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4주간 목요일] 파견 (마르 6,7-13)

2016. 2. 4. 오전 5:2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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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중 제4주간 목요일]  파견  (마르 6,7-13)

세상을 떠날 때가 된 다윗은, 자기 뒤를 이어 임금이 될 솔로몬에게 권고한다. 솔로몬이 해야 할 일은 하느님의 뜻에 따라 그분 말씀대로 사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그가 하는 일들을 지켜 주실 것이며, 아버지 다윗에게 말씀하신 대로 영원한 왕조도 이루어 주실 것이다.(열왕상 2,1-4.10-12)
1 다윗은 죽을 날이 가까워지자, 자기 아들 솔로몬에게 이렇게 일렀다. 2 “나는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을 간다. 너는 사나이답게 힘을 내어라. 3 주 네 하느님의 명령을 지켜 그분의 길을 걸으며, 또 모세 법에 기록된 대로 하느님의 규정과 계명, 법규와 증언을 지켜라. 그러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성공할 것이다. 4 또한 주님께서 나에게 ‘네 자손들이 제 길을 지켜 내 앞에서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성실히 걸으면, 네 자손 가운데에서 이스라엘의 왕좌에 오를 사람이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하신 당신 약속을 그대로 이루어 주실 것이다.
10 다윗은 자기 조상들과 함께 잠들어 다윗 성에 묻혔다. 11 다윗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기간은 마흔 해이다. 헤브론에서 일곱 해, 예루살렘에서 서른세 해를 다스렸다.
12 솔로몬이 자기 아버지 다윗의 왕좌에 앉자, 그의 왕권이 튼튼해졌다.


1역대 29,10ㄴㄷ.11ㄱㄴㄷ.11ㄹ-12ㄱ.12ㄴㄷㄹㅁ(◎ 12ㄴ)
◎ 주님, 당신은 만물을 다스리시나이다.
○ 주님, 저희 조상 이스라엘의 하느님, 영원에서 영원까지 찬미받으소서. ◎
○ 주님, 위대함과 권능과 영화가, 영예와 위엄이 당신의 것이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이 당신의 것이옵니다. ◎
○ 주님, 나라도 당신의 것이옵니다. 당신은 온 세상의 으뜸, 그 위에 드높이 계시나이다. 부귀와 영광이 당신에게서 나오나이다. ◎
○ 당신은 만물을 다스리시나이다. 권능과 권세가 당신께 있으니, 당신 손을 통하여, 모든 이가 힘과 영예를 얻나이다. ◎      


예수님께서는 당신 제자들을 둘씩 파견하시면서,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가져가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제자들은 회개를 선포하고 마귀를 쫓아내며 병자들을 고쳐 준다. 당신께서 하시던 일들을 예수님께서 이제 제자들에게 맡겨 주시는 것이다.(마르코 6,7-13)
그때에 예수님께서 7 열두 제자를 부르시어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고, 둘씩 짝지어 파견하기 시작하셨다. 8 그러면서 길을 떠날 때에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빵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고 명령하시고, 9 신발은 신되 옷도 두 벌은 껴입지 말라고 이르셨다.
10 그리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디에서나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그 고장을 떠날 때까지 그 집에 머물러라. 11 또한 어느 곳이든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고 너희 말도 듣지 않으면, 그곳을 떠날 때에 그들에게 보이는 증거로 너희 발밑의 먼지를 털어 버려라.” 12 그리하여 제자들은 떠나가서, 회개하라고 선포하였다. 13 그리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고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부어 병을 고쳐 주었다.


연중 제4주간 목요일 제1독서 (1열왕2,1-4.10-12)


"주 네 하느님의 명령을 지켜 그분의 길을 걸으며,  또 모세 법에 기록된 대로 하느님의 규정과 계명, 법규와 증언을 지켜라.  그러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성공할 것이다."  (3)

열왕기 상권 2장 3-4절까지는 솔로몬이 사나이답게 굳건한 기개를 가지고 신정(神政) 왕국의 통치자로서 하느님께 대하여 행해야 할 일들을 밝히는 내용이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먼저 다윗은 솔로몬에게 주 하느님의 명령을 지킬 것을 요구하고 있다. 여기서 '명령을'로 번역된 '미쉬메레트'(mishimereth)'책임'(일)(민수1,53), '임무'(민수3,7)라는 뜻이다.

그런데 성경에서 이 단어는 본문처럼 '지키다'라는 뜻의 동사 '샤마르'(shamar)와 함께 쓰여서 사제들과 레위인들이 '복무', '직무', '임무' '책임'을 수행하였음을 표현하는 데 자주 사용된다(레위8,35; 민수1,53; 3,7; 8,25.26).그래서 본문을 직역하면 '그리고 너는 네 주 하느님의 직무를 지켜라'이다. 

이것은 임금의 직분이 사제나 레위인의 직분처럼 하느님께로부터 위임받은 것임을 암시하며 동시에 이스라엘의 왕직이 하느님께 대한 책임을 수행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말하자면 이스라엘의 왕직은 백성을 다스리는 것을 본질로 하는 다른 나라들의 왕직과는 다르게 하느님께 대한 책임 수행을 일차적 직무로 하여, 임금으로서의 성공과 실패 여부는 하느님께 대한 순종 여부에 달려 있었다.

따라서 신정(神政) 왕국인 이스라엘의 임금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하느님의 뜻과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별하고 그것에 순종하는 일이었다. 다윗이 솔로몬에게 본문에 나오는 유언을 앞세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고 다윗이 솔로몬에게 교훈한 이스라엘의 왕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비결은 주 하느님의 명령을 지켜 그분의 길을 걷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모세 법에 기록된 모든 말씀을 지키는 것임을  밝히고 있다. 

'하느님의 규정과 계명, 법규와 증언을 지켜라'에서 '지켜라'는 말은 '리쉬모르'(lishimor; to keep)인데, '파수꾼이 되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본래 사제나 레위인들의 임무와 관련된 표현인데(레위8,35; 18,30), 다윗은 지금 주님을 대리하는 통치자로 세워지는 솔로몬에게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신정(神政)왕국인 이스라엘의 임금이 지니고 있는 가장 핵심적이고 중요한 임무이다.

여기서 '규정'(huqqa; 후크카; statute; decree)법의 세부 규정을, '계명'(mitswah; 미츠와; command; commandment)하느님께서 지시하신 사항들을, '법규'(mishipat; 미쉬파트; law; judgement)는  징벌이 내포되어 있는 객관적인  법의 판결들과 조례들을, 그리고 '증언'(eduth; 에두트; testimony; requirement)은  하느님의 신성한 선언들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 의미에 있어서 미묘한 차이는 있지만, 이 용어들은 각기 다른 대상을  지시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 용어들은 유사한 어휘를 반복 사용함으로써 한 가지 의미를 강조하는 증언법적인 표현으로서 모두 '하느님의 말씀'을 지칭한다(신명5,31; 8,11; 시편119).

그리고 원문에는 하느님을 지칭하는 3인칭 대명사가 붙어 잇어서 '그분의 규정, 그분의 계명, 그분의 법규, 그분의 증언'으로 되어 있으며, 이 모두가 다 그분의 것 즉 하느님의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런데 본문에서 '규정과 계명, 법규와 증언'이 하느님의 소유임을 강조하는 이유바로 하느님의 규정과 계명, 법규와 증언이 하느님이 어떠하심을 가장 분명하고도 정확하게 드러내는 것이고, 하느님의 뜻을 사람으로 하여금 알게 하는 가장 확실한 도구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인간들은 하느님을 바로 섬기게 하고 기쁘게 해 드리게 하며 하느님께 나아갈 수 있게 하는, 하느님의 특별한 소유가 된 그분의 규정과 계명, 법규와 증언, 즉 하느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알고 철저하게 지켜야 하는 것이다.

'모세 법에 기록된 대로'

다윗이 말하는 규정과 계명, 법규와 증언을 요약해서 표현하면 바로 '모세 법'이다. '법', '율법'에 해당하는 '토라'(thorah)는 일차적으로 '교훈', '가르침'이라는 뜻이며, 구체적으로는 광야에서 방랑하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모세를 통해 주어진 하느님의 명령이었다.

이 '토라'는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인 의식주 모든 요소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서 참으로 인생의 안전한 길이며 하느님께서 허락하시는 모든 축복을 보장해 주는 것이었다(신명8장). 

과거에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생활의 성공 여부는 하느님의 '토라'에 대한 순종과 불순종에 의해 결정되었듯이, 마찬가지로 솔로몬의 성공와 실패 여부도 솔로몬의 '토라'에 대한 순종과 불순종에 의해 결정될 것이었다.

죽음을 눈앞에 둔 모세가 모압 땅에서 이스라엘에게 순종과 불순종의 길을 제시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했듯이(신명30,15-20) 다윗도 동일한 선택의 길을 솔로몬에게 제시하고 있다.

'그러면 네가 ~ 성공할 것이다'

다윗은 솔로몬에게 주 하느님의 명령을 지켜 그분의 길을 걸으며, 모세 법에 기록된 대로 하느님의 말씀을 성실하게 지킬 것을 당부하였다. 이제 이러한 조건이 충족될 때 솔로몬에게 내리는 축복이 무엇인지를 밝히고 있다.

여기서 '성공할 것이다'에 해당하는 '타스킬'(thaskil; you may prosper)'사칼'(sakal)의 사역형으로서 '번성하다', '형통하다', '성공하다'(2열왕18,7)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동사는 하느님의 말씀을 지키면 무조건 아무런 문제없이 모든 일이 순조롭게 이루어질 것이라는 뜻보다는 오히려 고난 혹은 시련 다음에 오는 궁극적 성공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러한 의미의 성공은 성경에서 약속하고 있는 하느님의 말씀의 순종에 따른 축복이며(신명28,1-14; 여호1,7.8; 루카10,28), 모든 믿음의 조상들의 삶을 통해서 드러나는 축복의 모습이다.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외아들 이사악을 바치는 고통을 감수한 아브라함(히브11,17), 정결에 대한 하느님의 말씀을 지킴으로써 감옥에 가야 했던 요셉(창세39,7-20), 하느님의 말씀을 따라 기름부음 받은 사울에게 손을 대지 않음으로써(1사무26,9-10) 계속해서 사울에게 쫓기며 많은 고난을 받아야 했던 다윗 등 모두가 고난을 통해 주어지는 이러한 궁극적 성공을 경험했던 것이다.

'무엇을 하든지'

원문은 '에트 콜 아셰르 타아세'(eth kol asher thaase; in all you do)인데, 직역하면 '네가 행하는 모든 것' 이다. 그리고 '하든지'에 해당하는 '타아세'(thaase)의 원형 '아사'(asa)'행하다', '실행하다'는 뜻 뿐만 아니라 '만들다', '(재산을)얻다', '(열매를)맺다'라는 뜻도 갖고 있다. 

따라서 이것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양식과 재산을 얻는 모든 행위를 포함한 삶의 전영역에서의 활동, 범죄를 제외한 모든 활동을 의미한다.

'어디로 가든지'

원문은 '웨에트 콜 아셰르 티프네 샴'(weeth kol asher thipneh sham; and wherever you go)이다. 여기서 '가든지'에 해당하는 '티프네'(thipneh)'돌이키다', '떠나다', '나오다'는 뜻을 가진 '파나'(panah)의 미완료형이다. 그리고 부사 '샴'(sham)은 새성경에서 번역은 안되었지만 '거기서'(there)라는 뜻이다.

이 두 단어 '티프네'(thipneh)와 '샴'(sham)이 본문처럼 함께 사용되면 '거기를 향해 돌이키다', '거기를 지향하다'라는 의미를 갖게 된다. 따라서 본문은 '그리고 네가 돌이켜서 지향하는 모든 것'으로 번역될 수 있다.

이것은 장소적인 개념 뿐만 아니라 인생의 방향까지도 포함하는 것이다. 그래서 앞의 '네가 무엇을 하든지'와 더불어 삶의 모든 행위와 인생의 방향 등 삶 전체를 가리키는 증언적 표현으로써, 결국 주님의 말씀대로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인생의 궁극적인 승리자가 되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연중 제4주간 목요일 복음 (마르6,7-13)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부르시어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고,  둘씩 짝지어 파견하기 시작하셨다." (7)

제자들에게 선교의 사명을 주시어 실제로 파견하여 복음 전파의 현장에서 일하게 하신 마태오 복음 6장 7절부터 13절을 기점으로 예수님의 갈릴래아 전기 활동이 끝나고 후기 갈릴래아 활동이 시작된다.

즉 예수님께서 고향 나자렛에서 배척당하신 이후에 복음 전파와 당신이 선택하신 열두 제자를 복음의 봉사자로 훈련시키기 위해 파견하신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배척당하심을 직접 눈으로 보면서 복음을 전하는 스승의 길이 얼마나  험난한 길인지를 느꼈을 것이다.

따라서 마태오 복음 6장 7-13절에 나오는 제자들에게 권한을 주시어 복음 전파자에게 필요한 교훈을 주시는 예수님의 가르침은 그들에게 반드시 요구되는 것이었다.

여기서 '부르시어'에 해당되는 '프로스칼레이타이'(proskaleitai; he called to him)원형 '프로스칼레오마이'(proskaleomai)'~을 향하여', 혹은 '~을 위하여'라는 뜻을 갖는 전치사 '프로스'(pros)와 '부르다', '초대하다'라는 뜻을 지닌 동사 '칼레오'(kaleo)의 합성어로서 '~로 초대하다'  혹은 '~을 위하여 부르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여기서는 천국 복음의 봉사자로 파견하기 위하여 부르셨다는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파견하기 시작하셨다'로 번역된 '아포스텔레인'(apostellein; sent out)의 원형 '아포스텔로'(apostello)'~로부터'라는 뜻으로 분리를 나타내는 전치사 '아포'(apo)와 '떠나다'는 뜻이 있는 '스텔로'(stello)의 합성어로서 '~로부터 분리되어 보내다'는  문자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그러니까 이 단어에는 '특별한 사명을 부여하여 파견한다'는 뜻을 지닌다.

그러니까 이 단어는 예수님을 따르는 많은 추종자들 가운데 열두 제자를 따로 분리하여 복음 전파의 봉사자로 파견한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이 단어의 명사형인 '아포스톨로스'(apostolos)가  그리스도의 사도를 의미한다는 데서도 확인된다.

특히 주목해야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둘씩 짝지어'에 해당하는 '뒤오 뒤오'(dyo dyo; two by two; '둘씩 둘씩')로 보내셨다는 것이다.

이것은 복음 전파에 있어서 상호간에 도움을 주는 협력을 강조하는 것이며, 동시에 복음을 듣는 자에게 신뢰감을 주기 위한 벙법이기도 하다.

또한 6장 11절에서 등장하는 복음을 거절하는 자들에 대한 증거와 관련해서 증인의 최소 인원을 확보하는 의미로도 이해할 수 있다.

유다인에게 있어서 '둘'증인의 수였으며, '둘'의 증언을 거부하는 것은 확실한 거부로 여겨질 수 있었던 것이다(민수35,30; 신명17,6; 마태18,16).

이 둘씩 짝지어 파견되는 전통은 초대 교회 선교 여행에서도 계속하여 이어져 갔다(사도15,22).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고'

문맥으로 보아 이 권한(권세)은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인간을 타락시키는 악령을 내쫓고 거룩함을 회복시키는 권세를 가리킨다.

그리고 여기서 마귀(악령)의 특징을 더럽다고 규정하는데, '더러운'으로 번역된 '아카타르톤'(akatharton; unclean)의 원형 '아카타르토스'(akathartos)는 부정 접두어 '아'(a)와 '정결하게 하다', '속죄하다'는 뜻을 가진 동사 '카타이로'(kathairo)의 합성어로서 '정결하지 않은', '속죄되지 않은', ' 불순한' 이라는 뜻을 나타내며, 성경에서는 하느님의 거룩한 신성(神性)과 접할 수 없는, 우상과 관련되어 있는 것들을 뜻한다(사도10,28; 1코린7,14).

특히 마르코 복음에서는 제자들이 쫓아내야 할 '더러운 영들'은 단순히 하느님의 적대자로 존재하는 악령(마귀) 자체만이 아니라, 그러한 악령의 활동에 의해서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악하고 더러운 모든 영적 현상과 인간 마음의 상태까지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주시고'에 해당하는 '에디두'(edidou; gave)는 원형 '디도미'(didomi)의 미완료 과거 시제이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12제자들 뿐만 아니라 당신을 따르는 모든 제자들에게 세상 끝날까지 그러한 권한(권세)으르 지속적으로 계속해서 부여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이것은 제자들은 주님으로부터 일회성이 아니라, 필요할 때마다 계속해서 요청해야 하며, 또한 계속적으로 부여받아 사용해야 함을 드러낸다.


[성화편지지]12제자 파견 안수


<예수님의 명령>송영진 모세 신부


"그러면서 길을 떠날 때에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빵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고 명령하시고, 신발은 신되 옷도 두 벌은 껴입지 말라고 이르셨다(마르 6,7-9).


예수님께서 열두 사도를 파견하시면서 아무것도 가져가지 말고 '빈손으로' 가라고 명령하십니다. '빈손'을 '빈 마음'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물질적으로는 '빈 마음'으로, 그러나 영적으로는 '하느님으로 가득 찬 마음'으로 가라는 명령이라는 것입니다.
세속적인 물질에 의지하려는 마음이 커질수록 하느님에 대한 믿음은 줄어들게 됩니다.
따라서 이 명령은 선교활동 지침일 뿐만 아니라 신앙생활 전반에 대한 지침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명령은 "오직 '복음만' 가지고 가라." 라는 명령이기도 합니다.
열두 사도가 가서 해야 할 일은 복음을 선포하는(전해 주는) 일입니다. 사람들에게 돈을 주려고 가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베드로 사도가 어떤 장애자를 고쳐 줄 때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은도 금도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진 것을 당신에게 주겠습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합니다. 일어나 걸으시오(사도 3,6)."
베드로 사도에게는 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돈을 줄 수가 없습니다.


베드로 사도의 말에서 '내가 가진 것'은 "예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에게 당신의 권한과 권능을 위임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에게 세속의 돈이나 권력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께서 주신 능력으로 그 장애자를 고쳐 주는데, 그것은 자기가 받은 예수님의 은총을 이웃에게 나누어 준 일입니다.


지금 예수님의 명령을 "불우이웃 돕기나 자선은 하지 마라. 복음 선포 활동만 하여라."로 오해하면 안 됩니다. 사랑 실천은 언제나 어디서나 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사랑 실천은 '돈으로' 하는 일이 아니라, '사랑으로' 하는 일입니다.


(내가 뭔가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진심으로, 온전히 사랑과 나눔을 실천한다면, 나는 결국 '빈손'이 될 것입니다. 그 '빈손'은 하느님께서 채워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나의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사랑은, 하느님께서 주신 것을 이웃과 나누는 일입니다.
'나의 것'이라고 생각하면, 나누어 줄 때 아까워하거나 준 다음에 생색을 내게 될 것입니다.)


복음을 선포하는 일은, 즉 복음의 은총을 전해 주는 일은 '말로만' 해도 되는 일이 아닙니다. 실제로 '복음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빈손'으로 가라는 명령은, 말로만 복음을 전하지 말고 '삶'으로 전하라는 명령이 됩니다.
'삶'은 복음적이지 않으면서 말로만 복음을 전한다면,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만일에 물질적으로 풍족한 생활을 하면서, 그리고 그 생활에 만족하면서,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루카 6,20)." 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전한다면, 거짓말을 하는 것이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거짓말로 만들어버리는 일이 됩니다.)


복음 선포는 선교사 직무를 맡은 사람들만의 일이 아닙니다. 모든 신앙인은 세상 속에서 각자 선교사가 되어야 합니다. 물론 생업을 포기하고 선교활동만 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자기가 지금 있는 곳에서 각자 자신의 '삶으로' 복음을 고백하고 증언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박해 때의 신앙인들은 사실상 선교 활동을 하지 못했지만, '삶'으로 증언하는 신앙생활은 했습니다. 그 신앙생활 자체가 복음 선포가 되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말씀을 선포하십시오.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꾸준히 계속하십시오(2티모 4,2)." 능력이 부족하다고 걱정하지 말고, 여건이 안 된다고 핑계 대지 말고, 남에게만 미루지 말고, 꾸준히 복음을 증언해야 합니다.
자신의 '삶'으로 믿음을 고백하고 증언하는 일은 능력이나 여건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어디에서나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그 고장을 떠날 때까지 그 집에 머물러라(마르 6,10)."

이 말씀은, "주는 대로 먹어라." 라는 명령입니다. 복음을 선포하는 일은 호의호식하기 위한 일이 아닙니다.
여기서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은
"어떤 집에서 너희를 맞아들여서 숙식을 제공하거든"인데, "하느님께서 착한 사람을 통해서 너희를 먹여 주신다면"이라는 뜻입니다.
그 집이 부잣집일 수도 있고, 가난한 집일 수도 있는데,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은혜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이 중요할 뿐입니다. "그 집에 머물러라."는 "더 좋은 대접을 받으려고 옮겨 가지 마라."입니다.


"또한 어느 곳이든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고 너희 말도 듣지 않으면,그곳을 떠날 때에 그들에게 보이는 증거로 너희 발밑의 먼지를 털어 버려라(마르 6,11)."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는 '복음 선포'가 '구원 선포'가 되지만,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심판 선포'가 됩니다.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는 '기쁜 소식'이 되지만,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무서운 소식'이 됩니다.)
발밑의 먼지를 털어 버리는 행동은, 믿지 않고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심판 때에
먼지처럼 멸망하게 된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복음을 선포했는데도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 책임은 선포한 사람 쪽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 쪽에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면서 복음 선포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이 생긴다면, 그것은 전하지 않은 신앙인들 쪽의 책임입니다.


오늘의 묵상

다음 주간에 사순 시기가 시작되면 우리가 묵상하는 열왕기 독서가 중단되므로, 솔로몬 이야기가 어떻게 마무리되는지 미리 살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다윗이 세상을 떠나면서 솔로몬에게 유언을 남깁니다. 다윗이 왕조를 세운 지 어언 40년이 흘렀으니, 장차 솔로몬이 해야 할 일이 많겠지요. 성전도 지어야 하고 왕궁도 지어야 하며 국력을 한창 키워 가야 합니다. 그런데 다윗은, 이를 위해서 솔로몬이 우선적으로 꼭 해야 할 일은, 금과 은을 모으고 군사력을 증진시키는 것이 아니라, 힘을 내서 하느님의 계명을 잘 지켜야 한다고 훈계합니다.


모세가 세상을 떠나고 여호수아가 통수권을 이어받을 때, 하느님께서 여호수아에게 하신 말씀도 거의 똑같았습니다(여호 1,7-8 참조). 강을 건너가서 영토를 정복한 다음, 그것을 지파들에게 나누어 줄 장본인이 바로 여호수아요 이것이 그의 역할이지만, 그가 해야 할 일은 마음을 다해 모세의 율법을 지켜 그 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성공할 것이다.”라는 이 말씀을 솔로몬과 마찬가지로 여호수아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이 외적으로는 힘을 키워 이스라엘을 막강한 왕국으로 성장시켰지만, 하느님께는 충실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가서는 “그는 자기 아버지 다윗과 달리, 나의 길을 걷지 않고, 내 눈에 드는 옳은 일을 하지도 않았으며…….”(1열왕 11,33)라는 평가를 받게 됩니다. 열심히 노력은 하였지만, 엉뚱한 데에 심혈을 기울인 셈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파견하시며, 보따리를 많이 준비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솔로몬처럼 우리도 보따리만 잔뜩 마련하고서는, 그것에 의지하면서 복음을 전하다가 그르치는 잘못을 범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이해됩니다. 우리 힘과 복음 선포의 원천은 우리를 파견하시는 분과, 그분의 말씀에 충성하는 데에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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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4주간토요일] 가엾은 마음 (마르6,30~34)16.02.06조회 48[연중4주간 금요일]세례자요한의 죽음(마르코 6,14-29)16.02.05조회 47[연중 제4주간 목요일] 파견 (마르 6,7-13)16.02.04조회 113[연중 제4주간 수요일]고향방문 (마르 6,1-6)16.02.03조회 129[2월 2일 화요일] 주님 봉헌 축일 (루카2,22-40)16.02.02조회 105[연중 제4주간 월요일] 마귀와 돼지떼 (마르코 5,1-20)16.02.01조회 105[연중 제3주간 토요일] 잔잔해진 호수 (마르코 4,35-41)16.01.30조회 52[연중 제3주간 금요일]겨자씨의 비유 (마르코 4,26-34)16.01.29조회 89[연중3주간 목요일]등불의 비유 (마르코 4,21-25)16.01.28조회 651[연중 제3주간 수요일]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마르코 4,1-20)16.01.27조회 462[성 티모테오와 성 티토 주교 기념일] (2016. 1. 26. 화)(루카 10,1-9)16.01.25조회 196[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복음선포 (마르 16,15-18)16.01.25조회 883[연중 제2주간 토요일]예수님께서 미쳤다는 소문 (마르 3,20-21)16.01.23조회 66[연중 제2주간 금요일] 열두사도 (마르 3,13-19)16.01.22조회 50[연중 제2주간 목요일](2016. 1. 21. 목)(마르 3,7-12)16.01.20조회 75[연중 제2주간 수요일]오그라든 손 (마르 3,1-6)16.01.20조회 49[연중 제2주간 화요일] 안식일의 주인 (마르 2,23-28)16.01.19조회 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