습니다."(19,22) 

이 찬송에는 이스라엘의 과거를 통해서 드러난 하느님의 자애가 현재와 미래에도 계속될 것이라는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우리도 믿음의 여정에서, 항상 과거의 삶에 있어서,하느님의 놀라운 개입으로 나의 삶에 들어 오셔서 구원을 체험케 하신 사랑의 사건을 기억해야 한다. 특히 나의 삶속에서 어려운 시련과 어둠과 고통의 현실이 계속될 때, 옛날의 자애로운 하느님의 사랑스런 개입의 사건이 또 다시 재현되라는 희망을 갖고, 기도하고 매달려야 한다.



연중 제32주간 토요일 복음 (루카18,1-8)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지체없이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실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 (8)

 

여기서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그리스도의 재림의 때를 가리킨다. 

그런데 바로 그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는 말은 무슨 뜻인가?


여기서 '믿음'지속적으로 항구하게 하느님께 간구하는 실천적인 믿음을 말한다. 앞의 불의한 재판관 비유에 등장하는 과부에게서 나타났던 것처럼, 이러한 곤경에 처할지라도  낙심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간구하는 믿음을 말한다.

 

그리고 '찾아볼 수 있겠느냐'에 해당하는 '아라 휴레세이'(ara heuresei; will he find)에서, '아라'(ara)부정적 대답이 기대되는 추론적 질문을 의미하고, '휴레세이'(heuresei)의 원형 '휴리스코'(heurisko)의 본래 뜻은 '만나다', '마주치다', '우연히 발견하다'이다.


따라서 '아라 휴레세이'(ara heuresei)에는 세상에서 밤낮으로 부르짖는 믿음을 발견할 수 없다는 부정적인 뜻이 들어있다.


사람의 아들이 다시 올 때에 사람들의 마음은 완고하고 사악해져서, 하느님께서 당신이 간택한 백성들의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너무나 분명한 사실조차도 거부하며, 그들의 마음에 의로움보다는 악(惡)이 가득차서 간구조차 하지 않을 것이 예언되고 있는 것이다.

 

하느님의 응답이 있을 때까지 하느님의 신실한 약속과 말씀을 의지하면서 믿음을 수호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느냐고 반문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은, 루카 복음 17장에 나오는 노아와 롯의 시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2009년 11월 14일 연중 제32주간 토요일


<과부의 청을 들어주는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 


“어떤 고을에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한 재판관이 있었다. 또 그 고을에는 과부가 한 사람 있었는데

그는 줄곧 그 재판관에게 가서, ‘저와 저의 적대자 사이에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십시오.’ 하고 졸랐다.

재판관은 한동안 들어주려고 하지 않다가 마침내 속으로 말하였다.

‘나는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만,

저 과부가 나를 이토록 귀찮게 하니 그에게는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어야겠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끝까지 찾아와서 나를 괴롭힐 것이다.’(루카 18,2-5)”


“이 불의한 재판관이 하는 말을 새겨들어라. 하느님께서 당신께 선택된 이들이

밤낮으로 부르짖는데 그들에게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지 않으신 채,

그들을 두고 미적거리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지체 없이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실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루카 18,6-8)” 


이 말씀에서 강조되고 있는 것은 ‘끈질김’이 아니라, ‘믿음’과 ‘인내’입니다.

비유 속의 재판관은 ‘불의한’ 재판관이지만, 하느님은 정의로우신 재판관입니다.

그리고 비유 속의 재판관은 힘없는 사람의 청을 귀찮게 여기고 들어주지 않지만,

하느님은 미적거리시지 않고, 지체 없이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시는 분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하느님만 믿고 인내하면서 기다려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미적거리시지 않고, 지체 없이’ 라는 말은,

‘우리가 기도하자마자 즉시’ 라는 뜻은 아닙니다.

이 말은 인간 쪽의 기준이 아니라, 하느님 쪽의 기준에서 나온 말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가장 좋은 때에 주시는 분인데,

우리가 보기에 가장 좋은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가장 좋은 것이고,

또 우리가 생각하기에 가장 좋은 때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가장 좋은 때라고 판단하시는 그때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

또 가장 좋은 때가 언제인지 모를 때가 많습니다.

모르니까 기도해야 하고, 기도하고 인내하면서 기다려야 합니다. 


‘기도’는 미적거리시는 하느님을 재촉하는 일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을 잘 받기 위한 우리 쪽의 준비입니다.

또 ‘기도’는 우리가 청하는 것을 안 주시려고 하는 하느님의 마음을 바꾸어서

기어이 받아내려고 하는 일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하느님 뜻에 합당한 사람으로 변화되기 위한 일입니다.


묵시록을 보면, 하느님께서 올바른 판결을 자꾸만 미루신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언제까지 미루시려고 하느냐고 하느님께 묻는 말이 나옵니다.

“어린양이 다섯째 봉인을 뜯으셨을 때, 나는 하느님의 말씀과 자기들이 한

증언 때문에 살해된 이들의 영혼이 제단 아래에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거룩하시고 참되신 주님,

저희가 흘린 피에 대하여 땅의 주민들을 심판하고 복수하시는 것을

언제까지 미루시렵니까?’ 그러자 그들 각자에게 희고 긴 겉옷이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들처럼 죽임을 당할 동료 종들과 형제들의 수가 찰 때까지

조금 더 쉬고 있으라는 분부를 받았습니다(묵시 6,9-11).”

인간의 눈으로 볼 때에는 하느님께서 올바른 판결을 미루시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미루시는 것이 아니라 아직 때가 되지 않은 것입니다. 


베드로 2서 저자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어떤 이들은 미루신다고 생각하지만 주님께서는 약속을 미루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여러분을 위하여 참고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하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2베드 3,9).”


“우리는 그분의 언약에 따라,

의로움이 깃든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이러한 것들을 기다리고 있으니,

티 없고 흠 없는 사람으로 평화로이 그분 앞에 나설 수 있도록 애쓰십시오.

그리고 우리 주님께서 참고 기다리시는 것을

구원의 기회로 생각하십시오(2베드 3,13-15ㄱ).”


사실 우리 자신도 회개해야 할 죄인들 속에 포함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마음대로 죄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그 사람들’의 회개만 기다리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회개도 기다리십니다. 


아무도 감히 하느님 앞에서, “저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입니다.” 라고

말할 수 없으니, 우리가 하느님께 청하는 ‘올바른 판결’의 피고인에는

우리를 괴롭히는 ‘그 사람들’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도 포함될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자기를 하느님의 ‘올바른 판결’의 원고라고 생각하는 것은

교만한 위선자들의 사고방식입니다.)

어떤 억울한 일을 당해서 하느님께 하소연하는 경우라고 해도,

자기 자신이 스스로 심판관이나 원고의 자리에 있으면 안 됩니다. 


야고보서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 여러분, 서로 헐뜯지 마십시오. 형제를 헐뜯거나

자기 형제를 심판하는 자는 법을 헐뜯고 법을 심판하는 것입니다.

그대가 법을 심판하면, 법을 실행하는 사람이 아니라 법의 심판자가 됩니다.

입법자와 심판자는 한 분뿐이십니다.

구원하실 수도 있고 멸망시키실 수도 있는 그분이십니다.

그대가 누구이기에 이웃을 심판한단 말입니까?(야고 4,11-12)” 


예수님의 말씀에서, “그러나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 라는 말씀은,

믿음을 찾아볼 수 없을 것이라는 뜻이 아니라,

박해와 고난을 겪더라도 믿음을 잃지 말고, 희망을 버리지 말고,

인내하면서 끊임없이 기도하라는 격려의 말씀으로 해석됩니다.

‘사람의 아들이 올 때’ 라는 말은 예수님의 재림 때를 뜻합니다. 


‘인내’에 대해서 히브리서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이 하느님의 뜻을 이루어 약속된 것을 얻으려면 인내가 필요합니다.

‘조금만 더 있으면 올 이가 오리라. 지체하지 않으리라.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그러나 뒤로 물러서는 자는 내 마음이 기꺼워하지 않는다.’

우리는 뒤로 물러나 멸망할 사람이 아니라,

믿어서 생명을 얻을 사람입니다(히브 10,36-39).”


‘인내’는 그저 단순히 소극적으로 참기만 하는 일이 아니라,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

능동적으로 하나씩 쌓아가는 신앙인의 성덕입니다.

그래서 신앙인의 믿음과 희망과 인내는 사실상 하나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기도하고 용기를 잃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하시며 비유를 하나 드십니다. 재판관과 과부의 비유입니다. 당시 유다인들은 시비를 법정에서 가리지 않고 원로들에게 가서 중재를 부탁합니다. 그러다가 어떤 쟁의를 재판에 넘기게 되면, 주된 재판관은 로마 총독이 임명합니다. 재판관은 뇌물을 많이 받았기에 공정한 재판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고 합니다.
한편 과부는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상징합니다. 그러니 불의한 재판관에게서 공정한 판결을 기대하기란 애초에 불가능한 상태였지만, 그래도 한 가지 강력한 힘이 있었는데 바로 끈질김이었습니다.
재판관은 불의하고 탐욕스러운데도 그 끈질김에 견디다 못해 과부의 요구를 들어주었는데, 하물며 선하시고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께서 당신 자녀의 요구를 당연히 들어주시지 않겠느냐는 예수님 말씀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느님을 신뢰하며 끝까지 청하는 것입니다.
오늘 생각해야 할 점은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의 내용입니다. 기도는 먼저 하느님을 찬미하는 내용으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이어 공동체를 위해서, 우리 사회의 공동선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겠습니까? 그 뒤 내가 바라는 바를 겸손하게 청해야 하겠습니다. 나의 기도가 나만을 위한 이기적인 기도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기도 중에 하느님의 뜻을 파악하고, 그 실행 방법을 찾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매일말씀묵상

목록 전체보기 →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누가 내 어머니 (마태 12,46-50)17.11.22조회 459[연중 제33주간 월요일]다시 보아라 (루카 18,35-43)17.11.19조회 484[연중 제32주간 토요일] 과부의 청 (루카 18,1-8)17.11.18조회 551[연중 제32주간 금요일]사람의 아들의 날 (루카 17,26-37)17.11.17조회 373[연중 제32주간 목요일]하느님의 나라 (루카 17,20-25)17.11.16조회 234[연중 제32주간 수요일] 나병 환자 열 사람 (루카 17,11-19)17.11.15조회 56[연중 제32주간 화 요일]종의 의무 (루카 17,7-10)17.11.14조회 263[연중 제32주간 월요일]회개 용서 (루카 17,1-6)17.11.13조회 157[연중 제31주간 토요일] 하느님과 재물 (루카 16,9ㄴ-15)17.11.11조회 277[연중 제31주간 금요일] 약은 집사 (루카 16, 1- 8)17.11.10조회 235[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 성전 (요한 2,13-22)17.11.09조회 332[연중 제31주간 수요일] 제 십자가 (루카 14,25-33)17.11.08조회 288[연중 제31주간 화요일]하느님나라 잔치에 초대 (루카 14,15-24)17.11.07조회 359[연중 제31주간 월요일] 잔치 (루카 14,12-14)17.11.06조회 212[연중 제30주간 금요일]안식일에 (루카 14,1-6)17.11.03조회 238[위령의 날 ]진복 팔단 (마태 5,1-12ㄴ)17.11.02조회 248[모든 성인의 날 대축일 ]행복 (마태5,1~12ㄴ)17.11.01조회 2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