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루카, 5,8)

2015. 4. 3. 오후 8:25:42

글자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루카, 5,8) 

 

 

"쉬는 교우 인도하기"라고 성당 제대 앞에 크게 걸어 놓고 미사 전에도 미사 후에도 기도하고 있다. 

특히 이 지역에는 여러가지 이유로 많은 이들이 나름의 상처를 가지고 쉬고 있는 중이라 사제와 함께 방문과 관심을 통해 쉬는 교우들을 위해 노력하기로 한다.

지방 자치제의 후유증으로 공무원인 신자 약 60명은 서로가 상처가되어 아품을 간직하고 있고, 인간적인 부족함으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우리 만이 아닐 것이다.

세상의 논리에 의해, 사제의 부족함에 의해, 신자 서로 간의 시기로 인해,......

근 일년을 나오지 않는 신자가 있다. 왜 그러는지 알 수가 없었는데 어제 그 이유를 알았다.

그 신자와 친분을 가진 수녀를 통해 들은 이야기는 이렇다. "성당에 가면 재미가 있어야 하는데 매번 야단만 맞고 재미없어 못가겠다고" 한다.

성당은 무엇하는 곳인가?

성전은 하느님이 계신 곳이고, 우리는 하느님의 전에서 하느님을 뵈옴으로 구원으로 나아가는 곳이기에, 이곳은 거룩한 곳이며 세상과의 다른 곳임을 인정해야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오히려 이성전을 우리들의 세상에서의 상처를 치유만해주는 그냥 세상의 회피를 위한 장소로 생각하고 있었다.

오늘은 참으로 근본적인 것은 무엇인가?를 묵상해 본다.

聖殿은 하느님이 계시는 곳으로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느님의 궤를 그들 앞에 모시고 하느님께서 이끌어 주시는 길로 나아갔다. 하느님은 당신의 백성을 인도하시기 위해 불기둥으로 길을 알려주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막의  궤는하느님의 현존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새로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사람이 되신' 하느님을 빵의 모습 안에서 함께 나누는 삶을 통해 우리와 함께 계심을 드러내는 모습이다. 또한 빵이 되어 오신 분은 우리의 구원이 되시기 위해 우리들의 십자가를 지신 분으로서 우리는 그분을 통해 구원에 이른다고 고백하는 무리들인 것이다.

사제는 무엇인가?

모세와 아론을 통해 보여지는 하느님의 사제는 하느님과 인간을 연결해 주는 중계자이며 하느님의 구원의 의지를 드러내고 백성들의 하느님께 대한 경배를 모아 올리는 제사장의 역할을 하는 존재이다. 그러기에 그는 하느님의 사람이라 하고, 그는 개인적인 일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백성을 하느님의 뜻으로 이끄는 역할을 하는 것이 사제이 임무인 것이다.

예언자 예레미아 때도 거짓 사제들이 있었고, 엘리야 때에도, 모든 시대에 거짓 예언자들은 존재하였다. 어떤 시기에는 우상으로 백성을 이끄는 이들이 있었는가하면 어떤 때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백성을 지배하는 예언자들이 있었다.  참 사제는 자신의 존재를 버리고 하느님의 뜻인 백성의 구원사업을 위해  존재해야 함을 잃지 않음에 있다.

하느님의 백성은 누구인가?

그리스도교인이란 세상에 살아가고 있지만 세상에 머무르지 않고 하느님께 모든 희망을 두고 길을 걷는 나그네인 것이다. 그러기에 먼저 하느님의 존재를 고백하고, 하느님을 통해 구원을 얻기를 원하는 무리들이다. 구원이 무엇인지를 알고 세상적인 것을 버리고 하느님께 의지하는 무리들을 말한다.

그. 런, 데 오늘의 현실은 어떠한가?

하느님은 인간의 외적인 면을 꾸미는, 자신을 드러내는 장식품으로 전락하였고, 사제는 신자들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 '기생 오래비'가 되었고  신자들은 그런 사제를 원하고 있다.

백성의 속에는 구원이란 단어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기에 그냥 자신을 인정해 주고 기쁨 만을 주는 곳으로 따라간다. 

이제 聖殿은 더이상 하느님이 계신 곳도,하느님의 구원의 의미가 이루어지는 곳이 아닌  또 하나의 우상 숭배의 장이 되어 버렸다. 장터요, 유락시설로 전락해 버림에서  사제의 존재는 의미가 있는가? 

우리는 오늘 복음에서 외치는 이스라엘의 백성들의 외침을 온 몸으로 듣는다. 

"우리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