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부시대의 신학: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기독론

현재의 이집트 지역인 알렉산드리아 시는 과거에 그리스도교 신학교육의 중심지였습니다. 특히 이 지역에 근거를 두고 있던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안디옥 학파와 더불어 교부시대 신학의 기독론적 사유 전개에 많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유명합니다. 아리우스와의 논쟁으로 잘 알려진 신학자 아타나시우스는 이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대표였습니다. 그러나 이 논쟁 외에도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아폴리나리스 논쟁’이라는 또 다른 유명한 기독론 논쟁과도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알렉산드리아 신학자들은 ‘구원론’적 관점을 중심으로 기독론을 발전시켰습니다. 이들은 그리스도교의 ‘구원’을 인간이 ‘신과 같이 됨’, 곧 ‘신격화(deification)’라고 이해하였습니다. 이러한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구원론적 이해는, 구원을 인간의 본성이 하나님의 본성과 합치되는 상태라고 보는 생각으로까지 나아갔습니다. 인간과 하나님의 본성이 합치되었을 때에 만이 하나님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이 인간적인 본성에게도 전해질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러한 합치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안에서 일어났으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삶에 동참함으로써 구원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다시 말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두 번째 위격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인간의 본성을 완전하게 합치시키어 구원을 이루신 분이시기에, 우리가 그분의 삶 속에 믿음으로 동참하여 ‘그가 우리 안에 거하고 우리가 그 안에 거할 때’ 우리의 구원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될 수 있다는 것이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구원론이었습니다.
이렇듯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스스로 인간의 본성을 ‘취하셔서’ 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되셨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본성이 단순히 어느 특정한 인간 속에 ‘거주’하였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본성이 특정한 인간에게 거주하였던 것은 구약의 예언자들의 경우였습니다. 예언자들은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본성을 품었기에 하나님께서 앞으로 이스라엘 민족에게 일으키실 일들을 예언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알렉산드리아 학파 신학자들이 이야기 하고자 하였던 의미는 이와 달리 ‘전지’, ‘전능’, ‘지선’과 같은 하나님의 본성이 ‘불완전’, ‘연약함’, ‘가변성’과 같은 인간의 본성과 합치되어 두 본성이 하나로 변하였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하나님의 본성이 인간의 본성을 취하였다는 주장은, 하나님께서 개별적인 인간을 선택하셔서 그 안에 거하셨다는 의미가 아니라 모든 인간들이 지니고 있는 보편적인 성질들이 하나님의 본성과 결합하였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결합한 두 본성은 하나라는 사실이 알렉산드리아 학파 기독론의 핵심이었습니다.
알렉산드리아 학파 주장은 키릴로스라는 저술가가 쓴 글 속에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키릴로스는 기독론에 대해 제기될 수 있는 오해들을 지적하며 다음과 같이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주장을 요약합니다.
“우리가 주장하는 것은 로고스의 본성이 변화했다거나 육신이 되었다거나 육과 몸으로 구성된 완전한 인간으로 로고스가 변형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로고스가 살아 있는 영혼을 지닌 인간 본성에 자신을 인격적으로 일체화했고 인간 존재가 되었고, 사람의 아들로 불리어졌다는 것이다. 단지 의지와 용모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본성과 인간 본성의 합치를 주장하는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기독론은 후에 ‘과연 하나님의 본성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어떤 종류의 인간 본성을 취하였는가?’라는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본성들 중에는 ‘죄성’과 같은 것들도 있는데, 거룩한 하나님의 본성이 이러한 본성과 합치된다는 생각은 모순적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라오디게아의 신학자 아폴리나리스라는 이러한 문제로 인해 하나님의 본성이 인간 본성을 모두 취하여 인간을 구원하였다는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기독론에 반대하였습니다. 그가 생각하기에는, 하나님의 본성이 인간의 본성을 모두 취하였다는 주장은 곧 순수한 하나님의 본성이 타락한 인간 본성에 의해 오염되었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아폴리나리스는 인간 본성을 하나님에 대한 반역의 근원으로 보았던 것이었습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께서 순수성을 유지하시기 위해서는 오직 순수한 하나님의 본성에 의해 인간 본성이 대체되어야만 하였습니다. 다음은 아폴리나리스의 주장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예언자들에게 발생했던 것처럼 한 거룩한 사람에게 강림한 것은 아니었다고 고백한다. 오히려 말씀 자체가 인간 성정, 곧 오염된 사고에 종노릇하는 가변적 성정을 취하지 않고 하늘의 불변적·신적 정신으로 존재한다고 고백한다.”
아폴리나리스의 주장에 따르면 그리스도의 인간 본성은 사실 진정한 인간 본성이 아니라는 결론이 도출됩니다. 그리스도의 순수성을 중요시 여겼던 이들에게는 이 이야기가 매력적인 주장이었음에도, 이 견해에 내포되어있는 구원의 문제는 당시의 많은 신학자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리스도가 불완전한 인간이었다면 인간의 본성은 그의 안에서 완전하게 구원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는 아폴리나리스의 기독론에 반대하여 하나님의 본성이 인간 본성을 모두 취하신다는 견해가 지닌 구속론적 의의를 주장하였던 신학자들 중 대표적인 인물이었습니다.
380년경에 그가 그리스어로 기록한 어느 편지에는 아폴리나리스주의를 정면으로 비판한 내용이 있습니다. 여기서 그는 인간 본성 전체가 구원받기 위해서는 인간 본성 전체가 하나님의 본성과 합치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인간 본성이 죄악의 영향으로 타락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하나님께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견해를 펼쳤습니다. ‘취함을 받은 것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라는 것이 그레고리우스의 구속록의 핵심인 것입니다.
또한 그는 그리스도가 완전한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육신적 어머니인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라는 용어인 ‘테오토코스’로 인정해야 한다고도 이야기하였습니다. 마리아가 하나님의 어머니라는 이야기는 단순히 그녀가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낳았다는 사실을 뛰어넘어서, 마리아가 인간이었듯이 마리아의 몸에서 육신으로 태어나신 예수께서도 역시 완전한 인간이었다는 점까지 나타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이시며 하나님인 그분에게 그들이 대신 붙인 ‘주님의 사람’이라는 칭호가 인간 성정이 빠진 것이라고 밝혀줌으로써 사람들이 스스로를 속이고 남도 속이는 일이 없도록 하라. 우리는 신성에서 인성을 분리하지 않는다. 실로 우리는 이전에 인간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시요, 마지막 날 우리 구원을 위해 인간 본성을 취하신 모든 세대 전에 존재한 독생자의 인격적 통일과 동일성에 관한 교리를 확증한다. 그의 육신 안에서 가능하며 그의 신성 안에서 무감하며, 그의 몸 안에서 제약저이나 영 안에서 무제약적이며 세상과 하늘 안에서 동시에, 가촉·불가촉적으로, 가해·불가해적으로, 완전한 인간이요 완전한 하나님인 동일한 인격에 의해 죄에 빠진 모든 인간이 구원받을 수 있도록. 성모 마리아가 ‘테오토코스(theotokos/하나님을 낳은 자)’임을 믿지 않는다면 그들은 신에게서 떨어져나갈 것이다. 만일 인성이 창조된 후에 비로소 신성이 부가되었다고 주장한다면 그들도 정죄를 당하리라. 두 아들 사상-하나님 아버지의 아들과 어머니의 아들-을 제기하는 자도 하나님의 자녀라는 특권을 잃을 것이다… 왜냐하면 신성과 인성은 영혼과 몸과 같이 두 본성이나, 두 아들이나, 두 하나님은 없기 때문이다… 두 본성은 결합으로써 하나이기 때문이다-인간이 된 신이거나 신이 된 인간이거나 올바른 표현이 무엇이든지간에… 만일 인간적 성정을 결여한 인간으로서 그를 신봉한다면 그런 자들은 성정이 없는 자요 구원받을 가치가 없는 자들이다. (성육신에서) 취한 바가 아닌 것은 구원의 대상도 아닌 것이다. 구원의 대상은 그의 신성과 합일한 것에 국한된다. 그들이 우리의 전체적 구원에 대해 시기하거나 구주가 인간의 혈육과 외양만을 부여받았다고 주장하지 못하게 하라.”
[출처] 교부시대의 신학: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기독론|작성자 YO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