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함과 한계
상처받은 우리의 몸은 하느님 현현의 '문'입니다.
우리는 약함을 인정하고 주님께서 당신의 권능을 보여주시도록
기도의 자리를 마련해야 합니다.
우리의 한계와 약함은 기도를 통해 십자가로 변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자신의 외적인 방해에만 정신이 팔려 기도는 하지 않고 불평만 하는
것입니다.
결국 복음의 종이 아니라 희생자의 위치에 서는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를 순교 성인으로 들어높여 우리의 한계를 시성식의 향 연기로 가리는
법을 배웁니다.
곧 우리 자신의 거룩함의 향내로 우리의 나약함을 숨기는 법을 배우는 것이지요.
이것이 신성모독의 시작입니다.
신성모독은 정반대 편에 있습니다.
레옹 블루아(1846-1917)는
"사람이 하느님께 기도하지 않는다면 악마에게 기도하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한계와 약함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방법에는 중간이란 것이 없습니다.
기도하거나 모독하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모독에 길들여진 육신, 죄의 상처를 낫게 하기 위해 도움을 청할 줄 모르는 육신은
타인의 상처를 낫도록 도울 수도 없습니다.
타인과 거리를 두고 살며 자신외에는 그 누구와도 이웃이 되지 못합니다.
하느님께 자신의 삶을 봉헌한다 해도 그것은 단지 자애심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갖가지 유배, 모든 상처, 모든 약함, 모든 한계를 거부하게 하는
뿌리 깊은 이기주의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됩니다.
이것은 바이러스도 비타민도 아닌 바리사이의 결벽과 같은 것입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감성의 밤에서 영혼의 밤으로 넘어가는 순간,
우리에게 닥치는 폭풍우와 고통에 대해 말합니다.
그는 '사탄의 전령'이라 부르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간음의 영'과 '모독(자기만족)의 영' 외에 '어지러움의 영'에 대해 말합니다.
이 영은 사람의 마음이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의심과 걱정,
망상과 불안에 이리저리 흔들리게 만듭니다.
세 가지 한계와 세 가지 상처, 그리고 세 가지 약함을 체험한 영혼은
정화의 정점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느님의 선물에 마음을 열게 하는 것이 기도이며,
이 선물을 우리 육으로 느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영신수련 묵상 길잡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