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을 믿나이다”: 하느님의 이름

2023. 3. 17. 오전 5:2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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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을 믿나이다”: 하느님의 이름 



2022년 12월 24일 우리나라의 첫 달 궤도선인 ‘다누리’가 지구 영상을 찍어 

보내왔습니다. 

이 사진을 보고 있으면, 우리가 달나라의 토끼를 상상하듯, 달에서는 지구나라의 

무언가를 상상할 것 같기도 합니다. 

반지름이 6400km인 이 지구에서 우리가 디디고 있는 땅은 해양지각이 5km, 

대륙지각의 가장 두꺼운 곳이 70km 정도 됩니다. 

그러니 이 지구에서 100년을 산다 해도 우리는 광대한 우주 안 46억 년의 나이를 먹은 

지구라는 아주 작은 행성에서 마치 동그란 빵의 얇은 껍데기 같은 데에 ‘잠깐’ 붙었다가 

사라지는 셈입니다. 

이런 자연과학적 사실을 직시하는 것은, ‘나는 하느님을 믿습니다.’라는 고백에 방해가 

아니라 오히려 도움이 됩니다.


나는 어떤 하느님을 믿고 있는 걸까요? 

성경은 지구는 평평하고, 해와 달과 별이 지구를 돌고 있다는 우주관을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이런 사고에서 표현되는 하느님이 지금 우리에게도 여전히 의미 있을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답하려면 성경이 단순한 자연과학 서적이 아니라 신앙고백서라는 사실을 

먼저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이 말이 성경에 쓰여진 것이 모두 거짓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성경은 분명 역사적 사건의 어떤 핵심을 전하고 있습니다. 

다만 성경의 일차적 목적은 신문기사와 같은 사실 전달이 아니라, 역사 안에서 하느님이 

어떤 일을 하셨고, 그 일 안에서 어떤 분으로 드러났는지 고백하는 것입니다. 

신앙은 증명 가능한 과학 지식을 믿는 것과 같지 않습니다.


어떤 하느님을 믿는가와 관련해서 하느님 이름의 계시를 살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하느님의 이름을 묻는 모세에게 하느님은 “나는 있는 나다.(YHWH)”라고 답하십니다. 

이를 철학적 용어로 ‘자존자’, 즉 ‘스스로 있는 자’라고 번역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나는 있는 나다.’라고 번역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일단 이 말씀은 질문에 대한 응답의 거부입니다. 

당신 이름을 묻는 마노아에게 하느님은 “내 이름은 무엇 때문에 묻느냐? 

그것은 신비한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판관 13,18) 

성경에서 이름이란 그 존재의 실존을 규정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규정하는 순간 그 존재는 경계선, 한계를 갖게 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볼 때 하느님은 당시 다른 이방인들의 신들과 같은 수준의 신이 

아니며, 본질적으로 참 하느님으로, 신비로 남아 있어야 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YHWH를 직접 발음하지 않고 ‘아도나이’라고 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한편 신학자들은 이 이름이 적극적인 의미도 담고 있다고 봅니다. 

이 단어가 ‘~을 위한 존재’인 하느님을 표현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하느님의 이름은 ‘너와 함께 있는, 있는 나’를 의미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지금 나와 함께 계시는 ‘있는 나’로서 계시는데, 동시에 미래에도 나와 함께 

계신 분임을 당신 이름 안에 표현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체험한 하느님은 무엇보다도 “과거에도 나와 함께 있는 

‘있는 나’이신 분이며, 현재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나와 함께 계시는 ‘있는 나’”이신 

분입니다. 

내가 언제 어떤 상황에 있든 함께 계시는 하느님, 이 하느님이 구약성경이 고백하는 

가장 근본적인 신앙의 하느님입니다.



-최현순데레사 | 서강대학교 전인교육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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