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공간과 문학관 기말과제
이병주 소설가의
생애 연보와 문학사적 의미
201460-010027
김미경
1. 들어가며
본 과제물은 나림 이병주 소설가의 생애 연보와 문학사적 의미를 연구하여 정리함으로써 이병주 문학공간과 문학관의 콘텐츠가 갖는 의미를 생각해 보는데 그 의의가 있다. 이병주(1921. 3.~1992. 4.)는 마흔이 넘어 창작을 시작하였는데 총 60편의 중·장편을 썼다고 한다. 사회와 역사의 진실을 담아내는데 그 문학적 목적을 두고 창작하였고 역사적 사실을 형상화 했다고 한다. 역사의 질곡을 살아낸 그의 삶을 연보를 통해 살펴보고, 전문 평론가들이 그를 문학사에서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연구해 보고자 한다. 김윤식 교수가 쓴 단행본 <이병주와 지리산>을 통해 이병주 작가 탄생 이야기를 살펴보고, 논문은 중앙대학교의 손혜숙이 쓴 박사논문(2011) “이병주 소설의 역사인식 연구”, 건국대학교 음영철이 쓴 박사논문(2011) “이병주 소설의 주체성 연구”, 경희대학교 노현주의 박사논문(2012) “이병주 소설의 정치의식과 대중성 연구” 등으로 이병주의 생애와 문학사적 의미를 살펴보려고 한다.
2. 자세한 연보를 통해 본 이병주의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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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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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 |
3. 16. 경남 하동군 북천면에서 출생. 아버지 이세식, 어머니 김수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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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 |
4년제인 북천공립보통학교 입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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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 |
북천공립보통학교 졸업, 하동군 양보공립보통학교 입학(5학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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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 |
양보공립보통학교 졸업: 이 학교에서 “자아, 세계, 문학에 대해 인식하는 기회를 갖게 된다. 알퐁스도데 <마지막 수업>을 읽고 당시 식민지 상황에서 일본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준 원인이 됨. 보통학교 졸업 후 인문계 시험을 보았지만 부친 이세식 반대로 방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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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 |
진주 공립농업학교 입학(5년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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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 |
진주공립농업학교 4학년 때 일본인 교사와의 사건으로 퇴학, 일본 경도로 가서 검정시험 치르고 중등 졸업 자격을 얻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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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 |
일본 메이지 대학 문예과 입학 - 독서로 철학자, 문학가(니체, 도스토예프스키, 정약용, 루쉰)를 만남. 이때 독서노트를 작성함. 이는 “용서합시다” “허망과 진실”이라는 에세이집으로 출간된다. 스페인 내란에 대해 인지하고 그것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갖게 됨. 루쉰 전집을 통해 진정한 문학을 깨달음. 사상의 중립화. 회색의 사상으로 고착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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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 |
이점휘와 결혼. 같은 해 9월 메이지 대학을 졸업. 10월 반강제적으로 학병제 지원. 민족의식, 세계관, 역사관이 부족했기에 끝까지 저항할 수 없었음을 후회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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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 |
1. 20. 대구의 제20사단 제80연대 통신대에 배치됨. 며칠 후 기차타고 압록강, 만리장성이 있는 산해관을 지나 서주에 도착함. 만리장성을 통해 역사에 개안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함. 2. 5. 소주에 도착. 제60사단 치중대로 최종배치. 독서력을 쌓아감. 도스토예프스키 <죽음의 집의 기록> 읽으며 견디고 <악령>읽으며 사상운동에 나름 판단기준이 정립됨(회색의 사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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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 |
7. 30. 소주에서 100리 남방에 떨어진 ‘상열’ 소도시로 파견 9. 1. 현지에서 제대하여 상해로 감. 상해에서 6개월 머묾 <유맹-나라잃은 사람들> 3막4장 희곡 씀(1959. 문학 11월호에 발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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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 |
3. 부산으로 귀국해 귀향. 9. 진주농업학교 영어 가르침, 진주 농과대학 강사직 겸함. 해방 후 이병주 행동 근원에 인간 중심의 휴머니즘 사상이 내재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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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 |
진주 농대 영어, 프랑스어, 청학개론을 강의하기 시작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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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 |
진주농과대학 개고1주년 기념으로 오스카와일드의 ‘살로메’연출 진주농대 조교수 발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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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 |
7. 29. 가족 데리고 처가 고성으로 피난 9. 26. 이동 연극단 17명 데리고 하동으로 향함. 적군 부역했다는 이유로 체포됨. 친구의 도움으로 한 달도 안 돼 풀려남. 하동 생가로 가서 가업 양조장 일을 거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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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 |
5. 지기의 사망 소식을 접한 후 해인사로 들어감. 7. 12. 해인사가 공산 빨치산 습격 받음. 빨치산 중 와세다 대학에 다녔던 사람이 도와줘 모면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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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 |
이후 해인 대학 강의 시작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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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 |
3대 국회의원 선거 하동군 무소속 출마 3위로 낙선. 낙선 후 해인 대학 이전에 따라 진주에서 남산으로 옮김. 교수로 입지 굳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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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 |
마산으로 거주지 이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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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 |
부산일보 <내일 없는 그날> 연재함(장편)-1959년 단행본 출간, 영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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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 |
11. 부산국제신보 논설위원 초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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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 |
국제신보 주필 발령, 편집국장 겸. 부친 이세식 타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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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 |
교원노주 고문이란 이유로 구속하려 했으나 증거가 없자, 두 편의 논설 때문에 구속됨. 1960. 12월호 ‘새벽’에 ‘조국의 부재’논설이 실림. 용공으로 몰고 감. 6. 22. 특수범죄처벌에 의한 특수법으로 재판받고 실형 언도 받음 같은 해 연말-징역 15년 구형 받고 감옥생활 시작. 끊임없이 독서력 키움. ‘사기’읽으며 사마천의 역사관을 습득함. 기록을 중심에 둔 자신만의 문학관을 정립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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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 |
징역 10년형 확정. 부산교도서로 이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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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 |
12. 16. 부산교도소에서 출감. “소설을 통해 우리 현대사의 전통과 역사가 기록하지 않은 또한 할 수 없는 그 함정들을 메우는 작업을 해야겠다는 일념을 가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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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 |
1년 동안 국제신보 논설위원으로 재직함. 사업 시작했으나 실패. 6월 ‘세대’지에 소설을 발표. <소설. 알렉산드리아>중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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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 |
3월 신동아 <매화나무 인과> 발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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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 |
8월 <마술사> 발표. 4월 ‘월간 중앙’에 <관부연락선> 연재시작함. 아폴로 출판사를 스스로 내서 <마술사> 소설집 출간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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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 |
한국문학 작가상, 한국창작문학상 받음 <화원의 사상>, <망명의 늪>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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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
한국펜문학상 <和의 의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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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 |
신경남일보 명예주필 겸 뉴욕지사장 직함으로 미국으로 감. <제 5공화국> 집필하다 폐암 선고받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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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 |
4월 타계함. |
3. 문학사적 의미
김윤식은 그의 저서 『이병주와 지리산』을 통해 이병주를 용병출신의 운명 극복방식이 잘 드러난 작가라고 평하고 있다. 그리고 <관부연락선>작품 등의 ‘나=주인공’이라는 도식 만들기의 특유성으로 튼튼한 구성을 갖추고 있다고 평가한다. 이병주는 자신을 감옥에 넣은 특정 이데올로기와 싸우는 방식이 표면적으로 ‘회색의 사상’이었지만 군부 파시즘과 맞서고 공산주의와도 맞서고자 했으며 현실로 맞서기 어려워 도스토예프스키처럼 ‘환각하기’를 시도하는데 그게 ‘인간답다‘는 것에 이르는 것이었다고 김윤식은 평한다. 이병주는 군부 파시즘이나 공산주의를 ’역사‘ 혹은 ’대낮의 사상‘이라 여기고 자신은 ’한밤중의 사상‘으로서 소설을 써갔다는 것이다. 이는 “햇빛에 노출되면 역사가 되고 달빛에 노출되면 신화가 된다.”는 이병주의 말에 힘을 실어 김윤식은 이병주를 “소설가이자 동시에 신화 기록자”라고 평하고 있다.
손혜숙은 그의 논문에서 이병주가 다음의 다섯 가지 인식의 문학을 실천했다고 전한다. “사랑을 통한 인식, 정리를 통한 인식, 비판을 통한 인식, 생활 속에서 드라마를 발견해 내는 인식, 기록을 통한 인식”으로 말이다. 일반적으로 소설이 당대의 사회 현실상황을 재현하는데 이병주 역시 독특한 방식으로 역사적인 체험을 토대로 ‘사실’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는 자신의 역사 개인 체험 기억을 가지고 역사에서 기록하지 않은 사건이나 인물을 복원하여 역사적인 진실을 밝혔다고 볼 수 있다. 아울러 우회적인 방식으로 당대의 문제를 지적하고 그것을 역사로 기술하기도 했다. 이병주 소설은 이처럼 역사에 대한 인식의 폭을 확장시켰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나아가 이병주 소설 <지리산>을 통해 빨치산에 대해 새롭게 인식할 계기가 마련되었고 자신의 감수성을 있는 그대로 잘 드러냄으로써 대중성 있는 작품을 썼다. 대중들의 의식에 단지 흥미로만 다가간 게 아니라 역사와 철학 등의 교양을 높이는 의식 있는 일깨움을 갖고 다가갔기에 많은 공감을 얻어 내는 작가가 되었다.
다음은 비평가들이 이병주의 소설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김윤식은 이병주의 글쓰기 방식은 문단과 거리가 멀었고 순수문학 마당에 서지 못했다고 평가하면서 이병주가 허구이기도 한 역사적 글쓰기를 시도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그리고 그의 학병 체험이 문학에 이어진다고 주장하였다.
김종회는 이병주의 거의 모든 작품에 ‘감옥 콤플렉스’가 나타난다고 주장하면서 이병주가 미학적 가치와 사회사적 의의를 갖는 주제를 선택해 힘을 분산하지 않고 집중했다면 보다 더 웅장한 작품을 생산했을 것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이광훈은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려 희생된 개인의 비극과 애환을 그린 작가라고 평가한다. 김복순은 <지리산>을 계기로 빨치산에 대한 재인식이 가능해졌다고 말한다. 이재선은 이병주 소설은 반 이데올로기적 휴머니즘 요소가 강하다고 말한다.
임헌영은 이병주 문학은 우리시대의 역사 인식 방법론의 원형을 제시했고 그의 문학 전반을 관통하는 하나의 사상은 휴머니즘이라고 말한다. 다만 계몽주의와 교훈주의가 문제점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노현주는 이병주는 역사의식의 문학적 형상화를 대표하는 작가로 평가받고 있으며 왜곡된 정치지형 아래서 이야기될 수 없었던 개인의 진정성을 탐구하고 이병주의 모험이 정치성을 통해 뛰어난 대중적 감수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한다. 나아가 노현주는 이병주 문학의 특성을 뉴저널리즘 문학이라고 평가한다. 아울러 사소설의 리얼리티를 통해 독자들이 이야기 속에 쉽게 몰입하도록 했다고 평가한다. 결국 이병주는 우리 문학에서 정치 사회적 비평과 교양을 욕망하는 대중성에 대해 조명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고 주장한다.
위에서 언급한 여러 비평가들의 말과 논문들의 내용을 종합해 보면 이병주 문학이야말로 체험에서 우러나온 이야기를 역사라는 커다란 바다 안에 녹여 독자들에게 역사적 진실을 생각하게 하고 올바른 역사의식의 힘을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당대의 정치와 철학 그리고 사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며, 그로 인해 휴머니즘적인 정서로 대중에 깊이 파고들었던 작가라고 요약할 수 있겠다.
4. 나오며
나림 이병주 작가는 한국문학사에 올라가 있지 않아서 단행본 자료가 거의 없어서 연구 논문을 통해 자료 조사를 해 보았다. 이병주 작가가 얼마나 험한 역사의 소용돌이를 굽이쳐 나왔는지 알 수 있었고 그의 역사의식은 생존을 위한 투쟁이기도 했다고 생각된다. 일제 강점기에 학도병으로 소주에서 활동한 것을 부끄러움으로 안고 돌아와서 다시 한국전쟁의 이데올로기에 휘말려 2년 7개월간의 감옥살이를 하면서 그는 도스토예프스키를 닮고자 하였다. 현실을 개혁하고자 하는 의지로 국회의원 선거에도 나갔다 낙선도 해보고 정치인들과도 소통을 꿈꿨지만 결국 가장 잘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길은 체험을 신화적으로 형상화한 소설쓰기였다. 그의 작품을 보면 대중성을 획득한 작품들이 굉장히 많다. <행복어사전> <지리산> <관부연락선> <소설· 알렉산드리아> 등은 소설에 문외한인 사람들도 거의 다 아는작품들이다. 연구자는 2015년 5월 24일 경남 하동 이병주 문학관을 다녀왔다. 이병주 문학관은 이병주 작가의 고향인 하동 북천면에 자리 잡고 있었다. 방송 수업을 할 때는 잘 몰랐지만 직접 가서 문학관을 둘러보고 진열된 이병주 작가의 생애와 작품들을 보면서 굉장히 열성적인 작가임을 알게 되었다. 내적 에너지가 커다란 얼굴 사진에서도 뿜어 나오고 있었고 관람자들에게 바로 옆에서 살아 움직이며 말을 건네는 것만 같았다. 이병주 문학관 관련 콘텐츠 계발은 연구자에 의해 점점 활성화 될 것으로 생각된다. 끝.
※ 참고문헌
[단행본]
김윤식, 『이병주와 지리산』, 국학자료원, 2010.
[논문]
노현주, “이병주 소설의 정치의식과 대중성 연구”, 경희대 박사논문, 2012.
손혜숙, “이병주 소설의 역사인식 연구” 중앙대 박사논문, 2011.
음영철, “이병주 소설의 주체성 연구” 건국대 박사논문, 20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