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을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찬미예수님!!!
오늘은 주님 수난 성지 주일입니다.
독특하게 오늘은 두 개의 복음을 봉독하는데,
하나는 예루살렘 입성 기념식에서,
다른 하나는 말씀 전례에서 수난 복음을 봉독합니다.
그런데 이 두 개의 복음은 전혀 다른 상황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두개의 복음을 행렬의 전과 후에 봉독하면서 우리의 삶이 바로 그 사이에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렇게 우리의 삶과 나눠질 수 없는 두 개의 복음을 통해
주님 수난 성지 주일이 성주간 전체를 알려주는 예고편의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예루살렘 입성은 결코 영광의 순간을 위해서 이루어진 일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당신의 십자가를 기꺼이 지기 위한 첫걸음이 된다는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두 개의 복음을 비교해 볼 때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바로 군중의 태도입니다.
그렇지만 오히려 그 안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은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느냐?'라는 질문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예루살렘 입성에서부터 당신께서 돌아가시는 순간까지도 당신의 사랑을
드러내주시는 예수님이십니다.
그래서 성주간은 전례력이 가지는 의미들을 거론할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적어도 이 성주간만큼은 많은 말들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그분을 따라가기만 하면 됩니다.
그리고 눈을 똑바로 뜨고 지켜보기만 하면 됩니다.
그렇게 그분을 따라가서 바라보면 우리는 그 안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충만하게 발견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 안에서 우리를 위해서 모든 것을 내어주시는 예수님의 변함없는 사랑을
만나는 순간이 되기를 빕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숨을 거두신 예수님의 죽음 앞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성주간을 가장 잘 지내는 방법이 됩니다.
성주간에 우리는 반드시 주님과 함께 죽음을 체험해야 합니다.
그것이 주님과 함께 부활하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제자들과 같이 두려움을 떨면서 우리의 모든 희망이 사라짐을 체험하는
것이야말로, 온전하게 하느님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구원을 체험하는 순간이
됩니다.
아직 죽지 못하고 삶에 발버둥 치는 우리의 어리석음을 십자가를 통해서
구원을 얻는 지혜로 바꾸어주시기를 청하며 성주간을 거룩하게 지내도록
합시다. 아멘.
-문형균 클라로 신부(후곡 협력사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