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드레 뒤에" 찬미예수님!!!
세상의 시간은 흘러가고 있음에도, 부활의 기쁨을 만끽하기 위해서
교회는 자신의 시간을 멈추어가면서 팔일 동안이나 예수님의 부활을
되새깁니다.
그렇게 오늘은 예수 부활 대축일 팔일 축제가 끝나는 마지막 날이며
부활 제2주일입니다.
그렇지만 역설적이게도, 바로 이날에 전례력은 복음으로 토마스 사도가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고 의심하는 장면을 봉독합니다.
(진심이었는지 아니면 서운함의 토로였는지 알 수는 없지만,)
부활을 체험하지 못한 토마스 사도는 이미 부활을 목격한 다른 제자들에게
흔히 '합리'적 의심으로 이루어진 자신의 논거들을 주장합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직접 목도한 토마스 사도에게 예수님의 부활은
믿기 어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토마스 사도의 합리적 의심은 매우 상식적입니다.
그러나 토마스 사도의 이러한 합리적 의심은 그렇게 오래 가지 못합니다.
"여드레 뒤에" 예수님께서 다시 제자들에게 나타나십니다.
어쩌면 토마스 한 사람을 위한 발현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합리적 의심을 단번에 사그라뜨릴 수 있는 강렬한 체험이
토마스 사도를 덮치고 맙니다.
그순간 토마스 사도가 할 수 있는 말은 성경의 표현대로,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그 이상일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토마스 사도의 합리적 의심은 우리의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킵니다.
부활을 맞이했지만, 합리적 의심이 드는 상황이 우리의 삶에 여전히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 속에서 만나는 불의와 공포가 아직도 우리를 휘감고 있음을 체험하는
순간들이 너무 잦기 때문입니다.
토마스 사도처럼 그렇게 우리는 부활 후 "여드레"의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믿습니다.
토마스 사도의 체험처럼 “여
드레 뒤에” 예수님께서 오시면, 우리가 가진 의심들을 말끔하게
치워주시리라는 것을. 그러므로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현재의 경험 때문에 일어나는 의심 속에 "여드레"를 지낼 것인지,
아니면 다른 제자들의 증언을 믿고 "여드레" 동안 부활을 만끽할 것인지.
분명한 것은 우리가 이미 부활을 선택한 그리스도인들 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그 선택의 힘으로 우리는 세속의 현상 속에서 드러나는
모든 의심들을 접어가며 그 끝에서 우리를 기다리시는 주님을 만날 수
있을 것임을 믿습니다.
토마스 사도의 신앙고백처럼, 우리도 부활을 체험한 제자들처럼
예수님과 함께 부활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앞으로 이어질 부활 시기를
기쁨으로 채워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이미 부활하신 주님을 기다리는 "여드레"를 미리 우리 삶의 부활로
만끽하는 시간으로 이어지기를 빕니다.아멘.
-문형균 클라로 신부(후곡 협력사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