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주는 물을 마셔라."

2017. 4. 3. 오전 8:5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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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주는 물을 마셔라."

 

 

야곱의 우물가에서 두 사람이 만났습니다.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 남자와 여자, 서로 상종조차 꺼리는 유다인과 사마리아인, 하느님의 아드님과 남자가 여섯이나 되는 죄인, 서로 닿을 것 같지 않은 관계, 그래서 더 어색하고 광야의 열기보다 더 숨 막히는 침묵이 이 둘 사이에 벽처럼 서 있습니다. 이 꽉 막힌 답답함을 예수님께서 깨뜨리십니다. "나에게 마실 물을 좀 다오." 이 짧은 청원이 모든 상황을 바꾸어 놓습니다. 벽이 무너지고 여인은 어느새 예수님과의 대화에 빠져듭니다. 그리고 마침내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셔라." 이 물은 새로운 물입니다. 이 물은 닫힌 육신으로 들어가 사라질 물이 아니라, 그 육신을 열어 영원한 생명을 불어넣는 물입니다. 이 물은 '이 산이다, 저 산이다. 여기다, 저기다.' 외치며 결국은 사라질 지상의 어떤 것, 어떤 장소, 어떤 인물에 매여 그 한계 안에서만 하느님을 말하는 이들, 그것들을 쫓다가 하느님 아닌 다른 것들에 매달려 어둠에 갇힌 이들, 그 눈먼 이들을 고쳐주는 그래서 참 하느님을 뵐 수 있도록 해주는 치유의 물입니다. 여인은 예수님과의 대화 속에서 모든 갈증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새로운 물, 생명의 물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더 이상 우물물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제 생명줄 같은 "물동이를 버리고" 마을로 달려갑니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정오의 뜨거움도 마다치 않던 이가 그 밝은 태양 아래에 우뚝 서서 외칩니다. "와서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첫 제자들을 부를 때의 그 말씀(요한 1,39)이 여인의 입에서 흘러나옵니다. 이 여인의 증언을 통해 다른 이들마저 변화의 길로 들어섭니다. 사마리아인들이 유다인인 예수님을 마을로 모셔 들이고 그분의 말씀에 귀 기울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들의 입으로 '이분이 참으로 세상의 구원자'라고 고백합니다. 그들도 예수님의 말씀 속에서 생명의 물을 얻었습니다. 지금 나는 어떤 '물'을 찾고 있습니까? 지금 내가 마시는 '물'이 내 모든 갈증과 죄악과 부끄러움을 없애줍니까? 나는 다른 이들에게도 기꺼이 그 물가로 오라고 밝은 곳에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까? 그 물이 영원한 생명을 줍니까? 예수님, 그분에게서 얻는 물이 아니라면 더 한 갈증만을 줄 뿐입니다. 여인과 마을 사람들, 그들은 주님 곁에 머물러 생명의 물을 얻었습니다. 여러분도 이 사순시기 동안 주님 곁에 자주 머물러 '여러분 안에서 생명의 물이 솟는 샘'이 솟기를, 그래서 생명의 물을 맘껏 드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용권 안드레아 신부(안식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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