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이삭:성모님의 기도
요즘은 서른이 넘어 시집을 가는 것이 크게 늦거나 걱정할 일이 아니지만,
불과 20년 전만 해도 사정이 달랐습니다.
저는 서른 중반의 나이에 다소 늦은 결혼을 했습니다.
그때까지 제 삶은 크고 작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비교적 순탄한 편이었습니다.
그러나 결혼과 함께 예상치도 못했던 어려움이 찾아왔습니다.
흡사 길고도 험한 오르막을 올라가는 것처럼 힘든 날들이 이어졌습니다.
새 생명을 기다려야 하는 길고도 긴 오름이었습니다.
새 생명을 기다리는 시간이 마치 고된 언덕길을 올라가는 것처럼 힘겹게
느껴졌으니까요.
오르막일지라도 주변을 둘러보면 아름다운 풍경, 반짝이는 하늘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었겠지만, 두려움에 사로잡혀 끝이 보이지 않는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듯
울퉁불퉁한 땅바닥만 바라보며 걸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새 8년이 지났습니다.
그 사이 제 나이도 마흔을 넘겼으니 새 생명을 기다리는 길고 긴 산행을 접어야겠다고
체념하며, 방향을 틀어 걷고 싶은 길로 자유로운 발걸음을 내디뎠습니다.
그러면서 문득문득 ‘하느님은 왜 제게 이렇게 기나긴 오르막을 주셨던 것일까?’라는
질문을 하곤 했습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이제보니 제가 많은 기도를 받았다는 걸 알았습니다.
특히 기억에 남은 기도가 있습니다.
루르드로 성지순례를 다녀오신 한 자매님의 기도입니다.
자매님은 순례를 떠나기 전에 머나먼 프랑스의 성지에서 저를 위해 기도해 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귀국하신 뒤에 루르드의 성수와 예쁘고 귀한 묵주를 선물로 주시며 루르드의
마사비엘 동굴에서 기도하신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그 뒤에 생각지도 않게 새 생명을 선물받게 되었으며, 그해 연말에는 지금의 딸
이사벨이 태어났습니다.
저를 위한 많은 기도가 하늘에 닿았던 것입니다.
그 후 이사벨은 유아세례와 첫영성체를 거쳐 매주 어린이 미사와 주일학교를 성실하게
다녔습니다.
반면에 저는 직장에 다닌다는 핑계와 남편이 비신자라는 이유로 주일미사를 거르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본당 앞마당에서 성모님을 뵐 때면 멀리서 기도해 주신 따듯한 기도가 다시 기억나고
신심 부족한 세월을 돌아보게 됩니다.
루르드 동굴에서 발현하신 성모님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성모 동굴 앞에서, 손에는
묵주를 들고 하늘을 올려다보시며 온화하면서도 슬픔을 머금은 모습으로 저희를 위해
전구해 주시는 성모님께 기도드립니다.
저희의 마음을 이 촛불에 담아 봉헌합니다.
저의 가족과 모든 이를 위하여 기도하여 주십시오.
봉헌 후 저희가 떠나 있는 동안에도 저희의 마음은 타오르는 촛불과 함께 머물러 있을
것입니다.
-유난이 글라라:리움미술관 보존연구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