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주는 물을 마셔라."
야곱의 우물가에서 두 사람이 만났습니다.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 남자와 여자, 서로 상종조차 꺼리는 유다인과
사마리아인, 하느님의 아드님과 남자가 여섯이나 되는 죄인, 서로 닿을 것
같지 않은 관계, 그래서 더 어색하고 광야의 열기보다 더 숨 막히는 침묵이
이 둘 사이에 벽처럼 서 있습니다.
이 꽉 막힌 답답함을 예수님께서 깨뜨리십니다.
"나에게 마실 물을 좀 다오."
이 짧은 청원이 모든 상황을 바꾸어 놓습니다.
벽이 무너지고 여인은 어느새 예수님과의 대화에 빠져듭니다.
그리고 마침내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셔라."
이 물은 새로운 물입니다.
이 물은 닫힌 육신으로 들어가 사라질 물이 아니라, 그 육신을 열어
영원한 생명을 불어넣는 물입니다.
이 물은 '이 산이다, 저 산이다. 여기다, 저기다.' 외치며
결국은 사라질 지상의 어떤 것, 어떤 장소, 어떤 인물에 매여
그 한계 안에서만 하느님을 말하는 이들, 그것들을 쫓다가 하느님 아닌
다른 것들에 매달려 어둠에 갇힌 이들, 그 눈먼 이들을 고쳐주는
그래서 참 하느님을 뵐 수 있도록 해주는 치유의 물입니다.
여인은 예수님과의 대화 속에서 모든 갈증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새로운 물, 생명의 물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더 이상 우물물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제 생명줄 같은 "물동이를 버리고" 마을로 달려갑니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정오의 뜨거움도 마다치 않던 이가
그 밝은 태양 아래에 우뚝 서서 외칩니다.
"와서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첫 제자들을 부를 때의 그 말씀(요한 1,39)이
여인의 입에서 흘러나옵니다.
이 여인의 증언을 통해 다른 이들마저 변화의 길로 들어섭니다.
사마리아인들이 유다인인 예수님을 마을로 모셔 들이고 그분의 말씀에
귀 기울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들의 입으로 '이분이 참으로 세상의 구원자'라고
고백합니다.
그들도 예수님의 말씀 속에서 생명의 물을 얻었습니다.
지금 나는 어떤 '물'을 찾고 있습니까?
지금 내가 마시는 '물'이 내 모든 갈증과 죄악과 부끄러움을 없애줍니까?
나는 다른 이들에게도 기꺼이 그 물가로 오라고 밝은 곳에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까?
그 물이 영원한 생명을 줍니까?
예수님, 그분에게서 얻는 물이 아니라면 더 한 갈증만을 줄 뿐입니다.
여인과 마을 사람들, 그들은 주님 곁에 머물러 생명의 물을 얻었습니다.
여러분도 이 사순시기 동안 주님 곁에 자주 머물러
'여러분 안에서 생명의 물이 솟는 샘'이 솟기를, 그래서 생명의 물을
맘껏 드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용권 안드레아 신부(안식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