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이삭:엄마의 아주 특별한 여행
아버지를 주님 품에 먼저 보내시고 홀로 되신 지 올해로 8년 째. 다행히 엄마는
고향의 동네 성당에서 활동도 즐겁게 열심히 하시고 지인들과 친교를 이루시며
건강하게 잘 지내십니다.
올해는 그런 엄마가 팔순을 맞으시는 뜻깊은 해입니다.
여느 생신과는 다른 이벤트를 기획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형제들이 지난 연말부터
온라인으로 머리를 맞댔습니다.
“형님, 그래도 팔순인데 좀 근사하게 해야 하지 않을까요, 호텔 하나 잡아서 지인들
친척들을 두루 모시고 제대로 된 식사도 대접하고 합시다!”
“그래요, 둘째 형님 말씀이 좋은 거 같아요.
시간이 아직 좀 남아있으니 호텔은 제가 잡아 볼게요.”
“오빠, 요즘은 팔순을 너무 거하게 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가까운 친척 분들만 모시고 가볍게 식사나 하시죠.”
동생들의 의견을 쭉 들으며 장남인 저는 한 술 더 뜹니다.
“그래도 아버지를 창졸간에 그렇게 보내시고 마음이 많이 헛헛하실텐데 둘째 말대로
제대로 하자. 내가 방송국에 있으니 좀 유명한 가수도 한 분 초대해서 흥을 돋우어
볼까?”
그리하여 우리 형제들 나름의 생각들을 전달해 드리러 지난 설 때 고향집에
모였습니다.
“여차저차 하여 저희들은 이렇게 하려고 하는데 어무이도 괜찮지요?
TV에 나오는 연예인도 섭외해 볼게요!”
당당하게 장남인 제가 이렇게 말씀드리고 어머님의 흐뭇한 리액션을 기대하고
있는데 어머님은 뜻밖의 반응과 생각지도 못한 제안을 하셨습니다.
“얘들아, 너희 마음이 참 고맙구나. 그렇게 해도 참 좋긴 하겠지만, 팔순을 목전에 둔
아버지가 8년 전 그렇게 떠나셨는데 내가 팔순잔치를 거하게 하려니 좀 맘이
무겁구나.
그런 건 다 순간뿐이고 지금 분위기에도 안 맞아 보이는구나.”
“차라리 내가 평생소원이 하나 있는데, 그걸 너희들이 들어줄 수 있겠니?”
저희 형제들의 표정이 자못 진지해졌는데 어머님은 계속 말씀을 이어가셨습니다.
“내가 아직 교황님 계신 곳 바티칸을 못 가봤는데 거기 가서 교황님도 먼 발치나마
알현하고, 미사도 드리고 싶구나.
그리고 여건이 된다면 평화를 구하는 기도의 프란치스코 성인이 나고 돌아가신
아시시에도 가보고 싶구나.
아직은 그 정도 다닐 힘은 있으니, 팔순 선물로 너희들이 그렇게 해 준다면
난 여한이 없겠구나.”
저희들은 모두 망치로 한 대 맞은 듯 숙연해졌고 다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어머님이 곧 이탈리아 성지순례길에 오르십니다.
여동생이 옆에서 어머니의 귀와 눈, 손과 발이 되어 주기로 했습니다.
벌써부터 소풍을 앞둔 초등학생처럼 기대에 부풀어 체력 단련도 하시고, 여행지
공부도 하시고 신이 나셨습니다.
어머님이 생애 가장 특별한 여행을 무사히 잘 마치고 돌아오시면, 팔순 생신날
옹기종기 모여 여행담 들을 걸 생각하니 저희는 저희대로 마음이 설레이곤 합니다.
“주님, 어머님의 아주 특별한 여행을 축복해 주시옵소서, 아멘"
-이영준 로렌조:KBS 시사교양국 프로듀서, 가톨릭커뮤니케이션협회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