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부시대의 신학: 그리스도교 전통의 역할

어느 문서들을 정경으로 확정해야 하는가라는 사안만큼, 그렇게 확정된 정경을 어떻게 해석하고 가르칠 것인가 하는 문제 역시 초기 그리스도교의 매우 중요한 고민이었습니다. 당시 교회는 이교도들의 박해 외에도 이단들의 왜곡된 교리 전파에 직면하여 많은 어려움을 겪었는데, 그 이단들 중 교회에 가장 위협이 되었던 것은 ‘영지주의’였습니다. 영지주의자들은 하나님의 진리가 성경 속에 은밀하게 감추어져있기 때문에 자신들만의 ‘비밀지식’에 근거하여 성경을 해석하지 않으면 참된 진리를 이해할 수 없다고 가르쳤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들은 표면적으로는 그리스도교와 유사한 형태를 보였지만, 그 내용은 신비주의에 입각한 신앙을 내세움으로써, 구원이 오직 자신들의 비밀을 터득한 사람에게만 허용된다고 주장하며 전통 신앙과 대립하였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성경의 구절들이 일정 부분에서 여러 방식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인들과 영지주의자들은 같은 말씀을 두고서도 서로 상대가 성경을 잘못 해석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였기에, 과연 둘 중 누가 성경의 내용을 바르게 이해하고 있는지에 대한 자신만의 근거 제시가 필요하였습니다. 물론 영지주의와 같은 이단들의 오류는 성경을 전체적으로 파악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나타나게 된 것이라는 주장이 그리스도교 전통파의 입장이었지만, 이것만으로 신앙의 진리를 수호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 당시 교부들의 판단이었습니다. 교부 신학자 테르툴리아누스는 이 문제에 대해 이단들이 성경을 통해 자신들이 원하는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마지못해 인정하며, 단순하게 성경을 찾아보는 것만으로는 교리의 적합성을 판단하는 일에 한계가 있음을 밝혔습니다.
신앙의 전통은 성경 해석을 둘러싼 이단과의 대립 속에서 중요하게 부각되었습니다. 성경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참된 신앙을 보존하고 훈육한 그리스도교의 전통 위에 세워진 교회에서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초기 그리스도교는 예수의 사도들을 통해 어느 정도 고정된 형식의 가르침이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면서 퍼져나갔기에, 이 시기의 신앙이란 스승에서 제자로 ‘계승되었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차츰 성립하게 된 성경 해석의 전통은 교부들의 시기에 이르러 무엇이 올바른 믿음인지를 판별할 수 있는 기준이 되어, 성경을 그리스도교 역사의 맥락에서 해석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전통의 중요성을 처음 강조하였던 교부로는 이레나이우스가 있습니다. 리용의 주교였던 그는 저서인 ‘이단을 반박함’에서 그리스도교의 전통적인 성경 해석과 전래에 의존하여 영지주의의 이론에 맞설 수 있음을 주장하였습니다.
“(이단들이) 경전에서 논파될 때, 그들은 경전 자체를 비난한다. 마치 경전이 올바르지 않거나 권위를 가지지 못한 것처럼. 이것은 경전에는 다양한 진술이 내포되어 있고, 전통을 모르는 자들이 다양한 진술 속에서 진리를 발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것(진리)은 저작을 통해 전달된 것이 아니라 ‘생생한 음성’을 통해 전달된 것이기에… 진리를 감지하려는 자는 사도적 전통을 고려해야 한다. 그것은 온 세계 모든 교회에 알려진 것이다. 우리는 사도들이 지명한 주교들과 오늘까지 내려온 계승자들의 숫자를 확인할 수 있는데, 그들은 이들(이단들)이 상상했던 것들을 안 적도, 가르친 적도 없었다. 왜냐하면 만일 사도들이 이들(이단들)이 사사로이, 은밀히 완전하게 가르쳤던 은밀한 신비들을 알았더라면, 사도들은 교회를 맡길 자들에게 그 가르침을 전해주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사도들은 자기 후임자들이, 권위적 직능을 이어받은 자들이 완전하고 흠이 없기를 바랐을 것이기에…. 그러므로 이러한 사실에 대한 증명이 수없이 많으므로 우리가 교회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바 진리를 찾아 헤멜 이유가 없다. 말하자면 사도들은 이 진리를 이 보고에 온전히 축적해 놓았던 것이다. 누구나 이 생명수에서 원하는 만큼 길어낼 수 있도록. 이것이 생명의 문이요 다른 자들은 모두 도적이요 강도들이다.
여기서 이레나이우스는 먼저 영지주의의 견해를 제시하며, 영지주의가 자신들만의 ‘생생한 목소리’, 즉 성경에는 나타나있지 않은 비밀스럽고 신비적인 자신들의 가르침을 근거로 성경을 읽어야 한다고 주장함을 확인하였습니다. 그런 다음, 그는 영지주의의 가르침을 세계 교회에 널리 알려진 사도들의 가르침에 대조함으로써, 영지주의가 결코 사도들로부터 전승되지 않았음을 밝혔는데, 그와 동시에 교회의 주교들은 사도들의 직책을 이어받은 참된 전통의 소유자라는 것 또한 분명히 하였습니다. 그의 논증의 핵심은 만약 영지주의의 가르침이 사도들이 전했던 신앙의 진리였다면, 왜 사도들은 그들의 교회를 이어받을 주교들에게 그 가르침을 감추어 두었겠는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교의 전통을 근거하여 보았을 때, 사도들을 직접 계승한 주교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지만, 영지주의자들의 ‘은밀한 가르침’이라는 것은 근거도 찾을 수 없을뿐더러, 그 가르침이 올바로 전달되었다는 보장도 없다는 사실로 영지주의를 논박하였습니다.
후에 라틴 신학의 주요 인물로 평가되는 교부 테르툴리아누스 역시 이레나이우스처럼 그리스도교 전통을 내세우며 이단들을 공격하였습니다. 그는 이레나이우스 보다도 사도들과 주교들 사이의 역사적 연관성을 강하게 주장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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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들은) 먼저 유대지방 전역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증거했고, 거기에 교회를 세웠으며 그 후 세계로 나가 같은 신앙에 대한 같은 교리를 열방에 선포했다. 그리고 그들은 같은 방식으로 각 도시에 교회를 세웠고 그 교회에서 다른 교회들은 계속해서 신앙의 근원과 교리의 씨앗을 이어나갔으며, 교회가 되기 위해서 계속 뻗어나가고 있는 중이다. 이 교회들을 ‘사도적’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은 이와 같이 그들이 사도적 교회들의 후예들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권위를 이어 나가는 것은 이 때문이다. 만일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설교하러 사도들을 파송했다면, 그리스도께서 지명하신 설교자들 이외에 그 누구도 영접해서는 안 된다. ‘아들이 하나님을 알게해준 자들과 아들 이외엔 누구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들은, 아들을 통해 사도들에게 계시된 것을 선포하려고 아들이 보낸 사도들 이외에 그 누구에게도 하나님을 계시한 것 같지 않다. 그들이 선포한 것, 곧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계시한 것은 사도들 자신의 설교와 생생한 음성과 그에 따른 편지들로 설립한 교회들에 의해서만 수립되어야 한다. 이것이 옳다면 사도적 교회와 일치하는 모든 교리, 신앙의 자료요 근원인 교리는 진리로 간주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교회가 사도들에게서, 그리스도에게서, 결국은 하나님에게서 받은 것을 의심할 나위 없이 보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이들(이단들) 중 누가 감히 자기들의 기원을 사도시대까지 소급하려고 하고, 그 결과 자기들이 사도들 밑에 있었다는 이유로 사도들에게 전수받았다고 그럴듯한 구실을 대려한다 해도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너희 교회의 근거를 제시하라. 너희 주교의 위계를 제시하라. 처음부터 시작한 승계(의 역사)를 제시하라. 그리하여 너희의 첫 번째 주교가 선임자로서 사도든, 혹은 사도와 밀접한 관계를 맺은 준사도적 인물임을 입증할 수 있도록.”
그러나 그리스도교 성경 해석의 전통에만 근거하여 모든 신앙의 교훈을 판단하는 것 역시 한계가 있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신학 논쟁이 발전하면서, 교회는 새로운 사상을 신앙에 도입하고 기존의 성경 구절도 새롭게 해석하는 등의 과정을 거쳐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레랑의 빈켄티우스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삼중 척도를 제시하며 교회가 새로운 교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습니다. 교리를 판단하는 그의 세 가지 기준이란 ‘보편성’, ‘고대성’, ‘동의성’을 말하는 것으로, 올바른 교리는 먼저 성경에 충실한지의 여부로 확인되어야 하며, 성경의 해석 문제에 직면할 때에는 ‘신실한 자들의 동의(consensus fidelium)’를 통해 ‘어디서나, 언제나, 만인에 의해’ 수용될 수 있는 것임을 판단해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의 척도는 후대의 신학에 많은 영향을 주어, 교부시대 말기에는 ‘그리스도교의 살아있는 전통’에 근거하여 성경을 해석해야 한다는 생각이 교회에 널리 퍼지게 되었습니다.
“내가 아주 거룩하고, 교리적으로 엄밀한 분들에게서 연구하고 헌신 몰두한 것은 다음과 같다. 저 타락한 이단적 오류에서 보편적 신앙의 진리를 구별해내는 데 필요한, 확고하고도 일반적인 지도원리를 어떻게 확립할 수 있겠는가… 성경은 그 심오함 때문에 보편적 의미로 수용되지 않는다. 동일한 성경의 진술이 이 사람, 저 사람에 따라 달리 해석되며, 급기야 사람 수만큼 많은 의견이 존재하는 듯하다… 그러므로 각양각색의 오류 때문에 예언자와 사도들의 해석을 위한 척도를 보편교회의 척도가 지시하는 방식으로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제 보편교회(the Catholic church) 자체 내에서 크게 유념할 것은, 우리가 만민이 언제나 어디서나 믿은 바를 견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quod ubique, quod semper, quod ab omnibus est)
참고
맥글래스, 알리스터, 박종숙 옮김, 『종교개혁 사상입문』, 성광문화사, 1992.
[출처] 교부시대의 신학: 그리스도교 전통의 역할|작성자 YO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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