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4월 10일 (백) 부활 제3주일
오늘은 부활 제3주일입니다.
사도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복음을 전하다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욕을 당하지만 오히려 기뻐합니다.
세 번이나 당신을 배반한 베드로에게 양들을 돌보라고 맡기신 예수님,
우리를 위하여 나무에 매달려 살해된 어린양이신 예수님을 용감히 증언할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내려 주시기를 청합시다
독서 <우리는 이 일의 증인입니다. 성령도 증인이십니다.>
사도 5,27ㄴ-32.40ㄴ-41
<살해된 어린양은 권능과 부를 받기에 합당하십니다.>
묵시 5,11-14
복음 <예수님께서는 다가가셔서 빵을 들어 그들에게 주시고 고기도 주셨다.>
요한 21,1-19<또는 21,1-14>
사도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가르치지 말라는 지시를 어겼다며 신문을 당하지만,
하느님께 순종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욕을 당할 수 있는 자격을 인정받았다고
기뻐한다(제1독서).
요한은, 살해된 어린양은 권능을 받기에 합당하다며 천사들이 찬미를 드리는
장엄한 광경을 묘사한다(제2독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고기잡이 이적을 보이시고,
베드로에게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을 물으신 뒤 당신 양들을 돌보라고
말씀하신다(복음).
*오늘 복음에서 베드로와 예수님께 사랑받던 제자의 관계를 살펴보겠습니다.
사랑받던 제자의 이름은 『성경』에 나오지 않지만, 일반적으로 요한 사도라고
알려졌지요.
복음을 보면 호숫가에 서 계신 분이 부활하신 예수님이심을 맨 처음 알아본
사람은 사랑받던 제자인 요한 사도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 먼저 간 제자는 베드로입니다.
또한, 나머지 제자들이 고기가 가득 찬 그물을 끌고 나왔을 때,
그 그물을 뭍으로 끌어 올린 사람도 베드로였지요.
여기서 베드로가 늘 앞에 나섬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베드로가 수위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법과 질서를 지키고자 권위는 베드로에게 집중된 것입니다.
반면 사랑을 실천하는 데에는 요한 사도가 늘 나옵니다.
그러기에 베드로는 법과 질서를 상징하고, 요한은 사랑을 상징한다 하겠습니다.
법과 질서가 없는 사랑은 자기중심적이고 애덕을 실천하지 못합니다.
반면 사랑이 없는 법은 형식에 흐르며 사람을 질식시키지요.
오늘날에도 법의 정신은 외면한 채 그저 법 자체에만 매달리는 일이 있지요.
우리는 법이나 질서를 찾는다고 사랑을 외면해서는 안 되고, 사랑을 찾는다고
법과 질서를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사랑이 내용이라면 법은 그릇에 비유할 수 있지요. 따라서 이 두 가지,
법과 사랑을 공존시킬 때 진정 우리의 삶은 더욱 의미 있어질 것입니다.
-매일미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