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이삭:나의 직업 속 하느님

2023. 3. 7. 오전 5: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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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이삭:나의 직업 속 하느님



저는 미술 작품을 보존 처리하는 미술품 보존가입니다. 

시간이 흐르면 사람의 몸이 노화로 변하듯이 캔버스에 그려진 회화 작품도 변화의 

과정을 거칩니다. 

그 변화를 조금이라도 지연시켜 더 오랫동안 현재의 모습으로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보존가의 역할입니다. 

제가 근무하는 미술관에는 다양한 작품들이 소장되어 있는데, 그중에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한 번도 어두운 수장고 밖으로 나온 적이 

없는 작품들도 있습니다. 

어떤 작품이든 물감과 캔버스라는 물질을 통해 작가의 예술혼이 투영되어 탄생한 

소중한 창작물일 텐데, 시간이 흘러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깊은 잠에 들듯 잠들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전쟁과 빈곤의 시절, 서양화라는 신기술을 습득해서 그림을 

그렸던 젊은 작가가 우리나라에 있었습니다. 

그의 그림을 보면 사용한 재료나 제작 기법이 그리 뛰어나 보이지 않으며, 어설픈 

구도를 띈 필치의 습작과도 같은 그림입니다. 

보관 상태 역시 좋지 않았는지 다양한 손상이 발생하였습니다. 

육안으로 보이는 것 외에도, 다양한 조사 방법으로 작품을 관찰해보니, 작가가 

이 그림을 그리기까지 얼마나 고군분투했는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단서들이 

확인되었습니다. 

작가는 이 그림 한 점을 그리기 위해 여러 번 밑그림을 수정했고, 당시 귀하던 캔버스를 

재활용하여 수차례에 걸쳐 작품을 덧그렸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저도 학생 시절 그리던 그림이 마음에 안 들어 전체를 지우거나 덮어버리고 다시 그렸던 

경험이 있었기에, 그 귀한 물감과 캔버스를 낭비하여 속상했을 작가의 참담한 심정이 

느껴졌습니다. 


보존 처리가 끝나 작품을 다시 수장고로 돌려보내게 되자, 과연 이 작품을 사람들에게 

선보일 날이 올까 의문이 드는 한편, 안정적인 상태로 잘 보관한다면 오히려 사람보다도 

훨씬 수명이 길기에 언젠가 때가 오면 관람객들도 볼 수 있게 되리라 기대를 

해보았습니다. 

작품이 태어나고, 손상되어 변화되고, 또 수리되는 과정은 마치 인간이 태어나 노쇠하여 

하늘로 가는 인생과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관람객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평생에 걸쳐 전세계 곳곳에서 전시되는 화려한 삶을 

이어온 작품이 있는가 하면, 단 한 번도 제대로 전시되지 못하고 조용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때를 기다리는 미술품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작품이든 보존가에게는 다 같은 작품이며 보존 처리를 할 때 대하는 

마음가짐이나 손길은 결코 다르지 않습니다. 


아마 하느님 마음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감히 생각해봅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존재감 없는 사람일지라도 그 분에게는 소중하고 귀한 당신의 

아들딸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더 안쓰럽고 측은하여 관심이 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그 습작과 같은 100년 전 그림을 보고 느낀 것과 같이…. 오늘도 저는 미래의 

그 시간이 올 때까지 작품이 잘 보존되도록 도와주는 것에 큰 기쁨을 느끼며 일하고 

있습니다.



-유난이 글라라 리움미술관 보존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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