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 1.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예수 (루카 2,16-21)

2015. 12. 31. 오후 10:50:52

글자

[2016. 1. 1.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예수 (루카 2,16-21)

1월 1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세계 평화의 날)

 교회는 해마다 1월 1일을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로 지내고 있다. 성모 마리아께 ‘하느님의 어머니’를 뜻하는 ‘천주의 성모’라는 칭호를 공식적으로 부여한 것은 에페소 공의회(431년)이다. 지역마다 서로 다른 날짜에 기념해 오던 이 축일은 에페소 공의회 1500주년인 1931년부터 세계 교회의 보편 축일이 되었고, 1970년부터 모든 교회에서 해마다 1월 1일에 지내고 있다. 또한 바오로 6세 교황은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을 1968년부터 세계 평화를 위하여 기도하는 ‘세계 평화의 날’로 정하였다. 이에 따라 교회는 평화의 어머니이신 마리아를 통하여 하느님께 평화의 선물을 청한다.


민수기는 사제가 어떻게 백성을 축복해야 하는지 알려 준다. 하느님께서 당신 얼굴을 우리에게 보여 주시는 것, 곧 그분께서 함께 계심이 모든 축복의 원천이다.(민수 6,22-27)
22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23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일러라. ‘너희는 이렇게 말하면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축복하여라. 24 ′주님께서 그대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대를 지켜 주시리라. 25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비추시고, 그대에게 은혜를 베푸시리라. 26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들어 보이시고, 그대에게 평화를 베푸시리라.′’ 27 그들이 이렇게 이스라엘 자손들 위로 나의 이름을 부르면,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겠다.”


시편 67(66),2-3.5.6과 8(◎ 2ㄱ)
◎ 하느님은 자비를 베푸시고 저희에게 복을 내리소서.
○ 하느님은 자비를 베푸시고 저희에게 복을 내리소서. 당신 얼굴을 저희에게 비추소서. 당신의 길을 세상이 알고, 당신의 구원을 만민이 알게 하소서. ◎
○ 당신이 민족들을 올바로 심판하시고, 세상의 겨레들을 이끄시니, 겨레들이 기뻐하고 환호하리이다. ◎
○ 하느님, 민족들이 당신을 찬송하게 하소서. 모든 민족들이 당신을 찬송하게 하소서. 하느님은 우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 세상 끝 모든 곳이 그분을 경외하리라.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을 여인에게서 태어나게 하셨다고 전한다. 참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심으로써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었고,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 되는 자격을 얻게 되었다.(갈라티아 4,4-7)
형제 여러분, 4 때가 차자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을 보내시어 여인에게서 태어나 율법 아래 놓이게 하셨습니다. 5 율법 아래 있는 이들을 속량하시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 되는 자격을 얻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6 진정 여러분이 자녀이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의 영을 우리 마음 안에 보내 주셨습니다. 그 영께서 “아빠! 아버지!” 하고 외치고 계십니다. 7 그러므로 그대는 더 이상 종이 아니라 자녀입니다. 그리고 자녀라면 하느님께서 세워 주신 상속자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셨을 때 목자들은 베들레헴으로 찾아가, 이 아기가 우리의 구원자시라는 천사의 말을 전한다. 마리아는 그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한다.(루카 2,16-21)
그때에 목자들이 베들레헴으로 16 서둘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운 아기를 찾아냈다.
17 목자들은 아기를 보고 나서, 그 아기에 관하여 들은 말을 알려 주었다. 18 그것을 들은 이들은 모두 목자들이 자기들에게 전한 말에 놀라워하였다. 19 그러나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 20 목자들은 천사가 자기들에게 말한 대로 듣고 본 모든 것에 대하여 하느님을 찬양하고 찬미하며 돌아갔다. 21 여드레가 차서 아기에게 할례를 베풀게 되자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였다. 그것은 아기가 잉태되기 전에 천사가 일러 준 이름이었다.


 1월 1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제1독서 (민수6,22-27)

◀구약의 사제(제사장)의 임무▶ 

① 사제는 <(번)제단>에서 자신과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속죄하고 성결케 하는 일을 행했다(레위16,18~19). (번)제단은 영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갈바리아산 십자가 제단을 의미한다. 번제단의 인간의 죄 대신에 바쳐지는 동물을 통한 속죄 제사의 희생은  신약의 무죄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인류의 죄를 대신한 구속 성혈의 공로를 의미한다. 

② 사제는 <물두멍>에서 수족을 닦는 일을 행했다(탈출30,19~21). <물두멍>의 씻음은 영적으로 회개와 성령을 의미한다. 사제는 날마다 자신을 씻어야 하고, 씻어야만 <성소>에 들어가 봉사를 할 수 있고 씻지 않으면 죽었다. 물두멍에서 씻는 행위는 세례성사와 고백성사를 의미한다.

③ 사제는 <제사상>에 <제사빵>을 놓아 두어야 했다 (탈출 25,30 ; 레위24,6~8). 사제는 성소안에 있는 제사상에 매 안식일마다 12개(이스라엘 12지파를 상징)를 올려 놓아야 한다. <제사빵>은 영적으로 영원한 생명의 빵(성체; 요한복음 6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④ 사제는 <등잔대>(탈출25,31~40)에 불이 꺼지지 않게 점검하고, 정리하는 일을 했다(탈출30,7~8). 올리브유의 순결한 기름으로 등불을 켜고, 저녁부터 아침까지 사이 사이 점검하고,  불이 꺼지지 않도록 하는 사명이 있었다.  이 빛은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영혼의 양식인 말씀을 상징한다. 시편 119장 105절에 "당신 말씀은 제 발에 등불, 저의 길에 빛입니다."라고 되어 있다. 

⑤ 사제는 <분향 제단>에 향을 피워야 했다(탈출30,7~8). 사제는 아침 마다 향기로운 향을, <등>을 정리(손질)할 때와 저녁(해거름)에 등을 켤 때도 피워야 한다. 사제는 분향 제단에서 향이 끊이지 않고 타오르도록 해야 할 책임이 있는데 향을 피우는 것은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를 의미한다.

묵시록 5장 8절에는 "향이 가득 담긴 금 대접들은 성도들의 기도입니다."라고 계시되어 있으며, 묵시록 8장 4절에는 "그리하여 천사의 손에서 향 연기가 성도들의 기도와 함께 하느님 앞으로 올라갔습니다."라고 나온다.

 

◀구약의 대사제(대제사장)의 임무▶ 

① 지성소에서 속죄하는 일을 행했다. 1년에 한 번 대 속죄일인 7월 10일에 지성소에 들어가서 자신과 온 백성들의 지은 죄를 속죄하는 의식의 임무를 담당했다(레위16,17 ; 히브9,7). 

② 판결하는 일을 했다(신명21,5). 

③ 만남의 천막안의 모든 일을 총지휘했다(민수3,21~37 ; 4,46~48).

 ④ 하느님의 말씀(율법)을 가르치는 일을 했다(2역대15,3 ; 신명6,6~7 ; 8,3).대사제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하느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실천하여 살 수 있도록 가르치는 임무를 담당했다. 

⑤ 대사제는 대를 이어 종신토록 직무를 담당했다. 

⑥ 대사제는 축복하는 일을 하였다. "주 너희 하느님께서 그들을(레위의 자손 사제들) 선택하시어 당신을 섬기고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게 하셨으며, 그들의 판결에 따라 모든 송사와 폭력 사건이 해결될 것이기 때문이다." (신명21,5) 

대사제는 모든 백성들에게 하느님의 축복을 빌어 주어야 한다. 주님께서 대사제 아론과 그의 아들들 사제들에게 일러,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위해 축복을 빌라고 하셨다.

그 축복이 바로 유명한 사제의 축복이다(민수6,24-26).

"주님께서 그대(이스라엘 자손)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대를 지켜 주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비추시고, 그대에게 은혜를 베푸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들어 보이시고, 그대에게 평화를 베푸시리라." (민수6,22-26) 

주님께서는 사제가 백성들을 행해 비는 복을 그대로 이루어 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들이 이렇게 이스라엘 자손들 위로 나의 이름을 부르면,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겠다." (민수6,27) 

주님께서는 사제들에게 축복권을 주셨다(신명21,5). 축복은 사제가 하지만, 축복을 보장하시고 이루어 주시는 분은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사제는 계속 축복해야 한다. 주님의 종 모세도 백성들을 위해 하느님 앞에서 마음껏 축복했다. 

바로 유명한 축복장이 있는 곳이 신명기 28장 1-6절이다. 

"너희가 주 너희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듣고,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그분의 모든 계명을 명심하여 실천하면,  주 너희 하느님께서 땅의 모든 민족들 위에 너희를 높이 세우실 것이다.  너희가 주 너희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들으면, 이 모든 복이 내려 너희 위에 머무를 것이다.  너희는 성읍 안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다.


 너희 몸의 소생과 너희 땅의 소출도, 새끼 소와 새끼 양을 비롯한  너희 가축의 새끼들도 복을 받을 것이다.  너희의 광주리와 반죽통도 복을 받을 것이다. 너희는 들어올 때에도 복을 받고, 나갈 때에도 복을 받을 것이다." 

 한국 교회는 음력이든 양력이든 설에는 항상 새해 첫날이기 때문에,  미사를 통해 사제의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민수기 6장 22-27절의 말씀을 선포한다.  

구약을 통해 사제들의 변천사를 보면, 축복의 변천사도 함께 묵상할 수 있다. 

아담으로부터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은 족장(가장) 사제들이었고, 그 다음 율법시대에는 아론과 그 아들들, 그 다음은 레위지파, 그 다음은 나지르인으로 넘어가다가 이제 신약의 시대에는 영원한 대사제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피로 말미암아 만인 사제단이 탄생하였다.

"여러분도 살아 있는 돌로서 영적 집을 짓는데에 쓰이도록 하십시오.  그리하여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영적 제물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바치는 거룩한 사제단이 되십시오." (1베드2,5)

"여러분은 선택된 겨레고 임금의 사제단이며, 거룩한 민족이고,  그분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여러분을 어둠에서 불러내어 당신의 놀라운 빛 속으로 이끌어 주신 분의 위업을 선포하게 되었습니다." (1베드2,9) 

오늘 2016년 1월 1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이며 세계 평화의 날이고, 병신년 원숭이띠 해 새해 새 아침 양력 설을 맞아 우리 모두는 영원한 대사제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자이신 사제의 축복을 받는다. 

오늘 사제의 축복을 받은 우리들도 이 세상 한 복판에서 삶의 노고와 희생을 통해 영적 제물을 바치는 사제이기에,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 가깝게는 가족들, 친지, 친척, 친구들, 믿음의 형제 자매들을 한 사람 한 사람 축복하고 복을 빌어 주자. 그러면 그 복이 그대로 그리고 몇 배가 되어 되돌아 올 것이다.


2014년 1월 1일 천주의 성모 대축일 묵상.


<복, 평화> 송영진 모세 신부


"주님께서 그대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대를 지켜 주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비추시고 그대에게 은혜를 베푸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들어 보이시고 그대에게 평화를 베푸시리라(민수 6,24-26)."


이 말은, 민수기에 있는 '사제의 축복'인데, "주님께서 그대를 지켜 주시는 '복'을 내리시기를...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비추시는 은혜를 베푸시기를...주님께서 당신 얼굴을 들어 보이시는 평화를 베푸시기를..."이라고 바꿔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서 우리를 지켜 주시는 것 자체가 '복'이고, '은혜'이고, '평화'입니다.


그런데 이 '축복의 말'은 사실은 뜻이 같은 말을 표현만 다르게 해서 세 번 반복한 말입니다. (복과 은혜와 평화가 따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 그래서 이 말을 간단하게 줄이면 "그대에게 평화가 있기를..."이 됩니다.
'평화'는 주님께서 주시는 모든 복과 모든 은혜를 총체적으로 포함하고 있는 은혜이기도 하고, 주님께서 주시는 복들과 은혜들을 우리가 받아서 누리는 행복한 상태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셨을 때,들판의 목자들에게 나타난 천사들은 이런 찬미가를 불렀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루카 2,14)"
앞에서 말한 민수기의 '사제의 축복'처럼 여기서도 '평화'는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사람들에게 주신 구원, 생명, 용서, 사랑, 안식 등 '모든 은혜'이기도 하고, 그 은혜들을 받아 누리는 지극히 행복한 상태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주님께 청해야 할 것은, 또 신앙인으로서 우선적으로 받기를 희망해야 할 것은 바로 '평화'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은혜라는 점에서 예수님께서 주시는 참 평화와 세상이 주는 평화는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요한 14,27). '참 평화'를 누리려면, 첫째, 이기심을 버려야 합니다.
남이야 어떻게 되든지 관심 갖지 않고 자기 혼자서만 편안하게 지낸다면, 그 자신은 자기가 평화를 누리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것은 평화가 아니라 '죄'를 짓는 일입니다. (사랑 없는 평화는 평화가 아닙니다.)


루카복음의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에 나오는 부자가 좋은 예입니다.
라자로의 고통에 관심 갖지 않고 이기적으로 혼자서만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던 부자는(루카 16,19-21) 사는 동안에는 자기가 평화를 누리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만족감에 취해서 살았을 것입니다.
그는 저승에 가서 라자로와 처지가 역전된 다음에야 비로소 자기가 평화가 아니라 죄 속에서 살았음을 깨닫게 됩니다(루카 16,27-30).


독재 정권의 경우,
언론을 탄압하고 백성들을 억압해서 아무 말도 못하게 만들고, 그래서 조용해지면 독재자는 그것을 평화라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평화가 아니라 '폭풍 전야의 고요함'일 뿐입니다.(생명력과 활기가 없는 평화는 평화가 아닙니다.)
 

'참 평화'는 모두가 함께 누리는 '공동체의 평화'입니다.


지금 말한 공동체는 '자기들끼리만의 공동체'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국적, 민족, 계급, 인종, 종교 등을 초월한 인류 모두의 공동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원수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지 않아서 종교 전쟁과 테러가 끊임없이 일어난다면,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사랑을 실천하지 않은 죄를 먼저 물으실 것입니다.
차별과 증오심과 복수심으로는 평화를 이룰 수 없습니다.


둘째, 세속의 것들에 대한 욕심과 욕망을 버려야 합니다.
'낙타와 바늘귀' 이야기에 나오는 부자가 좋은 예입니다. 그 부자는 예수님께 와서 '영원한 생명'을 받는 방법을 물었는데(루카 18,18), 그가 말한 '영원한 생명'을 '참 평화'로 바꿔서 생각해도 됩니다.(영원한 생명을 받는 일은 곧 하느님 나라에서 참 평화를 영원히 누리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부자에게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어라....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루카 18,22)."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재산을 포기할 수가 없어서 슬퍼하면서 떠났습니다(루카 18,23).
 

이것은 부자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가난하더라도 재물에 대한 욕심과 집착을 버리지 않는다면 참 평화를 얻지 못할 것입니다.


재물욕뿐만 아니라 권력욕과 명예욕 같은 욕망들도 참 평화를 얻는 것을 막는 걸림돌이 됩니다.  솔로몬 왕의 아들 르하브암 왕이 좋은 예입니다. 그는 자신의 권력을 솔로몬보다 더 강화하려고 했습니다(1열왕 12,14). 그 결과 왕국은 남북으로 분열되었고, 서로 전쟁하다가 둘 다 멸망했습니다. 


'참 평화'는 하느님의 것이고 예수님께서 주시는 것이니 '하느님의 뜻'과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아야 얻을 수 있습니다.


새해를 맞아서 서로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라고 인사하는데, 우리는 자신이 지금 어떤 '복'을 빌고 있는지(바라고 있는지) 진지하고 심각하게 반성해 보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주시지 않을 것들을 바라고 있다면, 겉으로는 신앙생활을 성실하게 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도 그것을 신앙생활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주님의 뜻을 따르지 않는 생활이 신앙생활이 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그런 복만 빌고 있는 것을 신앙이라고 부를 수는 없습니다.)


새해 아침을 여는 오늘, 우리는 여드레 동안 경축하던 성탄 팔일 축제를 마감하면서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을 지냅니다.

복음 말씀대로 아기 예수님은 태어나신 지 여드레 만에 할례를 받으시고, 천사가 일러 준 대로 ‘예수’(하느님께서 구원하신다는 뜻)라고 불리게 됩니다.
루카 복음 전체는 바로 이 아기 예수님을 통하여 드러난 ‘기쁜 소식’을 전하는데, 예수님께서 유다 민족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만인을 위하여 오신 분, 곧 구세주이심을 힘주어 강조합니다.

루카는 예수님께서 가난하고 버림받은 사람들, 특히 여성의 권익을 위해 일생 투신하셨고, 그들의 진정한 친구이셨음을 선포합니다.


오늘 복음도 하루하루 겨우 살아가는 들판의 평범하고 순박한 목자들이 제일 먼저 그분을 찾아가 뵙고 경배하였다는 사실을 전하면서 이 점을 부각시킵니다.
또한 루카는 ‘경건함’을 역설합니다. 참된 경건함이란 바로 세상사와 인간의 삶 안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깊숙이 깨닫고 그분께 의지하는 것을 말하는데, 세례자 요한의 부모인 즈카르야와 엘리사벳, 요셉과 마리아, 시메온과 안나 예언자가 경건한 분들입니다.

경건한 사람의 특징은 성령께서 그들의 삶 안에서 특별하게 활동하시거나, 그들이 성령께 마음을 열고 그분께서 이끄시는 대로 자신을 내어 맡긴다는 점입니다.

특히 성모님의 일생이 바로 그러했지요.


오늘 복음의 순박한 목자들처럼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며 순박할 때 절대 진리이신 하느님을 만나 뵈올 수 있습니다.

‘천주의 모친’ 성모 마리아처럼 성령의 이끄심에 온전히 내어 맡기는 한 해, 목자처럼 아주 단순하게 살아가는 새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루카2,16-21) 

미루지 않는 사랑으로  반영억라파엘신부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새해에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민수기에 보면 “주님께서 그대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대를 지켜주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비추시고, 그대에게 은혜를 베푸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들어 보이시고, 그대에게 평화를 베푸시리라”(민수6,24-26) 고 적고 있습니다. 복을 주시는 주체가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주님께서 함께하시지 않으시면 복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내가 무엇을 잘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자비를 베푸시어 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복을 잘 담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복을 빌어주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어제 오늘, 제야의 타종식과 해맞이 행사가 곳곳에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누가 복을 줍니까? 그 해가 복을 줍니까? 해를 만드신 분, 달을 창조하신 하느님께서 복의 주도권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니 다른 곳에 가지 않고 하느님을 찬미하고자 성당에 오신 여러분은 이미 복을 받으셨습니다. 앞으로도 받을 것입니다. 혼자만 받는 것이 아니라 가족과 이웃의 복의 전달자가 되실 것입니다.


성경의 곳곳에서 복을 받는 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몇 가지만 상기해 보겠습니다.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주 너희 하느님의 계명들을 너희가 듣고 따르면 복이 내릴 것이다”(신명11,27).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모든 말을 명심하여 들어라. 그렇게 하는 것이 주 너희 하느님의 눈에 드는 좋은 일과 옳은 일을 하는 것이므로, 그래야 너희와 너희 자손들이 영원토록 잘 될 것이다”(신명12,28). 결국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는 일이 복을 받는 길입니다. 더군다나 그 복은 당대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후손에게까지 미칩니다. 그러니 하느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우리의 일상이 하느님의 마음에 든다면 그는 분명 복을 누리고 있는 사람입니다.


한편 너희가 주 너희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들으면, 이 모든 복이 내려 너희 위에 머무를 것이다. 너희는 성읍 안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다. 너희 몸의 소생과 너희 땅의 소출도, 새끼소와 새기 양을 비롯한 너희 가축의 새끼들도 복을 받을 것이다. 너희의 광주리와 반죽 통도 복을 받을 것이다. 너희는 들어올 때에도 복을 받고 나갈 때에도 복을 받을 것이다.(신명28,2-6)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역으로 내가 복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하느님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따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안에서도 밖에서도 복을 받으려거든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말씀을 실천하십시오.


시편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행복하여라. 악인들의 뜻에 따라 걷지 않고 죄인들의 길에 들지 않으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 오히려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그분의 가르침을 밤낮으로 되새기는 사람, 그는 시냇가에 심겨 제때에 열매를 내며 잎이 시들지 않는 나무와 같아 하는 일마다 잘 되리라”(시편1,1-3). 주님의 말씀에 머물면 하는 일마다 잘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 안에 머물지 못하면 마음이 허전하고 그 공허를 채우려 엉뚱한 곳에서 위로를 받으려 합니다. 술을 찾는 사람도 있고, 쇼핑에 매달리는 사람, 도박이나 다른 무엇에서 찾으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참 안타가운 일입니다.


오늘 기억하는 성모님은 순종의 모범이십니다. 천사를 통해 주어진 하느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그 뜻대로 실천하였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지켰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모님을 은총을 가득히 받으신 분, 복된 여인으로 부릅니다. 여러분도 말씀대로 행하는 가운데 복된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희망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믿음의 사람이 되십시오. 성모님은 엘리사벳의 입을 통해 행복하십니다. 하느님께서 하신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으신 분!”(루카1,45)으로 불리었습니다. 사실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은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누리는 것입니다(갈라3,9). 


시편24,4에서는 “손이 깨끗하고 마음이 결백한 이, 옳지 않은 것에 정신을 쏟지 않는 이, 거짓으로 맹세하지 않는 이라네. 그는 주님께 복을 받고 자기 구원의 하느님께 의로움을 인정받으리라.”라고 말합니다. 허망한데 뜻을 두지 않는 사람으로 복을 누려야 되겠습니다. 많은 이들이 주님께 마음을 두지 못하고 인간적인 욕심 때문에 복을 잃어버립니다. 올 한해는 주님 안에서 복을 만들고 또 빌어주며 복을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저는 지난 한 해 동안 “더 큰 사랑으로, 사랑에 사랑을 더하여” 라는 주제를 가지고 지냈습니다. 성령의 도움으로 마음을 새롭게 하려고 노력하였지만 돌이켜 보면 내 뜻을 이루려고 애를 썼고 허물로 누벼놓은 날이 더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는 크신 은총을 허락하셨고 한없는 자비로 감싸 주셨습니다. 주님의 은덕을 생각하면 부끄러움이 너무 큽니다.


주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리며 2016년은 “주님의 마음으로 미루지 않는 사랑을” 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살려고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계명의 핵심은 사랑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당신의 생명까지 내어 놓으셨습니다. 주님께서 사랑하신 그 사랑을 살아야 할 소명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인식하는 만큼 나도 사랑해야 합니다. 지금은 사랑할 때입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그 사랑의 구체적 표현을 이웃을 통해서 해야 합니다. 주님의 마음으로 미루지 않고 지금 해야 합니다.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변함이 없습니다. 다만 내 마음이 흔들려서 그분의 사랑을 느끼지 못할 뿐입니다. 언제라도 그분의 사랑에 감사할 수 있는 열린 마음을 간직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사실 우리가 복을 누리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복인 줄 모르는 까닭은 많은 경우 내 입에 맞는 복을 찾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올 한해는 주님의 복을 기억하고 그분의 이름으로 복을 빌어주며 그분께서 원하시고 기대하는 복을 누렸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복을 누리기 위해 과거의 불행을 생각하지 않기를 권합니다. 그리고 지금 여기에 있는 복에 감사하기 바랍니다. 과거에 매이면 앞으로 나갈 수 없고, 지금 받은 복을 감사할 줄 모르면 더 큰 복이 주어져도 복으로 여기지 못하며 앞으로 받을 복도 깨닫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처지에서 감사함을 발견하고 기뻐하시길 빕니다. 주님의 복을 많이 받으십시오. 사랑합니다. '미루지 않는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丙申年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매일말씀묵상

목록 전체보기 →
[주님 공현 후 월요일] 공생활 시작 (마태 4,12-17.23-25)16.01.03조회 49[성 대 바실리오와 성 그레고리오 주교 학자 기념일]세례자 요한의 증언 (요한 1,19-28)16.01.01조회 119[2016. 1. 1.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예수 (루카 2,16-21)15.12.31조회 51[성탄 팔일 축제 내 제7일]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요한 1,1-18)15.12.31조회 122[성탄 팔일 축제 내 제6일]한나의 감사기도 (루카 2,36-40)15.12.30조회 62[성탄 팔일 축제 내 제5일] 봉헌 (루카 2,22-35)15.12.28조회 85{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 축일]15.12.27조회 71[12월 26일 토요일 성 스테파노 첫 순교자 축일] 파견 (마태 10,17-22)15.12.25조회 87[대림 제4주간 목요일]즈카리야의 노래 (루카1,67-79)15.12.24조회 47[대림 제4주간 수요일] 세례요한 탄생 (루카 1,57-66)15.12.22조회 495[대림 제4주간 화요일] 마리아의 노래 (루카 1,46-56)15.12.21조회 54[대림 제4주간 월요일] 엘리사벳을 방문 (루카 1,39-45)15.12.21조회 64[대림 제3주간 금요일]요셉 (마태 1,18-24)15.12.17조회 404[12. 7. 대림 제3주간 목요일]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마태 1,1-17)15.12.16조회 113[대림 제3주간 수요일] 오실 분 (루카 7,18ㄴ-23)15.12.15조회 79[대림 제3주간 화요일]세리와 창녀 (마태 21,28-32)15.12.14조회 77[대림 제3주간 월요일]예수님의 권한 (마태 21,23-27)15.12.14조회 1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