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느님을 믿나이다” 하느님의 이름 2

2023. 3. 23. 오전 4:4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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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느님을 믿나이다” 하느님의 이름 2



‘야훼(YHWH)’라는 하느님의 이름에 ‘~을 위해 함께 계신 하느님’의 의미가 들어 있다는 

말은 이 이름에 대한 하느님 자신의 설명을 전하는 구약성경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탈출기 34장 4-9절을 보면 하느님은 모세에게 야훼라는 이름을 선포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자비하고 너그러운 하느님이다. 

분노에 더디고 자애와 진실이 충만하며 천대에 이르기까지 자애를 베풀고 죄악과 악행과 

잘못을 용서하신다.” 

신학자들은 이 말씀이 바로 하느님 이름에 대한 설명이라고 봅니다. 

이스라엘의 하느님은 추상적이고, 인간의 삶과 무관하신 분이 아니라, 인간에게 자비를 

베풀고 너그럽고 자애로운신 분으로 체험됩니다. 

한마디로 우리의 삶의 모든 순간에 함께 계신 하느님입니다. 


이런 하느님이 인간 역사 안에 결정적으로 들어오시는 사건이 바로 예수님의 탄생입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이사야서 7장 14절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를 인용하면서 임마누엘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이라고 설명합니다.(마태 1,23) 

예수님은 “인간 역사 안에 함께 계시는 ‘있는 나’”라는 하느님의 이름이 사람이 되신 

분입니다. 

요한복음은 하느님이 사람이 되신 사건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 1,14) 

이 말은 하느님이 우리와 마찬가지로 삶의 기쁨과 고뇌, 슬픔을 맛보신 그런 하느님이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점에서 형제들과 같아지셨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 자신을 제물로 바치신 대사제가 되셨습니다.(히브 2,17 참조)


한편 ‘하느님의 이름’이라는 말은 주님의 기도에도 등장합니다.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라는 기도를 알려주신 주님은 하느님의 이름이 사람들 

속에서 오남용될 수도, 그래서 더럽혀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아셨던 것 같습니다. 

특이한 것은 ‘거룩해지다’라는 수동태가 사용되었다는 점입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님께서는 <나자렛 예수>라는 책에서 하느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이는 인간이 아니라 하느님 자신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하느님께 ‘하느님이 하느님이심’을 드러내도록, 곧 ‘우리와 함께 계신 그분’을 

드러내시도록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지금 여기, 우리와 함께 계실수록 그분의 거룩한 이름은 빛납니다. 


‘하느님의 이름’이 언급된 또 다른 기도는 우리가 장엄 축복을 받을 때 듣게 되는데 

시편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우리의 도움은 주님의 이름에 있으니 하늘과 땅을 만드신 분이시로다.”(시편 124,8) 

우리는 살면서 많은, 그리고 다양한 어려움을 마주하고, 그럴 때 도움을 구합니다. 

그 도움은 사람일 수도, 물질적 또는 심리적인 것일 수도 있고, 당연히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시편 기도는 여기에 우리가 잊으면 안 되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즉 우리의 궁극적 도움은 ‘주님의 이름’이라는 것입니다. 

그분은 함께 계신 하느님이요, 하늘과 땅을 만드신 분이십니다. 

그 어떤 것도 하느님보다 더 크진 않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성모님의 노래 첫마디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며”(루카 1,46)에 

대해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찬송하다’로 번역한 이 말은 원래 그리스어로 ‘크게 하다’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겪는 그 어떤 것보다도 하느님이 ‘항상 더 크신 분’임을 내 영혼이 고백하는 

것이지요. 

성경이 고백하는 ‘하느님의 이름’이 우리에게 힘이요 희망입니다.



-최현순데레사 | 서강대학교 전인교육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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