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 사도의 눈물을 묵상하며 거룩한 성주간을
성지 주일인 오늘 우리는 서로 대치되는 극적인 장면이 전례를 관통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는 겸손의 상징인, 예수님께서 어린 나귀를 타고 입성하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군중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하여,
소박하지만 마음을 다해 환합니다. 남녀노소 구분이 없습니다.
종려나무가지를 흔들어 환호합니다. 입던 옷을 깔아 길을 냅니다.
소리 높여 호산나, 호산나! 를 외칩니다.
솔직 담백한 즐거움과 기쁨의 물결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수난과 죽음을 들려주는 오늘의 복음 말씀은 이와는
정반대입니다.
유다의 배반을 시작으로 음모, 모략, 거짓증언, 타협이 서로 공조를 이루며
예수님을 죽음으로 몰아갑니다.
이토록 극명하게 상반되는 사건을 한 몸으로 받아들여야만 했던 주님은
마침내 숨을 거두십니다.
"엘리 엘리 레마 사박타니?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 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
가슴이 저미어 옵니다.
숨이 멎는 듯합니다.
기쁨에 찬 소박한 환영은 처절한 십자가의 죽음으로 끝을 맺습니다.
고난 받는 종에 대한 이사야서의 한 구절인
"그러나 그를 으스러뜨리고자 하신 것은 주님의 뜻이었다."(이사 53,10)라는
말만이 메아리쳐 돌아옵니다.
아드님을 십자가 위에서 죽게 하신 것이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었다고?
오늘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께서 말하십니다.
"당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필리 2,8)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십자가 위에서 순종하며 돌아가신 아드님!
이 순간 우리는 형언할 수 없는 신비 앞에 서 있습니다.
인류와 세상을 향한 끝없는 사랑과 연민의 정 때문에 외아들을 보내신
아버지의 마음, 그리고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인간과 세상을 향한 사랑으로
죽으신 아드님의 마음이 십자가 위에서 하나가 되어 만나십니다.
성삼의 신비가 계시됩니다.
십자가 안에서 계시되는 성삼의 신비, 아드님의 죽음 안에서 실현되는
아버지의 뜻, 그것은 오직 인간을 향한 끝없는 사랑과 자비 그리고 용서
때문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성삼의 신비가 꽃을 피웁니다.
인간의 죄가 십자가에서 광란을 부렸다면, 인간과 세상을 향한 성삼이신
하느님의 사랑 또한 절정을 이루며 폭포수가 되어 우리를 향해 흐릅니다.
폭포수가 되어 끝없이 흐르는 사랑과 자비, 이는 이 세상과 나를 구원하는
근원적인 힘입니다.
이 순간 베드로 사도께 눈길이 갑니다.
예수님 옆에서 당당하게 입성한 베드로,
스승님을 지키려고 칼까지 뽑아 든 베드로,
이내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오." 하고 말한 베드로,
그의 귓전에 닭의 울음소리가 비수가 되어 가슴에 박힙니다.
흐르는 눈물을 자제 할 수 없습니다.
그 눈물의 내용에는 무엇이 담겨 있을까!
베드로 사도가 흘린 눈물의 내용을 묵상하며 거룩한 성주간을 지내고
싶습니다.
-홍성만 미카엘 신부(서울대교구 지속적인 성체조배 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