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의 예식 다음 토요일

2011. 3. 7. 오전 7:14:15

글자
 
루카 5,27-32
오늘은 하느님의 선물이라는 뜻을 가진 주님의 제자인 마태오라고 불릴 세리 레위를 부르시는 장면입니다. 당시 세리는 세금을 거둬들이는 로마의 하수인으로 율법을 지키지 않는 죄인 취급을 받는 천덕꾸러기로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과는 함께 어울리지 못했습니다.
요즈음에는 행복하십니까?’라는 인사를 서로 하곤 합니다. 이 세리도 행복하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레위에게 나를 따라라.”라고 부르십니다. 레위는 무슨 생각을 하고 예수님을 따라나섰을까요? /우리부부도 예수님을 따라나섰을 때, 무슨 생각이 있었을까?
레위는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기는 하지만 안정된 직업이었습니다. 살기에는 넉넉했다고 불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나/우리부부에게도 안정적이긴 하지만 뭔가 더 삶의 갈증이 있었을 것입니다.
레위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선뜻 나섭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위해서 큰 잔치를 베풉니다. 잔치뿐만 아니라 가진 것을 나눕니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은 못마땅해 합니다. 함께하고 싶지도 않고, 이런 사실을 받아들이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세리는 주님을 따라나섰습니다.
/우리부부도 예수님의 부름에 어떤 자세인지도 생각하게 합니다. 나의 진정한 행복을 위해서 나의 의식은 어떤지? 소명의식은 어떤지? 나의 갈망을 기도로 표현하고는 있는지를 돌아보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따라라.” 하시는 음성이 나를 꿰뚫고 있는 주님의 시선을 느껴봅니다. 진정한 행복, 다른 사람에 의해서 흔들리는 것이 아닌 주님이 나를 위해 마련하신 행복을 생각해 봅니다.
주님은 흔들리는 나를 위해서 말씀하십니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고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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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세관에 앉아 있는 레위를 보고 무슨 말씀을 하셨을까요? 어느 분이 대답하시기를, “너 행복하냐?”라고 하셨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세리라는 소리를 들으며 돈이나 모으고, 죄인 취급을 받으며 사는 것이 정말 행복한지를 예수님께서 물어보셨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레위에게 하셨을 것이라는 그 질문은 사실은 이런 묵상을 한 바로 그 사람에게 던지신 물음이기도 합니다.
가끔씩 우리도 자신에게 ‘나는 진정 행복한가?’ 하고 정직하게 물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진정 행복하지 않다면, 무엇이 문제인지 깊이 성찰해 보아야 합니다. 잠시 느끼는 만족을 행복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삶에서 잠시 머물다 사라지는 것은 사실 행복을 주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어떤 것이든 그것이 영원한 것이 아니라면, 그 안에 이미 언젠가는 그 기쁨을 잃어버릴 ‘허망한 미래’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언젠가는 사라지고 말 것을 가지고 우리 삶에서 진정한 행복을 말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삶에서도 우리가 하는 행동, 하고 있는 일, 추구하는 이상이 ‘영원한 것’에 가 닿아 있지 않으면 진정한 행복을 느끼지 못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언젠가는 허망한 슬픔으로 바뀌고 말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레위에게 “나를 따라라.” 하고 말씀하신 이유도, 레위의 그 삶이 결코 행복해 보이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내면에 그늘을 안고 살면서 결코 행복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레위가 예수님을 따라나선 새로운 삶은 영원한 가치를 가진 것입니다. 다시 말해, 레위는 진정한 내면의 행복을 찾은 것입니다. 우리도 그런 행복을 찾아야 합니다.

댓글 1

  • 2011년 3월 8일 오전 8:06

    보충하였습니다.

오늘의 묵상 사순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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