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4주간 금요일]세례자요한의 죽음(마르코 6,14-29)
[2월 5일 성녀 아가타 동정 순교자 기념일]
아가타 성녀는 이탈리아 남부의 시칠리아 섬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신심이 깊었던 그녀는 하느님께 자신을 온전히 봉헌하고자 평생을 동정으로 살았다. 아가타는 철저하게 동정을 지킨 나머지 그녀를 차지하려던 지방 관리에게 혹독한 고문을 받고 데키우스 황제의 박해 기간(249-251년)에 순교하였다. 성녀에 대한 공경은 초대 교회 때부터 널리 전파되었다.
집회서 44―50장은 이스라엘 조상들에 대하여 칭송하는 내용을 전한다. 집회서를 기록한 벤 시라는 하느님께 선택된 다윗이 어린 나이에 필리스티아 장수 골리앗을 꺾은 일을 기린다. 다윗은 언제나 하느님을 찬미하고 그분을 사랑하였는데, 하느님께서는 그에게 왕좌를 주셨다.(집회서 47,2-11)
2 친교 제물에서 굳기름을 따로 떼어 놓듯, 다윗도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에서 선택되었다.
3 다윗은 염소 새끼들과 놀듯 사자들과 놀고, 양들 가운데 어린양과 놀듯 곰과 놀았다. 4 그가 아직 소년이었을 때 거인을 죽여 백성의 수치를 씻어 주지 않았더냐? 그는 손을 쳐들어 돌팔매로 골리앗의 교만을 꺾었다. 5 그가 지극히 높으신 주님께 호소하여, 주님께서 그의 오른팔에 힘을 주셨던 것이다. 이렇게 다윗은 싸움에 능한 장수를 쓰러뜨려, 백성의 사기를 높일 수 있었다. 6 그리하여 사람들은 만 명을 물리친 다윗을 칭송하였고, 그가 영화로운 왕관을 쓰게 되었을 때, 주님의 복을 받은 그를 찬미하였다. 7 사실 그는 에워싼 원수들을 무찔렀고, 필리스티아 군대를 없애 버렸으며, 오늘까지 그들이 힘을 쓰지 못하게 하였다.
8 그는 모든 일을 하면서 거룩하고 지극히 높으신 분께, 영광의 말씀으로 찬미를 드렸다. 그는 온 마음을 다해 찬미의 노래를 불렀으며, 자신을 지으신 분을 사랑하였다. 9 그는 제단 앞에 성가대를 자리 잡게 하여, 그들의 목소리로 아름다운 가락을 노래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날마다 자신들의 노래로 찬미하였다. 10 다윗은 축제를 화려하게 벌였고, 그 시기를 완벽하게 정리하였으며, 주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찬미하고, 그 찬미가 이른 아침부터 성소에 울려 퍼지게 하였다.
11 주님께서는 그의 죄악을 용서해 주시고, 그의 힘을 대대로 들어 높이셨으며, 그에게 왕권의 계약과 이스라엘의 영광스러운 왕좌를 주셨다.
시편 18(17),31.47과 50.51(◎ 47ㄷ 참조)
◎ 내 구원의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 하느님의 길은 결백하고, 주님의 말씀은 순수하며, 당신께 피신하는 모든 이에게 그분은 방패가 되신다. ◎
○ 주님은 살아 계시다! 나의 반석 찬미받으시리니, 내 구원의 하느님 드높으시다. 주님, 제가 민족들 앞에서 당신을 찬미하고, 당신 이름 찬송하나이다. ◎
○ 주님은 당신 임금에게 큰 구원 베푸시고, 당신의 메시아 다윗과 그 후손에게 영원토록 자애를 베푸신다. ◎
세례자 요한의 목을 벤 헤로데는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신다는 소문을 듣자 요한이 되살아났다고 두려워한다. 헤로데는 요한이 옳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의 말을 따르지 못하였고 결국은 그를 죽이고 만 것이다.(마르코 6,14-29)
그때에 14 예수님의 이름이 널리 알려져 마침내 헤로데 임금도 소문을 듣게 되었다.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난 것이다. 그러니 그에게서 그런 기적의 힘이 일어나지.” 하고 말하였다. 15 그러나 어떤 이들은 “그는 엘리야다.” 하는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옛 예언자들과 같은 예언자다.” 하였다. 16 헤로데는 이러한 소문을 듣고, “내가 목을 벤 그 요한이 되살아났구나.” 하고 말하였다.
17 이 헤로데는 사람을 보내어 요한을 붙잡아 감옥에 묶어 둔 일이 있었다. 그의 동생 필리포스의 아내 헤로디아 때문이었는데, 헤로데가 이 여자와 혼인하였던 것이다. 18 그래서 요한은 헤로데에게, “동생의 아내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고 여러 차례 말하였다. 19 헤로디아는 요한에게 앙심을 품고 그를 죽이려고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20 헤로데가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그를 두려워하며 보호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말을 들을 때에 몹시 당황해하면서도 기꺼이 듣곤 하였기 때문이다.
21 그런데 좋은 기회가 왔다. 헤로데가 자기 생일에 고관들과 무관들과 갈릴래아의 유지들을 청하여 잔치를 베풀었다. 22 그 자리에 헤로디아의 딸이 들어가 춤을 추어, 헤로데와 그의 손님들을 즐겁게 하였다. 그래서 임금은 그 소녀에게,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나에게 청하여라. 너에게 주겠다.” 하고 말할 뿐만 아니라, 23 “네가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 내 왕국의 절반이라도 너에게 주겠다.” 하고 굳게 맹세까지 하였다. 24 소녀가 나가서 자기 어머니에게 “무엇을 청할까요?” 하자, 그 여자는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요구하여라.” 하고 일렀다.
25 소녀는 곧 서둘러 임금에게 가서, “당장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저에게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고 청하였다. 26 임금은 몹시 괴로웠지만, 맹세까지 하였고 또 손님들 앞이라 그의 청을 물리치고 싶지 않았다. 27 그래서 임금은 곧 경비병을 보내며,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라고 명령하였다. 경비병이 물러가 감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어, 28 머리를 쟁반에 담아다가 소녀에게 주자, 소녀는 그것을 자기 어머니에게 주었다. 29 그 뒤에 요한의 제자들이 소문을 듣고 가서, 그의 주검을 거두어 무덤에 모셨다.

성녀 아가타 동정 순교자 기념일 제1독서 (집회47,2-11)
집회서의 마지막 제5부 (42,15-50,29)는 하느님의 영광과 조상들의 올바른 삶을 기리고 있다.
첫 대목 (42,15-25)에서 저자는 말씀으로 이루어진 업적을 통하여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난다고 말한다.
하느님은 말씀으로 업적, 곧 사건을 일으키신다. 본래 히브리어에서 <말씀>과 <사건>은 한 단어, <다바르(dabar)> 이다.
말씀으로 이루신 업적 가운데, 가장 놀라운 일은 자연의 창조이다. 43장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위대함을 노래한다.
맑은 하늘, 끊임없이 열기를 뿜어내는 태양, 절기와 축제일을 알려주는 달, 궤도를 정확히 도는 별들, 하늘을 가로지르는 찬란한 무지개, 그밖에 번개, 구름, 우박, 눈, 이슬, 얼음, 안개, 바람 그리고 온갖 종류의 생물과 용들을 열거하며 그것들이 모두 주님의 권능과 영광을 드러낸다.
저자는 44-50장에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낸 인물들을 하나하나 나열한다. 그들은 이스라엘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임금, 현인, 예언자, 사제들이다.
집회서 저자는 사제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이고, 특히 아론(모세보다 더 길게 다룬다)과 대사제 오니아스의 아들 시몬에 관하여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그리고 역사의 인물들에 대한 평은 찬미의 권고와 기도로 마무리한다. (50,22-24)
이어서 저자는 세 민족, 곧 사마리아인들과 필리스티아인들과 에돔인들을 언급하면서, 그들에게 혐오를 드러낸다. 그들이 바빌론 유배에서 돌아와 예루살렘 성전을 짓고 복구 작업을 벌이는 유다인들을 방해하였기 때문이다.
50장의 마지막 세 절(27-29절)은 집회서 전체의 결론이다.
"나는 지성과 지식에 대한 가르침을 이 책에 기록해 놓았다. 예루살렘 출신 엘아자르의 아들, 시라의 아들인 나 예수는 마음으로부터 지혜를 이 책에 쏟아 부었다. 이 가르침에 주의를 기울이는 이는 행복하고, 그것을 마음에 간직하는 이는 지혜로워지리라. 사람이 그 가르침을 실천하면 만사에 강해지리라. 주님을 경외함이 그의 인생 행로이고 주님께서 경건한 이들에게 지혜를 주셨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영원히 찬미를 받으소서. 아멘. 아멘. "
저자는 자신의 이름을 예루살렘 출신 엘아자르의 아들, 시라의 아들 예수라고 밝히고 자신의 가르침을 담은 이 책을 독자들이 주의 깊게 읽고 실천해 줄 것을 부탁한다.
오늘 독서는 47장 2-11절로, 역사의 인물중에 다윗을 언급하고 있다. 지난 1월 17일부터 사무엘 상권 16장으로부터 어제까지 매일 미사를 통해 교회는 다윗을 조명했다. 그리고 오늘 집회서의 말씀으로 다윗의 업적을 칭송하며 종합 정리를 하는 모습을 보고, 가톨릭 교회가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양치는 목동이 어떻게 기름부음 받아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는가? 사울로부터 떠난 주님의 영이 다윗에게 내려 줄곧 그의 삶에 함께 한 이유가 무엇일까?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필리스티아인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고 돌아올 때, 여인들의 과대한 칭송으로 인해 사울의 질투를 받아 쫓기는 다윗, 오히려 두 번이나 사울을 죽일 수 있었지만, 주님의 기름부음 받은 자라 살려주는 다윗,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장터에서 죽은 사울과 요나탄, 그리고 그들의 죽음을 슬퍼하는 다윗,
통일 왕국의 첫 임금이 되어 예루살렘에 계약의 궤를 모시고 싶은 다윗, 주님의 궤 앞에서 춤추는 다윗, 우리야의 아내 밧 세바를 범하고, 그녀의 장부 우리야를 살해하는 다윗, 나탄 예언자의 말씀 앞에 참회하는 다윗,
아들 압살롬의 반역과 쫓기는 다윗, 그리고 시므이의 저주, 압살롬의 죽음에 슬퍼하는 다윗, 인구조사를 통해 자신의 힘을 과시하다가 가드 예언자를 통해 사흘동안의 흑사병을 받는 다윗,,,,
오늘 말씀을 읽고 지난 2주간 동안, 다윗을 <오늘 미사의 독서말씀>을 따라 묵상해 온 사람들은, 이제 주마등처럼 다윗의 모습들이 스쳐 지나가지 않는가!
이렇게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가 역사의 한 획을 긋고 가는 다윗의 모습 속에서 우리 자신의 모습이 오버랩이 되니, 바로 이런 성경의 인물을 통해, 교회는 하느님과 우리 자신과의 올바른 관계를 정립하게끔 도와 주고 주는 것이다
다윗은 수많은 전쟁을 치루고 많은 피를 흘린 용장으로 나오지만, 그는 윤리적으로 타락한 간음자요, 살인자이며, 자신의 궁중의 집안도 제대로 못 다스리는 무능한 자이고, 열왕기 상권 1장에 보면, 나이 늙어 수넴 여자 아비삭을 끼고 자야 몸이 유지되는 신체적으로 결함이 많은 자로 묘사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성왕으로 불리는 것은 자신이 잘못했을 때, 그 잘못을 하느님 대전에 솔직히 시인하고, 하느님 대전에서 벌을 받고, 하느님의 절대적 자비를 비는 철저히 하느님 중심의 삶을 살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그는 모든 일을 하면서 거룩하고 지극히 높으신 분께 영광의 말씀으로 찬미를 드렸다. 그는 온 마음을 다해 찬미의 노래를 불렀으며, 자신을 지으신 분을 사랑하였다." (집회47.8)
"주님께서는 그의 죄악을 용서해 주시고, 그의 힘을 대대로 들어 높이셨으며, 그에게 왕권의 계약과 이스라엘의 영광스러운 왕좌를 주셨다." (집회47.11)
성녀 아가타 동정 순교자 기념일 복음 (마르6,14~29)
"머리를 쟁반에 담아다가 소녀에게 주자, 소녀는 그것을 자기 어머니에게 주었다. 그 뒤에 요한의 제자들이 소문을 듣고 가서, 그의 주검을 거두어 무덤에 모셨다." (28~29)
어머니의 지시에 따라 헤로데 안티파스에게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요구한 살로메는 드디어 참수당한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가져다가 어머니 헤로디아에게 준다.
여기서 '그것을'로 번역된 '아우텐'(auten; it)은 3인칭 단수 대명사 여성 목적격이다. 이 대명사의 성(姓)이 여성인 것은 잘려나간 '머리'를 가리키는 명사 '케팔레'(kephale)가 여성 명사이기 때문이다.
살로메가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헤로디아에게 갖다 줌으로써 그렇게도 세례자 요한에게 분노하며 죽이고자 했던 헤로디아의 소원은 마침내 성취되었다.
전설에 의하면, 쟁반에 담겨져 있는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보자마자 헤로디아는 그녀의 긴 머리핀(바늘)을 뽑아 세례자 요한의 혀를 수없이 찔러서 뽑아 버렸다고 한다. 사악한 여인은 자신의 비행을 고발하는 진리와 정의의 혀를 그냥 둘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하느님의 의(義)를 말하다가 비록 참수당했지만, 세례자 요한의 그 정신은 복음에 그대로 기록되어 대대로 칭송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이 세례자 요한의 시체를 거두어 무덤에 모셨지만, 제자들은 사랑하는 스승의 얼굴은 보지도 못한 채, 목이 잘려나가고 없는 몸뚱아리만 장사지내야 했다고 전해진다.
이렇게 해서 예수님의 선구자이며 최후의 예언자인 세례자 요한(루카7,28)은 30여년 남짓한 짧은 생애를 마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공적 생활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헤로데> 송영진 모세 신부
세례자 요한을 죽인 헤로데에 대해서 말할 때,복음서의 표현만 보고 잘못된 해석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1)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내가 목을 벤 그 요한이 되살아났구나(마르 6,16)." 라고 헤로데가 말한 것에게 대해서, 그가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고 해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복음서 전체 내용을 생각하면, 그의 말은 '양심의 가책'을 나타내는 말이
아닙니다.
그냥 '미신적인 불안감'을 나타낼 뿐입니다.
"사람들이 요한을 예언자로 생각하던데, 내가 죽인 요한이 정말로
예언자였을까?
예수라는 자가 정말로 되살아난 요한일까?
그렇다면 혹시라도 나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을까?" 그런 정도의
불안감.
헤로데는 요한을 죽인 것에서
그치지 않고 예수님도 죽이려고 했습니다(루카 13,31). 그때 예수님께서는 헤로데를 '그 여우' 라고 부르셨습니다(루카
13,32). '여우' 라는 말은, 헤로데가 교활하고 간사하고 비겁한 인물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또 자기 이익을 위해서라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물, 즉 살인도 할 정도로 악한 인물이라는 뜻도 들어 있습니다. (만일에 그가 요한을 죽인 일에 대해서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면, 다시 또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2) 마르코복음 6장
20절, "헤로데가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그를 두려워하며 보호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말을 들을 때에 몹시
당황해하면서도 기꺼이 듣곤 하였기 때문이다." 를 잘못 해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말만 보면, 헤로데는 요한을 두려워했고, 요한을
보호해 주었고, 요한이 하는 말을 기꺼이 들었던 사람, 즉 '착하고 좋은 사람'으로 오해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헤로데는 요한을
붙잡아 감옥에 묶어 둔 사람입니다(마르 6,17). 그 일은 요한을 두려워하면서 보호해 주었다는 말과 거리가 멉니다. 헤로데는 요한을
두려워하기는커녕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또 그가 요한을 감옥에 묶어 둔 것은 동생의 아내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요한의 말이
듣기 싫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요한이 하는 말을 기꺼이 들었던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예언자의 말이 듣기 싫어서 죽여서라도
입을 막으려고 한 자입니다.
그런 상황을 생각해서 다시
해석하면, 헤로데가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있었다는 말은, 사람들이 "세례자 요한은 예언자다." 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는
뜻입니다. 헤로데가 요한을 두려워했다는 말도 '미신적인 불안감'을 뜻합니다.
(요한을 건들면 자기가 다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느낌
같은 것.)
헤로데가 요한을 보호해 주었다는 말은, 다른 사람들이, 특히 헤로디아가 자기 허락도 안 받고 함부로 요한을 죽이지
못하게 했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자기의 권위를 침해하는 일을 막기 위한 것이기도 하고, 또 뭔가 불길한 일이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헤로데가 요한의 말을 기꺼이
듣곤 하였다는 말은, 펠릭스 총독이 감옥에 있는 바오로 사도를 불러내어 이야기를 들었던 것과 비슷한 일로 해석됩니다(사도
24,24-26).
헤로데는 펠릭스처럼 뭔가 새롭고 신기한 이야기를 듣고 싶은 욕망, 또는 호기심
때문에 요한을 불러내서 그의 말을
듣는 것을 즐겼던 것 같습니다.
3) 마르코복음 6장
26절을 보면, "임금은 몹시 괴로웠지만, 맹세까지 하였고 또 손님들 앞이라 그의 청을 물리치고 싶지 않았다." 라고 되어
있어서, 헤로데가 요한을 죽이는 것에 대해서 몹시 괴로워했던 것으로 오해하기가 쉬운데, 그것은 아닙니다.
그 장면에서 헤로데의
괴로움은, 요한을 죽이는 것에 대한 괴로움이 아니라, 자기가 경솔하게 맹세한 것에 대한 괴로움으로 해석됩니다.
헤로데는 공주에게 "네가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 내 왕국의 절반이라도 너에게 주겠다(마르 6,23)." 라고 맹세했었습니다. 그런데 왕국의 절반을 자기
마음대로 누군가에게 줄 권한이 그에게는 없었습니다. 그가 다스리는 영토는 로마 제국의 식민지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헤로데는 요한을
죽이는 것을 괴로워하기는커녕 기뻐했을 것입니다. 지키지도 못할 맹세에서 풀려날 수 있었기 때문에...
("몹시 괴로웠지만, 맹세까지
하였고" 라는 말은, "맹세까지 한 것에 대해서 몹시 괴로워하고 있었는데" 라고 해석하는 것이 적절할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헤로데 같은
자가 통치 권력을 차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는 통치 권력을 차지한 자가 헤로데처럼 폭군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요한을 죽인
헤로데와 헤로디아, 하수인 역할을 한 소녀, 요한을 죽이라는 명령을 실행한 경비병들, 침묵을 지키면서 방관한 고관들과 무관들과
유지들... 그들은 모두 요한을 살해한 범죄의 공범들입니다.
오늘날에도 그런 자들 때문에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들이
박해를 받고, 살해당하는 일이 많습니다. 회개해서 구원을 받으라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기 싫어하고 회개하기를 거부하는
자들이 하느님을 거스르고 예언자를
죽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말씀은
헛되지 않습니다. (예언자를 죽여도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습니다.)
"비와 눈은 하늘에서 내려와 그리로 돌아가지 않고 오히려
땅을 적시어 기름지게 하고 싹이 돋아나게 하여 씨 뿌리는 사람에게 씨앗을 주고 먹는 이에게 양식을 준다. 이처럼 내 입에서 나가는
나의 말도 나에게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반드시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며 내가 내린 사명을 완수하고야 만다(이사
55,10-11)."
(헤로데와 헤로디아는 나중에 로마 황제 칼리굴라에 의해 쫓겨나서 갈리아에서 귀양살이를 하다가 죽었습니다.)


적어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세례자 요한이 수행한 일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이미 와 계심을 알려 준 선구자 역할이었습니다. 그런데 요한은 그 일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이는 엉뚱한 일로 죽임을 당합니다. 광야에서 단식하며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를 선포하던 사람이 왜 괜히 헤로데의 결혼 문제에 개입하여 안타까운 죽음을 자초하게 되었느냐고, 여러분은 세례자 요한에게 질의하시겠습니까? 요한은 사법 절차를 밟아 목을 벨 만한 죄목으로 사형 선고를 받고 처형된 것도 아니고, 감옥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하루아침에 죽고 말았습니다.
요한이 왜 이런 ‘속된’ 인간사에 끼어들어 거기서 죽임을 당했어야 했을까 생각해 봅니다. 요한은 그렇게 하지 않고 다른 선택을 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광야에서 주님의 길을 닦으려면, 주님께서 오실 길을 마련하려면 스스로 회개하고 세례를 받겠다고 찾아오는 사람들만을 상대할 수 없고 이 세상의 불의와 악에도 맞설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아무도 맞설 수 없는 헤로데였다 하더라도, 요한은 목숨을 내놓고 그에게 삶을 바꿀 것을 요구해야 했습니다.
마지막 예언자 요한의 죽음은 우리에게, 예수님의 오심을 맞이하기 위한 회개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세례자 요한을 거부하고 그를 죽여 버린 이 세상은, 지금도 회개하라는 호소를 듣기 싫어할 것입니다. 하지만 회개 요구는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데에서 필수적입니다. 요한만이 아니라 예수님께서도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다른 사람의 조롱거리가 될까 두려워하여 본능적으로 행동한 헤로데와, 거짓과 안일보다는 진실과 죽음을 선택한 세례자 요한의 모습은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해 주고 있습니다.
헛된 맹세를 하지마라 반영억라파엘 신부
여자는 기념일을 먹고 살고, 남자는 체면을 먹고 산답니다. 여자는 쉽게 감동하기에 그렇고 남자는 자존심을 세워주면 어깨가 으쓱해집니다. 그렇다고 자존심을 건 맹세를 함부로 할 것이 아닙니다.
헤로데 왕은 요한이라는 인물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그를 두려워하며 보호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말을 들을 때에 몹시 당황하면서도 기꺼이 듣곤 하였습니다(마르6,20). 그런데 그에게 곤란한 일이 생겼습니다. 자기 생일에 고관들과 무관들과 갈릴래아의 유지들을 청하여 잔치를 베풀었는데 헤로디아의 딸이 춤을 추게 되었습니다. 왕은 헤로디아의 딸이 손님들을 즐겁게 해 주었기에 그에게 원하는 선물은 무엇이든 주겠다고 약속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헤로디아의 딸은 어머니의 바람대로“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저에게 주시기를 바랍니다”(마르6,25).하고 요구하였습니다. 너무도 당혹스런 일입니다. 헤로디아는 요한이 자기의 결혼에 대하여 잘못되었다고 얘기했기 때문에 앙심을 품고 있었던 터였습니다. 앙심을 품는 사람은 남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만을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욕심의 노예가 되어 그 앙갚음의 기회를 딸을 통해서 하게 된 것입니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 서리가 내린다더니……, 임금은 몹시 괴로웠지만, 이미 약속한 것이고 또 손님들이 보는 앞이라 그 청을 물리치고 싶지 않았습니다(마르6,26). 그래서 결국은 요한의 목을 베게 되었습니다.
의인의 목숨과 자존심을 건 헛된 맹세에서 하나를 선택했거늘 그 놈의 자존심이 뭔지? 체면이 뭔지? 악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누가 뭐라고 하든 ‘다만 ‘예’할 것은 ‘예’하고, ‘아니오’할 것은 ‘아니오’‘ 라고 만(야고5,12)해야 합니다. 생명을 살리는 일에, 의로운 일에 자존심이 좀 상하면 어떻고 체면이 좀 손상되면 어떻습니까? 요한과 헤로데, 홀로 정의를 외치다가 죽어가는 한 예언자의 모습과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의롭고 정의롭게 사는 사람의 목숨까지 빼앗아가는 나약하기 짝이 없는 왕의 모습이 극적으로 대조되고 있습니다.
“도둑이 제발 저린다.”라는 말이 있듯이 헤로데는 자신의 잘못에 대한 불안감을 마음에 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내가 목을 벤 요한이 되살아났구나.”하고 말하였습니다. 혹 내 무의식 속에 감추어둔 무엇인가가 있어 불안하다면 고해성사를 통해 그 불안을 해소하기 바랍니다. 매듭은 풀어야 합니다. 풀지 않고 놔두면 세월이 흘러도 풀리지 않은 채 그대로 있는 법입니다.
가정에서도 직장 안에서도 그리고 어떤 공동체 안에서든 더 큰 것을 위해서 자존심이 상하고, 체면에 손상을 입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다면 그 안에 그리스도의 기쁨과 평화가 함께 할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나는 어떤 처지에서도 자족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비천하게 살줄도 알며 풍족하게 살줄도 압니다. 배부르거나 배고프거나 넉넉하거나 궁핍하거나 그 어떤 경우에도 적응할 수 있는 비결을 알고 있습니다. 나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을 힘입어 나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습니다”(필리4,12-13).
능력을 주시는 분을 힘입어 어떤 처지나 여건 안에서도 꿋꿋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얻으면 모든 것을 얻는 것이요, 그것이 우리의 기쁨입니다. 위신, 체면을 지켜야 할 때 지키십시오! 자존심을 내세워야 할 때 내세우십시오! 그리고 헛것인줄 알았으면 곧 버리십시오! 서둘러 버리십시오! 정말로 승리한 사람은 세례자 요한이고 패배한 사람은 헤로데임을 잊지 마십시오.
헤로데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과 권한을 남을 위해 사용하기보다 자신의 안일과 욕망을 위해 권력을 남용함으로써 세례자 요한을 죽이는 결과를 가져 왔고 스스로 죄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요한은 항상 예수님의 삶을 미리 닦는 선구자이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당신의 모든 것을 남을 위해 사용하였습니다. 우리를 위해 목숨까지 내놓으셨습니다. 우리의 삶은 언제나 예수님을 닮기를 갈망합니다. 미루지 않는 사랑으로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