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양심성찰을 하나
시간은 돈이다. 믿음은 구원이다. 기도는 하느님을 만난다. 양심성찰은 사람을 사람답게 살게한다. 소홀히 할 것이 없는 것이 우리 인생의 삶이다. 오늘은 뭔가 부족 했어 할때 내가 충실이 하루를 살았다면 안타까워하는 소리가 나오질 않을것이지만 뭔가 부족함이 느껴질 때 나오는 소리가 바로 자신의 양심의 소리이다. 하루를 보내며 많은 사람들은 한숨을 쉴 수도 있고, 고마움을 표 할수도 있으며, 아주 감사하며 기뻐할 수도 있다. 이런 것들을 하루하루 더 구체적으로 실현시키는 양식이 바로 양심성찰이다
양심성찰을 다른 말로 표현하라 하면 마음을 돌아다보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마음을 들여다 본다하면 뭐 거창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자신이 산 하루 또는 한 나절을 조용히 그분과 함께 들여다보는 것이다. 즉 마음의 일기를 쓴다고 생각하면 더 편안하게 시작할 수도 있껬다.
많은 사람들이 어릴 적에 일기를 잘 쓰곤 하는데 나이를 먹으면서 뭐가 그렇게 바쁘고 쫒기는지 일기와 멀어져간다. 일기 쓰는 것과 멀어진 사람은 그만큼 자기 자신을 돌아볼 시간을 갖지 못하는 것이다. 자 지금부터는 펜을 잡을 시간이 없고 뭔가 문장으로 남기기가 좀 뭐하다면 그냥 그날 그날 정해진 시간에 마음의 일기를 써 보자. 다만 그 마음에 쓰는 일기를 그분과 함께 하면서 쓰자는 것이다. 그럼 훨씬 수월하게 양심성찰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엄마의 하루는 가족의 하루이고, 아빠의 하루는 일터의 하루이고,선생님의 하루는 학생들을 위한 하루이고 수도자와 성직자의 하루는 온 교우들을 위한 하루이고, 공직자의 하루는 백성을 향한 하루이고, 대통령의 하루는 온 백성을 향한 최대한의 정성을 쏟는 것이다. 이런 것을 온전히 수행하지 못할 때 우린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더 나아가 압박을 받을 수 있고,공개적으로 수모를 당할 수도 있다. 그러기에 자신의 양심이 어디에 있는가를 잘 보고 도적놈 소릴 듣지 않는 떳떳한 사람으로 살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렇게 자기자리에서 성심성의껏 산다면 그다지 양심성찰의 시간이 어렵거나 피곤하지 않을 것이다. 자기자리를 이탈하면 우린 위기를 맞이하며 양심성찰의 시간을 피하게 된다. 힘들어서 피하는 것이아니라 두려워서 피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양심이 무디어 진 사람은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를 구분하지 못한다. 혹시 나의 마음 상태가 이런 상태는 아닌지 잘 살펴보기를 바란다. 또한 커다란 것을 숨겨 놓고 작은 것에 연연해 하는 나는 아닌지 도 점검해봐야할 것이다. 왜냐하면 양심이 무디어지는 과정은 바로 작은 것을 놓치는 가운데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마음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묵주기도를 많이 한다 해도 늘 마음이 어두워 누군가를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심지어는 무력까지 행사하려 든다면 그 사람은 그다지 큰 영적발전을 이룰 수가 없다. 묵주기도와 묵상기도와 미사에 참여하되, 우리 삶의 기본이 되는 양심성찰을 반드시 실행하며 살아보라고 꼭 권하고 싶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성찰을 하며 살 것이다. 그런데 연속성을 가지지 못하는 것이 문제일 것이다. 아주 바븐쁜사람이라면 단 2-3분 만이라도 시간을 내보라. 그러면 그 시간 안에서 자신을 깊게 볼수 있는 능력을 하느님께서 만들어 주실 것이다. 마음을 열기만 하면 하느님께서 다 정리해 주심을 곧 느끼게 될 것이다. 이냐시오 성인은 예수회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바빠서 도저히 어떤 것도 할 시간이 없다하여도 양심성찰만큼은 꼭 실행하라고 권고하섰다.
간단한 양심성찰은 성호를 기도로 시작하고, 삼위일체의 하느님과 함께 하루를 돌아보는 것이다. 최대한 빠르게 자신의 하루을 돌아보데, 기억력을 다 동원시켜라, 그러면 컴퓨에 원하는 자료를 기록하고 검색버튼을 누르는 순간 쫘르륵 자료가 다 흘러나오듯 그분께서 선명하게 정리를 해 주실 것니다. 믿고 따라 해 보라.
이인주 신부 (예수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