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서 씻어라
신앙은 보는 것입니다.
인간의 눈이 아니라 하느님의 눈으로 보는 것입니다.
신앙은 하느님께서 우리 눈에 "영적 안경"을 씌워주는 것과 같습니다.
이 영적 시력을 "영혼의 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육신의 눈(육안)과 다릅니다.
보는 관점과 대상과 그 내용에 있어서 서로 다릅니다.
"육안"은 겉만 볼 뿐이지만 "영안" 즉 영혼의 눈은 속내까지 볼 수
있습니다.
육안과 영안이 다르듯이 하느님의 눈은 사람의 눈과 완전히 다릅니다.
오늘 독서에서 사무엘은 장차 이스라엘의 왕이 될 인물을 찾아 기름을
부으려 했을 때 사람의 겉모습만 보았으므로 하느님이 원하시는 사람을
즉시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몇 번의 실수 끝에 다윗을 보고 그가 하느님께서 점지하신 인물임을
알아보았습니다.
하느님께서 사무엘에게 "용모나 신장을 보지는 말라.
하느님은 사람들처럼 보지 않는다.
사람들은 겉모양을 보지만 하느님은 속마음을 들여다본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불완전한 우리의 눈은 자주 실수를 범합니다.
세상도 우리 눈을 속이지만 우리도 거짓이나 허영으로 우리 눈을
속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편견과 아집에 사로잡혀 있으므로 판단의 각도가 비뚤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육안은 멀쩡하지만, 영적으로 눈먼 소경들이 많습니다.
여러 종류의 소경들이 있습니다.
예컨대 돈, 명예, 지위, 도박, 쾌락 따위에 미치면, 눈먼 소경이 됩니다.
눈먼 이들은 다른 더 소중하고 올바른 것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눈 뜬 장님”이라 하겠습니다.
복음에서 예수님은 태생 소경의 눈을 뜨게 해 주십니다.
예수님이 침으로 흙을 개어 그의 눈에 바르니 그가 눈이 열려 세상과
사람을 똑바로 보게 되었습니다.
소경은 치유 받아 예수님을 메시아로 알아보았지만, 눈이 멀쩡한
바리사이 사람들은 예수님을 몰라보았기에 무시하면서 하느님을 모독하는
죄인처럼 판단합니다.
누가 눈먼 사람이고 누가 눈 뜬 사람인지 분간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대해서는 물론, 세상과 나 자신과 하느님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도록 우리 자신과 하느님을 향해서도 눈떠야 합니다.
진정으로 매일 볼 수 있게 해 주는 신앙의 안목, 영혼의 눈을 지녀야
하겠습니다.
눈만 뜰 수 있다면 우리 일상생활 가운데 계시는 하느님, 우리의 고통과
어려움 속에 함께 계시는 하느님, 연약한 우리를 지탱해 주시는 하느님을
알아 뵈올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육신의 관점에서, 세상의 견지에서 벗어나 신앙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느님께 간청합시다.
하느님께서 빛을 주시기를, 영혼의 눈을 뜨게 해 주시기를 간구합시다.
"실로암 연못으로 가서 씻어라."
-(최영철 알폰소 신부(마산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