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과 압살롬 / 다윗의 인생 엿보기 / 다윗은 누구인가?
이정임(클라라) 2015-04-29
다윗은 인간적으로 행복한 사람이었을까?
"임금이 요압과 아비사이와 이타이에게 분부하였다. '나를 보아서 저 어린 압살롬을 너그럽게 다루어 주시오.' 임금이 압살롬에 관하여 모든 장수에게 분부하는 것을 군사들도 다 들었다."(2사무 18,5)
"이 말에 임금은 부르르 떨며 성문 위 누각으로 올라가 울었다. 그는 올라가면서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압살롬아, 너 대신 차라리 내가 죽을 것을,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다." (2사무 19,1-2)
이사이에게는 아들 여덟이 있었는데 다윗은 이사이의 여덟 번째 아들로 막내였다. 그런데 사무엘이 하느님의 명령을 받들어 이사이의 아들 중에서 임금의 재목이 있다고 해서 이사이의 집으로 보냈고 이사이와 그의 아들들을 거룩하게 한 다음 그들을 제사에 초청하였다. 그런데 다윗만 그 자리에서 빠졌다. 다윗은 양을 치고 있었다.
여기에서 특별하게 어떤 이유가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아무튼 이사이는 다윗을 부르지 않았다. 뭐 양을 치고 있었다는 특별한 이유는 아버지 이사이야 다윗을 특별하게 믿어서 양을 지키게 하였는지 그건 알 수 없지만 사무엘 예언자 같은 대단한 예언자가 와서 하느님께 제사를 지낸다고 했을 때 왜 이사이는 다윗을 부르지 않았을까?
성년이 되지 않아서일까? 혹시 당시 제사는 성년이 되어야 참석 할 수 있었을까? 아무튼 어쩌면 가장 큰 축복의 자리일 수도 있는 자리에 다윗은 아버지 이사이가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그의 형들로부터도 그리 따뜻한 정을 받고 살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형들에게 볶은 밀 한 에파와 빵 열 덩이를 가지고 갔을 때 형들은 다윗이 다른 사람들과 하는 이야기를 듣고 화를 내며 말했습니다.
"네가 어쩌자고 여기 내려왔느냐? 광야에 있는 몇 마리 안 되는 양들은 누구한테 맡겼느냐? 내가 너의 교만과 못된 마음을 모를 줄 나느냐? 너는 싸움을 구경하러 온 것이 분명하다."(1사무 17,28)
아무튼 다윗의 형들은 다윗을 교만하다고 하고 있습니다. 미워하고 있습니다. 요셉처럼 형들로부터 아버지의 사랑을 받은 다윗을 시기해서 그렇게 미움을 받고 있었을까? 그럴 가능성도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다윗은 부인인 미칼에게 또 어떤 대접을 받았는가? 계약의 궤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때 다윗이 기뻐 춤 추는 모습을 보고 비웃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미칼의 태를 닫아서 미칼은 죽는 날까지 아이가 없었다. 그리고 다윗은 또 자신의 아들 압살롬이 자신을 죽이려고까지 하였다.
어떻게 보면 다윗은 이렇게 저렇게 우리 보통 사람들처럼 상처 속에서 성장하지 않았을까? 그런 묵상을 하게 되었다. 다른 상처는 그렇다 치더라도 자신이 낳은 아들에 의해서 죽임을 당할 위기에 놓인 상처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을까?
그런데 다윗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압살롬을 어린 압살롬이라고 불렀으며 그가 죽자 몸을 떨며 애통해하였다.
다윗의 이런 모습 안에서 나를 발견해 보았다. 나 역시도 살아오면서 수많은 상처들을 입고 살았다.
뭐 자식이 죽이려는 그런 큰 상처는 아니더라도 자식으로부터 상처도 받고 그렇게 살았다. 그런데 예수님을 몰랐을 때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 아들이 용서가 되었을까? 안 되었다. 웬수 그 자체였다. 그런데 지금은 다윗의 그 마음을 알 것 같다.
그의 마음을 하느님께 내어드리지 않았다면 결코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아무리 자식이지만 웬수와 같은 자식을 그렇게 사랑으로 품을 수 없었을 것이다. 다윗은 역시 하느님의 사람이었다. 그의 온 마음 안에는 하느님으로 꽉 차 있었다.
마치 예수님께서 당신을 죽이는 사람들을 위해 하느님께 용서를 청하는 기도를 드렸던 것과 같이 다윗은 참으로 예수님의 마음을 쏙 빼닮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자기를 죽이려고 했던 자식을 그처럼 사랑할 수 있었을까? 하느님의 마음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주님, 제 마음을 주님 마음으로 채워주소서. 제가 나으리다.
그래서 주님은 매 미사 때마다 그렇게 우리에게 오시나 보다.
아,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이제는 제 아들을 다윗의 마음으로, 예수님의 마음으로 보고 살아가고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