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능하신 천주성부를 믿나이다”(1)

2023. 2. 15. 오전 5: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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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하신 천주성부를 믿나이다”(1)



사도신경은 성부께 대한 신앙, 성자께 대한 신앙, 그리고 성령께 대한 신앙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사도신경이 사실은 삼위일체 하느님에 대한 신앙고백인 것이지요. 

이 구조는 니케아 콘스탄티노플 신경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선 첫 문장부터 보겠습니다. “전능하신 천주 성부 천지의 창조주를 저는 믿나이다.” 

가끔 무슨 기도를 해야 할 지 모를 때, 성체 앞에서 사도신경을 바치며 묵상하는 것은 

참 좋습니다. 

그런데 삶에서 별 어려움이 없을 때에는 입에서 술술 나오지만, 정말로 삶이 고달프고,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을 때에는 “전능하신”이라는 그 첫마디에서 

막혀버리기도 합니다. 

천지 사방이 어둡고 발은 허공에 뜬 것 같은, 그런 인생의 시간을 겪어보신 분들은 

“전능하신 천주 성부”라는 말을 진심으로 고백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아실 것

입니다. 

물론 어떤 분들에게는 가능하기도 하지만, 또 어떤 분들에게는 첫 단어가 목에 걸려 

나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전능하신”이라니…. 전능하시다면 이런 상황을 만들지 않으시거나, 허용하지 

않으시든가 혹은 해결하시든가 해야 하지 않을까?”고통스러운 이 질문 앞에서 한 가지 

생각해 보도록 초대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느님”이라고 할 때 어떤 모습을 상상하시나요? 

어쩌면 우리는 ‘슈퍼맨’ 같은 하느님을 그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물론 우리의 인생에서 하느님은 때로 슈퍼맨처럼 체험되기도 합니다만, 

때로 우리는 침묵 속에 계시는 하느님, 심지어 무능해 보이기까지 하는 하느님을 

체험합니다. 

위안이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런 체험은 우리만의 것은 아닙니다.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마르 15,34) 

십자가 사건에서 성부께서는 침묵하시는 것 같습니다. 

대체 천지의 창조주이신 하느님의 전능하심은 무엇일까요? 

분명한 것 하나는 ‘전능하신’이라는 말이 ‘언제 어디서나 우리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짜잔’하고 나타나서 문제를 해결하는 그런 뜻만은 아닐 것 같다는 것입니다.


‘전능하신’에 해당하는 희랍어는 ‘판토크라토르(παντοκρατωρ)’입니다. 

이 말은 만유의 주재자라는 뜻으로 ‘만군의 하느님’, ‘온 누리의 하느님’이신 거지요. 

온 우주의 하느님, 개인, 권력자 그 모든 것들보다 높으신 분, 최고의 통치권을 가진 

분이라는 것을 뜻합니다. 

성경은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인간 역사를 다스리시고 심판하시며(이사 13,6; 52,7) 

이집트에서 이스라엘을 구하시는 유일하고 참된 구원자(이사 43,11)라 고백합니다. 

하느님의 힘은 영원하고 그분은 시작도 마침도 없으시며 충실하신 분입니다. 

“우리의 도움은 주님의 이름에 있으니 하늘과 땅을 만드신 분”(시편 123,8)이라는 시편의 

고백은 온갖 고통과 불의, 공포 속에서 우리를 지탱하는 힘입니다. 

어느 나병환자는 예수님께 고백합니다.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루카 5,12)



-최현순데레사 | 서강대학교 전인교육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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