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이란 무엇인가?
철학사에 앞서 철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의문이 제기될 때면 많은 철학 서적들은 ‘철학’, 즉 ‘필로소피(Philosophy)’라는 말의 기원을 먼저 설명하곤 합니다. ‘필로소피’란 그리스어로 ‘사랑’을 의미하는 ‘Philia(필리아)’와 지혜를 뜻하는 ‘소피아(Sophia)’의 결합으로 이루어졌으므로, 곧 ‘지혜의 사랑’이라는 의미로 풀이될 수 있으며, 이 개념은 철학이라는 분야의 이해와 앞으로 논의될 주제의 방향 제시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어원을 통해 그 학문의 관심을 살펴보는 것은 철학뿐만 아니라 신학과 신학사에 있어서도 역시 유용하게 적용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신학’을 의미하는‘테올로지(Theology)’는 그리스어로 ‘신’이라는 단어인 ‘테오스(Theos)’와 ‘말’이라는 의미의‘로고스(Logos)’가 합쳐진 것이므로, ‘신학’이란 바로 ‘신에 관한 말’이라는 뜻으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때의 ‘신’은 여러 종교의 신들이 아니라, 그리스도교의 하나님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에, 신학은‘그리스도인들이 경배하는 하나님에 대한 반성’이라고 해야 더 올바른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학’이라는 단어는 초기 교부시대부터 그리스도교 신앙의 특징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2세기 후반의 그리스도교 학자인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가 이교도의 신앙 체계인 ‘뮈톨로기아(Mythologia)’에 맞서 그리스도교의 체계로 ‘테올로기아(Theologia)’를 내세우며 ‘신학’이라는 말을 언급한 이후부터, 교부시대의 학자들에 의해 ‘신학’이 ‘그리스도교도의 신 이해’라는 용어로 쓰인 것이 이 말이 나타나게 된 계기라고 합니다. 오늘날과 다른 것이 있다면, 이 시기의 ‘신학’이라는 단어는 그리스도교 사상 전체를 뜻한다기보다는 주로 하나님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측면들을 의미한다는 점입니다.

초기 그리스도교는 다신론적인 타종교들 속에서 자신들의 하나님만이 갖춘 특징을 드러내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가 성장하고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서 유래한 ‘선의 이데아’와 ‘제일자’의 개념이 유럽에 널리 퍼지면서, 중세 유럽인들 사이에서 유일신론은 보편적인 믿음으로 일반화되었으며 또한 그 유일신은 그리스도교의 하나님과 동일시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에 따라 신의 존재를 증명하거나 신의 섭리를 이야기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증명하고 설명하는 일로 인식되어 ‘신학’은 그리스도교의 하나님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하나님의 본성·섭리·사역을 조직적으로 분석하는 오늘날 신학의 한 분야인 ‘신론’이 이 당시에는 ‘신학’이라는 이름으로 불린 것입니다.
이후 신학은 12~13세기가 되어 다시금 새로운 의미를 얻게 됩니다. 대학의 발전과 함께 그리스도교 신앙이 대학에서 연구되기 시작하자 이를 위한 새로운 명칭이 필요하였습니다. 이때 ‘신학’은 ‘거룩한 배움의 학과목’이라는 뜻으로, 하나님에 대한 교리를 넘어 그리스도교 신앙 전체의 포괄적인 교리를 연구하는 분야라는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러한 대학의 영향은 신학이 보다 체계적인 학문으로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당시 대학에서 신학은 의학·법학과 더불어 교양과목 이후에 다루어지는 고급 연구과정으로 구성되었습니다.
대학을 통해 신학이 연구되기 시작하면서 신학은 그리스도교 신앙 체계 전반을 다루는 이론적인 학문으로 간주되었습니다. 물론 신학이 하나님에 대한 사변적인 논의로 그칠 것을 염려하였던 토마스 아 켐피스와 같은 학자들도 있었고, 신학의 실천적인 측면을 발견하려하였던 마르틴 루터와 장 칼뱅의 노력도 있었지만, 대학을 배경으로 활동한 학자들은 대체로 신학을 진리의 탐구를 위한 순수하게 이론적인 학문으로 보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그러나 18세기에 계몽주의가 출현함에 따라 대학에서의 이러한 신학의 입지는 흔들리게 됩니다. 학술적 연구는 외부적 조건의 제약 없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계몽주의 학자들의 눈에는 그리스도교적인 믿음에 기초한 신학이 시대에 뒤떨어진 학문이라 생각되었던 것입니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철학자인 칸트는 진리의 탐구가 철학에 의해 이루어져야 하며, 신학·법학·의학과 같은 과거 대학에서의 고등 과정은 윤리나 건강 등의 실천적인 분야에 종사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였습니다.
19세기 초의 신학자 슐라이어마허는 이러한 관점에 반대하며 대학 내의 신학의 필요성을 역설하였습니다. 그는 신학의 3대 구성요소로 ‘철학적 신학’, ‘역사신학’, ‘실천신학’을 들며, 이를 바탕으로 교육받은 성직자가 교회뿐만 아니라 사회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주장은 당시의 베를린에서는 적합하였지만 세속주의와 다원주의가 점차 힘을 얻어감에 따라 의문성이 제기되었습니다. 세속주의를 채택한 국가에서는 신학이 대학의 정규 과정에서 제외되기도 하였고, 다원주의가 강하였던 국가에서는 신학을 종교연구의 한 부분으로서 신학을 다루며 그리스도교 신학에 부여되었던 특별한 위상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였습니다. 그리스도교 신학을 중점적으로 교육하기 위한 수단으로 신학교가 생기기 시작한 것은 이러한 배경 때문이었습니다.
현대에 들어서도 신학의 바른 기능에 대한 논쟁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에드워드 팔리는 『신학: 신학교육의 분열과 통일』이라는 책에서 신학이 통일적인 체계를 갖춘 학과가 아닌 상이하고 단절된 학과목이라고 이야기하면서 이 논쟁을 새롭게 시작하였습니다. 그에 따라 ‘성경연구’, ‘조직신학’, ‘철학적 신학’, ‘목회신학’, ‘교회사’와 같은 신학의 구성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논의도 신학자들 사이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신학의 의미와 기능이 무엇이든지 간에, 신앙인들의 하나님을 향한 고민과 신앙에 대한 진지함이 끊이지 않는 이상, 신학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언제나 새로운 의미를 지닐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무조건적이고 맹목적인 믿음에만 자신을 내맡기려하지 않고 스스로가 믿는 진리를 반성하며 비판하는 가운데 수천 년의 시간 동안 성숙하였습니다. 계몽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그리스도교는 성서비평학의 영향으로 성경의 권위에 대해 회의하였고, 두 차례의 세계대전 이후에는 하이데거의 존재론과 사르트르와 카뮈의 무신론적 실존주의의 공격 때문에 심각한 고민에 빠지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신앙은 이 문제들에 답하기 위해 고민하는 과정에서 굉장한 깊이에 이르렀습니다. 성서의 오류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서 하나님의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신정통주의 신학을 개척한 칼 바르트에서부터, 존재자체로서의 하나님이라는 개념을 통해 현대에 있어 그리스도교의 의미를 모색하였던 폴 틸리히, 성서의 비신화화를 내세우면 실존론적 예수 이해를 시도하였던 루돌프 불트만,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을 토대로 희망의 신학을 내세운 위르겐 몰트만 등, 많은 위대한 사상가들이 신앙의 진리를 밝히고 구원의 깊이를 전하기 위해 그들의 삶을 바치는 노력을 하였습니다. 저는 신앙인들이 이런 신학자들의 사상을 반드시 깊이있게 연구해야 한다곤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그리스도교 신앙이 얼마나 치열한 고민의 결과로 이루어졌는지, 또 그 깊이와 폭이 얼마나 위대하고 놀라운지에 대해서는 우리 그리스도교인들이 항상 기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