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자로의 소생, 두 가지 의미
오늘 복음 말씀은 라자로를 다시 살리시는 예수님의 기적 이야기를 전합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을 돕는 자매로 등장하는 마르타와 마리아 자매의 오빠인
라자로는 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마르타와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오빠의 병을 고쳐주시기를 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라자로의 병이 죽을병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고
자매를 위로하십니다.
그러나 라자로는 결국 죽음을 맞이하였고,
예수님께서 처음에는 계시던 곳에 머무르셨지만,
라자로를 만나기 위해서 유다로 향하십니다.
거기서 예수님께서는 눈물을 흘리시며 죽은 라자로를 만나셨고,
그를 다시 일으켜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라자로를 일으키시기 위해 향하셨던 유다는 돌을 맞아야 하는 곳,
예수님이 죽임을 당하실 수도 있는 지역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라자로를 살리기 위해 당신 목숨의 위험을 감수해야
했던 것입니다.
유다로 향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에서 우리는 그분의 비장함과 라자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다시 살아난 라자로. 라자로의 소생은 예수님의 부활을
미리 알려주는 것처럼 보입니다.
물론 라자로의 소생은 예수님의 부활과는 달리 생물학적인 소생이지만,
예수님의 부활을 떠올리기에는 충분한 사건이었습니다.
'라자로'라는 이름은 히브리말 '엘르아잘(Eleazar)'의 축약으로
이는 '하느님께서 도와주신다'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름 그대로, 라자로는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다시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하느님의 힘이 그에게 전해졌습니다.
라자로 소생의 첫 번째 의미는 완전한 의미의 부활은 아니지만,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가 다시 살게 될 것이라는 희망입니다.
이 희망은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통해서 행하신 기적,
죽음이라는 한계를 지닌 사람이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그것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가능성입니다.
두 번째 의미는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은 오히려 죽음을 향해
한 걸음 더 다가가셨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를 다시 살리시기 위해서 당신은 죽음의 위험 속으로
기꺼이 뛰어 들어가신 것입니다.
사순 시기는 사랑하는 우리를 위해서 가장 소중한 목숨마저도 내어주시는
예수님의 희생을 묵상하는 시기입니다.
라자로를 살리기 위해서 죽음을 자청하신 예수님의 사랑,
그 사랑이 우리를 다시 살리실 것이고, 그 살아남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라자로가 그랬던 것처럼 소생으로 그치지 않고
육신과 영혼의 완전한 부활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라 그분의 수난과 죽음의 길을 함께 걸어가며
우리도 남을 위해서 자기를 내어주는 희생의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오혁 요한보스코 신부(연천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