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통치는 아버지를 상상하며 기분이 좋았던 일

2023. 2. 25. 오전 5:2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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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통치는 아버지를 상상하며 기분이 좋았던 일



아버지가 통화 중에 갑자기 흥분한 목소리로 내 이종사촌 A를 언급하셨다. 

A가 자기 가족과 있는 자리에서, 신후를 보니 너무 힘들게 살고 있다면서 아내와 

자녀들에게 너흰 행복한 줄 알라고 얘기했단다. 

그 자리에 있던 이모가 며칠 후 아버지를 만나 A의 이야길 옮긴 모양이다. 

어안이 벙벙하고 약하게 현기증이 일었다. 

가난하다고 오해받아서가 아니라 아버지가 그런 이야길 들어서였다. 

A가 했다는 말은 그저 황당할 뿐 별 타격감이 없었다. 

왜 그런 말을 했을까? 

기억을 더듬어보니 짐작 가는 일이 있긴 하다. 


막내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돼서 A가 집에 잠시 들렀는데 그때 우린 18평 임대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아담한 거실에서 사내 녀석 셋이 엎치락뒤치락하고 옆에 널브러진 나는 출산 직후라 

몰골이 말이 아니었으니 A는 나 사는 게 딱해 보였을 것이다. 

그래도 그렇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왜 그런 말을 한담? 

그 말을 굳이 아버지에게 전한 이모는 대체 무슨 생각이었을까? 

다소 격앙된 목소리의 아버지를 안심시키고 싶었다. 

아시다시피 내 형편은 힘들지 않다고, A의 말은 신경 쓰실 것 없다고. 그런데 아버지가 

먼저 말씀하셨다. 

“그래서 내가 이모한테 한 소리 했다. 

우리 딸을 세속적인 잣대로 판단하지 말라고, 삶의 가치가 다른 거라고.” 또 한 번 

현기증이 일었다. 

통화를 마무리하고 잠시 멍하게 서 있었다. 


나는 오랫동안 아버지에게 부채감이 있었다. 

돈 잘 버는 전문직 여성이 되지 못했다는 마음의 빚이었다.

학창 시절 그럭저럭 성적이 좋아서 좋은 대학에 합격했을 때만 해도 아버진 내가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 되리란 희망을 품었다. 

하지만 딸이 당신 기준의 좋은 직장에 들어가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엉뚱한 짓만 하다가 

별로 돈이 되지 않는 글 쓰는 일을 하고 있으니 아버진 실망스러웠다. 

대놓고 말씀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아버지의 기대가 꺾이고 또 꺾였다는 걸, 딸의 삶을 실패가 아닌 것으로 보기 위해 무진 

애를 쓰셨다는 것을 말이다. 


나는 나대로 애를 썼다. 

아버지의 성장 배경을 생각하면서, 그가 눈에 보이는 성공과 사회적인 지위에 연연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헤아려보았다. 

나는 내 삶을 더 없이 사랑하면서도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점을 자책했다. 

그런데 아버지가, ‘삶의 가치가 다를 뿐’이라고 하셨다니! 

말씀의 내용은 급진적이었지만, 아버지의 흥분한 목소리와 그 안에 깔린 슬픔에 비추어 

보아 내가 아버지에게 여전히 약점이라는 사실을 감지했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번듯한 직장과 집을 가지지 못한 딸. 하지만 딸이 당신의 약점이 

될 순 있어도 타인에게 얕잡아 보이는 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기에, 전에 없이 목소릴 

높이며 세속적인 잣대로 판단하지 말라고 호통을 치신 것이다. 


부모와 자식이라서 저절로 알게 되는 것이 있는가 하면, 부모와 자식이니까 평생 

이해하려 노력해야 하는 것도 있다. 

이번 일 덕분에 아버지와 내가 서로 애쓰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껴서 기쁘기도, 

슬프기도 하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건, 아버지의 호통을 상상하며 내 삶이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알게 된 점이다.



-정신후 블라시아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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