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4주간 월요일] 마귀와 돼지떼 (마르코 5,1-20)

2016. 2. 1. 오후 6:59:50

글자


 

[연중 제4주간 월요일] 마귀와 돼지떼 (마르코 5,1-20)

다윗의 아들들 사이에서 왕위 계승을 둘러싼 다툼이 계속되었다. 압살롬이 형 암논을 죽인 다음 스스로 임금이 되려 하자, 다윗은 예루살렘을 버리고 피신한다. 길에서 사울 집안의 시므이가 그를 저주하였으나, 다윗은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일이라고 믿으며 그의 비난을 받아들인다.(사무엘하 15,13-14.30; 16,5-13ㄱ)
그 무렵 13 전령 하나가 다윗에게 와서 말하였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이 압살롬에게 쏠렸습니다.” 14 다윗은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신하에게 일렀다. “어서들 달아납시다. 잘못하다가는 우리가 압살롬에게서 빠져나갈 수 없을 것이오. 서둘러 떠나시오. 그러지 않으면 그가 서둘러 우리를 따라잡아 우리에게 재앙을 내리고, 칼날로 이 도성을 칠 것이오.”
30 다윗은 올리브 고개를 오르며 울었다. 그는 머리를 가리고 맨발로 걸었다. 그와 함께 있던 이들도 모두 제 머리를 가리고 울면서 계속 올라갔다.
16,5 다윗 임금이 바후림에 이르렀을 때였다. 사울 집안의 친척 가운데 한 사람이 그곳에서 나왔는데, 그의 이름은 게라의 아들 시므이였다. 그는 나오면서 저주를 퍼부었다. 6 온 백성과 모든 용사가 임금 좌우에 있는데도, 그는 다윗과 다윗 임금의 모든 신하에게 돌을 던졌다.
7 시므이는 이렇게 말하며 저주하였다. “꺼져라, 꺼져! 이 살인자야, 이 무뢰한아! 8 사울의 왕위를 차지한 너에게 주님께서 그 집안의 모든 피에 대한 책임을 돌리시고, 그 왕위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넘겨주셨다. 너는 살인자다. 이제 재앙이 너에게 닥쳤구나.”
9 그때 츠루야의 아들 아비사이가 임금에게 말하였다. “이 죽은 개가 어찌 감히 저의 주군이신 임금님을 저주합니까? 가서 그의 머리를 베어 버리게 해 주십시오.”
10 그러나 임금은 “츠루야의 아들들이여, 그대들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소? 주님께서 다윗을 저주하라고 하시어 저자가 저주하는 것이라면, 어느 누가 ‘어찌하여 네가 그런 짓을 하느냐?’ 하고 말할 수 있겠소?” 11 그러면서 다윗이 아비사이와 모든 신하에게 일렀다. “내 배 속에서 나온 자식도 내 목숨을 노리는데, 하물며 이 벤야민 사람이야 오죽하겠소? 주님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것이니 저주하게 내버려 두시오. 12 행여 주님께서 나의 불행을 보시고, 오늘 내리시는 저주를 선으로 갚아 주실지 누가 알겠소?”
13 다윗과 그 부하들은 길을 걸었다.


시편 3,2-3.4-5.6-8ㄱㄴ(◎ 8ㄱㄴ 참조)
◎ 일어나소서, 주님. 저를 구하소서.
○ 주님, 저를 괴롭히는 자들 어찌 이리 많사옵니까? 저를 거슬러 일어나는 자들 많기도 하옵니다. “하느님이 저런 자를 구원하실까 보냐?” 저를 빈정대는 자들 많기도 하옵니다. ◎
○ 주님, 당신은 저의 방패, 저의 영광, 제 머리를 들어 높이는 분이시옵니다. 제가 큰 소리로 주님께 부르짖으면, 당신의 거룩한 산에서 응답하시나이다. ◎
○ 주님이 나를 지켜 주시기에, 누워 잠들어도 나는 깨어나니, 나를 둘러싼 수많은 무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일어나소서, 주님. 저를 구하소서, 저의 하느님.


예수님께서는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에게서 그 영들을 몰아내신다. 그 영들이 돼지 떼 속으로 들어가 돼지들이 죽자, 마을 사람들은 예수님께 떠나가 주시기를 청한다.(마르코 5,1-20)
그때에 예수님과 제자들은 1 호수 건너편 게라사인들의 지방으로 갔다. 2 예수님께서 배에서 내리시자마자,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무덤에서 나와 그분께 마주 왔다. 3 그는 무덤에서 살았는데, 어느 누구도 더 이상 그를 쇠사슬로 묶어 둘 수가 없었다. 4 이미 여러 번 족쇄와 쇠사슬로 묶어 두었으나, 그는 쇠사슬도 끊고 족쇄도 부수어 버려 아무도 그를 휘어잡을 수가 없었다. 5 그는 밤낮으로 무덤과 산에서 소리를 지르고 돌로 제 몸을 치곤 하였다.
6 그는 멀리서 예수님을 보고 달려와 그 앞에 엎드려 절하며, 7 큰 소리로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 당신께서 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하느님의 이름으로 당신께 말합니다. 저를 괴롭히지 말아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8 예수님께서 그에게 “더러운 영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9 예수님께서 그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 하고 물으시자, 그가 “제 이름은 군대입니다. 저희 수가 많기 때문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0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 자기들을 그 지방 밖으로 쫓아내지 말아 달라고 간곡히 청하였다.
11 마침 그곳 산 쪽에는 놓아기르는 많은 돼지 떼가 있었다. 12 그래서 더러운 영들이 예수님께, “저희를 돼지들에게 보내시어 그 속으로 들어가게 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13 예수님께서 허락하시니 더러운 영들이 나와 돼지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이천 마리쯤 되는 돼지 떼가 호수를 향해 비탈을 내리 달려, 호수에 빠져 죽고 말았다.
14 돼지를 치던 이들이 달아나 그 고을과 여러 촌락에 알렸다.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려고 왔다. 15 그들은 예수님께 와서 마귀 들렸던 사람, 곧 군대라는 마귀가 들렸던 사람이 옷을 입고 제정신으로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그만 겁이 났다. 16 그 일을 본 사람들이 마귀 들렸던 이와 돼지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들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17 그러자 그들은 예수님께 저희 고장에서 떠나 주십사고 청하기 시작하였다.
18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자, 마귀 들렸던 이가 예수님께 같이 있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 19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허락하지 않으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집으로 가족들에게 돌아가, 주님께서 너에게 해 주신 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신 일을 모두 알려라.” 20 그래서 그는 물러가,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해 주신 모든 일을 데카폴리스 지방에 선포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사람들이 모두 놀랐다.



연중 제4주간 월요일 제1독서 (2사무15,13-14.30; 16,5-13ㄱ)

"다윗은 올리브 고개를 오르며 울었다.  그는 머리를 가리고 맨발로 걸었다.  그와 함께 있더 이들도 모두 제 머리를 가리고 울면서 계속 올라갔다." (2사무15,30)

사무엘서 하권 15장 30절부터 37절까지 반란자 압살롬을 피하여 합법적인 통치자 다윗이 비참한 모습으로 요르단으로 도망친 사실예전에 다윗의 고문이었던 길로 사람 아히토펠이 정권을 탈취한 압살롬의 편에 가담한 반면(2사무15,12), 에렉사람 후사이(2사무15,32)는 모든 권력을 잃어버린 다윗을 위해 헌신을 결단한 사실이 대조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사무엘서 하권 저자는 다윗이 그의 고문인 아히토펠의 배반 소식을 들은 것과 후사이를 만나 그에게 첩자의 임무를 부여한 사실을 동시에 말하면서 다윗이 모든 것을 잃은 것이 아니며 일말의 희망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극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그는 고문인 아히토펠에게 배반을 당한 대신에 후사이라는  충실한 일꾼을 얻게 되었던 것이다. 물론 후사이는 그 이전부터 다윗의 좋은 벗이었지만(2사무15,37),  다윗이 위기에 처했을 때 그를 위해 더없이 훌륭한 고문이 되어주었던 것이다.

한편 여기 나오는 '올리브'에 해당하는 '핫제팀'(hazethim; the Mount of Olive)키드론 시내 동쪽 언덕편에 있는 작은 산으로서, 올리브 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는 곳을 말한다.

또한 '고개를'로 번역된 '베마알레'(bemaalle)의 원형 '마알레'(malle)'올라가다'라는 의미를 지닌 동사 '알라'(alla)에서 유래한 명사로서 '오르막', '고개', '언덕'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올리브 고개'에 해당하는 원문의 정확한 의미는 '올리브산 언덕'이라는 뜻이다.

키드론 시내를 건너자마자 동편으로 오르막이 있고, 그 정상에는 올리브 산이 있기 때문에 원문이 이러한 지형적 특성을 나타내어 묘사한 것이다.

이제 다윗은 그곳을 '오르며 울었고, 머리를 가리고, 맨발로 걸었다'고 묘사된다. 다윗이 예루살렘 동편에 있는 올리브산 언덕을 세 가지 행동을 하면서 오르고 있다.

첫째, '머리를 가리고'에 해당하는 '웨로쉬 로 하푸이'(werosh lo hapui; and his head was covered)는 '그리고 그의 머리를 뒤집어 쓴 채'라는 뜻이다. 구약에서 이와 비슷한 모습으로 '머리를 감싸는 모습''머리에 재를 뒤집어 쓰는 모습'이 있다.

전자는 몹시 수치스러운 상황에서 번뇌하는 모습을 나타내며(에스테르6,12), 후자는 몹시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슬퍼하는 모습을 나타낸다(2사무13,19; 느헤9,1).

여기 본문에서 다윗은 머리에 재를 뒤집어 쓰지는 않았지만, 그가 보인 행동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슬픔과 고통을 나타내는 것이었음이 분명하다.

다윗은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도피해야만 하는 자신의 신세가 너무가 처량하고 수치스러워 그와 같은 행동을 했을 것이다.

둘째, 다윗은 '맨발로 걸었는데', '여기에 해당하는 '웨후 홀레크 야헤프' (wehu hollek yahep; and he went barefoot)는  '그리고 그가 맨발로 걷고 있었다'는 뜻이다.고대 근동에서 신발을 벗고 맨발로 걷는 행위는 노예들만 하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이런 모습이 하느님과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면,거룩하신 하느님 대전에서 자신의 수치스러운 죄를 회개하며 스스로를 겸허하게 낮추는 상징적인 행동이 된다.

모세가 호렙산에서 하느님을 만났을 때 발에서 신을 벗었는데(탈출3,5), 그것은 그가 선 곳이 거룩한 땅이었던 반면에 자신은 거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윗은 예루살렘성에서 요르단으로 도망치면서 자신의 현 상황이 범죄한 자신에 대한 거룩하신 하느님의 심판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따라서 다윗은 거룩하신 분 앞에서 자신을 의롭다고 할 만한 어떤 명분도 찾지 못하여 발에서 신을 벗은 채 자신의 죄를 참회하는 모습을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은 자신을 더없이 비참한 상황에까지 이끌고 가신 하느님 대전에 다윗이 어떤 항의도 하지 않고, 다만 참회하는 심정으로 섰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원문에서 ''를 뜻하는 인칭 대명사 '후'(hu)가 사용된 것은 다윗이 임금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맨발로 걸었다는 사실을 다른 두 행동과 구별해서 강조하고 있다.

세째, 다윗은 울었다. 이러한 상황을 묘사하는 '우보케'(uboke; and wept)의 원형 '빠카'(baka)소리내어 크게 우는 모습을 나타내는 동사이다. 이것은 다윗이 비참한 형편에 처한 자신의 모습에 대해 한탄했다는 일반적인 사실을 보여준다.

그리고 본절 후반부에는 다윗을 함께 따랐던 백성들도 다윗과 같은 행동을 취했음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것은 다윗 임금의 추종자들이 자신들을 임금과 운명을 같이하는 존재로 여겼음을 가시적으로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다.

하느님께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신정(神政) 왕국의 합법적 통치자 다윗이 반역자 압살롬을 피하여 왕궁을 버리고 도망가는 국가적 재난에 대해 다윗의 추종자들은 크게 슬퍼했던 것이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는 당신과 같이 있게 해 주십사고 간청하는 사람의 요청을 굳이 허락하지 않으시고 왜 그를 집으로 돌려보내셨을까요? 복음을 자세히 살펴보면, 예수님께서 길을 지나가시다 제자들을 부르시고 받아들이신 경우가 있는가 하면, 당신을 따르겠다는 사람을 오지 말라고 하신 경우도 있어서, 매번 상황은 다른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사람에게서, 한 가지 모습이 마음에 걸립니다. ‘군대’라고 할 만큼 수가 많은 더러운 영이 들어와 있는 것 자체가 아주 괴로운 일이고, 족쇄와 쇠사슬로 묶여 있어서 더욱 힘든 것은 물론이며, 게다가 돌로 스스로 제 몸을 자학하는 모습은 예수님께서 보시기에도 무척 안쓰러우셨을 텐데, 그 사람은 예수님께 낫게 해 주시기를 청하지 않습니다. 그 안에 있는 더러운 영들이 예수님께 방해하지 마시라고 떠들어 댈 때에도, 그 사람은 이것에 맞서지 않습니다. 이처럼 자신 안에 있는 더러운 영을 물리치려는 마음이 그에게는 조금도 없어 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더러운 영을 몰아내시고 그를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셨지만, 그가 더 이상 변화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이미 아시는 것 같습니다. 어느 누구나 ‘더러운 영’의 공격은 받을 수 있고, 우리 안에도 조금씩은 죄악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겠지요. 그 악을 떨쳐 버리려는 노력도 갈망도 없고, 예수님께 나를 변화시켜 주시기를 청하지도 않을 때,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처지를 불쌍히 여기시겠지만 당신을 따라 나서기에는 부당하다고 판단하실 것 같습니다. 자, 그러니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거라사의돼지떼들


<게라사인들의 지방에서>


예수님께서 '게라사인들의 지방'에서 마귀를 쫓아내신 일은, 마귀 들린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자비를 베풀어 주신 일입니다. 예수님은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자비를 베풀어 주시는 분입니다.


예수님께서 마귀에게 이름을 물으신 것은(마르 5,9) 몰라서 물으신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서 주권을 행사하신 일입니다.
(마귀 쪽에서 생각하면, 마귀가 자기의 이름을 말한 것은 주님이신 분께 자기의 관등성명을 말한 것과 같습니다. 마귀 입장에서는 예수님은 복종할 수밖에 없는 분입니다. 자기의 이름을 말한 것은 복종을 나타냅니다.)


마귀는 "제 이름은 군대입니다. 저희 수가 많기 때문입니다(마르 5,9)." 라고 대답하는데,
많은 수의 마귀들이 하나로 뭉쳐 있었던 것 같습니다.
또 그 당시의 군대처럼 아주 포악한 마귀라는 것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마귀가 그 지방 밖으로 쫓아내지 말라고 간청한 것은(마르 5,10) 사실은 지옥으로는 보내지 말라고 애원한 것입니다.
(지옥은 마귀들이 갇혀 있는 곳이고, 마귀들도 두려워하는 곳입니다.)
마귀가 바로 옆에 있는 돼지들에게 들어가게 해 달라고 청한 것은(마르 5,12) 지옥으로 가는 것을 피하려고 일종의 타협안을 제시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마귀가 다른 사람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실 분이라는 것은 분명하고, 마침 그때 돼지들이 보였고, 그래서 돼지들 속으로 들어가겠다고 말한 것 같습니다.


마귀가 들어가자 이천 마리쯤 되는 돼지 떼가 집단 자살을 하는데(마르 5,13) 그것은 마귀가 예상하지 못했던 일입니다.
(돼지들은 마귀가 들어오는 것을 싫어하고 거부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마귀의 간청을 들어주셨는지는 모릅니다.
돼지들 입장에서는 억울한 일이지만, 결과만 놓고 보면 마귀 들린 사람은 구원을 받았고,
그 마귀는 지상에서 완전히 쫓겨났습니다.
예수님께서 돼지들도 함께 제거하셨다고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돼지들의 주인들 입장에서는 큰 손해가 된 일이지만, 한 사람을 구하는 일은 돼지 이천 마리보다 훨씬 더 귀하고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 일이 생기자 그 고장 사람들은 예수님께 떠나라고 요구합니다(마르 5,17).
(새번역 성경은 "청하기 시작하였다." 라고 번역했는데, "요구하기 시작하였다." 라고 번역해야 합니다.)
그들은 왜 예수님께 떠나라고 요구했을까?


1) 돼지 떼의 주인들을 포함해서 그 지역 사람들은 재산 피해만 생각하고 영적인 은혜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마도 영적인 은혜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혹시 그들이 예수님께 손해 배상을 요구한 것은 아닐까?
그랬다가 예수님과 사도들에게 돈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냥 쫓아낸 것은 아닐까?)


2) 게라사 지역은 유대인이 아닌 이방 민족이 살고 있는 곳입니다.
그들이 유대교와 유대인들을 싫어해서 예수님께 떠나라고 요구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어떤 사마리아 마을에서 예수님을 거부하면서 마을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은 일이 있었는데(루카 9,53), 게라사인들도 예수님이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거부했을지도 모릅니다.


3) 게라사인들은 하느님을 안 믿는 사람들이었고, 자기들 나름대로 어떤 우상을 섬기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종교가 들어오는 것을 막으려고 그랬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4) 그들이 예수님을 무서워해서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자기들이 어떻게 할 수 없었던 마귀를 쫓아내신 분, 즉 마귀보다 더 힘이 센 분이니 예수님을 무서워했을 것입니다.
또는 마귀를 쫓아냄으로써 다른 마귀들에게 더 큰 피해를 입을지도 모른다고 두려워했을지도 모르고...


5) 게라사인들은 변화를 싫어하는 사람들이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마귀가 무섭고 마귀와 함께 사는 것이 좋은 일은 아니었지만,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지만 않는다면 그럭저럭 함께 살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랬다면, 예수님께 떠나라고 요구한 것은 그냥 살던 대로 살게 내버려 두라는 요구일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아무리 좋은 변화라고 해도, 변화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루카 5,39).
마귀가 쫓겨나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해도, 새로운 질서, 새로운 변화에 대한 거부감이 더 컸을지도 모릅니다.


오늘날에도 악마 숭배자들이 있는데, 혹시라도 게라사인들 가운데에 마귀를 두려워하면서도 숭배한 사람들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는 생각하지도 않고, 그냥 강한 힘을 숭배하고 추종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있어서 마귀들이 더욱 기승을 부립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게라사인들의 지방으로 가신 일은 실패로 끝난 일인가?
복음을 선포하는 일을 전혀 하지 못했으니...
(사실은 예수님께서 못하신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거부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복음 선포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곳에 있는 포악한 마귀를 쫓아내려고 가신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랬다면 예수님께서 그곳에 가신 일은 실패가 아니라 성공입니다.


어떻든 이 이야기에서 그 지역 사람들의 모습은 우리에게 교훈이 됩니다.
예수님(하느님)께서 아무리 큰 은총을 주셔도 우리가 안 받겠다고 거부하면 못 받게 된다는 교훈.


마귀 들렸던 이는 예수님을 따라가기를 원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집으로 돌아가서 주님께서 자기에게 해 주신 일을 알리라고 말씀하십니다(마르 5,18-19).
이것은 예수님께서 그의 자격이 부족해서 그를 거부하신 일이 아니라 그에게 임무를 맡기신 일이고, 그래서 이것도 '부르심'입니다.
(매일미사 책의 '오늘의 묵상'에 있는 내용은 잘못된 설명입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시키신 대로 가서 예수님께서 해 주신 일을 널리 선포했는데(마르 5,20),
이것은 그가 다른 방식으로 제자가 되었음을 나타내고, 또 제자로서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음을 나타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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