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이삭:그리운 시어머니
1년 전 햇살이 좋은 주말 아침, 시어머니께서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2년 반의 병환 끝에 아들과 딸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온히 영면하셨습니다.
임종 소식을 듣고 저와 제 어린 딸도 바로 어머님 댁으로 달려갔습니다.
침대 위에서 온화한 모습으로 주무시는 것만 같은 어머님의 따듯한 손을
꼭 잡고 울며 인사를 드렸습니다.
어머님은 저희의 목소리를 듣고 다시 일어나실 것만 같았습니다.
지난날 할머니, 할아버지의 장례는 치러봤어도, 이렇게 가까이에서 오랜 시간 주검을
마주해 본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병원이 아니라 집에서 임종을 맞이하셨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아직 어린 딸은 온기가 느껴지는 할머니를 꼭 안으며 자연스럽게 죽음을 받아들였습니다.
장례를 무사히 치르고 가족 모두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지도 일 년이 지났습니다.
평소 직장에 다닌다는 이유로 자주 연락도 드리지 못한 며느리에게 어머님은 행여 피해가
될까 배려하시느라 모든 면에서 한 발짝 뒤로 물러서 계셨습니다.
그런데 막상 하늘나라로 떠나신 이후 오히려 제 곁에 자주 오셔서 종종 이야기하시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어머님께서 물려주신 많은 물건들을 대할 때마다 당신이 그것을 소중히 간직하던 모습이
떠오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되거든요.
어머님과 마음으로 소리 없는 대화를 나누는 것입니다.
그럴 때면 마치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나 “두려워하지 말고 기뻐하여라.”
하고 말씀하신 것처럼 어머님도 저를 찾아와 그렇게 이야기해주시는 것 같습니다.
어머님은 결혼 전에는 일부러 종교를 갖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배우자와 신앙이 다르면 결혼 생활이 순탄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로 배우자에게 맞추려고
미리 그렇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매우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어떻게 모든 것을 결혼 생활에 맞출 수가 있을까?
결혼과 동시에 직장도 포기하고, 친정과 멀어지고, 심지어 종교까지 자신의 의지로
선택하지 못했던 어머니 세대의 삶이 저에게는 매우 갑갑하게만 느껴졌습니다.
동시에 저에게 이 이야기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공교롭게도 시아버지께서는 종교가 없으셔서 어머님은 자연스럽게 당신이 원하던 불교
신자가 되셨습니다.
배우자의 종교에 대해 열려 있었던 것처럼 어머님은 제 신앙생활도 존중해 주셨습니다.
지금 와서 보니 오히려 제 자신이 종교라는 틀 안에 갇혀서 진리를 보지 못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고, 갑갑하게만 느껴졌던 어머님의 의지가 빛나 보입니다.
모든 것을 포용하는 열린 자세가 아름답다는 생각도요.
지금도 어머니의 빈 자리가 크게 느껴지지만, 사순절을 맞이하여 다시 듣는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저에게 위로이며 희망으로 다가옵니다.
세상을 떠난 모든 사람들의 영혼이 주님 안에서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한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소중한 가족을 떠나 보낸 많은 분들에게도 이번 사순절이 위로 받고 감사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유난이 글라라 리움미술관 보존연구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