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4.[연중 제1주간 목요일]나병환자 치유 (마르 1,40-45)

2016. 1. 13. 오후 6:3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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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 14.[연중 제1주간 목요일]나병환자 치유 (마르 1,40-45)



이스라엘은 필리스티아인들과 전쟁을 하다가 불리해지자 하느님의 궤를 모셔 온다. 그러나 전투에 패배하여 궤를 빼앗기고, 엘리의 두 아들 호프니와 피느하스도 전사한다. 하느님께서 사무엘을 통하여 미리 말씀하신 대로 된 것이다.(사무엘상 4,1ㄴ-11)
그 무렵 필리스티아인들이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싸우려고 모여들었다. 1 이스라엘은 필리스티아인들과 싸우러 나가 에벤 에제르에 진을 치고, 필리스티아인들은 아펙에 진을 쳤다. 2 필리스티아인들은 전열을 갖추고 이스라엘에게 맞섰다. 싸움이 커지면서 이스라엘은 필리스티아인들에게 패배하였다. 필리스티아인들은 벌판의 전선에서 이스라엘 군사를 사천 명가량이나 죽였다.
3 군사들이 진영으로 돌아오자 이스라엘의 원로들이 말하였다. “주님께서 어찌하여 오늘 필리스티아인들 앞에서 우리를 치셨을까? 실로에서 주님의 계약 궤를 모셔 옵시다.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에 오시어 원수들 손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도록 합시다.”
4 그리하여 백성은 실로에 사람들을 보내어, 거기에서 커룹들 위에 좌정하신 만군의 주님의 계약 궤를 모셔 왔다. 엘리의 두 아들 호프니와 피느하스도 하느님의 계약 궤와 함께 왔다. 5 주님의 계약 궤가 진영에 도착하자, 온 이스라엘은 땅이 뒤흔들리도록 큰 함성을 올렸다.
6 필리스티아인들이 이 큰 함성을 듣고, “히브리인들의 진영에서 저런 함성이 들리다니 무슨 까닭일까?” 하고 묻다가, 주님의 궤가 진영에 도착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7 필리스티아인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말하였다. “그 진영에 신이 도착했다.” 그리고 그들은 이렇게 외쳤다. “우리는 망했다! 이런 일은 일찍이 없었는데. 8 우리는 망했다! 누가 저 강력한 신의 손에서 우리를 구원하겠는가? 저 신은 광야에서 갖가지 재앙으로 이집트인들을 친 신이 아니냐! 9 그러니 필리스티아인들아, 사나이답게 힘을 내어라. 히브리인들이 너희를 섬긴 것처럼 너희가 그들을 섬기지 않으려거든, 사나이답게 싸워라.”
10 필리스티아인들이 이렇게 싸우자, 이스라엘은 패배하여 저마다 자기 천막으로 도망쳤다. 이리하여 대살육이 벌어졌는데, 이스라엘군은 보병이 삼만이나 쓰러졌으며, 11 하느님의 궤도 빼앗기고 엘리의 두 아들 호프니와 피느하스도 죽었다.


시편 44(43),10-11.14-15.24-25(◎ 27ㄴ 참조)
◎ 주님, 당신 자애로 저희를 구원하소서.
○ 당신은 저희를 버리시고 치욕스럽게 하셨나이다. 저희 군대와 함께 출정하지 않으셨나이다. 당신이 저희를 적에게 쫓기게 하시어, 저희를 미워하는 자들이 노략질하였나이다. ◎
○ 당신은 저희를 이웃에 우셋거리로, 주위에 비웃음과 놀림감으로 삼으셨나이다. 저희를 민족들의 이야깃거리로, 겨레들의 조솟거리로 삼으셨나이다. ◎
○ 깨어나소서, 주님, 어찌하여 주무시나이까? 일어나소서, 저희를 영영 버리지 마소서! 어찌하여 당신 얼굴을 감추시나이까? 어찌하여 가련하고 비참한 저희를 잊으시나이까? ◎    

  

예수님께서는 나병 환자를 가엾게 여기시어 그를 깨끗하게 치유해 주신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 일에 대하여 말하지 말라고 엄명하시지만, 그는 이 이야기를 널리 퍼뜨린다. 사람들은 사방에서 예수님께 모여든다.(마르코 1,40-45)
그때에 40 어떤 나병 환자가 예수님께 와서 도움을 청하였다. 그가 무릎을 꿇고 이렇게 말하였다.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41 예수님께서 가엾은 마음이 드셔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42 그러자 바로 나병이 가시고 그가 깨끗하게 되었다.
43 예수님께서는 그를 곧 돌려보내시며 단단히 이르셨다. 44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누구에게든 아무 말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다만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고, 네가 깨끗해진 것과 관련하여 모세가 명령한 예물을 바쳐, 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여라.”
45 그러나 그는 떠나가서 이 이야기를 널리 알리고 퍼뜨리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더 이상 드러나게 고을로 들어가지 못하시고, 바깥 외딴곳에 머무르셨다. 그래도 사람들은 사방에서 그분께 모여들었다.


 연중 제1주간 목요일 (1사무 4,1ㄴ-11)

 

오늘 독서는 이스라엘이 필리스티안인들과의 싸움에서 패하고, 주님의 계약 궤를 빼앗기는 이야기이다. 

엘리 사제의 두 아들, 호프니와 피느하스의 범죄로 인해 하느님의 심판이 시작되고, 그 결과 주님의 궤를 빼앗기게 된다. 그들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직분을 소홀히하는 범죄를 저질렀다.

사제의 신분으로 하느님께 드리는 제사를 경멸했고, 하느님께 드려야 할 제물을 먼저 빼앗아 먹었으며,  만남의 천막 어귀에서 봉사하는 여인들과 음란한 죄를 범했다.(1사무 2,11-17.22-25) 그들은 아버지 엘리의 말도 듣지 않았던 것이다.

"사람이 사람에게 죄를 지으면 하느님께서 중재하여 주시지만,  사람이 주님께 죄를 지으면 누가 그를 위해 빌어 주겠느냐?  그러나 그들은 아버지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주님께서 그들을 죽이실 뜻을 품으셨기 때문이다." (25)

이스라엘은 이제 에벤 에베르 전투에서 비참하게 패배하고, 군사가 사천명 가량이나 죽었다.(1-2) 그래서 군사들이 진영으로 돌아오자, 이스라엘의 원로들이 패배 원인에 대한 반응을 나타내고 대책을 내놓는다.

이스라엘의 원로들은 패배가 전혀 뜻밖이라는 탄식조의 발언을 하며, 필리스티아인들에 비해 병력이나 군비면에서 전혀 손색이 없었음에도, 무참하게 패배한 데에는 분명히 다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엘리 사제와 그 아들들에 대한 심판이 전쟁의 패배로 나타났는데도, 그들은 하느님께도 책임이 있다는 말투를 드러낸다.

 "주님께서 어찌하여 오늘 필리스티아인들 앞에서 우리를 치셨을까?" (3)

이들은 지금 전쟁에서 패한 이유를 정확히 모르고 있다. 이들은 하느님은 무조건 전쟁에서 이기게 하시고, 복을 주시는 분으로만 생각하고 있었을 뿐, 자신들의 잘못에 대해 심판하시는 분임을 모르고 있다.  하느님은 사랑의 하느님인 동시에 정의의 하느님이신대도 말이다.

바로 <실로>에 있는 주님의 <계약 궤>를 진중으로 가져오자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전쟁에서 패한 원인이 주님의 <계약 궤>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주님의 <계약 궤>만 있으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에 오시어 원수들 손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도록 합시다." (3-4)

그런데, 그 <계약 궤>를 지키고 있는 두 사람이 바로 엘리의 두 아들 호프니와 피느하스였다. 하느님의 심판의 대상인 그들이 거룩한 하느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계약 궤>를 지킨다는 것은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주님의 계약 궤가 진영에 도착하자, 온 이스라엘은 땅이 뒤흔들리도록 큰 함성을 올렸다." (5)

이제는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확신에서 나온 함성이다. 그러나 이들은 큰 착각을 하고 있다. 왜냐하면, 주님이 떠나버린 <계약 궤>는 아무런 능력이 없는 상징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필리스티아인들은 히브리인들의 진영에서의 함성 소리를 듣고, 주님의 궤가 진영에 도착한 사실을 알게 되어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필리스티아인들은 "우리는 망했다! 이런 일은 일찌기 없었는데~" (8) 라고 말한다.

이 말은, 이스라엘이 전쟁 중에 <계약 궤>를 가지고 온 것이 처음이라는 뜻도 되고, 필리스티아인들이 처음으로 전쟁 중에 공포를 느꼈다는 의미도 된다. 그리하여 필리스티아인들은 히브리인들의 포로와 종이 되지 않기 위해서  "사나이답게 싸우자"고 격려하며 대담하게 싸워서, 이스라엘의 보명 십만명을 죽이고, 하느님의 궤도 빼앗는다. (9-11)

우리 주님께서는 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심으로, 어떤 장소나 어떤 상징적인 물건에 구속받지 않으신다.  주님의 임재가 떠난 <계약 궤>는, 아무런 힘도 소용도 없는 나무 궤짝에 지나지 않는다. 범죄한 백성이 회개하지 않으면, 주님은 전혀 방패와 도움이 되어 주시지 않는다.

이 전쟁에서 중요한 사건은 바로 엘리의 두 아들이 죽임을 당한 것이다. 이것은 하느님의 징계이다. 영적으로 타락한 이스라엘 대한 징계인 동시에, 엘리 가문에 대한 심판의 예언이 성취된 것을 보여준다. (1사무 2,34)

<계약 궤>는 하느님이 임재하신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그들은 <계약 궤>자체에 어떤 능력이 있는 것으로 착각하여 그 상징이 의미하고 있는 본질을 바로 알지 못함으로,

미신적인 신앙으로 흘려 버렸다. 무조건 <계약 궤>만 있으면, 거기에서 능력이 나와서 이기는 것으로 착각하고 오해했던 것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이 있어야 하고, 동시에 하느님의 놀라운 특권을 가진 이스라엘이 그 특권을 누리려면, 그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만 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할 죄는 그대로 품은 채, <계약 궤>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으로 착각한 것이다. <계약 궤>가 진중에 도착한 것을 보고, 함성을 지르는 것은 소용이 없다. 우리 주님은 겉이 아니라 속(중심)을 보시기 때문이다.

오늘날도, 눈에 보이는 성전이 화려하고 아름답게 보이면 무엇하는가? 그 성전 안에, 진정으로 살아계신 하느님께서 임재하시는가? 가 중요하다. 겉만 잘 포장된 위선적인 신앙인 말고,  인격의 중심에 항상 주님을 모신 자녀, 겉과 속이 같은, 진실하고 거룩한 주님의 자녀로서 살아가자.



연중 제1주간 목요일 복음 (마르1,40~45)

"누구에게든 아무 말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다만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고, 네가 깨끗해진 것과 관련하여 모세가 명령한 예물을 바쳐, 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여라."  (44)

여기서 '모세가 명령한 예물'이란, 모세의 율법에 부정한 이가 정결함을 입었을 경우에 사제에게 가서 바쳐야 할 제물들을 가리킨다.

정결례에 관해 기록된 레위기의 규정을 보면, 이것은 살아있는 정결한 새 두마리, 향백나무, 다홍실, 우슬초였고(레위14,4), 다시 여드레째 되는 날에 바쳐야 하는 것으로는 흠없는 어린 숫양 두 마리와 일 년 된 흠없는 어린 암양 한 마리, 곡식 제물로 바칠 기름 섞은 고운 곡식 가루 십분의 삼 에파와 기름 한 록이었다(레위14,10).

또한 마르코 복음 1장 44절 전반부에 기록된 것처럼, 그 제물을 바치기 전에 자신이 병이 나았음을 먼저 사제에게 보이고 정결한 이로 선언을 받아야 한다(레위13,16.17).

사실 예수님께서는 제사가 바쳐지던 성전보다 더 크신 분이시고(마태12,6), 당신 자신이 임금같은 대사제인 멜키체덱의 반열을 따르신 대사제이시므로, 반드시 구약의 제의적 행위를 필요로 했던 것은 아니다(히브6,20).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치유받은 나병 환자에게 율법의 규정을 준수하도록 명령하신 것은, 당신이 율법을 폐지하거나 부정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율법을  온전케 하고 완성하러 오셨다(마태5,17)는 사실을 확인하여 보여 준다.

그러나 이것은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치유의 완전성을 보여 준다. 당시 나병 환자의 완치를 공적으로 확인해 주던 사제에게 보여도 아무런 하자가 없을 정도로 예수님의 치유는 완벽한 것이었다.

그래서 이 환자는 적법한 절차를 거쳐 유대인 공동체 안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이것은 장차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신뢰하는 우리가 적법한 절차를 거쳐 아무런 하자없이 그리스도의 왕국에 당당하게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예표하는 것이다.


주님 나병 환자를 치유하시다 (1)

<내가 원하는 것,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 송영진 모세 신부


"어떤 나병 환자가 예수님께 와서 도움을 청하였다.
그가 무릎을 꿇고 이렇게 말하였다.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마르 1,40)"
여기서 '스승님'이라고 번역되어 있는 말은 원문에는 '당신'으로 되어 있는데,
'스승님'보다는 '주님'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입니다.
지금 그 병자는 스승이신 분에게 온 것이 아니라
주님이신 예수님께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무릎을 꿇고'는 그 병자의 간절한 심정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하고자 하시면'이라는 말은,
예수님의 능력은 믿고 있지만, 예수님의 의향이 어떤지는 모르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깨끗하다.'는 '정결하다.'인데,
병의 치유와 병에 걸리기 전의 '삶으로' 복귀하는 것을 모두 가리키는 말입니다.
당시의 나병 환자는 부정한 사람으로 취급되어서
인간 세상에서 완전히 격리되어서 살았습니다.
그는 지금 병을 고치는 것뿐만 아니라,
가정과 사회와 종교 공동체로 되돌아갈 수 있게 되기를 간절하게 바라고 있습니다.


뜻에 따라서 병자의 말을 "저는 깨끗해지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그렇게 해 주실 수 있다고 믿습니다.
주님께서도 제가 깨끗하게 되기를 원하십니까?"로 바꿀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엾은 마음이 드셔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그러자 바로 나병이 가시고 그가 깨끗하게 되었다(마르 1,41-42)."
여기서 '가엾은 마음'이라는 말은, 예수님의 자비로운 마음을 나타내고,
또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고쳐 주신 일은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신 일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떤 병자 한 사람만 가엾게 여기신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다 가엾게 여기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이다(마르 6,34)."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라는 말은 예수님의 사랑을 나타냅니다.
인간 세상은 그 병자를 멀리 밀어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병자를 사랑으로 만져 주셨습니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를 원문대로 직역하면,
"나는 원한다. 깨끗해져라."입니다.
(병자가 말한 '깨끗함'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깨끗함'은 다릅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주기를 원하신 '깨끗함'은 '전인적인 구원'을 뜻합니다.
물론 병의 치유도 포함해서.)
이 말은, 병자가 청하지 않아도 예수님께서 원하신 일이니까
병을 고쳐 주신다는 것을 나타내기도 하고,
사람들을 구원하는 일은 원래 예수님께서 원하신 일이라는 것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사람들 쪽에서 청하지 않았는데도 예수님께서 자비를 베풀어 주신 일이 많습니다.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쳐 주신 일(마르 3,5),
어떤 과부의 아들을 살려 주신 일(루카 7,14),
등 굽은 여자를 고쳐 주신 일(루카 13,12),
수종을 앓는 사람을 고쳐 주신 일(루카 14,4),
벳자타 못 가에서 병자를 고쳐 주신 일(요한 5,8),
어떤 눈먼 사람을 고쳐 주신 일(요한 9,6).


"그러자 바로 나병이 가시고 그가 깨끗하게 되었다." 라는 말은
예수님의 권능을 나타냅니다.
예수님은 한 말씀, 한 동작으로 병을 고쳐 주실 수 있는 분입니다.
무슨 복잡한 예식이나 절차 같은 것은 필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병자를 고쳐 주신 다음에 사제에게 가라고 하시면서,
율법에 정해져 있는 대로 정결예식을 하라고 말씀하십니다(마르 1,44).
이것은 그 병자 자신이 바란 대로 인간 세상에 복귀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원래의 생활로 돌아가려면 사제의 공적 확인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사제에게도) 아무 말도 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단단히, 즉 엄하게 이르십니다(마르 1,43).
이 지시는, 예수님에 관한 말을 하지 말라는 지시입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오해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병을 잘 고치는 의사'로만 생각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세상에 오셨는데,
사람들은 주시는 구원은 안 받으려고 하면서 몸의 병만 고치려고 했고,
부귀영화나 출세 같은 세속적인 것만 원했고...)


아마도 그 병자는 예수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사제에게 가서 공적 확인을 받았을 것이고,
그리고 인간 세상으로 되돌아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의 지시를 어기고
예수님에 관한 소문을 널리 퍼뜨렸습니다(마르 1,45).
우리는 그 병자가 '너무 기뻐서' 그렇게 했을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지시를 어긴 것은 잘못한 일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그의 믿음이 부족했음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에 병의 치유를 청했지만,
몸의 병을 고친 것에 대해서만 만족했다는 점에서,
또 예수님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의 믿음은 '부족한 믿음'입니다.


그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해 드리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그는, 그가 받기를 예수님께서 원하신 '전인적인 구원'은
생각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주시는데도 안 받으면, 결국 못 받게 됩니다.
지금 우리는 어떤가?
주시는 것을 잘 받고 있는가?
(아니면, 주시지 않으실 것만 달라고 고집스럽게 청하는 것은 아닌가?)
또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잘 해 드리고 있는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었다는 것에만 만족한 다음에는
예수님을 잊어버리는 일은 없는가?


 나병 환자를 치유하는 그리스도, 14세기 , 아르메니아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당신께서 행하신 치유에 관한 소문을 듣고 몰려드는 것을 원치 않으시는 게 분명합니다. 사람들 사이에 소문이 퍼지기 시작하자 오히려 그분께서는 드러나게 고을에 들어가시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기적에 대하여 발설하지 못하게 하시는 것은, 기적 이야기를 단순히 듣기만 하는 사람들은 당신이 누구신지를 진정으로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저 놀라운 능력을 가진 분으로만 생각하고 병을 고치려고, 빵을 얻으려고만 당신을 찾아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시기 전까지는, 그분이 누구신지 언제나 잘못 이해될 위험이 있습니다.
오늘 독서는 이스라엘이 만군의 주님의 계약 궤를 모시고 필리스티아 사람들과 전쟁을 하였지만, 크게 패배하였을 뿐 아니라 그 궤마저 빼앗기는 불운을 겪었음을 전합니다. 주님께서 이 계약의 궤 옥좌에서 이스라엘에게 승리와 구원을 베푸시리라고 그들은 믿고 기대하였지만, 승리는커녕 완전 패배였습니다. 실수로라도 그 궤를 만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 당시 계약 궤에 대한 일반 통념이었는데, 그들은 기복 신앙에서 이러한 돌출 행동을 하였습니다.
계약의 궤를 가져오면 전투에 이기리라고 생각했던 이스라엘 사람들의 믿음은 어쩌면 그렇게 ‘잘못 이해한’ 신앙이었습니다. 하느님의 궤가 마치 마법의 효능을 지니기나 한 것처럼, 그 궤를 모셔 오면 주님께서 적군을 물리쳐 주시리라고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어떻게 하셔야 하실 것인지, 그분의 뜻을 자기들이 좌지우지한 셈이지요. 하느님께 바치는 제물을 마음대로 빼앗던 엘리의 아들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1사무 2,11-17 참조). 그들은 하느님의 벌을 받아 죽고 맙니다.
믿음이, 계약의 궤가, 하느님의 현존이 나를 위한 도구가 될 때 그것은 믿음이 아니라 하느님에 대한 모독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섬겨야 하겠습니다.


주님 나병 환자를 치유하시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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