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심(開心)과 개안(開眼)이 빚어낸 신앙고백

2016. 4. 12. 오전 6:13:23

글자

 

개심(開心)과 개안(開眼)이 빚어낸 신앙고백

 

 

사제로 살면서 마음에 홀로 새긴 영혼의 기도가 몇 가지 있습니다. 그 가운데 다음과 같은 기도도 있습니다. "우리 생이 다하는 날, 우리는 ‘사랑’에 대해 심판받을 것입니다." 신학생 시절, 마태오 복음 25장(31-46절)을 묵상하다가 하느님 심판의 기준은, '우리가 얼마나 많은 죄를 짓고 살아왔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서로 사랑하려고 노력하였는가.'라는 사랑 실천의 여부에 있다는 확신에서 마치 좌우명처럼 새겼던 나만의 기도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미 수백 년 전 십자가의 성 요한도 이 마음 속 고백과 비슷한 표현을 하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이 생명의 저녁, 우리는 사랑으로 심판받으리라." 말마디 일부를 제외하고 거의 같은 표현이었습니다.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나만의 고백이요 기도라고 자족하고 있었는데, 오히려 제가 성인의 영성을 어설프게 모방하며 뒤늦게 헛물만 들이킨 것 같아 당시 실망이 적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하느님께 드릴 나만의 고유한 신앙고백은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성경 이곳저곳을 들여다보아도 근사하고 신심 깊은 고백들은 이미 누군가의 입을 통해 발설되어 있었습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성모 마리아).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사무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 서는 알고 계십니다!"(베드로).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백인대장).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시메온).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주십시오!"(예리코의 소경).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시리아 페니키아 여인).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토마스) 등.... 그러다가 다시 생각을 바꾸어 마음의 평정을 되찾은 계기가 있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마주 뵙고 드렸던 토마스의 간결하지만 매우 인상 깊은 신앙고백의 장면(요한 20,24-29)에서부터였습니다. 먼저 다가오신 주님을 마음의 빗장을 열고 우리가 제대로 알아 뵐 때까지는 요지부동 굳게 잠겨 있던 문(요한 20,19. 26)처럼 얼마나 많은 악전고투의 영적 과정이 필요하겠습니까! 주님의 자비로운 사랑의 초대("평화가 너희와 함께!")에 의해 두려움과 슬픔으로 얼룩진 굳은 마음이 풀리고 열리면(開心) 비로소 영적인 눈도 함께 열려(開眼) 그분 앞에 '자연스러운' 신앙고백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습니다. 이제까지 주님을 만났던 성경 속 인물들도 그러하였습니다. 한때 남과 다른 근사한 고백과 기도에 전전긍긍했던 어리석은 제 모습을 성찰하며 오히려 개심과 개안의 자세로 항상 우리 가운데 계신 주님을 토마스 사도와 같은 가슴 벅찬 뜨거움으로 만나 뵙기를 희망합니다. -박현창(베드로) 신부(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기도.묵상 글

목록 전체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