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복음화 사명의 도구인 사회교리:
사회생활의 근본 가치들 ④ 진리 추구의 걸림돌인 환원(축소)주의
지난주에는 사회생활에서 진리를 추구하는 데 장애가 되는 과도한 인간중심주의와
실천적 상대주의를 알아봤습니다.
이번 주는 진리 추구에 걸림돌이 되는 또 하나의 위험, 근대의 환원주의를
알아보겠습니다.
앞선 위험들처럼, 환원주의 역시 인간·사회의 생활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복음의 기쁨」 제4장에서 평화를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되는 네 가지
원리들을 소개하는데, 그중 하나가 ‘실재가 관념보다 중요하다.’입니다.
사람과 사회 또는 그 생활은 복합적이며 유기적인 관계들의 망인 실재(reality)입니다.
그 실재를 바라보고(관점) 이해하고(이성) 설명하는(표현) 길(ideas)은 다종다양합니다.
환원주의란 그 많은 길 가운데 하나 또는 몇몇을 ‘실재’와 동일시(치환)하는 태도입니다.
그래서 자칫하면 자기 길만을 고집하여 다른 길들을 외면, 부정하거나 심하게는
생사의 다툼을 벌이기까지 합니다(「모든 형제들」 “제1장 폐쇄된 세계” 참조).
아무리 위대한 철학자라 하더라도 사람과 그 삶을 ‘완전히’ 설명할 순 없습니다.
교회가 “육신과 영혼, 마음과 양심, 정신과 의지를 지닌 단일한 全 인간이 우리가 하는
모든 이야기의 중심축”(「기쁨과 희망」 3항)이라 한 것은 사람(실재)에 관한 진리의
길로 함께 나아가자는 초대입니다.
진리를 찾으려는 정직하고 용감한 대화가 없었을 때, 예를 들어, 사람을 몸을 지닌
독립된 개체로만 바라보고, 또는 경제적 획득과 소유를 위해 활동하는 이기적 존재로만
설명하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돈벌이에 유용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누는 일이 생겼으며, 마침내 사람이
‘돈의 노예’가 되는 위험 (우상화)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가족부터 국제 사회에 이르기까지, 사회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족이나 정치‧종교 공동체처럼 인간 본성에 직접 유래하는 집단이든, 회사나 학교처럼
경제‧문화적 필요에 따라 조직된 집단이든, 집단 내부 또는 집단들 사이의 관계들은
다종다양하고 복합적입니다.
하지만 그 관계를 오로지 경쟁 관계로만 바라봄으로써 어떤 일이 벌어졌나요?
경쟁력이 지배하거나 힘이 충돌하는 사회(경제 및 금융의 제국주의)가 되었고, 이른바
무한 경쟁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 상대를 쓰러뜨려야만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히게
되지는 않았나요?
이는 상호 복합적 관계들의 망으로 형성된 사회를 개인 또는 집단들 사이의 싸움
관계로만 바라본 환원주의적 태도의 귀결입니다.
회칙 「모든 형제들」의 “제3장 열린 세계를 구상하고 싹트게 하기”와 “제4장 전체
세계에 열려 있는 마음”에서는 사람이 이기적 개체로서가 아니라 혈육(형제)의 관계
맺음으로써 성장하고, 사회(세계) 역시 싸움이 아니라 사회적 우애의 관계 맺음으로써
쇄신된다는, 참된 평화의 길을 제시합니다.
-박동호 안드레아 신부 서울대교구,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