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오로의 선교여정] 선교여행의 배경 (1) 시리아의 안티오키아 교회
사도 바오로를 생각할 때면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가? 매부리코에 키 작고 볼품없는 남자의 모습일까? 아니면 다마스쿠스 근처에서 말에서 떨어져 땅바닥에 쓰러져 있는 모습일까?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필자의 경우 지도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가 선교여행을 하면서 다녔던 오늘날의 시리아, 터키, 그리고 그리스 땅에 대한 지도를 떠올리게 된다.
바오로의 세 번에 걸친 선교여행을 본격적으로 보기 전에 선교여행의 배경이 되는 시리아의 안티오키아 교회를 살펴보자. 안티오키아 신자들은 최초로 그리스도인이라 불리는 영예를 받은 이들이다. 그들은 이러한 명예에 걸맞게 최초로 이방인 선교사업을 시작한다.
안티오키아 교회에는 예언자들과 교사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바르나바, 니게르라고 하는 시메온, 키레네 사람 루키오스, 헤로데 영주의 어린 시절 친구 마나엔, 그리고 사울이었다. 그들이 주님께 예배를 드리며 단식하고 있을 때에 성령께서 이르셨다. “내가 일을 맡기려고 바르나바와 사울을 불렀으니, 나를 위하여 그 일을 하게 그 사람들을 따로 세워라.”(사도 13,1–2)
모범적인 공동체, 안티오키아 교회
위 성경 본문은 안티오키아 교회가 참으로 모범적인 공동체였음을 세 가지 특징과 함께 알려주고 있다.
첫째, 안티오키아 교회는 다섯 명의 지도자가 팀이 되어 공동체를 이끌어 가고 있었다. 바로 바르나바, 시메온, 루키오스, 마나엔, 그리고 사울(바오로)이다.
둘째, 안티오키아 교회는 신자 재교육을 중시한 교회였다. 안티오키아 교회를 이끌어 간 이는 예언자들과 교사들이었고 그들이 수행해야 될 중요한 사명 중 하나는 성경을 가지고 신자들을 교육하는 것이었다.
셋째, 안티오키아 교회는 모두가 기도에 전념하는 교회였다. 다섯 명의 지도자는 예배와 단식 기도에 열중하던 중에 성령의 지시를 받는다. 곧 바르나바와 바오로를 선교사로 파견하면서 선교 사업을 시작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예배는 복음전도의 출발점
다섯 명의 지도자가 함께 모여 예배드리고 있을 때 성령께서 바르나바와 바오로에게 임무를 부여했다는 것은, 예배가 모든 선교의 출발점임을 드러낸다. 이 점은 미사의 마지막 부분에서 알 수 있다. 사제가 신자들을 강복한 다음 “미사가 끝났으니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라는 말을 한다. 이는 주님께서 사제를 통해 신자들에게 파견의 임무를 부여하는 것이다. ‘가시오. 당신에게 복음선교의 사명을 부여합니다.’라고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이다. 주님으로부터 사명을 부여받는 것은 커다란 영예다. 그래서 신자들은 “하느님 감사합니다.”라고 응답한다.
예배가 선교의 출발점이기에 예배 없는 선교는 자칫 속 빈 강정이 되기 쉽다. 근래에 한국 교회는 적극적인 선교를 통해서 많은 사람을 신자로 만들고 있다. ‘신자 배가 운동’, ‘총력적인 선교활동’, ‘본당 신자 만 명 만들기 운동’ 등의 슬로건과 함께 전교에 열정을 쏟고 있다. 그런데 예비자들이 세례를 받은 다음 어떻게 되는가? 2012년 주교단 통계에 따르면 78퍼센트에 해당되는 신자들이 주일미사에 참석하지 않는데 이들 중 대다수가 세례 받은 지 얼마 안 되는 이들이라고 한다.
예배가 복음선교의 출발점이란 말은 신앙생활의 다른 영역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예배는 모든 신앙생활의 출발점이다. 예배가 있어야 봉사도 바르게 이루어지고, 모임도, 교육도 바르게 이루어진다. 예배는 최우선에 두어야 하는 사도직이고 나머지는 이 사도직에서 비롯된다.
왜 예루살렘 교회가 아니라 안티오키아 교회인가?
만방에 복음을 전하라는 사명을 받은 이들은 예루살렘의 사도들과 신자들이었다. 그리고 예루살렘 교회는 다른 곳에 있는 모든 교회의 모교회(母敎會)였다. 그런데 성령께서는 왜 예루살렘 교회에 복음선교 사명을 부여하지 않았는가? 예루살렘의 지도자들과 신자들은 예배드리지 않고 단식하지 않았기에 선교사들을 따로 세우라고 명할 수 없었던 것일까? 물론 아니다.
성령께서 예루살렘 교회에 선교 명령을 내리지 못한 것은, 그곳의 신자들이 강하게 집착하고 있던 유다주의적 경향 때문이었다. 예루살렘 신자들 안에는 할례당원들이 있었다.(사도 11,2) 그들은 이방인들이 신자가 되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주장했다.(15,1.5) 이방인들이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킴으로써, 다시 말해 유다인이 되어야만 신자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들 할례당원들은 베드로 사도가 최초로 이방인을 교회 안에 받아들였을 때 마음으로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11,18) 주님께서 로마 백인대장 코르넬리우스와 그의 식솔들에게 성령을 쏟아부으셨는데, 어찌 대놓고 주님을 거슬러 반대할 수 있으랴. 하지만 나중에 보면 이들 할례당원들은 바오로 사도가 세운 터키와 그리스 땅의 교회를 찾아와 이방인 출신의 신자들에게 할례와 율법준수를 요구하였다.
예루살렘 교회는 할례당원들이 아니라 해도 율법을 중시하는 신자들이 대다수였기에, 이방인들을 향해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하기에는 한계가 컸다. 이런 맥락에서 성령께서는 그들이 아닌 시리아의 안티오키아 신자들에게 선교 명령을 내렸던 것이다. 보편교회의 통치 권한 중심이 예루살렘 교회에 있었다면, 선교의 중심은 안티오키아 교회에 있었다. 예루살렘 교회가 모든 그리스도인의 모교회에 해당된다면, 안티오키아 교회는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의 모교회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단식기도를 드린 이유
선교 사명을 위해 성령이 지목한 바르나바와 바오로는 안티오키아 공동체를 이끌어 가던 최고의 지도자요 탁월한 사목자였다. 안티오키아 교우들의 입장에서 볼 때, 공동체 최고의 지도자두 사람을 긴 시간 동안 떠나보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1차 선교여행은 4년(45-49년)이 걸렸기 때문이다. 만일 공동체가 자기네 사정만 생각했다면 ‘아니 어떻게 우리 공동체에서 가장 필요한 두 사람을 선교사로 보내라고 하는가?’ 하면서 성령의 뜻에 의아함을 품었을지 모른다.
안티오키아 신자들은 성령의 뜻을 거부할 이유를 얼마든지 찾을 수 있었다. 공동체가 신생교회로서 아직까지 뿌리를 내리기 못했기에 지도자 두 사람을 내놓을 수 없다고 할 수도 있었고, 안티오키아 도시 전체가 아직 복음화된 것이 아니기에 떠나보낼 수 없다고 주장할 수도 있었다.
한편 선교사로 지목된 바르나바와 바오로도 그들에게 부여된 선교 사명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면, 성령의 명령을 달가워하지 않을 수 있다. 그들은 소위 지금 말하는 대형교회의 지도자다. 수많은 신자를 이끌어 가는 지도자로서 그들이 누리고 있는 영적 권위가 인간적으로 매력적일 수도 있다. 그런데 선교 사명에 뛰어든다면 고생길이 뻔한 것이다.
사도행전 13장 3절을 보면 안티오키아 교회가 성령의 지시를 받고 나서 즉시 했던 일은 다시금 단식하며 기도하는 일이었다. 이는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기 위해 기도를 드렸음을 의미한다. 안티오키아 신자들은 자기들의 욕심이나 인간적 계산보다는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고 그 뜻에 순종하고자 단식기도를 드렸던 것이다. 그들은 단식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몇 가지 깨달음을 얻는다. 우선 교회가 하느님의 교회임을 깊이 깨닫는다. 그렇기에 교회 유지와 발전은 어떤 지도자들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 때문에 가능한 것임을 깨닫는다. 또 하느님의 교회는 온 세상에 세워져야 한다는 사실도 깨닫는다. 그래서 자기 교회 사정만을 생각해 지도자들을 붙들어 두기보다는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영혼들을 위해서 그 지도자들을 기꺼이 내어놓을 생각을 한다.
이렇게 안티오키아 신자들이 신적 지도자인 하느님께 의지하고 순종하였기에, 바르나바와 바오로가 선교사업을 위해 그들을 떠나 있는 4년 동안에 계속해서 성장 발전할 수 있었다.
[야곱의 우물, 2014년 7월호, 송봉모 신부(예수회 · 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 교수)]
[바오로의 선교여정] 제1차 선교여정 ② 파포스에서의 복음선교
그들이 온 섬을 가로질러 파포스에 다다랐을 때에 마술사 한 사람을 만났는데, 유다인으로서 바르예수라고 하는 거짓 예언자였다. 그는 슬기로운 사람인 세르기우스 바오로 총독의 수행원 가운데 하나였다. 총독은 바르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느님의 말씀을 듣기를 원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말로 마술사를 뜻하는 그 엘리마스는 총독이 믿지 못하게 막으려고 그들을 반대하고 나섰다.(사도 13,6-8)
바르예수와의 대결 사건
바오로는 파포스에서 총독을 보좌하고 있던 유다인 출신의 마술사 바르예수와 대결하게 된다.(사도 13,6-12) ‘바르예수’란 히브리말로 직역하면 ‘예수의 아들’이란 뜻이다. ‘예수’란 말이 ‘구원자’란 의미를 가지니 ‘바르예수’는 ‘구원자의 아들’이란 뜻이다. 그런데 그 이름이 지닌 고매한 뜻과 달리 그의 행동은 악마의 자식과 다름없었다. 그는 로마 원로원에서 파견된 키프로스의 총독 세르기우스의 마술사 역할을 맡고 있었는데, 총독이 바르나바와 바오로를 불러들여 복음 말씀을 듣고 싶어 하자 이를 방해한다. 방해한 이유는, 그리스도교 선교사들 때문에 자기 자리가 위태로워질까봐 걱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마술사 바르예수가 바오로의 복음선교를 훼방 놓자 두 사람 사이에서 영적 전쟁이 벌어진다. 바로 이 순간에 루카는 사울의 이름이 바오로란 사실을 처음으로 알려준다. “그때에 바오로라고도 하는 사울이 성령으로 가득 차 그를 유심히 보며 말하였다.”(사도 13,9-10)
사도행전에서는 바오로가 다마스쿠스에서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난 다음에도 계속 ‘사울’이란 이름을 사용했다. 그러다가 여기 13장 9절에서 처음으로 ‘바오로’란 이름을 사용한다. 핵심을 말하자면 다마스쿠스 사건에서 사울이 바오로가 된 것이 아니란 점이다.
바오로란 이름이 제1차 선교여정 때부터 본격적으로 사용되는데 그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먼저 그리스-로마 문화권 안에서 로마식 이름이 유다식 이름보다는 더 친숙하게 들리기 때문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복음을 전하는 데 더 이로웠고, 필요한 경우 로마 시민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라도 로마식 이름이 도움 되었기 때문이다.
바오로가 그리스-로마 문화권에서 선교여행을 하면서 바오로란 이름을 사용하게 된 또 다른 이유는 사울이란 이름이 그리스어에서는 부정적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사울’은 그리스어에서 ‘다리를 벌리고 걸어가는, 헤픈 모습을 보이는, 성적으로 단정하지 못한’의 의미를 갖는 형용사였다.
그러니 바오로가 사울이란 이름을 계속 사용한다면, 사람들은 그를 보고 계집애 같은 남자나 창녀처럼 사람을 성적으로 유혹하는 사람이라 여겼을지 모른다. 만일 그렇게 생각한다면 복음이 제대로 전달될 리가 없다. 그러니 제1차 선교여정에서 사울이 아닌 바오로란 이름을 사용한 것은 순전히 복음선교의 효과를 위해서였다.
바오로는 바르예수의 훼방이 단순한 인간의 훼방이 아니라 악마의 소행임을 파악한다. 그래서 그를 ‘악마의 자식’이라 부른다. “온갖 사기와 온갖 기만으로 충만한 자, 악마의 자식, 모든 정의의 원수! 당신은 언제까지 주님의 바른길을 왜곡시킬 셈이오?”(13,10) 악마의 자식이라 부른 것은, 바르예수가 악마의 하수인이 되어 복음선교를 방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오로와 바르나바의 복음선교를 뒤에서 방해한 이가 악령이 아니라 악마란 점은 중요하다. 악마, 다른 말로 사탄은 악의 세력의 최고 존재다. 한편 악령은 악마의 졸개들이다. 어둠의 세력의 최고 두목이 직접 나서서 이방인들에게 구원의 복음이 퍼지는 것을 막고자 했던 것이다. 이는 예수님이 공생활을 시작하기 직전 광야에서 40일 동안 단식하며 기도하실 때 악마가 예수님을 유혹한 것과 유사하다. 악마는 예수님의 구원사업을 방해했던 것처럼 지금은 교회의 구원사업을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바오로는 바르예수의 정체를 여러 가지 명칭을 사용해서 알려주고 있다. ‘악마의 자식, 정의의 원수, 주님의 바른길을 왜곡시키는 자’ 등의 표현은 단순히 바르예수란 인물을 알려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선교지역에 가게 되면 반드시 부딪치게 되는 영적 싸움, 그 지역의 미신과 벌이는 영적 싸움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선교지역에서 복음을 전할 때 미신과의 대결을 피할 수 없음을 알려주기 위해서다.
왜 선교지역에 가면 복음선포자들이 꼭 점성가, 점쟁이, 마술사들과 충돌하게 되는가? 다른 식으로 물어보자. 왜 선교지역에 가면 복음선포자들이 꼭 미신과 영적 싸움을 하게 되는가? 우리가 선교지역에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하늘나라를 그 지역에 건설한다는 의미다. 당연히 악마는 하늘나라의 건설을 훼방 놓고 극렬히 저항한다.
바오로의 저주가 있자 바르예수의 눈은 흐려지더니 곧 아무것도 보지 못하게 되었다. 키프로스의 총독 세르기우스는 이 광경을 목격하고서 큰 충격과 놀람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바오로가 선포하는 복음에 깊은 감명을 받는다.
“이제 보시오, 주님의 손이 당신 위에 놓여있소. 당신은 눈이 멀어 한동안 해를 보지 못할 것이오.” 그러자 즉시 짙은 어둠이 그를 덮쳐, 그는 사방을 더듬으며 자기 손을 잡아 이끌어 줄 사람을 찾았다. 그때에 그 광경을 본 총독은 주님의 가르침에 깊은 감동을 받아 믿게 되었다.(사도 13,11-12)
성경 본문은 세르기우스가 믿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믿음이 세례에서 오는 믿음은 아닐 것이다. 로마 원로원 출신이요 로마 도시의 총독이란 그의 신분과 지위를 생각할 때, 세르기우스가 세례까지는 받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왜냐하면 로마의 종교관과 그리스도교의 종교관이 충돌하기 때문이었다.
로마에는 만신전(萬神殿)이란 신당이 있을 정도로 수많은 신을 섬기고 있었다. 제우스, 비너스 같은 신은 물론이요 황제 또한 신으로 숭배하고 있었다. 한편 그리스도교는 유일신 사상 속에서 하느님이 아닌 신들을 다 우상으로 취급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로마제국의 통치자들과 행정관들은 제국의 종교관과 배치되는 그리스도교를 내놓고 믿을 수 없었다.
세르기우스는 공식적으로 그리스도교 신자가 되지는 않았지만 그의 가족들은 신자가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1912년에 발굴된 비문 때문이다. 비문에는 세르기우스 집안에 대한 내용이 있는데, 세르기우스의 딸이 아버지의 영향으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우리는 세르기우스가 세례를 받지 않았지만, 그리스도교 복음을 열린 태도로 대했음을 알게 된다.
그의 열린 태도는 바오로가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에서 복음을 전한 것과도 연결이 된다.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키프로스에서 복음전도를 마친 다음 배를 타고 터키 남부의 항구도시인 베르게로 간다. 그곳에서 그들은 지중해 연안을 따라(로마 행정상으로는 리키아-팜필리아 지역) 형성된 여러 도시에서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고 터키 중앙 고원지역(로마 행정상으로는 갈라티아 주)에 위치한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로 간다. 베르게에서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까지 가려면 3,000미터가 넘는 거대한 타우루스 산맥을 넘어야 한다. 그런데도 바오로와 바르나바가 베르게에서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로 곧장 갔던 이유는 세르기우스의 부탁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세르기우스와 관련된 비문의 내용을 보면, 그의 집안은 피시디아 안티오키아를 중심으로 한 갈라티아 주에 상당량의 영지를 갖고 있었다. 그렇기에 세르기우스는 생명의 복음이 자신의 친인척들에게 전달되기를 원했던 것이다.
[야곱의 우물, 2014년 10월호, 송봉모 신부(예수회 · 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 교수)]
신약성서의 인물: 칼과 성서를 든 사람, 바오로
답동 성당 제단 오른편의 성 바오로상
신약성서에 나오는 여러 인물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 다음으로 위대한 인물을 뽑으라고 한다면 과연 우리는 누구를 뽑을 수 있을 것인가? 아마 여러 인물들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사도 베드로가 나올 수도 있을 것이고, 세례자 요한을 뽑을 수도 있을 것이다. 만일 나에게도 질문이 주어진다면 나는 사도 바오로를 위대한 분으로 뽑고 싶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삶을 꾸린 철저한 그리스도인 이었으며, 지중해 각지에 예수 그리스도를 널리 알린 사도이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깊은 신학을 전개한 신학자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초대교회의 주요한 인물일 뿐만 아니라, 신약성서의 가장 위대한 저술가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도행전과 바오로의 서간들을 통해서 이미 그의 활약상을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서 우리는 그가 소명을 받았으며, 자신의 온 정열을 불태웠으며, 선교에 대한 열정에 휩싸여 있었고, 종종 다른 사도들과의 다른 견해로 좌절을 경험했다는 사실도 읽었을 것이다. 또한 온갖 박해와 시련에 맞서 싸워 나간 것을 알게 된다. 역사의 예수를 전혀 알지 못했던 그가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게 되었으며, 박해자에서 이방인의 사도로까지 변했는지의 이야기는 우리를 놀라움에로 불러일으킨다.
나는 종종 답동성당 제단 오른편에 모셔져있는 성 바오로상을 바라보게 된다. 한 손에는 칼을 다른 손에는 성서를 든 모습을 말이다. 이는 그의 회심 이전과 이후를 잘 드러내어주는 모습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칼과 성서를 든 바오로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칼을 든 바오로
칼을 든 바오로는 개종 즉 회심 전의 바오로를 말할 수 있다. 바오로는 바리사이 전통의 유다인으로 살았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바오로가 가졌던 큰 자부심은 그가 평범한 유다인을 훨씬 뛰어넘는 사람이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나는 그때 내 동족 중 동년배들 사이에서는 누구보다도 유다교를 신봉하는데 앞장섰으며 내 조상들의 전통을 지키는 일에 있어서도 훨씬 더 열성적이었습니다."(갈라 1,14)
바오로는 예수 시대의 율사이었던 가믈리엘 문하에서 공부를 하였다고 전해진다.1) 그러나 그가 동정심이 풍부하고 융화적인 인물이었던 가믈리엘 율사 밑에서 수학을 했든 안 했든, 우리는 그의 글들에서 랍비적인 해석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그의 성격을 보면 그는 결코 중도적인 입장을 취할 사람이 아니다. 그는 미적지근하고 느릿느릿한 것을 싫어했고, 어떤 일이든 자기의 방식으로 좇았을 법하다. 그러나 다행히 그때에 바오로는 부활한 주님을 만난 것이다.
다마스커스로 가면서 바오로는 몇몇 그리스도인들을 압송해 오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갖고 있었다. 그는 산헤드린의 지지를 받고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바오로와 같이 율법에 따라 살고, 율법 공부에서도 상당한 학식을 갖추고 있기에 자신들의 일을 수행할 인물로 뽑았을 것이다. 또한 필립 3,4-5에서는 바오로가 그리스도인 이전의 바리사이로서의 삶에 대해 특별한 언급을 하고 있다.
바오로는 또한 세계적인 문화를 섭렵한 인물이라고도 할 수 있다. 먼저, 그의 이름을 보자. 바오로는 로마식 이름이다. 우리는 종종 바오로가 회심 후에 자신의 이름을 사울에서 바오로로 바꾸었다고 하는 주장을 접하게되는데 그 주장은 아무런 근거가 없는 주장이다. 아마 그는 두 가지의 이름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하나는 유다 문화권에서(사울),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리스-로마 문화권에서 쓰이는 이름(바오로)이었을 것이다. 또 다른면은 바오로는 헬라적인 환경에서 유다식으로 교육받은 유다인이며 유다교뿐 아니라 매우 대중적이고 세련된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바오로는 지적이고, 사명을 받았으며, 그의 편지에 나오는 시(詩)들에서 보여지듯 풍부한 상상력을 글로 담아낼 줄 알았던 인물이다. 당시에 그는 미래가 촉망되는 인물이었음을 우리는 이해할 수 있다. 칼을 들은 바오로는 우리 인간적인 면에서 바라볼 때에 완벽한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바오로가 부활한 주님을 받아들여 경험하지 않고 이방인을 위한 사도가 되지 않았더라면 그는 어떠한 모습으로 우리들에게 전해질까? 당시 최고의 악당이 되어있지는 않았을까? 또는 소경이 되어 우리에게 전혀 새로운 인물로 남아있지 않을까?" 하는 우스운 생각. 그에게 놀라운 사건이 바로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에서 일어난 것이다. 회심으로 가는 바오로의 모습을 생각해 보자.
성서를 든 바오로
무엇인가 놀라운 일이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에서 벌어졌고, 바오로는 박해자에서 사도로 탈바꿈한다. 그는 예수의 계시를 통해서 하느님에게서 축복을 받았으며, 순간적으로 일어난 인생의 짧은 사건은 그의 평생에 깊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회심을 하고 박해자 때와 마찬가지로 충동적이고 참을성 없는 바오로는 몇 일도 안 가서 다마스커스의 신자들과 유다인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기 시작한다.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가르침을 베풀고, 죽고, 부활한 후 그를 따르던 제자들에게 자신의 가르침을 이어 나가라고 명령한 다음 이 세상을 떠나가셨다. 이제 그는 예수의 가르침을 응용하며, 거기에서 적절한 결론들을 이끌어냈고, 그에 기초한 공동체를 구성했으며, 공동체를 이끌어 나갈 지도력을 육성시켰고, 잘못된 것을 바로 잡았으며, 사랑을 베풀었고 훈계를 하였다. 바오로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여러 차례 여행을 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많은 고통을 겪었고, 그때마다 기도했으며 설교하고 소명을 내리고 신자공동체를 세웠다. 바오로의 모든 열정은 새로운 길과 새로운 가르침으로 불타오른 것이다. 이러한 그의 열정은 기원후 67년에 유혈의 제사2)로 마감하게 된다.
그는 부활하신 예수를 체험했고 그로 인해 일생이 완전히 바뀐 인물이다. 우리가 여기서 알아야 할 것은 바로 바오로가 초월적인 거룩한 분을 체험하였다는 사실이며, 그는 이제 칼을 버리고 성서 곧 주님의 말씀을 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회심은 바로 이렇게 삶의 변화를 가져다 주는 것이다.
회심의 길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은 회심의 길이었다. 열정에 싸여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던 바오로는 열정에 싸여 그리스도를 온 세계에 알리는 사도가 되었다.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는 바로 바오로의 인생을 바닥부터 뒤집어 놓는 전환점이 된 것이다. 죽음의 칼에서 생명의 말씀인 성서에로의 변화. 우리는 그 무엇을 전환점으로 삼고 있는가? 또한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이끌고 있는가? 우리의 전환점이 되고, 삶의 중심을 이루는 것은 곧 바오로 사도가 체험한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모든 사람은 여행 중에 있다고 말한다. 마치도 우리의 삶은 끊임없는 여행의 도상에 있기에, 그 여행 중에 모든 이들이 하느님을 체험하기를 바란다. 천상 행복을 위한 여정 안에서 우리는 무엇을 고대하고 있는가? 우리는 그런 일이 오늘날에 어떻게 일어나며 또한 그것이 우리의 일상에서 어떠한 의미를 주는지를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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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도행전 22장 3절 참조.
2) 바오로의 순교는 기원후 67년경 로마 시외, 아르데아로 가는 길가에서 집행되었다. 그곳에는 오늘 트레 폰타네(Tre Fontane: '세 개의 샘'이라는 뜻)라는 이름의 트라피스트 수도원이 세워져 있다. 전설에 의하면 형리의 칼에 베어진 바오로의 목이 땅에 떨어지면서 세 번이나 튀어 올랐고 목이 떨어졌던 자리에서 각기 샘물이 샘솟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