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40호 2023년 3월 26일(가해):사순 제5주일

2023. 3. 26. 오전 4:5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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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40호 2023년 3월 26일(가해):사순 제5주일



오늘 전례

<주교회의의 판단에 따라, 이 주일부터 성당에 있는 십자가와 성화 상들을 가리는 

관습을 보존할 수 있다(한국 교구들에서는 이 관습을 보존할 수 있다.). 

십자가는 성금요일 주님 수난 예식 거행을 마칠 때까지 가려 둔다. 

성화 상들은 파스카 성야 예식을 시작할 때까지 가려 둔다. 

파스카 성야에 그리스도교 입문 성사들을 받을 예비 신자들을 위한 세례 준비로 

셋째 수련식을 이 주일에 거행한다. 

이 수련식에서는 고유 기도문과 고유 전구를 사용한다.>


사순 제5주일인 오늘 주님의 말씀은 우리가 부활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무덤에서 끌어내시리라는 예언은 죄의 행실과 양심의 가책으로 

괴로워하는 우리를 해방하신다는 소식이기도 합니다. 

새로운 삶의 초대에 응답하면서 기쁜 마음으로 이 미사에 참여합시다.


입당송 | 시편 43(42),1-2 참조

하느님, 제 권리를 찾아 주소서. 불충한 백성에게 맞서 제 소송을 이끌어 주소서. 

거짓되고 불의한 자에게서 저를 구해 주소서. 당신은 저의 하느님, 저의 힘이시옵니다.


제1독서 | <내가 너희 안에 내 영을 넣어 주어 너희를 살리겠다.> 에제 37,12ㄹ-14


화 답 송 | 시편 130(129),1-2.3-4.5와 6ㄴㄷ-7ㄱ.7ㄴㄷ-8(◎ 7ㄴㄷ)

◎ 주님께는 자애가 있고 풍요로운 구원이 있네.

○ 깊은 구렁 속에서, 주님, 당신께 부르짖나이다. 주님, 제 소리를 들어 주소서. 

    애원하는 제 소리에 당신 귀를 기울이소서. ◎

○ 주님, 당신이 죄악을 헤아리신다면, 주님, 감당할 자 누구이리까?  

    당신은 용서하는 분이시니, 사람들이 당신을 경외하리이다. ◎

○ 나 주님께 바라네. 내 영혼이 주님께 바라며, 그분 말씀에 희망을 두네. 

    내 영혼이 주님을 기다리네. 파수꾼이 새벽을 기다리기보다, 

    이스라엘이 주님을 더 기다리네. ◎

○ 주님께는 자애가 있고, 풍요로운 구원이 있네. 

    바로 그분이 이스라엘을 모든 죄악에서 구원하시리라. ◎


제2독서 |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분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사십니다.>

               로마 8,8-11


복음환호송 | 요한 11,25.26 참조

◎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님, 찬미받으소서.

○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으리라. ◎


복 음 |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요한 11,1-45<또는 11,3-7.17.20-27.33ㄴ-45> 


영성체송 | 요한 11,26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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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위 성인:성녀 박희순 루치아 :(1801-1839)


동정녀이며 순교자인 박희순은 뛰어난 미모와 재주 덕분에 어려서 궁녀로 뽑혀 궁궐

에 들어갔다. 그런데 어린 순조가 유혹했을 때 용기와 덕으로 물리쳐서 그 명성이 세

간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30세경 천주교를 알아 입교하였는데 궁녀의 신분으로 신앙

생활을 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고선 병을 핑계로 궁궐을 나왔다. 그 뒤로 조카의 

집에 살면서 언니 박 큰아기와 조카 식구들을 입교시켰다. 

1839년 기해박해 때 천주교인으로 밀고되자, 박희순은 조카 가족과 함께 전경협(全

敬俠)의 집으로 피신하였다. 하지만 4월 15일, 그곳을 습격한 포졸들에게 체포되었

다. 함께 체포된 많은 이가 혹형과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배교하였으나, 박희순은 언

니와 전경협과 함께 끝까지 신앙을 지켰다. 또한 다리가 부러지고 골수가 흐르는 만

신창이의 몸으로 교우들에게 권면하는 편지를 써 그들을 감동하게 하였다. 

이렇듯 열정적인 신앙으로 모든 고통을 이겨 낸 박희순은 1839년 5월 24일, 8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아 39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성화_권녕숙 作, 「한국 103위 순교 성인화 특별전」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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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자로의 부활 (요한 11,1-6)



예수께서 죽은 친구 라자로를 소생시킨 이야기가 전개되는 이때 예수의 일행은 

유대아 지방 밖 요르단강 계곡을 따라 여행하고 계셨다. 

이 여행은 예루살렘 성전 봉헌절(겨울 요한 10, 22)과 봄에 있을 과월절(요한 11,55) 

사이에 예수를 음해하려는 유대아인들을 피하여 요르단강 건너편을 편력하던 

여행길이었고 아마도 최후 목적지는 십자가가 기다리는 예루살렘이었을 것이다.


이야기는 예루살렘 근처에 있는 작은 동네 베타니아라는 곳에서 시작된다. 

이 베타니아는 예수의 친구 마르타와 그의 누이 동생 마리아 그리고 이 자매들의 오빠 

라자로가 사는 유대아의 동네였고 예수와 그 제자들이 예루살렘 성전 행사에 

참석하실 때 머무시던 곳이다. (마태 21,17). 

예수께서 전교여행을 하시며 그 행보가 닿았던 곳 중에서 베타니아라는 곳이 두 곳이 

있는데 하나는 요한이 세례를 베풀던 요르단강 건너편의 베타니아이고(요한 1,28 : 10,41)

또 한 곳이 지금 이야기의 현장이 되는 마르타와 마리아가 사는 베타니아이다. 

전자는 아나니야의 집이 그 원명칭이었던 것으로(느헤 11,32) ‘증언하는 집’이란 뜻이다. 

세례자 요한이 구세주 예수를 이곳에서 증언한 것과 후자 베타니아는 예루살렘에서 

오마일 정도 떨어진 곳으로(요한 11,18) 오늘날에는 ‘엘아자리야’(아자리야는 라자로에서 

나온 발음)라고 하는 동네이다.


마르타와 그 자매 마리아 그리고 그 오빠 라자로는 주님이 사랑하고 계셨던 한 가족으로

(요한 11,5)주님이 그 집에 자주 들러 쉬시던 한 가족이다. (루카 10,38-42)

이 자매에 대해서는 대목 179에서 자세히 말한대로 주님 일행을 물심양면으로 보살펴 

드렸고 또 자기 집의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예수님의 은혜를 청하여 받기로 하였다. 

특히 마리아는 주님께 향유를 붓고 머리털로 주님의 발을 닦아 드린 여자이며(마르 14,3) 

주님께서 집에 오시면 주님의 구원의 말씀을 들으며 명상에 잠기던 여자였다.


이렇게 친밀한 관계에 있던 집안에 우환이 있었다. 이들 자매의 남동생 라자로가 중병에 

걸려 살 희망이 없어 보였다. 

이 자매들은 주님이 어디에 계시는지를 알고 있은 듯 곧바로 주님께 전갈을 보냈다. 

빨리 오셔서 손을 써 주시라고 부탁한 것이었다. 

아마도 자매의 아버지 혹은 언니 마르타의 남편 시몬(대목 179 참조)의 나병 치유의 

기적을 생각했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 기별을 받고서 이틀 동안 거기에 머물러 계시다가 사흘만에야 마르타의 

집으로 향하셨다. 

예수께서 마르타의 집에 도착하였을 때는 라자로가 죽은 지 나흘 후였다고 한 것을 보면

(요한 11,17) 자매들이 기별을 보내는데 하루, 예수께서 그 집으로 가시는데 하루가 걸린 

셈이다. 

그리고 라자로는 누나가 예수께 도움을 청하는 사람을 보내고 나서 곧 죽었다.


하여튼 예수께서는 기별을 받드시고 제자들에게 느긋하게 말씀하셨다 

“그 병은 죽을병이 아니다. 

오히려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고 하느님의 아들로 그 영광을 받게 될 것이다” 

이게 웬 말씀일까. 무슨 뜻일까. 

얼마전에 소경을 고쳐주실 때에도 비슷한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이 사람이 소경으로 태어난 것은 자기 죄 탓도 아니고 부모의 죄 탓도 아니다. 

오직 이 사람에게서 하느님의 놀라운 일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요한 9,3). 

여기서 예수님의 복음신학이 드러난다. 

즉 예수께서는 그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느냐의 정도에 따라 은혜를 베푸신다는 뜻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죽기 전에 병의 치유라는 은혜를 주시지만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죽음이라는 고통을 받은 후에 죽음을 넘는 생명을 주시며 그 생명은 영원한 

생명이다. 

그래서 ‘사랑하는 라자로’라는 말이 여러 번 반복된다.


이 사상은 예수님 자신이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시고 부활의 영광을 받은 데서 드러난다. 

하느님의 놀라운 업적은 어둠을 비추는 창조에서 드러났고 하느님의 사랑은 죽음을 

이기는 인간부활에서 드러난다.



-백민관 신부ㆍ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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