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공현 후 토요일] 예수의의 세례 (요한 3,22-30)

2016. 1. 8. 오후 5:3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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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공현 후 토요일] 예수의의 세례 (요한 3,22-30)

 

주님의 뜻에 따라 청하는 기도는 주님께서 들어주신다. 형제가 죄를 짓는 것을 본다면, 그를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참하느님이시며 영원한 생명이시므로, 죄를 지은 사람이 생명을 되찾게 해 주신다. (요한 1서 5,14-21)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하느님의 아드님에 14 대하여 가지는 확신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이든지 그분의 뜻에 따라 청하면 그분께서 우리의 청을 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15 우리가 무엇을 청하든지 그분께서 들어 주신다는 것을 알면, 우리가 그분께 청한 것을 받는다는 것도 압니다.
16 누구든지 자기 형제가 죄를 짓는 것을 볼 때에 그것이 죽을죄가 아니면, 그를 위하여 청하십시오. 하느님께서 그에게 생명을 주실 것입니다. 이는 죽을죄가 아닌 죄를 짓는 이들에게 해당됩니다. 죽을죄가 있는데, 그러한 죄 때문에 간구하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17 모든 불의는 죄입니다. 그러나 죽을죄가 아닌 것도 있습니다.
18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하느님에게서 태어나신 분께서 그를 지켜 주시어 악마가 그에게 손을 대지 못합니다. 19 우리는 하느님께 속한 사람들이고 온 세상은 악마의 지배 아래 놓여 있다는 것을 압니다. 20 또한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오시어 우리에게 참되신 분을 알도록 이해력을 주신 것도 압니다. 우리는 참되신 분 안에 있고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이분께서 참하느님이시며 영원한 생명이십니다.


시편 149,1ㄴㄷ-2.3-4.5-6ㄱ과 9ㄴ(◎ 4ㄱ)
◎ 주님은 당신 백성을 좋아하신다.
○ 주님께 노래하여라, 새로운 노래. 충실한 이들의 모임에서 찬양 노래 불러라. 이스라엘은 자기를 지으신 분을 모시고 기뻐하고, 시온의 아들들은 임금님을 모시고 즐거워하여라. ◎
○ 춤추며 그분 이름을 찬양하고, 손북 치고 비파 타며 찬미 노래 드려라. 주님은 당신 백성을 좋아하시고, 가난한 이들을 구원하여 높이신다. ◎
○ 충실한 이들은 영광 속에 기뻐 뛰며, 그 자리에서 환호하여라. 그들은 목청껏 하느님을 찬송하리라. 그분께 충실한 모든 이에게 영광이어라. ◎      


예수님께서 세례를 주시자,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은 사람들이 모두 예수님께 가고 있다고 요한에게 전한다. 요한은 자신이 그리스도가 아님을 밝히며, 예수님께서는 커지셔야 하고 자신은 작아져야 한다고 말한다.(요한 3,22-30)
그때에 22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유다 땅으로 가시어, 그곳에서 제자들과 함께 머무르시며 세례를 주셨다. 23 요한도 살림에 가까운 애논에 물이 많아, 거기에서 세례를 주고 있었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가서 세례를 받았다. 24 그때는 요한이 감옥에 갇히기 전이었다.
25 그런데 요한의 제자들과 어떤 유다인 사이에 정결례를 두고 말다툼이 벌어졌다. 26 그래서 그 제자들이 요한에게 가서 말하였다. “스승님, 요르단 강 건너편에서 스승님과 함께 계시던 분, 스승님께서 증언하신 분, 바로 그분이 세례를 주시는데 사람들이 모두 그분께 가고 있습니다.”
27 그러자 요한이 대답하였다. “하늘로부터 주어지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 28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분에 앞서 파견된 사람일 따름이다.’ 하고 내가 말한 사실에 관하여, 너희 자신이 내 증인이다.
29 신부를 차지하는 이는 신랑이다. 신랑 친구는 신랑의 소리를 들으려고 서 있다가, 그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 크게 기뻐한다. 내 기쁨도 그렇게 충만하다. 30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주님 공현 후 토요일 제1독서 (1요한5,14-21)

"누구든지 제 형제가 죄를 짓는 것을 볼 때에,그것이 죽을죄가 아니면  그를 위하여 청하십시오. 하느님께서 그에게 생명을 주실 것입니다. 죽을죄가 있는데, 그러한 죄 때문에 간구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불의는 죄입니다. 그러나 죽을죄가 아닌 것도 있습니다." (16~17)

요한 1서의 맺음말(5,13~27)도 요한 복음처럼 이 글을 쓰는 목적을 다시 밝힌다. 요한 복음에서는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이  집필 목적이었는데(요한20,31), 여기서는 하느님 아드님의 이름을 믿는 이들이 이미 영원한 생명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하려는 것이 집필 목적이라고 말한다(1요한 5,13).

'처음부터 있어 온 것,  우리가 들은 것,  우리 눈으로 본 것,  우리가 살펴보고 우리 손으로 만져본 것,  이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 말하고자 합니다.'(1요한 1,1)

이렇게 머리말이 생명의 말씀으로 시작된 요한 1서의 가르침이 '이분께서 참 하느님이시며 영원한 생명이십니다'(1요한5,20)라는 신앙 고백으로 끝을 맺는다.

오늘 말씀에서 특이한 것은 '죽을죄'(1요한 5,16)에 관한 언급이다.  

'누구든지 제 형제가 죄를 짓는 것을 볼 때에,그것이 죽을죄가 아니면  그를 위하여 청하십시오. 하느님께서 그에게 생명을 주실 것입니다. 죽을죄가 있는데, 그러한 죄 때문에 간구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불의는 죄입니다. 그러나 죽을죄가 아닌 것도 있습니다.'

'죽을죄''죽을죄가 아닌 죄'가 무엇인가?

구약에서는 '살인, 간음, 배교'죽을죄<대죄(大罪)=중죄(重罪)=사죄(死罪)>라고 했다.

신약의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교회는 하느님의 천주성(신성)에 참여할 수 있는 초자연적인 은혜 '생명의 은총'(성화은총=초성은혜=상존성총)을 잃어버리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죽을죄'(대죄) '죽을죄가 아닌 죄'(소죄) 구분된다.

윤리신학에서나 교리에서는 '대죄''소죄'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우리 인간은 생각과 말과 행위로 대죄를 짓는다. 대죄가 성립되려면, 세 가지 조건이 갖추어져야 한다. 계명과 지성의 인식 행위와 자유 의지의 동의이다.

우리가 무슨 생각과 말과 행위를 할 때, 하느님의 계명을 어기는 줄 분명히 지성으로 알면서도 자유 의지로 좋아서 동의할 때 대죄가 성립되고, '생명의 은총'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생명의 은총'세례성사때 예수님의 십자가상 구속사업의 공로로 주어진 것인데, 대죄를 지음으로 잃게 된다.

그러나 고백성사를 통하여 다시 되찾아지고, 성체성사를 통해 '생명의 은총'  계속 성장하면서 우리 자신이 그리스도화 혹은 하느님화(神化)되는 것이다.

오늘 독서에서 '죽을죄가 아닌 죄'를 지은 사람을 위해서는 하느님의 생명(은총)을 받을 수 있도록 간구(청)하라고 가르친다(1요한 5,16).


오늘의 묵상


남을 판단하지 말라는 말씀을 성경에서 자주 만나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람의 죄와 잘못이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지요. 상대방을 무너뜨리려고 약점을 찾아다니지 않아도, 굳이 꼬투리를 잡으려고 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의 잘못은 저절로 눈에 띕니다. 그래서 이런저런 이유로 다른 사람을 평가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의 미래를 위하여 잘못을 고쳐 주는 것도 결코 나쁜 일은 아닐 것입니다.
죄를 짓는 사람에 대한 형제적 충고나 기도의 핵심 내용과 진위 여부는, 그의 잘못을 보면서 그가 멸망하기를 바라는지 아니면 구원되기를 바라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그가 구원되기를 바라는 사람이라면, 하느님께 기도하면서 그를 살려 주시기를 청할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과 취지라면 죄를 지적해 주는 행위도 사랑의 실천이 됩니다.
성경에서 다른 사람의 죄 때문에 기도하거나 잘못을 고쳐 주는 것은, 그가 나의 형제이고 그와 내가 교회 공동체라는 한 몸을 이루고 있다는 데에 근거합니다. 특히 교회 안에서 다른 형제의 죄를 보게 될 때, 그 형제와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고 있으므로 그것이 바로 내 몸의 상처라고 생각하면 어떨까요?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이, 많은 사람이 예수님의 뒤를 따르려고 그분께 몰려가는 것을 보고 요한에게 “스승님께서 증언하신 분, 바로 그분이 세례를 주시는데 사람들이 모두 그분께 가고 있습니다.” 하고 전합니다. 물론 스승 요한에 대한 존경심에서 비롯된 질투이지만, 그것은 결국 스승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였음을 드러내는 것이지요.
이에 대하여 요한은 신랑(예수님)과 신부(예수님 공동체)와 신랑의 친구(세례자 요한)에 관한 은유로 대답합니다. “신랑 친구는 신랑의 소리를 들으려고 서 있다가, 그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 크게 기뻐한다. 내 기쁨도 그렇게 충만하다.” 세례자 요한이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사람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인물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인기 절정에 있을 때, 메시아 콤플렉스에 따라 처신한 것이 아니라, 선구자로서 자기 뒤에 오시는 메시아께서 앞으로 나가시도록 길을 열어 드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쁨'이신 예수님> 송영진 모세 신부


예수님의 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사람들이 예수님께 모여들었고,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은 그것을 보고 질투를 합니다(요한 3,22-26).(아마도 그들은 예수님을 요한의 경쟁자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요한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하늘로부터 주어지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분에 앞서 파견된 사람일 따름이다.'하고 내가 말한 사실에 관하여, 너희 자신이 내 증인이다. 신부를 차지하는 이는 신랑이다.
신랑 친구는 신랑의 소리를 들으려고 서 있다가,그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 크게 기뻐한다. 내 기쁨도 그렇게 충만하다.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요한 3,27-30)."


세례자 요한의 말을 해석할 때 그의 '겸손'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은데, 지금 여기서는 그의 겸손보다는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에 관한 그의 '증언'이 더 중요합니다. 

"하늘로부터 주어지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 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은 '하느님의 일'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 말에는 예수님은 메시아라는 암시도 들어 있습니다.('하느님의 일'이고 '메시아의 일'이니 질투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분에 앞서 파견된 사람일 따름이다." 라는 말은 자신은 메시아이신 예수님의 일을 준비하는 선구자일 뿐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이 더욱 잘 되도록 도와드려야 한다는 것.)


"너희 자신이 내 증인이다." 라는 말은 "너희는 내가 한 말을 증언해야 한다." 라는 뜻입니다. 이 말에는 "너희도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 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신부를 차지하는 이는 신랑이다." 라는 말은 "예수님은 메시아" 라는 것을 다시 강조하는 말입니다.
여기서 '차지하다.' 라는 말은 사람들을 구원하는 일을 가리키는 말로 해석됩니다.
메시아이신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구원하시는 일을 신랑이 신부를 차지하는 것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신부를 차지할 권한은 오직 신랑에게만 있습니다. 사람들을 구원하는 권한은 오직 예수님에게만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에게는 그 권한이 없습니다.)


'신랑 친구' 라는 말은 요한이 자기 자신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당시에 신랑 친구는 신부를 신랑에게 데려다 주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사람들을 인도해서 메시아께 데리고 가는 사람입니다. 


"신랑의 소리를 들으려고 서 있다가" 라는 말은, 신부를 신랑에게 데려다 준 다음의 상황을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됩니다.이 말은, 세례자 요한이 자신의 임무를 수행한 다음에 예수님께서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시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그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 크게 기뻐한다. 내 기쁨도 그렇게 충만하다." 라는 말은, 신랑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신랑 친구의 기쁨인 것처럼 예수님께서 활동하시는 모습을 보는 것이 요한 자신의 기쁨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냥 기쁜 것이 아니라, 대단히 크게 기뻐하고 있다는 것. 여기서 '충만하다.' 라는 말은, 다른 것은 일체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오직 기쁨만으로 가득 차 있음을 나타냅니다.)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라는 말은, 이제 자기는 물러날 때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신랑이 신부를 차지할 때, 신랑 친구는 완전히 뒤로 빠지거나 사라져야 하는가?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의 구원 사업에서 완전히 빠져 있어야 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려고 오셨습니다. 세례자 요한도 그 '모든 사람' 속에 포함됩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세례자 요한에게도 신랑이 되시는 분입니다.
요한이 한 일은 신랑 친구로서 한 일이지만, 요한도 한 사람의 신앙인으로서 예수님의 신부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례자 요한이 기뻐하는 것은 신랑 친구로서 기뻐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신부로서 기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신부로서 기뻐한다는 말은, 구원받은 사람으로서 기뻐한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을 구원하시는 예수님의 일을 도와드릴 수 있어서 기쁘고, 그 일을 함으로써 자기도 구원받게 되어서 기쁘고...) 


성모님의 경우도 비슷합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루카 1,46-48)." 이 노래가 나타내는 성모님의 기쁨은 두 가지입니다.
메시아의 어머니이신 분의 기쁨과 구원받은 사람의 기쁨. (메시아의 구원을 받게 된 것에 대한 기쁨과 당신의 아들이 사람들을 구원하시는 것에 대한 기쁨.)

(지금 계속 반복하고 있는 '기쁨'이라는 말은, '하느님 나라의 행복'을 뜻합니다. 세속에서 말하는 기쁨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서 오신 분이고, '기쁨' 자체이신 분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사는 것은 하느님 나라의 기쁨과 행복을 얻기 위한 일이고, 동시에 예수님과 함께 사는 것 자체가 기쁜 일이라는 것입니다.
표현을 조금 바꾸면, 신앙생활은 하느님 나라의 영원한 기쁨을 얻기 위해서 하는 생활이고, 동시에 신앙생활을 하는 것 자체가 기쁜 일이기 때문에 하는 생활입니다.
하느님 나라를 향해서 가다가(신앙생활을 하다가) 고난의 가시밭길을 만난다고 해도 이 기쁨은 사라지지 않습니다(요한 16,22). (가시밭길을 걸어가는 것이 기쁜 일이라는 뜻이 아니라, 기쁨이 있기 때문에 그런 힘든 길도 걸어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주님 공현 후 토요일 복음(요한3,22~30)

"스승님, 요르단 강 건너편에서 스승님과 함께 계시던 분, 스승님께서 증언하신 분,  바로 그분이 세례를 주시는데 사람들이 모두 그분께 가고 있습니다."  그러자 요한이 대답하였다.  "하늘로부터 주어지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 (26~27)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은 자신의 스승 세례자 요한 보다 늦게 등장하였으며, 세례자 요한에 의하여 세례를 받았던 예수님께서 자신의 스승보다 더 인기와 명성이 있게 되자, 이것을 시기하여 예수님을 폄하하는 호칭을 쓰고 있다.

'요르단 강 건너편에서 스승님과 함께 계시던 분', '스승님께서 증언하신 분'이라는 호칭 속에는 존경의 의미가 보이지 않으며, 동시에 스승님이신 세례자 요한에게 의존하는 자라는 뉘앙스를 주고 있다.

여기서 '증언하신던'에 해당하는 '메마르튀레카스'(memartyrekas)는  완료형으로 사용되었는데, 희랍어에서 완료형은 과거 행하여진 동작의 영향이  현재에까지 미치는 것을 나타내므로, 이러한 표현은 그들이 예수님을 아직 세례자 요한의 영향권 아래에 있는 사람으로 여기는 생각이 잠재되어 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사람들이 모두 그분께 가고 있습니다'

여기서 '바로'에 해당하는 '이데'(ide; behold)'보라'라는 뜻으로  '에이돈'(eidon) 명령형인데, 말하는 사람이 어떤 것에 주의를 집중시키고자 할 때 쓰는 말로서, 이것을 통해 당시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인기에 시기와 불안을 느끼고 있었음을 엿볼 수 있다.

그들의 관심은 자기들의 지도자인 세례자 요한이 영향력이 점점 약화되고 있는 현실에만 쏠려 있어서, 군중들이 세례자 요한을 외면하고 예수님에게로  몰려드는 것이 세례자 요한에게는 중대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그의 관심을  집중시키기 위해 이 단어를 사용했다고 본다.

여기서 '가고 있습니다'로 번역된 '에르콘타이'(erchontai)계속과 반복을 나타내는 현재형으로 사용되었으므로, 세례자 요한을 만나고자 찾아오던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가 예수님께서 계신 곳으로 몰려갔으며, 이런 현상이 계속 진행중에 있었음을 알게 된다.

요한 복음사가는 세례자 요한의 제자의 말을 빌어서 이제 세례자 요한의 시대가 가고 예수님의 시대가 새롭게 열리고 있음을 객관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사람은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다'

세례자 요한의 하느님 중심 주의적 신앙과 겸손이 잘 배어있는 구절이다. 그는 자신의 몫과 예수님의 몫이 각각 다르다는 사실과 이것을 정해 주신 분 '하늘', 곧 하느님이심을 알고 있었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과 자신 사이를 마치 경쟁 상대(라이벌)라고 되는 것처럼 생각하고, 예수님께 대하여 시기하고 폄하하는 사람들을 못마땅하게 여긴 것이다.

여기서 '아무 것도'로 번역한 '우데 헨'(oude hen; not even one)'하나도 ~아니다' 라는 뜻인데, 앞에 나오는 '없다'로 번역된 부사 '우'(ou)를 강조해 준다.

세례자 요한은 이렇게 이중 부정을 통해 하늘에서 주어진 것만 사람이 받을 수 있음을 강조한다.

사람들이 받을 수 있는 것'하늘로부터'에 해당하는 '에크 투 우라누'(ek tou ouranou; from heaven)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뿐이다(only what is given him from heaven). 

세례자 요한은 참으로 사심없는 하느님의 일꾼이며 종이었고, 하느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인정하는 신본주의자(神本主義者)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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