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3주간 수요일]미나의 비유 (루카 19,11ㄴ-28)

2017. 11. 22. 오전 4:3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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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3주간 수요일]미나의 비유 (루카 19,11ㄴ-28)



어떤 일곱 형제가 법으로 금지된 돼지고기를 먹으라는 강요를 임금에게서 받았는데, 그 어머니는 일곱 아들이 단 하루에 죽어 가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용감하게 견디어 낸다. (마카하 7,1.20-31)
그 무렵 1 어떤 일곱 형제가 어머니와 함께 체포되어 채찍과 가죽끈으로 고초를 당하며, 법으로 금지된 돼지고기를 먹으라는 강요를 임금에게서 받은 일이 있었다.
20 특별히 그 어머니는 오래 기억될 놀라운 사람이었다. 그는 일곱 아들이 단 하루에 죽어 가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주님께 희망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용감하게 견디어 냈다. 21 그는 조상들의 언어로 아들 하나하나를 격려하였다. 고결한 정신으로 가득 찬 그는 여자다운 생각을 남자다운 용기로 북돋우며 그들에게 말하였다.
22 “너희가 어떻게 내 배 속에 생기게 되었는지 나는 모른다. 너희에게 목숨과 생명을 준 것은 내가 아니며, 너희 몸의 각 부분을 제자리에 붙여 준 것도 내가 아니다. 23 그러므로 사람이 생겨날 때 그를 빚어내시고 만물이 생겨날 때 그것을 마련해 내신 온 세상의 창조주께서, 자비로이 너희에게 목숨과 생명을 다시 주실 것이다. 너희가 지금 그분의 법을 위하여 너희 자신을 하찮게 여겼기 때문이다.”
24 안티오코스는 자기가 무시당하였다고 생각하며, 그 여자의 말투가 자기를 비난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스러워하였다. 막내아들은 아직 살아 있었다. 임금은 그에게 조상들의 관습에서 돌아서기만 하면 부자로 만들어 주고 행복하게 해 주며 벗으로 삼고 관직까지 주겠다고 하면서, 말로 타이를 뿐만 아니라 약속하며 맹세까지 하였다.
25 그러나 그 젊은이는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래서 임금은 그 어머니를 가까이 불러 소년에게 충고하여 목숨을 구하게 하라고 강권하였다.
26 임금이 줄기차게 강권하자 어머니는 아들을 설득해 보겠다고 하였다. 27 그러나 어머니는 아들에게 몸을 기울이고 그 잔인한 폭군을 비웃으며 조상들의 언어로 이렇게 말하였다.
“아들아, 나를 불쌍히 여겨 다오. 나는 아홉 달 동안 너를 배 속에 품고 다녔고 너에게 세 해 동안 젖을 먹였으며, 네가 이 나이에 이르도록 기르고 키우고 보살펴 왔다.
28 얘야, 너에게 당부한다. 하늘과 땅을 바라보고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살펴보아라. 그리고 하느님께서, 이미 있는 것에서 그것들을 만들지 않으셨음을 깨달아라. 사람들이 생겨난 것도 마찬가지다.
29 이 박해자를 두려워하지 말고 형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죽음을 받아들여라. 그래야 내가 그분의 자비로 네 형들과 함께 너를 다시 맞이하게 될 것이다.”
30 어머니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젊은이가 말하였다. “당신들은 무엇을 기다리는 것이오? 나는 임금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겠소. 모세를 통하여 우리 조상들에게 주어진 법에만 순종할 뿐이오. 31 히브리인들을 거슬러 온갖 불행을 꾸며 낸 당신은 결코 하느님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나라가 당장 나타나는 줄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미나의 비유’ 를 드신다. (루카 19,11ㄴ-28)
그때에 11 예수님께서는 비유 하나를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신 데다, 사람들이 하느님의 나라가 당장 나타나는 줄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2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어떤 귀족이 왕권을 받아 오려고 먼 고장으로 떠나게 되었다. 13 그래서 그는 종 열 사람을 불러 열 미나를 나누어 주며, ‘내가 올 때까지 벌이를 하여라.’ 하고 그들에게 일렀다. 14 그런데 그 나라 백성은 그를 미워하고 있었으므로 사절을 뒤따라 보내어, ‘저희는 이 사람이 저희 임금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하고 말하게 하였다.
15 그러나 그는 왕권을 받고 돌아와, 자기가 돈을 준 종들이 벌이를 얼마나 하였는지 알아볼 생각으로 그들을 불러오라고 분부하였다.
16 첫째 종이 들어와서, ‘주인님, 주인님의 한 미나로 열 미나를 벌어들였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7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일렀다. ‘잘하였다, 착한 종아! 네가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열 고을을 다스리는 권한을 가져라.’
18 그다음에 둘째 종이 와서, ‘주인님, 주인님의 한 미나로 다섯 미나를 만들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9 주인은 그에게도 일렀다. ‘너도 다섯 고을을 다스려라.’
20 그런데 다른 종은 와서 이렇게 말하였다. ‘주인님, 주인님의 한 미나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수건에 싸서 보관해 두었습니다. 21 주인님께서 냉혹하신 분이어서 가져다 놓지 않은 것을 가져가시고 뿌리지 않은 것을 거두어 가시기에, 저는 주인님이 두려웠습니다.’
22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이 악한 종아, 나는 네 입에서 나온 말로 너를 심판한다. 내가 냉혹한 사람이어서 가져다 놓지 않은 것을 가져가고 뿌리지 않은 것을 거두어 가는 줄로 알고 있었다는 말이냐? 23 그렇다면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넣지 않았더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돌아왔을 때 내 돈에 이자를 붙여 되찾았을 것이다.’ 24 그러고 나서 곁에 있는 이들에게 일렀다. ‘저자에게서 그 한 미나를 빼앗아 열 미나를 가진 이에게 주어라.’
25 ─ 그러자 그들이 주인에게 말하였다. ‘주인님, 저이는 열 미나나 가지고 있습니다.’ ─
26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27 그리고 내가 저희들의 임금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은 그 원수들을 이리 끌어다가, 내 앞에서 처형하여라.’”
28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고 앞장서서 예루살렘으로 오르는 길을 걸어가셨다.




연중 제33주간 수요일 제1독서 (2마카7,1.20-31)


"너희가 어떻게 내 배속에 생기게 되었는지 나는 모른다. 너희에게 목숨과 생명을 준 것은 내가 아니며,  너희 몸의 각 부분을 제자리에 붙여준 것도 내가 아니다. (22)

 이 박해자를 두려워하지 말고 형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죽음을 받아들여라. 그래야 내가 그분의 자비로 네 형들과 함께 너를 다시 맞이하게 될 것이다." (29)


마카베오서 하권 7장어떤 어머니와 일곱 아들의 순교 이야기를 전한다. 일곱 아들은 각기 임금 앞에 불려가 고문을 당하며 왜 자신이 고통을 달게 받는지 설명한다. 어머니는 두 시점에서 개입한다(2마카7,20-23; 26-29)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들들의 뒤를 이어 죽는다(2마카7,41).


어머니와 아들들은 그리스 로마 시대에 유다인의 정체성을 명확히 구분해 주는 실천 사항들, 곧 할례, 안식일 준수 그리고 음식에 관한 법 때문에 고문을 당하고 죽는다.


순교자들이 엄청난 고통 한가운데서 자신들의 신앙을 굳게 보존한 동기 중에 가장 강력한 것은 부활에 대한 믿음이다.


둘째 아들 "온 세상의 임금님께서는 당신의 법을 위하여 죽은 우리를 일으시키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실 것이오."(2마카7,9)라고 말한다. 

셋째 아들은 자기 혀를 내밀고 손을 내뻗으며 "이 지체들은 하늘에서 받았지만, 그분의 법을 위해서라면 나는 이것들까지도 하찮게 여기오. 그러나 그분에게서 다시 받으리라고 희망하오."(2마카7,11)라고 말한다.


넷째 아들"하느님께서 다시 일으켜 주시리라는 희망을 간직하고 사람들의 손에 죽는 것이 더 낫소. 그러나 당신은 부활한 생명을 누릴 가망이 없소."(2마카7,14)라고 지적한다. 

끝으로 어머니일곱째 아들에게 조언하며 "죽음을 받아들여라. 그래야 내가 그분의 자비로 네 형들과 함꼐 너를 다시 맞이하게 될 것이다."(2마카7,29)하고 말한다.


마카베오 하권 7장 30-38절에서 일곱째 아들하느님께서 당신의 백성과 화해하시기 전에 그들을 가르치시기 위하여 이 고난을 받게 하신다고 말한다(2마카7,33).


그는 순교자들의 고난으로 "온 민족에게 정당하게 내렸던 전능하신 분의 분노가 끝나기를" 간청한다고 말한다(2마카7,38). 

이 말은 마카베오 하권 제4부(2마카10,10-15,39)에서 길게 전개되는 속죄 제물의 사고를 도입하는 것이다.

 

마카베오 하권의 설화 구조에서 고난을 통해 배우는 가르침과 순교자들의 죽음이 갖는 속죄의 가치로 인해 하느님께서 유다 마카베오 때 이스라엘을 쇄신하시고 예루살렘의 성전을 정화하실 수 있게 된다.




11월 19일 연중 제33주간 수요일

 

 연중 제33주간 수요일 복음(루카19,11ㄴ~28)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비유 하나를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신 데다, 사람들이 하느님의 나라가 당장 나타나는 줄로 생각하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어떤 귀족이 왕권을 받아 오려고 먼 고장으로 떠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종 열 사람을 불러 열 미나를 나누어 주며, '내가 올 때가지 벌이를 하여라.' 하고 그들에게 일렀다. (11ㄴ~13)


사실 루카 복음 19장 11절'사람들이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비유 하나를 말씀하신 것으로 나온다.

당시 예수님의 일행은 예루살렘 입성을 바로 앞두고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제자들 및 청중들이 예수님과 자캐오와의 대화를 듣고 있는 현장에서 미나의 비유가 주어진다.


예수님께서는 자캐오의 가정에 구원을 선포하시면서 당신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온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루카19,10), 이 말씀을 들은 제자들 및 청중들이 이제 예수님께서 머지않아 자신들이 그토록 고대했던 현세적이고 정치적인 메시아로서, 자신들에게 현세적 부귀영화와 로마로부터 정치적 해방과 자유를 찾아줄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이러한 오해를 바로잡아 주시려고 '미나의 비유'를 말씀하셨다. 이 비유는 마태오 복음 25장 14~30절의 탈렌트의 비유와 비슷하다.


그러나 화폐의 단위 사용, 등장 인물의 숫자의 차이가 있고, 루카 복음사가만이 사람들이 귀족이 임금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는 보고를 첨가하고 있으며, 또한 비유가 주어진 시기가 마태오 복음은 예루살렘 입성 후이지만, 루카 복음은 입성 직전이라는 것이 두드러진 차이이다.


또한 탈렌트의 비유하느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소명과 은사에는 차이가 있지만 근본적으로 그에 대해 충성을 다하면 동일한 상급인 구원이 주어질 것임을 강조한 반면에,

미나의 비유최종적으로 실현된 하느님의 나라를 기다리며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주어진 기회를 선용한다면, 그 선용한 결과에 따라 상급도 차등있게 주어질 것이라는 가르침을 준다. 

그러므로 이 두 가지 비유는 예수님께서 각기 다른 시기에 주신 다른 비유인 것이다.

 

이 비유에서 '귀족'에 해당하는 '안트로포스 유게네스'(anthropos eugenes; a men of noble birth)에서 '유게네스'(eugenes)'좋은'(good)을 의미하는 접두어 '유'(eu)'출생', '태생'을 의미하는 명사 '게노스'(genos)의 합성어로서 '태생이 좋은'(well-born), '고귀한 혈통'(of noble raw)이라는 의미이다.


여기서는 어떤 특정한 인물이라기보다는 예수님 자신을 상징하는 가상 인물이다. 귀족이 먼 고장으로 떠나가 왕권을 받아 올 때까지는 아직 임금이 아니다.


여기서 '먼 고장으로 떠나게 되었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시어 하느님께 가신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가 이 세상에 계시지 않음, 즉 그의 부재(不在)를 의미한다.


귀족이 가는 목적은 왕권을 받아 다시 오기 위한 것이다. 

여기서 '오려고'에 해당하는 '휘포스트렙사이'(hypostrepsai; to return)'원래 있던 곳으로 되돌아가다'는 의미를 지닌 '휘포스트레포'(hypostrepho)의 부정사로서, 영광과 존귀와 위엄의 본래 지위를 받아 가지고 다시 되돌아오려고 먼 고장으로 떠난다는 것을 강조한다.


즉 이 용어는 예수님께서 만왕의 왕으로서 재림하실 것을 암시하는 것이며, 다시 오실 때에는 심판관과 통치자의 완전한 모습을 갖추고 오실 것이다(마태24,30).


한편 루카 복음 19장 13절'종'에 해당하는 '둘로스'(dulos; servant)'둘루스 헤아우투'(dulus heautu; his servants)에서 나온 말로서, 귀족이 부른 종들이 자기 휘하에서 자신을 위해 봉사하고 있는 종들임을 나타낸다.


원래 '둘로스'(dulos)는 아무런 결정권이 없는 '노예'를 가리키며, 여기서 '자기자신의'(heautu; his)가 첨부된 것은 오직 주인만을 위해서 살아야 됨을 보여 준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 또는 모든 하느님 나라의 백성을 가리키는데, 이들은 그리스도의 종들로서 복음과 하느님의 나라를 위해 살아야 함을 보여준다.


그리고 마태오 복음의 탈렌트의 비유에서 주인이 재능에 따라 차등을 두어 종들에게 탈렌트를 분배한 것과는 달리, 여기서는 귀족이 열 종들에게 각각 한 미나씩 균등하게 배분해 주었다.


또한, 두 복음서에서 각각 다른 화폐 단위를 사용하고 있다. '탈렌트'는 '미나'(mina)의 화폐 단위보다 더 높다. '탈렌트'는 6,000 데나리온의 가치이고, '미나'는 100데나리온의 가치이므로, '미나'는 '탈렌트'의 60분의 1정도이다. 


여기서 귀족은 종들에게 그것을 주면서 '벌이를 하여라'고 말한다. '벌이를 하여라'에 해당하는 '프라그마튜사스테'(pragmateusasthe; occupy; put the money to work)의 원형 '프라그마튜오마이'(pragmateuomai)'사업하다'라는 뜻으로서 상업적 거래를 포괄적으로 나타내는 단어이다.


귀족은 한 미나를 종들에게 주며, 먼 고장에 갔다가 다시 돌아올 그때까지 이 돈을 활용해서 사업을 하여 이윤을 남기라고 말한 것이다. 

여기서 장사, 사업이란 용어가 사용된 것으로 보아서 귀족이 다시 돌아올 때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 암시된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승천과 재림 사이에 상당한 시간이 있을 것에 대한 암시로 이해한다.


마태오 복음의 '탈렌트의 비유'차등있게 탈렌트가 주어진 것을 통해 사람에 따라 소명과 은사의 차이가 있음을 나타낸 반면에, 루카 복음의 '미나의 비유'동일하게 한 미나씩을 줌으로써 하느님께서 당신의 모든 백성들에게 동일한 기회를 주신 것을 나타낸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모든 백성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그 재능과 시간을 잘 활용하여 하느님의 나라를 위한 이윤을 최대한도로 남기기를 원하신다.




<미나의 비유>


“어떤 귀족이 왕권을 받아 오려고 먼 고장으로 떠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종 열 사람을 불러 열 미나를 나누어 주며,

‘내가 올 때까지 벌이를 하여라.’ 하고 그들에게 일렀다(루카 19,12-13).”


여기서 ‘어떤 귀족’은 예수님이고,

왕권을 받아 온다는 말은 예수님의 재림을 뜻하고,

먼 고장으로 떠나게 되었다는 말은 예수님의 승천을 뜻합니다.

(우리는 지금 예수님의 승천과 재림 사이의 시간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미나’는 당시의 금화 이름인데, 여기서는 하느님의 은총을 뜻합니다.

종들은 주인이 돌아올 때까지 벌이를 해야 하는데,

이것은 최후의 심판에 대비해서 충실하게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나 종말과 재림 전에 지상 생애를 마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죽은 뒤에 받게 되는 ‘사심판’을 잘 준비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첫째 종이 들어와서, ‘주인님, 주인님의 한 미나로 열 미나를 벌어들였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일렀다.

‘잘하였다, 착한 종아! 네가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열 고을을 다스리는 권한을 가져라.’(루카 19,16-17)”


비유 안에서 주인은 왕권을 받아서 돌아온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성실한 종에게 ‘왕으로서’ 상을 주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아주 작은 일’은 신앙생활을 뜻합니다.

‘열 고을을 다스리는 권한’이라는 말은,

성실한 신앙인이 하늘나라에 들어가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되는 것을 뜻합니다.

(‘열 고을’이라는 말과 ‘다스리는 권한’이라는 말 자체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신앙생활을 ‘아주 작은 일’이라고 표현하셨을까?

이것은 실제로 우리의 신앙생활이 아주 작은 일이라는 뜻은 아니고,

나중에 하늘나라에서 받게 될 상이, 즉 구원과 영원한 생명이

엄청나게 큰 은총이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표현으로 해석됩니다.


(둘째 종은 다섯 미나를 벌었고, 다섯 고을을 다스리는 권한을 받는데,

특별한 뜻은 없습니다.

그리고 ‘열’과 ‘다섯’의 차이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다른 종은 와서 이렇게 말하였다. ‘주인님, 주인님의 한 미나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수건에 싸서 보관해 두었습니다. 주인님께서

냉혹하신 분이어서 가져다 놓지 않은 것을 가져가시고 뿌리지 않은 것을

거두어 가시기에, 저는 주인님이 두려웠습니다.’(루카 19,20-21)”


여기서 “가져다 놓지 않은 것을 가져가고 뿌리지 않은 것을 거두어 간다.”는 말은,

주는 것 없이 빼앗아가기만 한다고 주인을 비난하는 말입니다.


셋째 종이 아무것도 안 하고 미나를 돌려준 것을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1) 벌이를 잘할 자신은 없고, 원금마저 잃을까 두려워해서 아무것도 안 했다.

이것은 남들처럼 잘할 자신이 없어서

소극적인 태도로 신앙생활을 하는 경우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2) 주인을 위해 벌이를 하는 것이 싫어서 아무것도 안 했다.

이것은 하기 싫어서 신앙생활을 제대로 안 하는 경우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원수를 사랑하여라.” 라는 계명에 대해서,

최소한 원수를 미워하지만 않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 싫어서 안 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어느 쪽에 해당되든지 간에 두 가지 경우 모두 계명 실천을 안 한 것입니다.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이 악한 종아, 나는 네 입에서 나온 말로

너를 심판한다. 내가 냉혹한 사람이어서 가져다 놓지 않은 것을 가져가고

뿌리지 않은 것을 거두어 가는 줄로 알고 있었다는 말이냐? 그렇다면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넣지 않았더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돌아왔을 때 내 돈에

이자를 붙여 되찾았을 것이다.’(루카 19,22-23)”


“네 입에서 나온 말로 너를 심판한다.”는

“너의 잘못은 네 말에서 이미 드러나 있다.”입니다.

(말과 행동이 모순된다고 꾸짖는 말입니다.)

정말로 주인이 냉혹하고 무서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면,

무서워서라도 뭔가를 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안 했으니 이 경우에는 주인을 거역한 죄를 지은 셈이 됩니다.

또는 자기의 게으름을 감추려고 주인 탓을 한 것이라면,

거짓말을 한 죄와 주인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죄를 지은 셈이 됩니다.


왜 돈을 은행에 넣지 않았느냐는 주인의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일도 하지 않았다고 꾸짖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 말에는, 주인이 종들에게 바라는 것은

어떤 ‘결과’가 아니라 ‘노력’이라는 암시가 들어 있습니다.


벌이를 하려고 시도했다가 이익을 얻지 못하거나 손해만 볼 수도 있는데,

주인은 그 결과에 대해서는 꾸짖지 않고

뭔가를 하려고 시도한 것만을 칭찬하는 사람입니다.

이처럼 하느님은 우리가 이룬 성과보다도 우리의 노력을 먼저 보시는 분입니다.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마태 5,44).” 라는

예수님 말씀의 경우, 이 말씀은 박해자들의 회개를 위해서 기도하라는 명령인데,

만일에 우리가 열심히 기도했어도 박해자들이 회개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박해자들의 책임이 되고,

열심히 기도한 우리의 노력은 인정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해도 소용없다고 우리 마음대로 생각하고서

아예 기도를 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우리의 책임이 됩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루카 19,26).”

이 말씀의 뜻은, “신앙생활을 성실하게 한 사람은 하늘나라에 들어가고,

성실하게 하지 않은 사람은 못 들어갈 것이다.”입니다.


지금 우리가 받고 있는 은총들은, 또 이미 받은 은총들은,

하늘나라에 잘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은총입니다.

따라서 성실하게 신앙생활을 해서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더 큰 은총을 받는 일이 됩니다.


반대로,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하늘나라에 못 들어가는 것은,

이미 받은 은총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일이 되고,

받을 수도 있었던 더 큰 은총을 못 받는 일이 됩니다.

(예수님 말씀에는 ‘빼앗길 것이다.’ 라고 표현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이 스스로 버리는 것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오늘의 묵상

오늘 제1독서에서 주목할 점은 일곱 아들이 순교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격려하는 어머니의 신앙입니다.

시리아 임금 안티오코스는 이 아들들에게 배교를 강요하며 돼지고기를 먹으라고 강요합니다. 이를 거부하던 아들들은 극심한 고문에도 신앙을 지키다 모두 숨을 거두고 맙니다.

하지만 어떠한 박해도 신앙을 손상하지 못하며, 오히려 신앙을 더 굳게 만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하느님만이 생명의 주인이심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 복음의 비유를 보면, 어떤 귀족이 종들에게 한 미나씩 나누어 준 다음, 종들이 그 돈으로 얼마나 벌었는지를 묻습니다.

미나는 주님께서 주신 탈렌트를 뜻하지요. 우리는 누구나 주님께 받은 탈렌트, 곧 고유한 재능과 능력이 있습니다. 저마다 분야와 역할이 다를 뿐이지요.

중요한 것은 내가 받은 탈렌트가 무엇인지를 알아내고, 이를 주님과 이웃을 위해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숙고하는 것입니다.


내가 주님의 도구가 되려면 무엇보다 나 자신을 잘 알아야 합니다.

‘나의 장점과 단점은 무엇인가? 내가 진실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 점을 알아야 자신의 앞날에 대한 방향을 잡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다른 이에게 도움을 청할 수도 있고, 그 어떤 어려움마저도 극복하게 됩니다. 그럼으로써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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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3주간 금요일]성전 정화 (루카 19,45-48)17.11.24조회 286[연중 제33주간 목요일]예루살렘 멸망 예고 (루카 19,41-44)17.11.23조회 70[연중 제33주간 수요일]미나의 비유 (루카 19,11ㄴ-28)17.11.22조회 699[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누가 내 어머니 (마태 12,46-50)17.11.22조회 459[연중 제33주간 월요일]다시 보아라 (루카 18,35-43)17.11.19조회 484[연중 제32주간 토요일] 과부의 청 (루카 18,1-8)17.11.18조회 551[연중 제32주간 금요일]사람의 아들의 날 (루카 17,26-37)17.11.17조회 373[연중 제32주간 목요일]하느님의 나라 (루카 17,20-25)17.11.16조회 234[연중 제32주간 수요일] 나병 환자 열 사람 (루카 17,11-19)17.11.15조회 56[연중 제32주간 화 요일]종의 의무 (루카 17,7-10)17.11.14조회 264[연중 제32주간 월요일]회개 용서 (루카 17,1-6)17.11.13조회 157[연중 제31주간 토요일] 하느님과 재물 (루카 16,9ㄴ-15)17.11.11조회 277[연중 제31주간 금요일] 약은 집사 (루카 16, 1- 8)17.11.10조회 235[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 성전 (요한 2,13-22)17.11.09조회 332[연중 제31주간 수요일] 제 십자가 (루카 14,25-33)17.11.08조회 288[연중 제31주간 화요일]하느님나라 잔치에 초대 (루카 14,15-24)17.11.07조회 359[연중 제31주간 월요일] 잔치 (루카 14,12-14)17.11.06조회 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