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4주간 수요일]생명을 얻어라 (루카 21,12-19)
벨사차르 임금이 잔치를 벌이고 있는데, 손가락이 나타나 왕궁 벽에 글을 쓰자 놀라며 다니엘을 불러 그 뜻을 풀이하게 한다. (다니엘 5,1-6.13-14.16-17.23-28)
그 무렵 1 벨사차르 임금이 천 명에 이르는 자기 대신들을 위하여 큰 잔치를 벌이고, 그 천 명 앞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2 술기운이 퍼지자 벨사차르는 자기 아버지 네부카드네자르가 예루살렘 성전에서 가져온 금은 기물들을 내오라고 분부하였다. 임금은 대신들과 왕비와 후궁들과 함께 그것으로 술을 마시려는 것이었다.
3 예루살렘에 있던 성전 곧 하느님의 집에서 가져온 금 기물들을 내오자, 임금은 대신들과 왕비와 후궁들과 함께 그것으로 술을 마셨다.
4 그렇게 술을 마시면서 금과 은, 청동과 쇠, 나무와 돌로 된 신들을 찬양하였다. 5 그런데 갑자기 사람 손가락이 나타나더니, 촛대 앞 왕궁 석고 벽에 글을 쓰기 시작하였다.
임금은 글자를 쓰는 손을 보고 있었다. 6 그러다가 임금은 얼굴빛이 달라졌다. 떠오르는 생각들이 그를 놀라게 한 것이다. 허리의 뼈마디들이 풀리고 무릎이 서로 부딪쳤다. 13 다니엘이 임금 앞으로 불려 왔다. 임금이 다니엘에게 물었다. “그대가 바로 나의 부왕께서 유다에서 데려온 유배자들 가운데 하나인 다니엘인가? 14 나는 그대가 신들의 영을 지녔을뿐더러, 형안과 통찰력과 빼어난 지혜를 지닌 사람으로 드러났다는 말을 들었다.
16 또 나는 그대가 뜻풀이를 잘하고 어려운 문제들을 풀어낼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이제 그대가 저 글자를 읽고 그 뜻을 나에게 설명해 줄 수 있다면, 그대에게 자주색 옷을 입히고 금 목걸이를 목에 걸어 주고 이 나라에서 셋째 가는 통치자로 삼겠다.”
17 그러자 다니엘이 임금에게 대답하였다. “임금님의 선물을 거두시고 임금님의 상도 다른 이에게나 내리십시오. 그래도 저는 저 글자를 임금님께 읽어 드리고 그 뜻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임금님께서는 23 하늘의 주님을 거슬러 자신을 들어 높이셨습니다. 주님의 집에 있던 기물들을 임금님 앞으로 가져오게 하시어, 대신들과 왕비와 후궁들과 함께 그것으로 술을 드셨습니다.
그리고 은과 금, 청동과 쇠, 나무와 돌로 된 신들,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며 알지도 못하는 신들을 찬양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임금님의 목숨을 손에 잡고 계시며 임금님의 모든 길을 쥐고 계신 하느님을 찬송하지 않으셨습니다.
24 그리하여 하느님께서 손을 보내셔서 저 글자를 쓰게 하신 것입니다.
25 그렇게 쓰인 글자는 ‘므네 므네 트켈’, 그리고 ‘파르신’입니다. 26 그 뜻은 이렇습니다.
‘므네’는 하느님께서 임금님 나라의 날수를 헤아리시어 이 나라를 끝내셨다는 뜻입니다.
27 ‘트켈’은 임금님을 저울에 달아 보니 무게가 모자랐다는 뜻입니다.
28 ‘프레스’는 임금님의 나라가 둘로 갈라져서, 메디아인들과 페르시아인들에게 주어졌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니, 인내로써 생명을 얻으라고 하신다. (루카 21,12-19)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2 “사람들이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할 것이다. 너희를 회당과 감옥에 넘기고, 내 이름 때문에 너희를 임금들과 총독들 앞으로 끌고 갈 것이다. 13 이러한 일이 너희에게는 증언할 기회가 될 것이다.
14 그러나 너희는 명심하여, 변론할 말을 미리부터 준비하지 마라. 15 어떠한 적대자도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 언변과 지혜를 내가 너희에게 주겠다.
16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친구들까지도 너희를 넘겨 더러는 죽이기까지 할 것이다. 17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18 그러나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19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연중 제34주간 수요일 제1독서 (다니5,1-6.13-14. 16-17. 23ㅡ28)
"나는 그대가 신들의 영을 지녔을뿐더러, 형안과 통찰력과 빼어난 지혜를 지닌 사람으로 드러났다는 말을 들었다." (14)
벨사차르는 다니엘서 5장 14절과 16절을 '나는 그대에 대해 들었다'라는 표현으로 시작한다.
이러한 표현법은 과거 네부카드네차르 임금의 어법(다니4,9)이나 태후의 어법(다니5,11)과 상당히 대조적이다.
네부카드네자르 임금이나 태후는 다니엘의 그러한 초월적인 능력을 당사자들의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 알고 있는 바를 말하였다.
하지만 벨사차르 임금은 자신이 전해들은 사실을 인용하는 형식으로 말하고 있다. 물론 그가 들어서 그러한 사실을 알았음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벨사차르는 다니엘에 대하여 풍문을 들은 듯한 표현을 거듭 사용해서 다니엘에 대한 자신의 불신을 은연 중에 나타내면서 이를 평가절하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앞에서 태후는 다니엘 안에 '거룩하신 신들의 영'이 있다고 말했지만(다니5,11), 여기서 벨사차르 임금은 '거룩하신'이라는 형용사를 빼버리고 다만 '신들의 영'이 있다고만 말한다.
여기서 벨사차르 임금이 '거룩하신'이라는 형용사를 사용하지 않은 것은 의도적이라고 본다.
'거룩하신'이라는 형용사가 문맥상 '초월적인'이라는 의미도 지니고 있지만, 인격적인 거룩한 순결, 흠없음'의 의미도 함축하고 있기 때문에 사악한 벨사차르 임금이 그러한 뜻을 연상시키는 그 형용사를 의도적으로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빼어난 지혜를 지닌 사람으로 드러났다'
본문은 문자적으로 '네 안에 탁월한 지혜가 발견되었다' (excellent wisdom are found in you)라는 뜻이다.
이것은 태후가 다니엘서 5장 11절에서 다니엘에 대하여 '신들의 지혜 같은 지혜를 지닌 사람으로 드러났습니다'고 한 말을 다른 방식으로 나타낸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다니엘의 지혜를 설명함에 있어서도 그는 태후가 말한 것과 비교할 때 평가절하하여 표현하고 있다.
한편 '빼어난'에 해당하는 '얏티라'(yathirah)는 차고 넘치는 상태를 나타내는 어원에서 유래한 단어로서, '넘치는' 또는 '탁월한'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탁월한 지혜는 보통 사람들의 지혜에 비해 비상한 지혜이기는 하지만, 신들의 지혜의 수준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으로 드러났다'에 해당하는 '히쉬테카하트 빠크'(hishythekahath bak; is found in you)는 문자적으로 '네 안에서 발견되었다'라는 의미이다. 이러한 표현은 '확연하게 드러나게 되었다'라는 뉘앙스가 포함되어 있다.
벨사차르는 이처럼 태후가 사용한 표현과는 다른 단어를 사용하여 다니엘의 능력을 은연 중에 폄하하고 있는 것이다.
연중 제34주간 수요일 복음 (루카21,12-19)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친구들까지도 너희를 넘겨 더러는 죽이기까지 할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16~19)
루카 복음 21장 16절은 종말의 기간 동안 성도들이 가족과 친척과 친구들로부터 당할 핍박을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이미 가르치셨고(루카12,52.53; 마태10,21.22), 예언자 미카의 예언에도 나오는(미카7,5.6), 종말에 나타날 징조로서 보편화되어 있는 것이다.
루카 복음사가는 마르코과 마태오 복음 보다도 더 구체적으로, 가족 뿐만 아니라 친척과 친구들의 핍박까지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사실 인간적인 유대 관계가 없는 타인으로부터의 박해와 비교해 볼 때, 자신과 가장 가까운 친구들과 친척, 심지어 피를 나눈 가족의 박해와 배신은 참으로 인내하기 어려운 핍박으로 다가올 것이다.
이것은 종말의 기간에 인간 사회를 지탱해 주는 가장 기본적인 끈이요 세포 단위인 가족 관계까지 파괴될 것을 예언한 것이다.
이제 루카 복음 21장 17절에서 종말에 성도들을 핍박하고 박해할 주체가 가족과 친지로부터 모든 사람에게로 확장된다. 여기서 '모든 사람'에 해당하는 '판톤'(panton; all men)는 그리스도인을 미워하는 모든 사람 또는 민족(마태24,9)을 말한다.
그리고 '미움'으로 번역된 '미수메노이'(misumenoi)의 원형 '미세오'(miseo; hate)는 '증오하다', '무시하다'는 뜻인데, 무관심과 업신여김, 멸시, 경시 및 적극적으로 증오하는 미움을 가리킨다. 이것은 원수에 대한 감정을 나타내는 데 쓰이는 단어이다(마태5,43).
또한 이러한 박해의 원인이 바로 '내 이름 때문에'라는 표현을 통해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 신앙 때문이라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하지만, 루카 복음 21장 18절에서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 신앙인들에 대한 완전한 보호의 약속도 함께 나온다.
'머리카락'으로 번역된 '트릭스'(thriks; an hair)는 사람의 머리털, 머리카락을 가리키는 단어로서, 성경에서 하느님의 보호하심의 완벽함을 강조할 때 사용된다(마태5,36; 사도27,34; 1사무14,35; 2사무14,11; 1열왕1,52).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는 말씀이 앞에 나열된 핍박의 내용과 모순되는 듯이 보이지만, 이러한 하느님의 보호하심은 영적인 의미로 알아 들어야 한다.
그래서 성도들이 이 땅에서 육적으로 아무리 심한 박해를 받고 고통을 당한다 할지라도, 존재의 본질적인 차원인 '영혼'은 어떤 상함이나 변형이 없을 것이라고 이해하는 견해도 있고, 여기서 '너희'를 '교회'로 알아들어 종말에 어떤 박해가 있어도 '하느님의 교회'는 온전히 보호받을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끝으로, 루카 복음 21장 19절은 종말 기간 동안 성도들이 받을 고난(루카21,12~19)에 대한 결론인 동시에, 루카 복음 21장 18절에 대한 보충 설명에 해당한다.
마태오와 마르코 복음사가는 병행 구절에서 '그러나 끝까지 견디어 내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라고 기록한 반면에(마태24,13; 마르13,13), 루카 복음사가는 자신만의 독특한 문장으로 기록했다.
여기서 '인내'로 번역된 '휘포모네'(hyphomone; patience)는 무거운 짐이나 힘든 시련과 박해의 상황에서도 그 자리를 이탈하지 않고, 자신의 자리를 고수하는 것을 나타낸다.
마태오와 마르코 복음사가는 '휘포메이나스'(hyphomeinas)라는 동사를 사용한 반면에, 루카 복음사가는 이 단어의 명사형을 사용했다.
그리고 '얻어라'로 번역된 '크테사스테'(ktesasthe; passess; gain)의 원형 '크타오마이'(ktaomai)는 '소득을 가지라'는 뜻인데, 여기서는 영혼의 참 생명을 소유하는 것을 말한다.
루카 복음사가는 종말에 모든 박해를 견디는 '인내'가 곧 '영혼 구원'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밝혀서, 박해에 직면한 성도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고 있는 것이다.
<박해>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앞서, 사람들이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할 것이다.
너희를 회당과 감옥에 넘기고,
내 이름 때문에 너희를 임금들과 총독들 앞으로 끌고 갈 것이다.
이러한 일이 너희에게는 증언할 기회가 될 것이다(루카 21,12-13).”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 바로 앞의 8절-11절에서,
“여러 가지 재난들이 벌어지겠지만 그 재난들이 종말의 표징은 아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신앙인들이 받게 될 박해에 대해서 말씀하시는데,
박해도 역시 종말의 표징은 아닙니다.
여기서 “이 모든 일에 앞서” 라는 말씀은,
시간적으로 그런 재난들보다 박해가 먼저 있을 것이라는 뜻이 아니라,
박해를 받게 되면 신앙인들이 그런 재난들을 겪을 때보다 더
종말을 의식하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박해가 재난들보다 더 괴롭고 힘든 시련이라는 것입니다.)
“내 이름 때문에”는 “예수님을 믿는 신앙인이기 때문에”입니다.
“이러한 일이 너희에게는 증언할 기회가 될 것이다.” 라는 말씀은,
“박해는 오히려 복음을 선포할 기회가 될 것이다.”,
또는, “박해를 받거든 오히려 복음을 선포할 기회로 삼아라.” 라는 뜻입니다.
(“박해는 자신이 신앙인이라는 것을 증명할 기회가 될 것이다.”,
또는 “박해를 받거든 자신이 신앙인이라는 것을 증명할 기회로 삼아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해석하든지 간에 이 말씀은, “박해를 받더라도 신앙생활을 중단하지 말고,
복음 선포를 포기하지도 마라.” 라는 가르침입니다.
우리는 어렵고 힘든 시기일수록 더욱 충실하게 신앙생활을 해야 하고,
더 적극적으로 복음을 선포해야 합니다.
아무런 어려움이 없는 편안한 시기에는 누구나 쉽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고,
힘들이지 않고 복음을 선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시기에는 누가 정말로 잘하는지 제대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어려운 시기에 잘하는 사람이 진짜로 잘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너희는 명심하여, 변론할 말을 미리부터 준비하지 마라.
어떠한 적대자도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
언변과 지혜를 내가 너희에게 주겠다(루카 21,14-15).”
이 말씀은, 인간적인 ‘잔재주’로 박해에 대처하지 말고,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삶’으로 신앙을 증명하라는 가르침입니다.
말을 잘한다고 ‘신앙의 증언’과 ‘복음 선포’를 잘하는 것은 아닙니다.
‘신앙인답게 사는 모습’이 말로 하는 증언보다 훨씬 더 힘이 있습니다.
여기서 ‘언변과 지혜’ 라는 말은 웅변 기술과 지식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우리가 ‘삶’으로 신앙을 증언하고 복음을 선포할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주시는
‘성령의 도움’을 뜻하는 말입니다.
(인간적인 웅변 기술과 인간적인 지식은 ‘잔재주’일 뿐입니다.)
어떠한 적대자도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다는 말씀은,
‘성령으로 가득 찬 삶을 통한 증언’은 아무도 반박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주겠다.” 라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직접 도와주시겠다는 뜻입니다.
“성령의 도움을 잘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늘 충실하게 신앙생활을 하면서 꾸준히 기도하는 것이 그 방법입니다.
박해를 참고 견디면서 극복하는 일은 ‘믿음’만으로는 안 되는 일입니다.
끊임없이 ‘기도’를 해야 합니다.
(만일에 어떤 사람이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기도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의 믿음은 많이 부족한 믿음입니다.
부족한 믿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서 박해를 극복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믿는다면 당연히 기도해야 하고, 기도하고 있다면 당연히 믿어야 합니다.)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친구들까지도
너희를 넘겨 더러는 죽이기까지 할 것이다(루카 21,16).”
권력자들의 박해보다도 가족과 친구들의 박해가 더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가족과 친구들의 박해는, “내가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이러는 것이다.”
라고 말하면서 회유하는 모습이 될 때가 많습니다.
인간적인 사랑을 무기로 삼아서 압박하는 가족과 친구들의 박해 때문에
끝까지 버티지 못하고 배교자가 되어버린 사람이 많습니다.
그만큼 가족과 친구들의 박해는 참기 힘든 고통입니다.
(박해가 아니더라도, 평소에도 가족이나 친구들의 설득이
‘유혹’으로 다가올 때가 많습니다.
“한 번쯤은 주일을 안 지켜도 되는 것 아닌가?”,
또는 “신앙인이라고 해서 유별나게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라는 식의 유혹들...)
가족과 친구들의 박해와 유혹이라 하더라도 특별한 대처 방법은 없습니다.
신앙생활을 충실하게 하면서 끊임없이 기도하고,
‘말 없는 처신으로 감화를 받게 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입니다(1베드 3,1).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루카 21,17).”
직장이나 학교나 군대 같은 곳에서, 또 마을에서도,
종교와 신앙 때문에 집단 따돌림을 당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런 집단 따돌림도 분명히 종교 박해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들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요한 15,19)
우리를 그렇게 미워하고 박해하는데,
미움과 박해를 피하려고 세상 사람들과 같아지면 안 됩니다.
세상 사람들과 같아지는 것은 신앙인으로서 사는 것을 포기하는 일이고,
그들에게 패배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수도 있다.”이지,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아야 한다.”가 아닙니다.
사도행전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그들은) ... 온 백성에게서 호감을 얻었다(사도 2,47).”
“...... 백성은 그들을 존경하여, ... (사도 5,13)”
초대 교회 때 사도들과 신자들은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은 것이 아니라
호감을 얻었고,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루카 21,18-19).”
이 말씀은, “끝까지 인내하며 충실하게 신앙생활을 한 신앙인에게는
내가 ‘영원한 생명’을 주겠다.” 라고 약속하시는 말씀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은 ‘모든 것’을 얻는 일이고,
반대로, 그 생명을 얻지 못하는 것은 ‘모든 것’을 잃는 일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오늘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름으로써 겪게 될 어려움과 그 보상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이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할 것이다.” 이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참으로 솔직하신 분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신을 따르는 이들이 핍박받으리라는 것을 미리 분명히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반면 세상의 거짓 예언자들은 허황한 장밋빛 꿈만 제시하지 않습니까?
물론 예수님께서는 어려움에 놓인 제자들을 그냥 내버려 두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어떠한 적대자도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 언변과 지혜를 내가 너희에게 주겠다.” 이 말씀은 실로 큰 힘을 줍니다. 그러기에 그 수많은 순교자가 끝까지 용기를 잃지 않은 것이 아닙니까?
주님을 따름으로써 이 세상에서 많은 것을 잃는 것 같아도 마침내 영원한 생명을 얻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오늘날 겉으로 드러나는 박해는 없지만, 신앙 때문에 겪는 어려움이 많습니다. 오해도 받고 무시마저 당하기도 합니다.
신앙을 증언하느라 손해도 많이 봅니다. 이런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지, 이 점을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어떤 고난을 겪더라도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신앙의 힘만 있다면, 어떠한 난관도 다 극복해 나가며, 우리의 신심은 더욱 강해질 것입니다.
그러기에 어떤 처지에 놓이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절대적 희망을 품어야 하며, 주님께 전적인 신뢰를 드리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