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꾸르실리스따의 자화상 ^^
속담에 ‘나이 40 넘어서 형성되는 자신의 모습에 대해서는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 자신의 모습을 자성케 하면서
또한 다듬케 하는 의미심장한 말이라 느껴집니다.
흔히 세파에 미혹되지 말아야 한다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는 불혹은
인생에 있어서 대략 중간 지점에 해당하는 연륜이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계속 앞만 바라보면서 성장만을 목표로 숨 가쁘게 살아 왔다면,
이제부터는 아름다운 결실을 바라면서 인생의 가치 실현을 목표로
반듯하게 살아가려는 깨달음의 시기이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인생의 완성을 향한 길목이라 할 수 있는 중요한 시기이기에
앞날을 향하여 자신의 모습을 보람되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가꿀 수 있는가
하면, 자칫 잘못하여 욕망으로 얼룩진 추한 모습으로 일그러지게 만들어
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불혹이라고 일컫는 나이가 인생의 전환점으로서 자신의 모습을 새롭게
결정짓는 기회라고 한다면, 꾸르실료는 그리스도인에게 신앙인의 참
모습을 올바르게 형성해주는 은총의 기회라고 자신 있게 말하고 싶습니다.
꾸르실료를 수료하는 날 새로 탄생한 꾸르실리스따들의 진솔한 고백에
의하면 거의 대부분이 꾸르실료가 자신의 눈을 뜨게 하면서 신앙생활에
새로운 쇄신의 획을 긋는 획기적인 전환점이 되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기에 꾸르실리스따 역시 꾸르실료
이후에 형성되는 자신의 신앙적인 모습에 책임을 져야 할 신앙인입니다.
우리가 진정한 꾸르실리스따라면 복음서에 나오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처럼 좋은 땅에 떨어져야 좋은 열매를 맺는 씨앗의 모습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길바닥이나 돌밭, 가시덤불에 떨어진 씨앗처럼 되어서 쪼아
먹히거나 말라죽거나 숨 막혀 질식해 버리고 만다면 쓸모없고 무기력한
꾸르실리스따의 모습을 지니고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꾸르실료를 통해서 우리는 많은 것을 배웠고, 많은 것을 알았으며
또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하여 위선을 벗어 버렸고, 허식을 깨뜨렸고, 가면을 던져 버렸습니다.
오로지 주님의 무한한 기도로 호흡했습니다.
또한 3박 4일의 꾸르실료 과정을 통해서 교회의 참 봉사자의 모습을
발견했고 교회의 진정한 지도자의 모습도 똑똑히 보았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주님을 만날 수 있었기에, 또 천국을 볼 수 있었기에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고, 진정한 주님의 사도가 되고,
훌륭한 꾸르실리스따가 되겠노라고 결심을 하고,
거듭 다짐을 할 수 있었습니다. 실로 이 모든 것이 꾸르실리스따에게
주어진 주님의 은총이자 주님의 소명이었습니다.
“그리스도와 교회와 교황은 그대만을 믿습니다.”
바오로 6세께서 하신 이 말씀은 이 세상의 모든 꾸르실리스따에게
존재의 의미를 일깨워주는 엄청난 메시지라 여겨집니다.
이 세상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몸소 증언하고
실천하면서 나누는 사도의 역할이 곧 꾸르실리스따의 본분임을
우리는 불철주야 명심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이처럼 교회 안에서, 세상 안에서 꾸르실리스따의 역할과 사명이
막중하기에 교황님께서는 “그대만을 믿습니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적극적인 기대와 전폭적인 신뢰를 나타내 주셨던 것입니다.
친애하는 꾸르실리스따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언제나 어디서나 한결같이 깨어있는 꾸르실리스따로 존재해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꾸르실리스따라면 누구나 할 것 없이 세상이라는 화폭 위에
복음의 붓으로 하느님의 뜻을 아름답게 채색하면서 자신의 자화상을
정의롭게 그려가는 주님의 일꾼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느님 나라의 실현을 위해 이상, 순종, 사랑의 토대 위에서
회개의 자화상을 그리면서 하느님 품에 안길 수 있는 꾸르실리스따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불리움을 받은 소명 의식과
주님 현존의 생명 안에서 사랑의 자화상을 그리면서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꾸르실리스따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이 세상의 복음화를 향해서 가정과 직장과 사회를 무대로
빛처럼 소금처럼 누룩처럼 교회 안에서 겸손의 자화상을 그리면서
묵묵히 솔선수범하는 꾸르실리스따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상처받은 이 세상의 유일한 희망입니다.
데 꼴로레스!
부산교구 주간
박재균 베네딕토
속담에 ‘나이 40 넘어서 형성되는 자신의 모습에 대해서는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 자신의 모습을 자성케 하면서
또한 다듬케 하는 의미심장한 말이라 느껴집니다.
흔히 세파에 미혹되지 말아야 한다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는 불혹은
인생에 있어서 대략 중간 지점에 해당하는 연륜이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계속 앞만 바라보면서 성장만을 목표로 숨 가쁘게 살아 왔다면,
이제부터는 아름다운 결실을 바라면서 인생의 가치 실현을 목표로
반듯하게 살아가려는 깨달음의 시기이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인생의 완성을 향한 길목이라 할 수 있는 중요한 시기이기에
앞날을 향하여 자신의 모습을 보람되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가꿀 수 있는가
하면, 자칫 잘못하여 욕망으로 얼룩진 추한 모습으로 일그러지게 만들어
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불혹이라고 일컫는 나이가 인생의 전환점으로서 자신의 모습을 새롭게
결정짓는 기회라고 한다면, 꾸르실료는 그리스도인에게 신앙인의 참
모습을 올바르게 형성해주는 은총의 기회라고 자신 있게 말하고 싶습니다.
꾸르실료를 수료하는 날 새로 탄생한 꾸르실리스따들의 진솔한 고백에
의하면 거의 대부분이 꾸르실료가 자신의 눈을 뜨게 하면서 신앙생활에
새로운 쇄신의 획을 긋는 획기적인 전환점이 되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기에 꾸르실리스따 역시 꾸르실료
이후에 형성되는 자신의 신앙적인 모습에 책임을 져야 할 신앙인입니다.
우리가 진정한 꾸르실리스따라면 복음서에 나오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처럼 좋은 땅에 떨어져야 좋은 열매를 맺는 씨앗의 모습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길바닥이나 돌밭, 가시덤불에 떨어진 씨앗처럼 되어서 쪼아
먹히거나 말라죽거나 숨 막혀 질식해 버리고 만다면 쓸모없고 무기력한
꾸르실리스따의 모습을 지니고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꾸르실료를 통해서 우리는 많은 것을 배웠고, 많은 것을 알았으며
또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하여 위선을 벗어 버렸고, 허식을 깨뜨렸고, 가면을 던져 버렸습니다.
오로지 주님의 무한한 기도로 호흡했습니다.
또한 3박 4일의 꾸르실료 과정을 통해서 교회의 참 봉사자의 모습을
발견했고 교회의 진정한 지도자의 모습도 똑똑히 보았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주님을 만날 수 있었기에, 또 천국을 볼 수 있었기에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고, 진정한 주님의 사도가 되고,
훌륭한 꾸르실리스따가 되겠노라고 결심을 하고,
거듭 다짐을 할 수 있었습니다. 실로 이 모든 것이 꾸르실리스따에게
주어진 주님의 은총이자 주님의 소명이었습니다.
“그리스도와 교회와 교황은 그대만을 믿습니다.”
바오로 6세께서 하신 이 말씀은 이 세상의 모든 꾸르실리스따에게
존재의 의미를 일깨워주는 엄청난 메시지라 여겨집니다.
이 세상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몸소 증언하고
실천하면서 나누는 사도의 역할이 곧 꾸르실리스따의 본분임을
우리는 불철주야 명심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이처럼 교회 안에서, 세상 안에서 꾸르실리스따의 역할과 사명이
막중하기에 교황님께서는 “그대만을 믿습니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적극적인 기대와 전폭적인 신뢰를 나타내 주셨던 것입니다.
친애하는 꾸르실리스따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언제나 어디서나 한결같이 깨어있는 꾸르실리스따로 존재해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꾸르실리스따라면 누구나 할 것 없이 세상이라는 화폭 위에
복음의 붓으로 하느님의 뜻을 아름답게 채색하면서 자신의 자화상을
정의롭게 그려가는 주님의 일꾼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느님 나라의 실현을 위해 이상, 순종, 사랑의 토대 위에서
회개의 자화상을 그리면서 하느님 품에 안길 수 있는 꾸르실리스따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불리움을 받은 소명 의식과
주님 현존의 생명 안에서 사랑의 자화상을 그리면서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꾸르실리스따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이 세상의 복음화를 향해서 가정과 직장과 사회를 무대로
빛처럼 소금처럼 누룩처럼 교회 안에서 겸손의 자화상을 그리면서
묵묵히 솔선수범하는 꾸르실리스따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상처받은 이 세상의 유일한 희망입니다.
데 꼴로레스!
부산교구 주간
박재균 베네딕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