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와 사랑으로 참 평화를 이룹시다

2017. 4. 12. 오전 6:20:21

글자

 

회개와 사랑으로 참 평화를 이룹시다

 

 

사람은 만남을 통해서 변합니다. 서로 소통함으로써 자기 생각을 내놓고 타인을 이해하며 좋은 생각을 공유하면 이해하게 됩니다. 공자는 소통의 중요한 것 세 가지를 믿음, 예의, 존중이라고 했습니다. 군자는 믿음을 얻은 뒤에 간해야지 신뢰가 없이 충고하면 비방으로 받아들입니다. 솔직, 분명하게 말해줘도 믿지 않거나 귀가 막혀있으면 소용이 없으며 속으로 '너나 잘해' 합니다. 군자는 용감하기만 하고 예를 갖추지 못한 자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안색을 살피지 않고 말하는 자는 장님과 다름없답니다. 듣는이의 표정을 살피면서 말하는 것과 물러설 것을 아는 것도 존중이고 대화의 지혜이며 솔직함만 있고 존중함이 없이는 소통할 수가 없지요. 씨(말)를 뿌렸는데 결과를 얻지 못한다면 땅(듣는 이)의 책임만이 아닙니다. 땅을 헤아려 보지 않고 씨앗을 뿌린 농부(말한 이)의 책임도 크지요. 言而人格 : 말 속에 인격이 담겨있습니다. 평화의 대화 기법 첫째: 서로의 인격을 존중하고 겸손한 태도로 품위와 교양있게 높임말로 말해야 합니다. 둘째: 내 말이 중심이 아니고 먼저 상대의 말을 충분히 듣고 이해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셋째: '내 생각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다.'라고 전재하면 감정싸움으로 번져가지는 않습니다. 상식과 사실이 꼭 진리는 아닙니다. 심사숙고했다고 하여도 내 생각이 꼭 옳은 것은 아니니 반론에도 존댓말과 친절을 습관화하고 짜증이 났을 때는 강하게 주장하거나 결론짓지 맙시다. 자기주장이 강하면 설득력이 떨어지고 타협의 여지가 없게 되어서 추동력이 떨어지고 쉽게 화를 내면 서로 부딪쳐서 동의를 구하기가 어렵고 마음으로 승복받지 못하지요. 말이 많으면 속내가 노출되어서 상대의 대처능력만 키워줘서 상대방의 대응 속내를 알기 어렵게 됩니다. 분노를 잘 다스리는 것이 조화로운 삶의 비결입니다. 분노는 누구나 하지만 지혜로운 이라면 화가 났을 때 일을 결정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후회하게 되어 있는 최악의 결정에 이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왜 화를 낼까요? '내 생각이 반드시 옳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자기 생각도 틀릴 수 있기에 상대방의 마음을 존중하는데 행복한 삶도 있음을 믿읍시다. 잔소리를 듣기 위해서 상대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타인의 허물을 들추지 말며 화났을 때 말하지 않기만 하여도 분위기가 다르지요. 노인은 고집불통이 되기 쉬우니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나이가 들면 경험과 지식, 지혜가 풍성해졌다고 자만하여 고집과 편견의 아집이 높아질 수 있지요. 때로는 신속한 판단보다는 판단의 유보가 현명할지도 모릅니다. 오해는 실수와 판단의 오류에서 생기는 불신의 기초가 되지요. 청년의 꿈은 입신출세와 세계 제패라고 할진대 노인의 꿈은 그보다 훨씬 더 큰 생의 마지막 욕심으로 하느님을 만나는 일이지요. 사회는 노인을 버려가고 자본가는 노인을 돈벌이의 대상으로 여기며 국가마저 대책 없이 버려두듯 하지만 주님만은 그렇게 하시지 않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믿고 주님의 십자가 속 삶에서 자신을 사랑하고 이웃과 후손을 사랑하는 참다운 삶을 추구하면서 여생을 꾸려갑시다. 소통과 화해 배려와 사랑으로 참 평화를 이룹시다. 가장 무서운 것은 과욕에 사로잡혀서 자신의 욕망을 달성하고자 자신과, 자신과 관련된 편의 오류와 불의를 감싸거나 방관하고 옹호하는 등 정도를 버리고 인지 부조화나 자기합리화, 아집과 편견으로 굳어지면 상대를 공생과 선의의 상생 관계가 아닌 희생양과 타도의 대상으로 여기게 되어 신뢰는 상실되고 불신과 부정부패 중상모략 분열과 분쟁등 혼란한 관계가 되며 불신은 단절을, 단절은 불안과 적대와 갈등 분쟁을 유발하게 되어 부조리와 타락과 잔인, 잔혹함이 일상화되어서 결국 소돔과 고모라처럼 됩니다. 모두 회개하여 화해하고 소통과 포용, 배려와 측은지심으로 서로 서로를 사랑하여 참 평화를 이루며 공생합시다. -주님의 향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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