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주간 수요일] 시몬의 장모치유 (마르 1,29-39)

2016. 1. 12. 오후 6: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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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주간 수요일] 시몬의 장모치유 (마르 1,29-39)


하느님께 서원한 대로 한나는 어린 사무엘을 성전으로 데리고 가서 그가 평생 주님을 섬기도록 봉헌하면서 엘리에게 맡긴다. 사무엘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예언자가 되는데, 주님께서 그와 함께 계시어, 그가 한 말은 모두 그대로 이루어진다.(사무엘상 3,1-10.19-20)
그 무렵 1 소년 사무엘은 엘리 앞에서 주님을 섬기고 있었다. 그때에는 주님의 말씀이 드물게 내렸고 환시도 자주 있지 않았다. 2 어느 날 엘리는 잠자리에 누워 자고 있었다. 그는 이미 눈이 침침해지기 시작하여 잘 볼 수가 없었다. 3 하느님의 등불이 아직 꺼지기 전에, 사무엘이 하느님의 궤가 있는 주님의 성전에서 자고 있었는데, 4 주님께서 사무엘을 부르셨다.
그가 “예.” 하고 대답하고는, 5 엘리에게 달려가서 “저를 부르셨지요? 저 여기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엘리는 “나는 너를 부른 적이 없다. 돌아가 자라.” 하였다. 그래서 사무엘은 돌아와 자리에 누웠다.
6 주님께서 다시 사무엘을 부르시자, 그가 일어나 엘리에게 가서, “저를 부르셨지요? 저 여기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엘리는 “내 아들아, 나는 너를 부른 적이 없다. 돌아가 자라.” 하였다. 7 사무엘은 아직 주님을 알지 못하고, 주님의 말씀이 사무엘에게 드러난 적이 없었던 것이다.
8 주님께서 세 번째로 다시 사무엘을 부르시자, 그는 일어나 엘리에게 가서, “저를 부르셨지요? 저 여기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제야 엘리는 주님께서 그 아이를 부르고 계시는 줄 알아차리고, 9 사무엘에게 일렀다. “가서 자라. 누군가 다시 너를 부르거든, ‘주님,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여라.” 사무엘은 돌아와 잠자리에 누웠다.
10 주님께서 찾아와 서시어, 아까처럼 “사무엘아, 사무엘아!” 하고 부르셨다. 사무엘은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9 사무엘이 자라는 동안 주님께서 그와 함께 계시어, 그가 한 말은 한마디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셨다. 20 단에서 브에르 세바에 이르기까지 온 이스라엘은 사무엘이 주님의 믿음직한 예언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시편 40(39),2ㄱㄴ과 5.7-8ㄱㄴ.8ㄷ-9.10(◎ 8ㄴ과 9ㄱ 참조)
◎ 주님, 보소서, 당신 뜻을 이루려 제가 왔나이다.
○ 주님께 바라고 또 바랐더니, 나를 굽어보셨네. 행복하여라, 주님을 신뢰하는 사람! 오만한 자들과 어울리지 않고, 거짓된 자들을 따르지 않는 사람! ◎
○ 당신은 희생과 제물을 즐기지 않으시고, 도리어 저의 귀를 열어 주셨나이다. 번제물과 속죄 제물을 바라지 않으셨나이다. 제가 아뢰었나이다. “보소서, 제가 왔나이다.” ◎
○ 두루마리에 저의 일이 적혀 있나이다. 주 하느님, 저는 당신 뜻 즐겨 이루나이다. 당신 가르침 제 가슴속에 새겨져 있나이다. ◎
○ 저는 큰 모임에서 정의를 선포하나이다. 보소서, 제 입술 다물지 않음을. 주님, 당신은 아시나이다. ◎   


회당에서 가르치신 다음, 예수님께서는 시몬(베드로)의 집으로 가시어 그의 장모의 열병을 낫게 하신다. 저녁에는 병자들과 마귀 들린 이들을 고쳐 주시고, 다음 날 새벽에는 기도를 하시고 다른 고을로 복음을 선포하러 떠나신다.(마르코 1,29-39)
그 무렵 예수님께서 29 회당에서 나오시어,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곧바로 시몬과 안드레아의 집으로 가셨다. 30 그때에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어서, 사람들이 곧바로 예수님께 그 부인의 사정을 이야기하였다. 31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다가가시어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이 가셨다. 그러자 부인은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
32 저녁이 되고 해가 지자, 사람들이 병든 이들과 마귀 들린 이들을 모두 예수님께 데려왔다. 33 온 고을 사람들이 문 앞에 모여들었다. 34 예수님께서는 갖가지 질병을 앓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시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셨다. 그러면서 마귀들이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들이 당신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35 다음 날 새벽 아직 캄캄할 때, 예수님께서는 일어나 외딴곳으로 나가시어 그곳에서 기도하셨다. 36 시몬과 그 일행이 예수님을 찾아 나섰다가 37 그분을 만나자, “모두 스승님을 찾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3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른 이웃 고을들을 찾아가자. 그곳에도 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려고 떠나온 것이다.” 39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래아를 다니시며,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하시고 마귀들을 쫓아내셨다.


연중 제1주간 수요일 제1독서 (1사무3,1-10.19-20)

"하느님의 등불이 아직 꺼지기 전에, 사무엘이 하느님의 궤가 있는  주님의 성전에서 자고 있었는데, 주님께서 사무엘을 부르셨다." (3~4ㄱ)

사무엘서 상권 3장 3절사무엘이 소명받은 시점과 장소를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사무엘서의 저자는 본격적으로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사무엘을 '하느님의 등불', '하느님의 궤', '주님의 성전'이라는 하느님과 연관된 대상물과 더불어 등장시키고 있다.

이것은 사무엘서 저자가 타락한 엘리 가문에서는 하느님의 영광이 떠나가고 있지만, 새로운 지도자로 등장하고 있는 사무엘에게는 하느님께서 함께 하셔서 당신 영광을 드러내실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암시하기 위해서이다.

성소의 등잔대의 불은 저녁부터 아침까지, 즉 해가 져서 해가 다시 뜨기 직전까지 켜도록 되어 있었다(탈출25,31-37; 27,31) 따라서 '하느님의 등불이 아직 꺼지기  전에'라는 말은 사무엘이 날이 밝아오기 전에 깊이 잠들어 있을 때 하느님께 부름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리고 사무엘 상권 3장 3절은, 앞의 1절과 2절에서 주님의 말씀이 드물고 환시도 자주 없는 어두운 절망의 상황이 표현된 것에 반해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상징적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풍전등화와 같은 운명에 처한 이스라엘을 하느님께서 아직 포기하시지 않았다는 내면적 의미가 담겨져 있는 것이다.

특히 사무엘 상권 3장 3절'아직 ~(아니하니)'에 해당하는 부정 부사 '테렘'(terem)의 사용이 이런 사실을 강하게 암시한다. 이 부사는 사무엘 상권 3장 7절의 '사무엘은 아직 주님을 알지 못하고'라는 문구에서 다시 등장하지만, 이 단어는 말씀도 드물고 환시도 자주 없는 암물한 시대의 상황에서 사무엘이 누워있는 장소에는 '아직' 주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희망의 가능성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된 것이다.

또한 여기서 '하느님의 궤'에 해당하는 '아론 엘로힘'(aron ellohim; the ark of God)이 언급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사실 당시 사무엘은 '하느님의 궤'가 있는 지성소에 머물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지성소는 대사제만이 일년에 한번 대속죄일에만 들어갈 수 있는 거룩한 장소였기에 사무엘이 지성소에서 잘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사무엘이 잠잔 장소를 '하느님의 궤'와 관련시키는 것은 '하느님의 궤'가 가지고 있는 상징성 때문이다.

'하느님의 궤'는 십계명의 돌판이 들어 있기 때문에 '계약 궤'(민수10,33) 혹은 '증언 궤'(탈출26,33)라고도 불리웠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궤에 하느님께서 임재하신다고 믿었으므로, 절기 축제 행진이나 전쟁 때에 하느님을 찬양하고 승리를 기원하면서 항상 '계약 궤'를 앞세웠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이 궤를 상실한다는 것하느님의 영광이 이스라엘로부터 떠나가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므로 사무엘이 하느님 임재의 상징인 '계약 궤'가 있는 장소에 있었다고 저자가 굳이 밝히고 있는 것은 하느님의 말씀을 온전히 순종하는 사무엘의 신앙적인 태도를 나타냄과 동시에 앞으로 '하느님의 궤'를 필리스티아인들과의 전쟁에서 빼앗기고 몰락하게 될 엘리 가문과 사무엘을 대조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사무엘서 상권 3장 3절은 3장 4절부터 시작되는 사무엘의 소명 기사를 알리기 위한 일종의 서곡같은 역할을 한다.

점점 어두워지게 된 눈을 가지고 자기 처소에 누워있는 엘리 사제의 모습이 영적 무능함을 통한 하느님과의 관계 단절과 이스라엘의 몰락을 상징한다면, '하느님의 등불'이 아직 꺼지지 않았고 '하느님의 궤'가 있는 '주님의 성전'에 머물고 있는 사무엘의 무습은 빛으로 오시는 하느님과 만남과 이스라엘의 회복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 자비, 복음 선포>  송영진 모세 신부


"예수님께서는 갖가지 질병을 앓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시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셨다(마르 1,34)."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고쳐 주시고 마귀들을 쫓아내신 일은,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주신 일'입니다(루카 4,18).
말로만 기쁜 소식을 선포하신 것이 아니라,
메시아만이 주실 수 있는 구원의 기쁨을 실제로 주신 일입니다.
그리고 이 일은 예수님의 '자비'를 나타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병자들과 마귀 들린 사람들이 당신을 믿든지 안 믿든지 간에
그들의 딱한 처지만 보시고 그들에게 해방의 은총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어떤 조건도 없이 그냥 베풀어 주는 것이 '자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실 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물론 기적을 행하시기 전에
먼저 믿으라고 요구하신 경우가 있긴 하지만(마르 6,36),
그것은 믿어야만 기적을 행하시겠다는 뜻은 아니고,
은총을 청하는 사람이 갖춰야 할 마음가짐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고쳐 주신 이야기들을 보면,
거의 대부분 믿음과 상관없이 병을 고쳐 주셨고,
고쳐 주신 다음에도 치유의 대가로 당신을 믿으라고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당신을 안 믿고 그냥 떠나버린 병자들 때문에
안타까워하신 경우가 있는데(루카 17,17),
그런 경우에도 치유의 은총을 취소하지는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안타까워하신 것은
떠나버린 병자들이 몸의 병만 고친 것에만 만족하고
영혼의 구원을 얻으려고 하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음 날 새벽 아직 캄캄할 때,
예수님께서는 일어나 외딴곳으로 나가시어 그곳에서 기도하셨다.
시몬과 그 일행이 예수님을 찾아 나섰다가 그분을 만나자,
'모두 스승님을 찾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른 이웃 고을들을 찾아가자.
그곳에도 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려고 떠나온 것이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래아를 다니시며,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하시고 마귀들을 쫓아내셨다(마르 1,35-39)."


예수님의 '기도'는 아버지 하느님과 예수님의 '일치'를 나타냅니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요한 10,3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보지 않고서
아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분께서 하시는 것을 아들도 그대로 할 따름이다(요한 5,19)."


제자들이 예수님을 찾아 나선 것은,
병자들이 계속 몰려들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병자들이 몰려들 것에 미리 대비하기 위해서일 수도 있습니다.
어떻든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한 곳에 머물러서 계속해서 병자들을 고쳐 주시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다른 고을들로 가자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당신이 세상에 온 것은
바로 그 일, 즉 복음 선포를 하기 위해서라고 말씀하십니다.
("떠나온 것이다." 라는 말씀은, "하늘을 떠나서 세상에 온 것이다." 라는 뜻인데,
아버지께서 맡기신 일을 하려고 세상에 오셨음을 강조하시는 말씀입니다.)


1) 예수님의 말씀은,
병자들을 고쳐 주는 일은 더 이상 하지 않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병을 고치는 일만 할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다른 고을들에 가서도 병을 고치는 일을 계속하셨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선포하고 가르치는 일을 먼저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도들을 파견하실 때 하신 말씀을 보면,
앓는 이들을 고쳐 주라는 지시가 있습니다(마태 10,8).
사도들의 첫 번째 임무는 복음 선포였지만,
그들은 복음을 선포하는 일과 병자들을 고쳐 주는 일을 함께 했습니다.
예수님의 자비를 전해 주는 일도 복음 선포에 포함됩니다.


2) 예수님의 말씀은, 지금 '이곳'을 완전히 떠나시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곳'은 카파르나움입니다(마르 1,21).
예수님의 말씀은, 언제까지나 카파르나움에만 있을 수는 없고
다른 고을들에 있는 사람들도 만나셔야 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카파르나움을 완전히 떠나신 것이 아니라,
그곳을 활동의 중심지로, 또는 본거지로 삼으셨고,
갈릴래아 지역을 돌아다니시다가 가끔씩 카파르나움으로 되돌아가셨습니다.)


복음 선포는 온 세상 사람들에게 해야 하는 일입니다.
제외해도 되는 지역이나 도시는 없습니다.
우리는 소외되어 있는 지역과 소외 계층 사람들을 더욱더 찾아가야 합니다.
현실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어도 북한 선교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다른 종교가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지역도 마찬가지입니다.)
'온 세상 사람들'을 구원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입니다.

('정복'이 아니라 '구원'입니다.
복음 선포 활동은 예수님의 사랑을 사람들에게 전해 주는 일입니다.)


3) 예수님께서 몰려드는 사람들을 피해서 떠나신 것은 아닙니다.
물론 '몸의 병만' 고치려고 오는 사람들 때문에
외딴곳으로 가신 적이 있긴 한데(마르 1,45),
그런 경우에도 모여드는 사람들을 그냥 돌려보내지는 않으셨고,
오지 말라고 막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당신께 몰려든 카파르나움의 병자들은 모두 고쳐 주셨기 때문에
떠나려고 하신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예수님을 찾아 나선 것이
새로운 병자들이 다시 모여들었기 때문이라면,
그 병자들은 다른 고을에서 온 병자들이었을 텐데,
아마도 자비로우신 예수님께서는
새로 온 병자들도 모두 고쳐 주신 다음에 카파르나움을 떠나셨을 것입니다.)


복음 선포를 '먼저' 해야 한다는 말은
'복음 선포'만 해야 한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복음 선포를 해야 한다는 이유로 사랑과 자비를 베푸는 일을 아예 안 한다면,
그것은 예수님의 뜻을 따르는 일이 아닙니다.
복음 선포는 '사랑으로' 해야 하고, '사랑 실천'과 함께 해야 합니다.


 

연중 제1주간 수요일 복음(마르1,29~39)

"다음 날 새벽 아직 캄캄할 때, 예수님께서는 일어나 외딴곳으로  나가시어 그곳에서 기도하셨다."(35) 

'새벽 아직 캄캄할 때'에 해당하는 '프로이 엔뉘카 리안'(proi ennycha lian; very early in the morning)은 마르코 복음에 나타나는 시간에 대한 전형적인 이중 표현이다.

마르코 복음사가는 마르코 복음 1장 21절에서 38절까지에서 '낮'(21~31절), '해질녘'(32~34절), '새벽녘'(35~38절)에 이르는 하루에 대한 이야기를 모두 담고 있다.

마르코 복음사가는 이러한 예수님의 하루 일과 시간표를 통해서 예수님의 활동이 잠시도 쉴 틈도 없이 매우 바쁘게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이다.

여기서 '새벽'으로 번역된 '프로이'(proi; in the morning)는 유대인의 시간 기준으로 계산하면, 네번째 밤새벽 3시부터 새벽 6시 사이의 시간을 말한다.

또한 '아직 캄캄할 때' 혹은 '미명(未明)에'로 번역될 수 있는 '엔뉘카'(ennycha; before day)는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새벽 시간을 말한다.  이렇게 마르코 복음사가는 이중적 표현을 사용해서 예수님께서 사람들이 편히 쉬는 시간에 깨어서 제일 먼저 기도하셨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마르코 복음서에는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 장면이곳을 포함해서 세 번 등장한다.

시간에 있어서 마르코 복음 1장 35절은 밤이 거의 끝나가는 새벽 무렵이고, 마르코 복음 6장 46절에서는 해가 진 이후인 저녁이었고, 마르코 복음  10장 32~42절에서는 한밤중이었다.

또한 모두 혼자 기도하셨거나, 제자들을 데리고 있었어도  따로 떨어져서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셨다.

그리고 공생활 활동 초기의 갈릴래아 선교, 활동 중간시기, 또는 활동 말기의 수난 이전 등 큰 사건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기도한 것으로 묘사되며, 큰 일을 앞두고 있을 때일수록 더욱 성부 하느님 대전에 열심으로 기도하셨음을 보여준다.

또한 위의 내용들을 종합해 보면, 예수님의 기도는 바리사이들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경건함이나 신심있음을 과시하기 위해서 (루카18,11.12)나 교훈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성부 하느님과의 은밀한 친교를 통해 자신의 활동의 힘을 얻기 위해서 하는 기도였다(마태6,6).

그리고 '기도하셨다'에 해당하는 '프로세위케토'(proseycheto; prayed)는  원형 '프로슈코마이'(proseuchomai)의 미완료 과거형이다. 

희랍어에서 미완료 과거형과거 사실의 반복과 계속을 나타내므로, 예수님의 기도가 장시간 동안 지속되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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