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부시대의 신학: 정경의 확정

2015. 5. 21. 오후 12:3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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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부시대의 신학: 정경의 확정

 

정경(canon)’이란 그리스도교 신앙의 근거가 되는 권위를 지닌 책을 의미합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구약문서들을 자신들의 성경으로 삼았습니다. 유대교의 메시아 신앙으로부터 출발한 그리스도교는 구약에 나타나있는 메시아에 대한 예언들이 예수를 가리키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는 구약성경 외에도 초대 교회 사도들의 서신과 다양한 양식의 기록들이 고유되고 있었습니다. 이 기록들 중 일부는 얼마 지나지 않아 교부들에 의해 구약과 동등한 권위를 인정받으며 신약성경으로 화정되었는데, 우리가 현재 읽고 있는 성경은 바로 이 시기에 정경으로 동의된 것입니다.


 

이레나이우스(Irenaeus)의 동상


 사실 교부시대에 성경이 어떻게 확정되어 지금까지 전승되었는가를 밝히는 일은 대단히 복잡합니다. 성경이 지금의 내용으로 이루어지게 된 데에는 마르시온 같은 이단 신학자에 대한 정통파의 반발과 여러 교부들의 신학적 견해들이 바탕이 되었으며, 성경의 전승 과정에서 발생하였던 필사의 오류들까지도 많은 영향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 중 정경 형성에 결정적으로 기여하였던 중요한 교부들로는 이레나이우스, 클레멘스, 테르툴리아누스, 아타나시우스를 들 수 있습니다. 이들은 성경 속에 있는 권위에 근거하여 정경을 확정한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당시 교회에서 공유되던 많은 문서들 가운데서 신약성경을 선별하였습니다. 정경의 권위는 교회가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본래부터 그 문서들에 있었으며, 그 문서들은 자신의 내재적 권위로 스스로를 정경이 되도록 하였다는 것이 이 시기 교부들의 믿음이었던 것입니다. 물론 정경 승인의 객관적 기준으로는 주로 초대교회의 사도들이 직접 쓴 작품인지의 여부가 중요하게 판단되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당시의 교회들은 반드시 사도들의 것이 아닌 기록들이라도 정경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하였습니다.

 

 예수의 행적을 기록하고 있는 그리스도교의 네 복음서는 리용의 주교였던 이레나이우스에 의해 정경으로 인정되었습니다. 당시 그리스도교 이단 집단들은 마태·마가·누가·요한의 복음서들 중에서 오직 하나만이 정경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그들 각자의 주장을 전개하는 데 알맞은 복음서를 선택하여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대항하여 이레나이우스는 그의 저서인 이단 논박에서 편향성을 지닌 이단 집단들을 비판하면서 네 개의 복음서 모두가 정경으로 인정되어야 한다는 견해를 펼쳤습니다. 그는 이 네 복음서에는 더 이상의 복음서가 추가되어서도 빠져서도 안 된다고 주장하였는데, 이러한 그의 의견이 교회에 널리 받아들여지면서 마태·마가·누가·요한의 복음서는 예수의 삶을 알려주는 그리스도교회의 정경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클레멘스(Clemens)와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us)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는 이레나이우스가 인정하였던 네 복음서에 초대 교회 사도들의 전도 행적이 기록된 사도행전과 바울 사도의 열 네 편의 서신(히브리서는 바울 서신으로 간주되었습니다.)과 계시록을 더하여 정경으로 승인하였습니다. 이렇듯 새롭게 인정된 정경들은 이후 알제리아 지역의 교부였던 테르툴리아누스가 ‘율법과 예언자’의 옆에 복음서와 사도들의 서신이 나란히 존재한다고 선언함으로써,교회 내에서 구약과 동등한 권위를 지닌 것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으며, 이 과정을 거치면서 그리스도교 교회 내에서는 신약성경의 목록들에 대한 동의가 점차 이루어지게 되어 아타나시우스에 의해서 현재와 같이 27권의 문서들이 정경으로 정해졌습니다. 아타나시우스는 367년 이집트 지역의 교회들에 보내는 목회서신에서 어떤 문서들을 정경으로 읽어야 하는가에 대해 조언해주며, 정경으로 승인할 수 있을만한 27개의 문서들을 언급하였는데, 이것이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신약성경이 인정된 최초의 사례입니다.


 그 후에도 정경의 문제는 교부시대 동안 계속해서 논의되었는데, 어떤 문서를 승인할 것인가의 문제뿐만 아니라 정경 배열 순서에 관한 문제 역시 논쟁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예수에 대한 기록인 복음서가 모든 경전의 앞에 위치해야하고 세상을 종말을 예언하는 계시록이 마지막에 와야 한다는 것에 대하여는 모든 교회가 일치를 보였지만, 그 밖의 서신서의 위치에 대해서는 동서 교회 간에 견해차가 있었습니다. 동방교회는 야고보서’, ‘베드로 전후서’, ‘요한 1·2·3’, ‘유다서와 같은 공동서신들을 바울의 열 네 서신 앞에 놓은 반면, 서방교회는 그와 반대로 공동서신 앞에 바울서신을 배열하려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이후 정경의 확정 문제는 서방교회에서는 5세기 초엽에 마무리되었고, 중세시대 동안은 더이상 거론되지 않다가 종교개혁이 일어나면서 다시 논의되어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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